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금방 결혼한 행복한 신부이다. 키가 한메터80 이나 되는 신랑은 참으로 든든한 존재로 날 지켜주고 내 모든것을 아끼고 내 와가마마도 다 받아준다.
3LDK 의 너른 만숀에서 내 맘대로 집을 꾸미고 아침일찍 깨여나 신랑한테 밥해주고 도시락꾸며 보내준다. 잠시 더 자다가 9시가되면 집에서 걸어서 5분되는 사무실에가서 가끔씩 찾아오는 사람들과 간단한 말을 나누다가 컴을 켜고 한가한 시간들을 보내다가 오후 5시가 되면 공공뻐스타고 10분되는곳의 쇼핑그몰에 가서 잠시 게임놀다가 집돌아와 식사준비하면 신랑도 들어선다.
주말이면 신랑하고 차몰고 삼촌집이거나 언니집이거나 동생의 숙사에 들려 인생의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있다. 그리고 나한텐 고민이란 없어진거라 굳게믿고있는다.
그러다가 전번주...
내가 원래살던 곳으로 오래동안 전차타고 일보러가게되였다. 너무나 익숙한 거리를 산보하다나니 마음은 한결 산뜻한 기분이였다. 홀로의 시간들을 즐기고싶어 친구들한테 전화치지않은채로 커피점에 들어갔다. 창문옆에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스쳐지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우리들은 함께 커피를 마이게 되였고.
그녀는 내가 원래 사귀던 남친의 친구이다. 헌데 그녀는 내하고 그 남자의 옛일을 모르는 상황이다. 우린 그때 모두 류학생이였고 나하고 그오빠는 학교하고 멀리 떨어진 산밑에서 아래웃집으로 살면서 그오빠의 할머니집에 함께 드나드는거외엔 다른사람들하고 함께 만난적이 없었다. 그녀하고 표면상의 말들을 건네면서 말틈새로 이전의 짧았지만 격정적이였던 시간들이 생각나드라.
난 집에서 막내였고 그 오빠는 맏이였다. 그오빠는 달콤한 말을 별로 모르는 연변남자 특유한 쿨한 사상이였고 꿋꿋한 청년이였었다. 우리둘다 친어머니가 병세했고 어릴적에 계모가 들어왔던것으로 서로의 집일하고 심리가 얼마나 복잡하겠는가를 잘 료해하고있었다. 첫시작의 나날들은 항상 행복했었다. 낮엔 학교가고 밤엔 알바하는 매일이였지만 알바가 끝나면 시간맞춰 도라이브가고 높은 산중턱에 야경구경할러도 갔었다. 내가 감기걸리면 그오빠는 새벽알바끝나서도 자지도 않고 내 시중들다가 또다시 일하러 갔었고 . 오빠하고 만나는 시간들은 항상 짜릿하거나 새콤달콤하고 두근두근 거렸다.
서로 아끼고 오손도손 사귀자고 많이 애쓰면서 반년넘게 사귀였지만, 사실상 우린 그당시 참으로 피곤했었다.
난 매일마다 아침부터 꼭 박인 수업과 오후마다 진행되는 화학실험들과 맬마다 가아하는 세가지 알바로 머리가 튀여질 직전이였고, 그오빠는 동생들의 미래를 자신이 다 감당한다는 책임감으로 시급이 높은 새벽일들을 다니기 시작했고 낮에 학교가다 저녁이 되여서야 잠시만 잠을 잘수있었다. 가까이 있지만 만나지 못한다는 스트레스로 그리고 자신들의 일에 딸려사는 고달픔으로 우린 전화에서 다투는 나날들이 생겼었고, 그러다가 내가 학교가까이로 이사해버렸다.
새곳으로 이사하고 알바도 새로 찾았었고 그러다가 그녀하고 매주 한번씩 함께 일하게 되였었다. 난 말수가 적었었고 그녀하고 프라이베또시간에서의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헌데 그녀하고 난 동갑이였고 같은 연변에서 온지라 이 작은 시내에서 조선족이 많지않다는 말로부터 시작해서 또 화제도 있었다.
전번주에 만난 그녀는 웃음기가 적어졌다. 지금 뭘하냐고 물어보니 래년이 필업이니깐 지금 취직활동중이라한다. 취직도 중요하지만 신체건강도 조심해라하니깐 괜찮다면서 자신은 취직활동은 부모의 압력으로 표현하는거지만 이젠 중국에 돌아가고 싶단다. 이젠 나이도 어리지 않으니 시집도 가야하지 하면서.
그래, 니도 많이 행복하라, 서로 마음맞는 사람이면 돈이 없어도 괜찮다고 내가 말하니깐 그녀가 말한다. 서로 마음이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중국오면 사귀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단다.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서 이 시내에 있었단다. 니가 아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면서, 전번달에 졸업해서 귀국했는데 자신이 그사람을 2년동안 궂게 짝사랑했단다. 그리고 그사람이 귀국하기전의 나날들에 함께 술마이다가 관계가 발생했었고...일본와서 줄곳 홀로 보낸 그 멋진 오빠가 참으로 우울해 보였었다고.
흠칮 놀랐었다. 그 오빠였었다. 그리고 그녀한테 내가 놀라하는 기색이 발견될까바 심정을 눅잦히느라 애썼고. 그녀의 눈안에 내 표정이 보였을까봐 그녀의 눈을 아주 주시해보았다. 그렇다. 우리의 사이는 그저 지나간 옛일이다. 난 내 새 생활이 생겼고 그오빠도, 그녀도 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내가 말했다. 그래 니도 꼭 행복해야지. 그사람을 나도 친구들한테서 들은적이 있었다. 참으로 마음가짐이 훌륭한 사람이니깐 꼭 니를 행복하게 해줄꺼야.하면서 신심을 주었었다.
... ...
전차타고 돌아오면서 난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우리의 만남은 즐거운 추억이였었다. 그리고 잘못된 시간과 지점이였었다. 만약 우리가 중국에서 평범하게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회사원이였더면 우린 꼭 행복한 가정이 생겼을꺼라는 생각이 든다.
헌데 아쉽지는 않다. 지난일에 미련을 느끼는 사상이 꼬물도 없는 나였고, 지난일을 되풀이하자면 지금의 모든 소중한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말꺼지만 되돌아간다해서 그때의 행복함이 다시 생길수는 없는거다. 눈앞의 모든것이 바로 가장 소중한 현실인것이다.
그리고 그사람들도 꼭 행복하리라 굳게 믿어마지않는다.
3LDK 의 너른 만숀에서 내 맘대로 집을 꾸미고 아침일찍 깨여나 신랑한테 밥해주고 도시락꾸며 보내준다. 잠시 더 자다가 9시가되면 집에서 걸어서 5분되는 사무실에가서 가끔씩 찾아오는 사람들과 간단한 말을 나누다가 컴을 켜고 한가한 시간들을 보내다가 오후 5시가 되면 공공뻐스타고 10분되는곳의 쇼핑그몰에 가서 잠시 게임놀다가 집돌아와 식사준비하면 신랑도 들어선다.
주말이면 신랑하고 차몰고 삼촌집이거나 언니집이거나 동생의 숙사에 들려 인생의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있다. 그리고 나한텐 고민이란 없어진거라 굳게믿고있는다.
그러다가 전번주...
내가 원래살던 곳으로 오래동안 전차타고 일보러가게되였다. 너무나 익숙한 거리를 산보하다나니 마음은 한결 산뜻한 기분이였다. 홀로의 시간들을 즐기고싶어 친구들한테 전화치지않은채로 커피점에 들어갔다. 창문옆에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스쳐지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우리들은 함께 커피를 마이게 되였고.
그녀는 내가 원래 사귀던 남친의 친구이다. 헌데 그녀는 내하고 그 남자의 옛일을 모르는 상황이다. 우린 그때 모두 류학생이였고 나하고 그오빠는 학교하고 멀리 떨어진 산밑에서 아래웃집으로 살면서 그오빠의 할머니집에 함께 드나드는거외엔 다른사람들하고 함께 만난적이 없었다. 그녀하고 표면상의 말들을 건네면서 말틈새로 이전의 짧았지만 격정적이였던 시간들이 생각나드라.
난 집에서 막내였고 그 오빠는 맏이였다. 그오빠는 달콤한 말을 별로 모르는 연변남자 특유한 쿨한 사상이였고 꿋꿋한 청년이였었다. 우리둘다 친어머니가 병세했고 어릴적에 계모가 들어왔던것으로 서로의 집일하고 심리가 얼마나 복잡하겠는가를 잘 료해하고있었다. 첫시작의 나날들은 항상 행복했었다. 낮엔 학교가고 밤엔 알바하는 매일이였지만 알바가 끝나면 시간맞춰 도라이브가고 높은 산중턱에 야경구경할러도 갔었다. 내가 감기걸리면 그오빠는 새벽알바끝나서도 자지도 않고 내 시중들다가 또다시 일하러 갔었고 . 오빠하고 만나는 시간들은 항상 짜릿하거나 새콤달콤하고 두근두근 거렸다.
서로 아끼고 오손도손 사귀자고 많이 애쓰면서 반년넘게 사귀였지만, 사실상 우린 그당시 참으로 피곤했었다.
난 매일마다 아침부터 꼭 박인 수업과 오후마다 진행되는 화학실험들과 맬마다 가아하는 세가지 알바로 머리가 튀여질 직전이였고, 그오빠는 동생들의 미래를 자신이 다 감당한다는 책임감으로 시급이 높은 새벽일들을 다니기 시작했고 낮에 학교가다 저녁이 되여서야 잠시만 잠을 잘수있었다. 가까이 있지만 만나지 못한다는 스트레스로 그리고 자신들의 일에 딸려사는 고달픔으로 우린 전화에서 다투는 나날들이 생겼었고, 그러다가 내가 학교가까이로 이사해버렸다.
새곳으로 이사하고 알바도 새로 찾았었고 그러다가 그녀하고 매주 한번씩 함께 일하게 되였었다. 난 말수가 적었었고 그녀하고 프라이베또시간에서의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헌데 그녀하고 난 동갑이였고 같은 연변에서 온지라 이 작은 시내에서 조선족이 많지않다는 말로부터 시작해서 또 화제도 있었다.
전번주에 만난 그녀는 웃음기가 적어졌다. 지금 뭘하냐고 물어보니 래년이 필업이니깐 지금 취직활동중이라한다. 취직도 중요하지만 신체건강도 조심해라하니깐 괜찮다면서 자신은 취직활동은 부모의 압력으로 표현하는거지만 이젠 중국에 돌아가고 싶단다. 이젠 나이도 어리지 않으니 시집도 가야하지 하면서.
그래, 니도 많이 행복하라, 서로 마음맞는 사람이면 돈이 없어도 괜찮다고 내가 말하니깐 그녀가 말한다. 서로 마음이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중국오면 사귀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단다.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서 이 시내에 있었단다. 니가 아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면서, 전번달에 졸업해서 귀국했는데 자신이 그사람을 2년동안 궂게 짝사랑했단다. 그리고 그사람이 귀국하기전의 나날들에 함께 술마이다가 관계가 발생했었고...일본와서 줄곳 홀로 보낸 그 멋진 오빠가 참으로 우울해 보였었다고.
흠칮 놀랐었다. 그 오빠였었다. 그리고 그녀한테 내가 놀라하는 기색이 발견될까바 심정을 눅잦히느라 애썼고. 그녀의 눈안에 내 표정이 보였을까봐 그녀의 눈을 아주 주시해보았다. 그렇다. 우리의 사이는 그저 지나간 옛일이다. 난 내 새 생활이 생겼고 그오빠도, 그녀도 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내가 말했다. 그래 니도 꼭 행복해야지. 그사람을 나도 친구들한테서 들은적이 있었다. 참으로 마음가짐이 훌륭한 사람이니깐 꼭 니를 행복하게 해줄꺼야.하면서 신심을 주었었다.
... ...
전차타고 돌아오면서 난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우리의 만남은 즐거운 추억이였었다. 그리고 잘못된 시간과 지점이였었다. 만약 우리가 중국에서 평범하게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회사원이였더면 우린 꼭 행복한 가정이 생겼을꺼라는 생각이 든다.
헌데 아쉽지는 않다. 지난일에 미련을 느끼는 사상이 꼬물도 없는 나였고, 지난일을 되풀이하자면 지금의 모든 소중한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말꺼지만 되돌아간다해서 그때의 행복함이 다시 생길수는 없는거다. 눈앞의 모든것이 바로 가장 소중한 현실인것이다.
그리고 그사람들도 꼭 행복하리라 굳게 믿어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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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9)
그리고 한가지는 맣은 여성분들은 실련의 고통속에서 굳게 성장하지만
적지 않은 남성분들은 실련을 자기의 무덤으로 다가가는 스타트선으로 만들때가
많습니다 그런 상처를 씻어주고 분발하게 할수 있는 여성분이기를 기도해주십시요
적지 않은 남성분들은 실련을 자기의 무덤으로 다가가는 스타트선으로 만들때가
많습니다 그런 상처를 씻어주고 분발하게 할수 있는 여성분이기를 기도해주십시요
<< 눈앞의 모든것이 바로 가장 소중한 현실인것이다. >>
글재주가 이만저만이 아님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뭘 어떻게 하는것두 잘 알고 잇는것 같슴다 ...
지나간 과거는 영원히 과거이고..
그 아름다웟던 과거를 영원한 추억으로 삼는것두 좋다고 생각함다..
님이 행복하게 보내고 잇는만큼...
그 사람두 다른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면 그것두 좋은 일이구...
하여튼 참 똑똑하심다... 페이푸...
글재주가 이만저만이 아님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뭘 어떻게 하는것두 잘 알고 잇는것 같슴다 ...
지나간 과거는 영원히 과거이고..
그 아름다웟던 과거를 영원한 추억으로 삼는것두 좋다고 생각함다..
님이 행복하게 보내고 잇는만큼...
그 사람두 다른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면 그것두 좋은 일이구...
하여튼 참 똑똑하심다... 페이푸...
이런걸 보면 드라마라는게 맘대루 제낸게 아인게 알기지므.
정말 현실생활속에두 드라마같은 장면들이 많단데.
꼭 지금의 행복을 소중이 여기쇼.
정말 현실생활속에두 드라마같은 장면들이 많단데.
꼭 지금의 행복을 소중이 여기쇼.
누구나 일본에서 겪을수 잇는 일들이네요~~
피곤한 류학새절로 부터 시작한 사람을 비롯하여
암튼 현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힘내세요
피곤한 류학새절로 부터 시작한 사람을 비롯하여
암튼 현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힘내세요
<< 눈앞의 모든것이 바로 가장 소중한 현실인것이다. >>
기억해두어할 말인것 같아요.
남자는 첫사랑을 그리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그린다고 하지만 추억은 추억인거겠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행복하게 살아요.
기억해두어할 말인것 같아요.
남자는 첫사랑을 그리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그린다고 하지만 추억은 추억인거겠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행복하게 살아요.
똑똑하니 항상 행복할거라 믿습니다
여자의 직감이 80프로 이상 옳다는것을 모르겠어요 ?
아마 그 친구도 당신의 맘을 알아봤을건데요 .
다만 한번 스쳐지나가면서 확인했을 뿐이겠죠 .....
아마 그 친구도 당신의 맘을 알아봤을건데요 .
다만 한번 스쳐지나가면서 확인했을 뿐이겠죠 .....
돌아서면 남이 되는법이죠...

젊음은 우리에게 격정도 불러일으키지만 그만큼
아픈 상처도 남겨주는겁니다
서로의 행복을 축원하는 사랑하는사람과의 리별도
어찌 보면 아름다운거라 할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