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래만에 쉼터에 들리게 됩니다.
작년 10월에 귀국하여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히로시입니다.
계속하여 귀국후의 소감을 여러 회원님께 회보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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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12일 드디여 귀국할 날자가 되였다.
오전 10시쯤 사전에 련계 하였던 일본인 친구가 큰 봉고차를 몰고 나의 집에 도착하였다.
네 식구가 5년동안 일본에서 생활하여 왔던 가정기물들을 미리전에 많이 처리하였지만 중국에 가지고 갈 짐들이 적지않았다. 려비절약을 위해 값 비싼 비행기편은 포기하고 시모노세끼 - 상해(下关-苏州太仓) 배편을 미리 예약해 놓았다.
일본에서 함께 분투하였던 여러 친구들도 아침 일찍 짐 정리와 운반을 거들어주었다. 가지고 갈 짐은 무거운 서류를 포함하여 대략 300키로정도는 잘 되였다.예정된 시간 11시에 시모노세끼 항구를 향하여 나의 가족과 짐을 태운 봉고차가 출발하였다.
오후 3시쯤에 시모노세끼 항구에 짐을 부리우고 4시부터 배 탑승수속이 시작되였다.
탑승객은 나의 가족4명을 포함하여 모두 18명이였다. 항구에서 마음씨 고운 중국편 려객선회사 직원의 도움으로 3천엔을 물고 200키로이상되는 초과된 짐운반수속을 순리롭게 마쳤다.
배에서 제일 좋은 특등석 한칸(네식구가 6만5천엔 짜리 스이도룸)을 미리전에 예약하였기에 2일간 바다려행은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10월이여서 태풍이없는 바다는 잔잔한 바람만 불었고 또한 배도 아주 큰 려객선이였기에 두 아들도 배멀미를 하지 않고 하루종일 여기저기 배안에서 뛰여다니며 재미있게 놀아주었다.
10월16일 나의 가족을 태운 배는 무사히 소주시의 태창항구에 도착하였다.
2일간 바다려행 중 중국의 려객선 회사 직원들의 서비스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일본에서 려객선 탑승수속 때 짐검사는 아예 없었고 중국측 짐검사도 엄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파견한 봉고차가 미리 항구에 대기하여 있었고 마중나온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적은 큰 간판을 들고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우선 내가 돌아가는 병원과 도시에 대하여 간단한 소개을 한다.
내가 돌아가는 병원은 절강성 녕파시의 초소로 불리우는 주산시에서 제일 큰 지구급 종합병원이다. 주산시는 절강성에서 4번째로 경제가 발달한 어업 ,관광업, 조선업등을 위주로 한 백만 인구를 가진 섬도시였다. 대만의 소설가 김용선생의 소설에서 등장되는 황요사의 도화도(桃花岛)와 4대불교명산중 하나인 보탑산(普陀山)도 주산시 경내에 자리잡고 있었다.
중국 태창항구의 땅을 밟고 또 5시간 가량 봉고차를 달려서야 내가 근무하게 될 주산시 인민병원에 도착하였다.
오후 6시쯤,병원의 인사과 과장과 신경내과 주임, 그리고 제1원장님이 미리 예약해놓은 연회청에서 나의 가족들은 병원령도들과 저녘식사를 함께 하였다.
병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120평방짜리 장식을 포함한 새집은 금년 10월쯤에야 정식이으로 들게 될수 있기에 잠시간은 병원의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였다.귀국하여 일주일간 애들의 유치원수속과 생활필수용품등 준비를 끝내고 병원에 정식출근하였다.
3개월간 병원근무와 주산시에서의 일상생활을 통하여 내 조국 중국도 일본보다 못지않다는 느낌이 들었고 또 나의 선택이 틀리지는 않았다는 확신감이 마음속 깊이 느껴왔다. 주위의 동사자들도 따뜻한 응원을 하여 왔고 필경은 자기의 조국에 돌아왔기에 마음 편히 일을 할수 있게 되였다.
다른 한면 남방의 도시의 물가도 일본 못지 않게 비싸다는 느낌도 들었고 전체 국민소질의 향상이 경제발전속도에 비해 많이 뒤떨어졌다는 서분함과 안타까움도 나의 마음을 괴롭혔다.
나의 안해도 같은 병원에 출근할수 있도록 병원 지도부에서 인사조동 수속을 도와나섰고 인터넷등록수속,핸드폰수속,그리고 애들의 유치원 입학등등 사소한 일도 모두 병원에서 직접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리고 5년동안 그리운 고향 – 연변에 돌아간적이 없다고 병원에서 3주일간 음력설 휴가를 권고하였고 이번 귀국할때 쓴 모든 비용과 음력설 귀향시의 모든 려비도 병원에서 해결해준다고 병원지도부로부터 결정이 내렸다.....
끝으로 나의 글을 읽어 주신 쉼터 회원 여러분들도 새해에 하시는 일 뜻대로 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귀국을 예정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고 계시는 여러분들도 남방의 연해 중등도시를 대상으로 일자리를 찾으시면 꼭 좋은 취업자리가 있다고 생각되니 저의 글이 님들의 취직에 적으만한 도움이라도 되여준다면 고맙게 생각됩니다.
2009년 1월10일 절강성주산시에서 히로시 올림
작년 10월에 귀국하여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히로시입니다.
계속하여 귀국후의 소감을 여러 회원님께 회보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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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12일 드디여 귀국할 날자가 되였다.
오전 10시쯤 사전에 련계 하였던 일본인 친구가 큰 봉고차를 몰고 나의 집에 도착하였다.
네 식구가 5년동안 일본에서 생활하여 왔던 가정기물들을 미리전에 많이 처리하였지만 중국에 가지고 갈 짐들이 적지않았다. 려비절약을 위해 값 비싼 비행기편은 포기하고 시모노세끼 - 상해(下关-苏州太仓) 배편을 미리 예약해 놓았다.
일본에서 함께 분투하였던 여러 친구들도 아침 일찍 짐 정리와 운반을 거들어주었다. 가지고 갈 짐은 무거운 서류를 포함하여 대략 300키로정도는 잘 되였다.예정된 시간 11시에 시모노세끼 항구를 향하여 나의 가족과 짐을 태운 봉고차가 출발하였다.
오후 3시쯤에 시모노세끼 항구에 짐을 부리우고 4시부터 배 탑승수속이 시작되였다.
탑승객은 나의 가족4명을 포함하여 모두 18명이였다. 항구에서 마음씨 고운 중국편 려객선회사 직원의 도움으로 3천엔을 물고 200키로이상되는 초과된 짐운반수속을 순리롭게 마쳤다.
배에서 제일 좋은 특등석 한칸(네식구가 6만5천엔 짜리 스이도룸)을 미리전에 예약하였기에 2일간 바다려행은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10월이여서 태풍이없는 바다는 잔잔한 바람만 불었고 또한 배도 아주 큰 려객선이였기에 두 아들도 배멀미를 하지 않고 하루종일 여기저기 배안에서 뛰여다니며 재미있게 놀아주었다.
10월16일 나의 가족을 태운 배는 무사히 소주시의 태창항구에 도착하였다.
2일간 바다려행 중 중국의 려객선 회사 직원들의 서비스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일본에서 려객선 탑승수속 때 짐검사는 아예 없었고 중국측 짐검사도 엄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파견한 봉고차가 미리 항구에 대기하여 있었고 마중나온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적은 큰 간판을 들고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우선 내가 돌아가는 병원과 도시에 대하여 간단한 소개을 한다.
내가 돌아가는 병원은 절강성 녕파시의 초소로 불리우는 주산시에서 제일 큰 지구급 종합병원이다. 주산시는 절강성에서 4번째로 경제가 발달한 어업 ,관광업, 조선업등을 위주로 한 백만 인구를 가진 섬도시였다. 대만의 소설가 김용선생의 소설에서 등장되는 황요사의 도화도(桃花岛)와 4대불교명산중 하나인 보탑산(普陀山)도 주산시 경내에 자리잡고 있었다.
중국 태창항구의 땅을 밟고 또 5시간 가량 봉고차를 달려서야 내가 근무하게 될 주산시 인민병원에 도착하였다.
오후 6시쯤,병원의 인사과 과장과 신경내과 주임, 그리고 제1원장님이 미리 예약해놓은 연회청에서 나의 가족들은 병원령도들과 저녘식사를 함께 하였다.
병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120평방짜리 장식을 포함한 새집은 금년 10월쯤에야 정식이으로 들게 될수 있기에 잠시간은 병원의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였다.귀국하여 일주일간 애들의 유치원수속과 생활필수용품등 준비를 끝내고 병원에 정식출근하였다.
3개월간 병원근무와 주산시에서의 일상생활을 통하여 내 조국 중국도 일본보다 못지않다는 느낌이 들었고 또 나의 선택이 틀리지는 않았다는 확신감이 마음속 깊이 느껴왔다. 주위의 동사자들도 따뜻한 응원을 하여 왔고 필경은 자기의 조국에 돌아왔기에 마음 편히 일을 할수 있게 되였다.
다른 한면 남방의 도시의 물가도 일본 못지 않게 비싸다는 느낌도 들었고 전체 국민소질의 향상이 경제발전속도에 비해 많이 뒤떨어졌다는 서분함과 안타까움도 나의 마음을 괴롭혔다.
나의 안해도 같은 병원에 출근할수 있도록 병원 지도부에서 인사조동 수속을 도와나섰고 인터넷등록수속,핸드폰수속,그리고 애들의 유치원 입학등등 사소한 일도 모두 병원에서 직접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리고 5년동안 그리운 고향 – 연변에 돌아간적이 없다고 병원에서 3주일간 음력설 휴가를 권고하였고 이번 귀국할때 쓴 모든 비용과 음력설 귀향시의 모든 려비도 병원에서 해결해준다고 병원지도부로부터 결정이 내렸다.....
끝으로 나의 글을 읽어 주신 쉼터 회원 여러분들도 새해에 하시는 일 뜻대로 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귀국을 예정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고 계시는 여러분들도 남방의 연해 중등도시를 대상으로 일자리를 찾으시면 꼭 좋은 취업자리가 있다고 생각되니 저의 글이 님들의 취직에 적으만한 도움이라도 되여준다면 고맙게 생각됩니다.
2009년 1월10일 절강성주산시에서 히로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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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22)
와우,일본에서 분투한성과가 크네요,,
앞으로도 잘나가기를 바라면서,
나도 바짝 힘내야지,ㅎㅎ
앞으로도 잘나가기를 바라면서,
나도 바짝 힘내야지,ㅎㅎ
님의 글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노력하는자한테는 항상 행운이 뒤따르군요 !
그 어떤 형식의 노력이든,
노력하는 자는 꼭 성공할거라고 믿습니다.
저희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는글,
마음속으로부터 감사드립니다.
님 가족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노력하는자한테는 항상 행운이 뒤따르군요 !
그 어떤 형식의 노력이든,
노력하는 자는 꼭 성공할거라고 믿습니다.
저희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는글,
마음속으로부터 감사드립니다.
님 가족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님은 학문이 있는 분이십니다.
내 마음속으로부터 많이 탄복하고 있습니다.
님의 글을 읽느라면 지식분자의 농후한 자취를 느낄수있습니다.
저는 아직두 많은 지식을 더 배워야만 님처럼 될수 있다구 생각됩니다.
님과 비한 나자신의 너무도 작아보입니다.
힘은 내야지유..힘내 하노라면 성과가 보일거라구 믿구 잇습니다.
뭐 그냥 생각을적었습니다.
실례햇습니다.
내 마음속으로부터 많이 탄복하고 있습니다.
님의 글을 읽느라면 지식분자의 농후한 자취를 느낄수있습니다.
저는 아직두 많은 지식을 더 배워야만 님처럼 될수 있다구 생각됩니다.
님과 비한 나자신의 너무도 작아보입니다.
힘은 내야지유..힘내 하노라면 성과가 보일거라구 믿구 잇습니다.
뭐 그냥 생각을적었습니다.
실례햇습니다.
普陀山좋은 곳이죠..
두번 간적 있습니다..
깊은 미음속의 또 하나의 나자신을 찾을수 잇습니다...
의료약품같은 방면의 업종으로 전근하려하는데 좋은 정보 있으면 가금씩 들려주세요
두번 간적 있습니다..
깊은 미음속의 또 하나의 나자신을 찾을수 잇습니다...
의료약품같은 방면의 업종으로 전근하려하는데 좋은 정보 있으면 가금씩 들려주세요
잘 나간다니 일단 축하드리고,
많은 조선족들이 유학생활 마치고 중국의 산지사방에 널려산다면,
정말 우리 조선족들한테 좋은것입니까??
그러나 님 개인한테만 놓고말하면 좋은 일인것같습니다.
그저 마음에 걸리는건 자식공부는 어떻게 시킬생각입니까?
많은 조선족들이 유학생활 마치고 중국의 산지사방에 널려산다면,
정말 우리 조선족들한테 좋은것입니까??
그러나 님 개인한테만 놓고말하면 좋은 일인것같습니다.
그저 마음에 걸리는건 자식공부는 어떻게 시킬생각입니까?
김용이 홍콩사람 아니구 대만사람이였군요.처음 알게 됐슴니다.
现在只能打汉语,请谅解。。
以前拜读过您写的文章,印象很深。我觉得您是一位非常有成就,很优秀的人,也为我们朝鲜族挣了光。
我有一朋友也是周山人,据说那里人们生活富裕,居住环境舒适,各方面条件也都不错。选择在那座城市居住和工作是很不错的决定。
希望您工作顺利,生活愉快,全家幸福!
以前拜读过您写的文章,印象很深。我觉得您是一位非常有成就,很优秀的人,也为我们朝鲜族挣了光。
我有一朋友也是周山人,据说那里人们生活富裕,居住环境舒适,各方面条件也都不错。选择在那座城市居住和工作是很不错的决定。
希望您工作顺利,生活愉快,全家幸福!
히로시 님
넘 행복해 보이네요. 축하드립니다.
님은 뭐나 계획성있게 노럭 하셨겠지요. 대단합니다.
본래 의학공부는 일본에서도 아주 힘든 공부인데...
알차게 쭉-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넘 행복해 보이네요. 축하드립니다.
님은 뭐나 계획성있게 노럭 하셨겠지요. 대단합니다.
본래 의학공부는 일본에서도 아주 힘든 공부인데...
알차게 쭉-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우선 귀국생활이 순리로움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제 2년후엔 박사공부마치고 중국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아직도 도시는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좋은 소감을 들었으니 저도 노력해야겠습니다.
귀국하신 다른분들도 이런 긍정적인 소감을 많이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제 2년후엔 박사공부마치고 중국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아직도 도시는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좋은 소감을 들었으니 저도 노력해야겠습니다.
귀국하신 다른분들도 이런 긍정적인 소감을 많이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僕の知り合いがいますけど、ひろしさんと同じく医学の専攻でした。博士の学位まで勉強を終わらせ、大都市の病院に勤めることになりました。しかし、最初の打ち合わせとだいぶ違ってきたことと、国内の背徳な病院風潮にかなりストレスを感じ、結局は、日本に戻って再就職したそうです。上海の周辺であれば、いろんな面で状況がよくなってくるとおもいますが、どうかひろしさんのご健闘祈ります!
많은 사람들의 힘이 되는 글이네요
앞으로도 귀국소감 쭉~ 올려주세요
앞으로도 귀국소감 쭉~ 올려주세요
녕파엔 이름난 관광명소가 그득합니다
http://www.china7.jp/bbs/board.php?bo_table=4_1&sca=寧波
전 이후에 상해 에서 살려구그러는데 이후에 병원갈일있으면 녕파까지 차몰구 히로시 님한테 가야겠어요 ,,, 중국가서 젤걱정되는게 아플때 내몸을 남한테 안심하게 맡길수있다는 점이였는데 ㅇㅇ
가족모두 즐겁게 잘지내시길 바랍니다
http://www.china7.jp/bbs/board.php?bo_table=4_1&sca=寧波
전 이후에 상해 에서 살려구그러는데 이후에 병원갈일있으면 녕파까지 차몰구 히로시 님한테 가야겠어요 ,,, 중국가서 젤걱정되는게 아플때 내몸을 남한테 안심하게 맡길수있다는 점이였는데 ㅇㅇ
가족모두 즐겁게 잘지내시길 바랍니다
어이 잘있었음둥?
당신이 똑똑하니까 그사람들이 그렇게 대우를 잘해주지
좀 어리무던하게 생기면 찜을 쪄먹으려고 들게오
그나저나 병원에서 의덕을 지키는 훌륭한 의사선생님이 됩소
생긴건 토비처럼 생게두 글은 선비처럼 쓴다.한마디 칭찬하고 가자ㅎㅎㅎ
당신이 똑똑하니까 그사람들이 그렇게 대우를 잘해주지
좀 어리무던하게 생기면 찜을 쪄먹으려고 들게오
그나저나 병원에서 의덕을 지키는 훌륭한 의사선생님이 됩소
생긴건 토비처럼 생게두 글은 선비처럼 쓴다.한마디 칭찬하고 가자ㅎㅎㅎ
수고 많으십니다
일이 잘 되여간다니 다행이고 ,
설은 잘 보내셨습니까?
님의 글을 보면서 의사나 교사는 사회적인 영향이 큰 직업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또 그래서 존경이 가고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계기가 되였습니다
또 그 중요성을 잘 알고 훌륭한 대우를 해주면서 인재를 끌어당기는 해당부문들의 발 빠르고 민감한 처사에 감탄을 하게 되는군요..
저번 글에서 고향인 연변을 근무지로 하냐 아니면 더 넓은 무대인 타향에서 근무하냐 하는 문제로 고민하시던 모습이, 연변에서 조선족교사는 수백명이 이,탈직을 했지만 보충된 인원수는 고작 수명?수십명정도라는 오늘 본 뉴스와 함께 떠오릅니다
물론 실리냐 명분이냐하는 갈림길에서 님이나 그 많은 교사분들이나 심각한 고민과 아픈 방황을 거치여 내린 선택이였겠지요
이름만 정든 고향인 고향이 거기에 태줄을 묻은 인재들에게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줄 능력도 방법도 없다면 고향 또한 그들을 막을 이유도 붙잡을 이유도 없는것이겠지요
다만,한가지 이제 악성순환만 되풀이될것 같다는 느낌만은 지울수가 없군요.
하지만 제가 무슨 민족운동가도 아니고,그렇다고 고향건설?에 이바지할수 있는 힘이나 재능이 있는 인재도 아니고..그렇다고 님들처럼 사회적영향을 가지는 전문지식을 가진것도 아니니..어찌 보면 이런 조금은 위선적이고 거대담론적인 고민을 붙잡고 앉아서 심각한척을 하기보다는 내 입에 풀칠하기 위한 먹고사니즘에 충실해야 하는것이 제 본분이고 앉을 자리 가리는것이겠지요
글에서 님은 여러가지 물질적인 방면에서 받는 풍성한 대우들에 대해 지면을 많이 할애하셨는데,물론 좋은 이야기들이고 또 그것이 우리들의 삶과 생활을 지탱해주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들임은 누가 감히 부정할수는 없는것들이겠으나,
다음 연재에서는 심적인 감수에 대해서도 좀 수고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예하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에 대해 두루 다 평을 하셔야 쉼터의 많은 분들도 비교적 객관적인 판단을 할수 있을것 같기에 하는 얘기입니다
늘 건승,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일이 잘 되여간다니 다행이고 ,
설은 잘 보내셨습니까?
님의 글을 보면서 의사나 교사는 사회적인 영향이 큰 직업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또 그래서 존경이 가고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계기가 되였습니다
또 그 중요성을 잘 알고 훌륭한 대우를 해주면서 인재를 끌어당기는 해당부문들의 발 빠르고 민감한 처사에 감탄을 하게 되는군요..
저번 글에서 고향인 연변을 근무지로 하냐 아니면 더 넓은 무대인 타향에서 근무하냐 하는 문제로 고민하시던 모습이, 연변에서 조선족교사는 수백명이 이,탈직을 했지만 보충된 인원수는 고작 수명?수십명정도라는 오늘 본 뉴스와 함께 떠오릅니다
물론 실리냐 명분이냐하는 갈림길에서 님이나 그 많은 교사분들이나 심각한 고민과 아픈 방황을 거치여 내린 선택이였겠지요
이름만 정든 고향인 고향이 거기에 태줄을 묻은 인재들에게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줄 능력도 방법도 없다면 고향 또한 그들을 막을 이유도 붙잡을 이유도 없는것이겠지요
다만,한가지 이제 악성순환만 되풀이될것 같다는 느낌만은 지울수가 없군요.
하지만 제가 무슨 민족운동가도 아니고,그렇다고 고향건설?에 이바지할수 있는 힘이나 재능이 있는 인재도 아니고..그렇다고 님들처럼 사회적영향을 가지는 전문지식을 가진것도 아니니..어찌 보면 이런 조금은 위선적이고 거대담론적인 고민을 붙잡고 앉아서 심각한척을 하기보다는 내 입에 풀칠하기 위한 먹고사니즘에 충실해야 하는것이 제 본분이고 앉을 자리 가리는것이겠지요
글에서 님은 여러가지 물질적인 방면에서 받는 풍성한 대우들에 대해 지면을 많이 할애하셨는데,물론 좋은 이야기들이고 또 그것이 우리들의 삶과 생활을 지탱해주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들임은 누가 감히 부정할수는 없는것들이겠으나,
다음 연재에서는 심적인 감수에 대해서도 좀 수고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예하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에 대해 두루 다 평을 하셔야 쉼터의 많은 분들도 비교적 객관적인 판단을 할수 있을것 같기에 하는 얘기입니다
늘 건승,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곳에 정착하게 되여 행복하시겟슴다
우리회사 지금 주산시에다 공장 꾸리구잇는데
연수생들이 18명 몽땅 주산시 사람이짐
갠데 지들끼리 말하므 전혀 못알아듣는다는
우리회사 지금 주산시에다 공장 꾸리구잇는데
연수생들이 18명 몽땅 주산시 사람이짐
갠데 지들끼리 말하므 전혀 못알아듣는다는
천겁만겁님의 글에 동감입니다!!!「글에서 님은 여러가지 물질적인 방면에서 받는 풍성한 대우들에 대해 지면을 많이 할애하셨는데,물론 좋은 이야기들이고 또 그것이 우리들의 삶과 생활을 지탱해주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들임은 누가 감히 부정할수는 없는것들이겠으나,
다음 연재에서는 심적인 감수에 대해서도 좀 수고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
다음 연재에서는 심적인 감수에 대해서도 좀 수고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
자식은 보나마나 데늠이 되겠구만.일본사람 아이되겠다구 돌아간게 결국은 제 고향두 아이구 똥떼들속에서 살아야 하는것두 우리 조선족들의 비애이짐.
암튼 돈 마이 벌어 부자 됩소.
암튼 돈 마이 벌어 부자 됩소.
모든것이 생각대로 잘 되여서 대단히 기쁘겟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앞으로 쭈욱 하는일이 잘 되고 애들도 잘 키우기를 바랍니다.
축하합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앞으로 쭈욱 하는일이 잘 되고 애들도 잘 키우기를 바랍니다.
축하합니다.
이와바 금의환향이네요
일체에는 처음 플을 남깁니다. 저도 딱 10년전에 주산시에서 살앗엇는데 가슴아픈 추억만 남기다니보니 별로 조은 인상이 없습니다. 님의 말씀대로 유명한 보탑산만은 기억속에 남아잇구 오랜만에 주산이라는 두 글자를 보니 너무 나쯔가시 합니다. 부디 하시는 일이 잘되고 온가족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비공개

쭉--------------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