체험수기는 아니지만 훌륭한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본체험수기 · #373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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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옹다리 · 2009-06-01 20:12:11 · 조회 800
---펌글입니다.

-----
* 가슴 뭉쿨한 삶의 이야기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고장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 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 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다니며
가을에 입던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치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 날밤 나는 졸음을 깨우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불행히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나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 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차디찬 도시락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등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렸다
엄마.........엄마.........나 합격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사장 골목에서
한참동안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그날 엄마는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께...
함지박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을
돈도받지 않고
모두 내주셨다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 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 주고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나를 자랑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 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

그날 저녁 ...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우리가족 셋은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복받치셨는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들지 못하셨다
그저 색바랜 국방색 전대로 눈물만 찍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 텐데...
너희들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원래 심성이 고운 분이다
그토록 모질게 엄마를 때릴만큼독한 사람은 아니었어...
계속되는 사업 실패와
지겨운 가난 때문에
매일 술로 사셨던 거야
그리고 할말은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몸이 성치 못한 자식을 둔 아비
심정이 오죽했겠냐





내일은 아침일찍 아버지께 가 봐야겠다
가서 이 기쁜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는데
우리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다
그러다가 하루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서 한장만 달랑남긴 채
끝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위로 올라가다가 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계단 중간에서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온 몸이 아팠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 뒤 나는 흙 묻은 교복을 털어 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았고 그 순간...
내 등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

한번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
있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일까봐
그래서 혹시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봐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 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건 굽이굽이 고개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계신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워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갚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 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시간씩
큰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 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나르고 밤이 되서야 일을 마쳤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보며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
-------------------------------------------
위의 글은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 글입니다 .....
그 후 이 학생은 ...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여
박사과정에 있으며 국내의 굴지 기업에서
전부 뒷바라지를 하고 있으며...
어머니와 형을 미국에서 모시고
같이 공부하면서 보살핀다고 한다





요즘 우리들은 사랑이나...
행복성공을 너무나 쉽게 얻으려 하고
노력도 해보기전에 포기도 쉽게합니다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서 밝은...
삶을 얼마든지 만들수 있다는것을
이런글에서 배울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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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11)

가을동화 · 2009-06-01 20:27:54
오랜만에 좋은 글을 잘 보구 가요 ㅎㅎ
심심할때 · 2009-06-01 21:11:53
이글을 읽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네요.
어려운 환경에서 참으로 열심히 강하게 사신 모습이 너무 감동이였습니다.
젠트맨 · 2009-06-01 22:03:52
굿... 역시 남자는 의지가 영혼이네요...
쎈스쟁이 · 2009-06-01 22:19:44
이거 정말 가슴에 와 닿는 글이군.
못난이 · 2009-06-02 09:06:59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다모클리스 · 2009-06-02 10:43:50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자기가 더욱 노력해야디겟다고 채찍질해주는 글입니다...
農耕民族 · 2009-06-02 12:50:53
自强不息.
담담 · 2009-06-02 17:43:01
아...내 눈물이여 ㅜㅜ

너무나 감동을 주는 글이네요

이런 좋은글 올려주신 주인장한테도 감사의 마음을
새록새록 · 2009-06-03 21:19:21
어둠은 내릴 것이다 ...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관우 · 2009-06-06 21:38:50
참 좋은 내용의 글 임니다 .
이 글을 읽으면서 자비감도 좀 가지네요 ...
좋은글 감사하꾸마 ㅋㅋ
또롱이 · 2009-06-07 03:51:58
너무 감동적인 글이네요

눈물날라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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