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잠간 고민에 빠지는 시간을 가져본다...
내가 가야 할 길,내가 해야 할 행동...
다시 한번 자세히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똑딱똑딱 안온함 속에서 시간은 흘러가고 내 생각은 격렬하게 회전을 하고 있다..
영화마냥 쭉~ 이어지는 기억들 .....그 기억들 앞에서 많은 반성을 해본다....
나는 참 불행하면서도 행운아였던것 같다....
초중 일학년에 진학하면서 아버지의 사고로부터 시작해서 변하기 시작했던 내 운명.....
유복한 가정에서 부러운걸 모르고 자라던 나한테 하느님이 주신 제일 처음의 시련이였다..
아버지의 사고에,어머니의 사기 ....엎친데 겹친격으로 닥친 불미스러운 일들로
늘어만 나는것은 집안의 빚이였고 그렇게 엄마는 출국길을 선택하게 되였다.
집마저 팔아버린 상태에서 할머니집에 얹혀살면서...
오직 공부를 잘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보냈던 초중3년간.....
그렇게 무사히 진학한 고중....
다른 도시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엔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따랐지만
그래도 좋았다....웬지 그때 기분으론 출세한것만 같은 그런 뿌뜻함이라고 할가...
그때까지도 어머니는 이자에 이자로 붙는 빚때문에 외로운 외국땅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고
있었다.
엄마를 돕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해낸것이 알바였다...
알바할 의향을 밝히자 그때 대학교 다니던 오빠는 결사 반대였다....
이유는 어린 나이에 자칫하면 길을 잘못 들어선다는것이였다..
그렇게 한달동안 장거리전화로의 싸움끝에 오빠가 추천해준 알바는 글을 열심히 써서 투고해
서 원고비를 챙겨라는것이였다.
손해볼건 없었다..돈은 못벌더라도 글은 늘지 않을가?
원고료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시작했던 글쓰기...
무작정 투고했고 그렇게 퇴짜맞고 또 투고했고.....결국 내글을 한편도 잡지에 실리지를 않았
다...
원래부터 좀 악착스러운 성격이라 포기할수는 없었다...
주말마다 작가협회에 찾아가서 많은 분들한테서 가르침도 받고 또 쓰고 다시 수정받고를 반
복햇다..
그러던 어느 날..그렇게 무작정으로 응모했던 글이 수상했다는 뜻밖의 소식,..
거기에 상금도 내 두달 생활비도 되는 돈이란다...
어린애마냥 복도에서 풍덩풍덩 뛰는 나를 선생님은 대견한 눈길로 바라바주셨다..
단돈 백원을 딸랑 들고 떠났던 장백산시상식......처음 수상이였고 처음으로 참가하는 시상식이
였다.
부모님의 동반도없이 ,카메라 하나 챙기지 못했던 내 자신이 초라해보였지만 ...
그래도 두달은 엄마의 부담을 덜어줄수 있다는 그 기쁨이 더 컸었다.
그때 20원주고 어문선생님의 선물을 사고 아무것도 사먹지도 사지도 않았던거 같다...
그때 작가협회에서 만났던 분이 온천에 삶은 닭알을 사주는데 얼마나 맛있던지..ㅎㅎ
연길에 돌아와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알렸다....
수상소식과 함께 두달 생활비는 안 보내도 된다고.....
그때 ....엄마랑 전화를 사이두고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왕바에서 그많은 사람들이 보구 있음에도 부끄러운줄 모르고 ...ㅎㅎㅎ
그렇게 시작해서 화술대회,백일장등에서 수상상금으로 그때 난 정확히 346원 저금도 가지게
됐었다...
그때 ,대학 다니던 오빠가 교환생으로 일본에 가게 되였다.
갈때 돈도 별로 안 들이고 간것이 가서 학비 벌어서 생활하고 집에 돈까지 보내온댄다...
얼랄라...이거 웬일이야....일본 가면 ??
그래...나도 일본 유학가야지...
유학가서 공부도 하고 돈도 벌어서 엄마도 돕고 공부도 하고 얼마나 좋냐....
그때의 짧은 머리로는 단순히 모든게 잘될거 같았고 ....
그렇게 일본에 필이 꽂혀서 나는 무작정 엄마한테 일본에 유학간다고 졸랐다...
엄마는 물론,할머니를 비롯한 친척들,선생님들 하나같이 반대하고 나섰다...
선생님은 3학년에 올라가면 학교에서 하는 유학기회가 있다고....
엄마는 대학을 가고 나중에 유학을 가도 늦지 않다고...
하지만 원래 고집이 길림성에서 두번째는 간다던 나였던지라...
단식투쟁으로부터 시작해서 결석까지,토커까지...
갑자기 변하는 나를 반주임은 여러번 불러들여서 사상담화를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허락받고 떠났던 대련행....
원어민이 가르친다는 조건에 혹해서 선택했었는데 50음도부터 가르치고 있었다...어이가 없
었다..
더우기 일본어라면 자신이 있었던 나였지만 원어민 선생님이 이야기 하는걸 40%정도도 알아
듣지 못한다는것이 더 큰 쇼크였다.
그래서 무작정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일본인 선생님한테 달라붙기로 했다....
내가 중국어과외겸 가이드 해준다는 이유로 휴일에도 따라나섰고 방과후에도 따라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일본인 선생님이 조용히 부르더니...
매일 두시간씩 과외를 해준단다....그것도 무료로...얼마나 고마웠던지...
그렇게 무작정 1급을 보명하고 "みんなの日本語”로부터 시작햇던 일본어 공부....
아침 4시에 일어나서 단어를 외우고 낮엔 문법하고 저녁 과외시간엔 듣기공부를 했다
이렇게 10달을 하고나니 귀도 열린거 같았고 모의시험문제도 술술 풀어나갈수가 있었다..
373점으로 1급을 건넜고 그렇게 내 유학수속은 시작됐다.
마치 일본에 도착한것마냥 매일 둥둥 뜬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을쯔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왔다..재류자격인증서가 내려오질 않았단다..
이유는 보증인.....아빠도 안계시고 엄마도 외국에 계시다보니 이모가 보증인 했었는데 안된
단다...
하늘땅이 맞붙는것만 같았다..
며칠동안 밥도 못먹고 고민고민하다가 10월생으로 다시한번 신청해보기로 했다....
근데 역시 안내려왔고 더이상 재수속도 안된단다....
그럼 난 한평생 고졸로 살아야 한단말인가?
며칠을 울고 불고 해봣지만 누굴 탓할수도 없는 내 선택이 아니였던가?
오빠들은 중점대학에 유학에 다들 술술 잘 풀려만 가는데...
자존심이 상했고 그 누굴 만나기도 싫었고 만나지도 않았다...
전화도 안받고 매일매일 그렇게 실성한 사람마냥 집에서 푹~ 퍼져있었다...
가족들이 하루하루 걱정하던 그때,일본에서 유학중이던 오빠가 귀국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다음집에 이어서...
내가 가야 할 길,내가 해야 할 행동...
다시 한번 자세히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똑딱똑딱 안온함 속에서 시간은 흘러가고 내 생각은 격렬하게 회전을 하고 있다..
영화마냥 쭉~ 이어지는 기억들 .....그 기억들 앞에서 많은 반성을 해본다....
나는 참 불행하면서도 행운아였던것 같다....
초중 일학년에 진학하면서 아버지의 사고로부터 시작해서 변하기 시작했던 내 운명.....
유복한 가정에서 부러운걸 모르고 자라던 나한테 하느님이 주신 제일 처음의 시련이였다..
아버지의 사고에,어머니의 사기 ....엎친데 겹친격으로 닥친 불미스러운 일들로
늘어만 나는것은 집안의 빚이였고 그렇게 엄마는 출국길을 선택하게 되였다.
집마저 팔아버린 상태에서 할머니집에 얹혀살면서...
오직 공부를 잘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보냈던 초중3년간.....
그렇게 무사히 진학한 고중....
다른 도시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엔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따랐지만
그래도 좋았다....웬지 그때 기분으론 출세한것만 같은 그런 뿌뜻함이라고 할가...
그때까지도 어머니는 이자에 이자로 붙는 빚때문에 외로운 외국땅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고
있었다.
엄마를 돕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해낸것이 알바였다...
알바할 의향을 밝히자 그때 대학교 다니던 오빠는 결사 반대였다....
이유는 어린 나이에 자칫하면 길을 잘못 들어선다는것이였다..
그렇게 한달동안 장거리전화로의 싸움끝에 오빠가 추천해준 알바는 글을 열심히 써서 투고해
서 원고비를 챙겨라는것이였다.
손해볼건 없었다..돈은 못벌더라도 글은 늘지 않을가?
원고료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시작했던 글쓰기...
무작정 투고했고 그렇게 퇴짜맞고 또 투고했고.....결국 내글을 한편도 잡지에 실리지를 않았
다...
원래부터 좀 악착스러운 성격이라 포기할수는 없었다...
주말마다 작가협회에 찾아가서 많은 분들한테서 가르침도 받고 또 쓰고 다시 수정받고를 반
복햇다..
그러던 어느 날..그렇게 무작정으로 응모했던 글이 수상했다는 뜻밖의 소식,..
거기에 상금도 내 두달 생활비도 되는 돈이란다...
어린애마냥 복도에서 풍덩풍덩 뛰는 나를 선생님은 대견한 눈길로 바라바주셨다..
단돈 백원을 딸랑 들고 떠났던 장백산시상식......처음 수상이였고 처음으로 참가하는 시상식이
였다.
부모님의 동반도없이 ,카메라 하나 챙기지 못했던 내 자신이 초라해보였지만 ...
그래도 두달은 엄마의 부담을 덜어줄수 있다는 그 기쁨이 더 컸었다.
그때 20원주고 어문선생님의 선물을 사고 아무것도 사먹지도 사지도 않았던거 같다...
그때 작가협회에서 만났던 분이 온천에 삶은 닭알을 사주는데 얼마나 맛있던지..ㅎㅎ
연길에 돌아와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알렸다....
수상소식과 함께 두달 생활비는 안 보내도 된다고.....
그때 ....엄마랑 전화를 사이두고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왕바에서 그많은 사람들이 보구 있음에도 부끄러운줄 모르고 ...ㅎㅎㅎ
그렇게 시작해서 화술대회,백일장등에서 수상상금으로 그때 난 정확히 346원 저금도 가지게
됐었다...
그때 ,대학 다니던 오빠가 교환생으로 일본에 가게 되였다.
갈때 돈도 별로 안 들이고 간것이 가서 학비 벌어서 생활하고 집에 돈까지 보내온댄다...
얼랄라...이거 웬일이야....일본 가면 ??
그래...나도 일본 유학가야지...
유학가서 공부도 하고 돈도 벌어서 엄마도 돕고 공부도 하고 얼마나 좋냐....
그때의 짧은 머리로는 단순히 모든게 잘될거 같았고 ....
그렇게 일본에 필이 꽂혀서 나는 무작정 엄마한테 일본에 유학간다고 졸랐다...
엄마는 물론,할머니를 비롯한 친척들,선생님들 하나같이 반대하고 나섰다...
선생님은 3학년에 올라가면 학교에서 하는 유학기회가 있다고....
엄마는 대학을 가고 나중에 유학을 가도 늦지 않다고...
하지만 원래 고집이 길림성에서 두번째는 간다던 나였던지라...
단식투쟁으로부터 시작해서 결석까지,토커까지...
갑자기 변하는 나를 반주임은 여러번 불러들여서 사상담화를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허락받고 떠났던 대련행....
원어민이 가르친다는 조건에 혹해서 선택했었는데 50음도부터 가르치고 있었다...어이가 없
었다..
더우기 일본어라면 자신이 있었던 나였지만 원어민 선생님이 이야기 하는걸 40%정도도 알아
듣지 못한다는것이 더 큰 쇼크였다.
그래서 무작정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일본인 선생님한테 달라붙기로 했다....
내가 중국어과외겸 가이드 해준다는 이유로 휴일에도 따라나섰고 방과후에도 따라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일본인 선생님이 조용히 부르더니...
매일 두시간씩 과외를 해준단다....그것도 무료로...얼마나 고마웠던지...
그렇게 무작정 1급을 보명하고 "みんなの日本語”로부터 시작햇던 일본어 공부....
아침 4시에 일어나서 단어를 외우고 낮엔 문법하고 저녁 과외시간엔 듣기공부를 했다
이렇게 10달을 하고나니 귀도 열린거 같았고 모의시험문제도 술술 풀어나갈수가 있었다..
373점으로 1급을 건넜고 그렇게 내 유학수속은 시작됐다.
마치 일본에 도착한것마냥 매일 둥둥 뜬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을쯔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왔다..재류자격인증서가 내려오질 않았단다..
이유는 보증인.....아빠도 안계시고 엄마도 외국에 계시다보니 이모가 보증인 했었는데 안된
단다...
하늘땅이 맞붙는것만 같았다..
며칠동안 밥도 못먹고 고민고민하다가 10월생으로 다시한번 신청해보기로 했다....
근데 역시 안내려왔고 더이상 재수속도 안된단다....
그럼 난 한평생 고졸로 살아야 한단말인가?
며칠을 울고 불고 해봣지만 누굴 탓할수도 없는 내 선택이 아니였던가?
오빠들은 중점대학에 유학에 다들 술술 잘 풀려만 가는데...
자존심이 상했고 그 누굴 만나기도 싫었고 만나지도 않았다...
전화도 안받고 매일매일 그렇게 실성한 사람마냥 집에서 푹~ 퍼져있었다...
가족들이 하루하루 걱정하던 그때,일본에서 유학중이던 오빠가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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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집에 이어서...
쉼터에 새로운 글 쓰기는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소중한 기록 중에 꼭 다른 분들에게도 읽었으면 하는 좋은 글들은 「추천하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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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5)
다음집 빨리 빨리
길림성에 고집이 제일 쎈 사람은 누김까? ㅎ
문장에서 두가지 사실을 적었는데 , 1.글짓기로서 돈을 벌겠다고 시도해서 성공한 사실. 2.일본류학을 가겠다고 악착스레 공부해서 1급시험 373점 맞은 사실. 이 두가지 사실을 통해서 님의 끈질긴 노력정신이 잘 보여집니다. 이런 정신이면 어데서 뭘하던지 다 잘할수있다고봅니다.
요즘 취직활동을 하면서 무슨 일이나 거기에다 틀을 씌우게 되는데 , 좀 빗나간 소리지만, 님의 문장을 보고 취직활동리력서에도 이런 순서로 써야된다고 깨달았습니다. 원인, 과정, 결과 로 똑똑히 적혀져있으니 아주 알아보기쉽네요.
님은 지금 빛나는 길을 힘차게 걷고있으리라 생각하면서 , 다음집도 기대합니다.
요즘 취직활동을 하면서 무슨 일이나 거기에다 틀을 씌우게 되는데 , 좀 빗나간 소리지만, 님의 문장을 보고 취직활동리력서에도 이런 순서로 써야된다고 깨달았습니다. 원인, 과정, 결과 로 똑똑히 적혀져있으니 아주 알아보기쉽네요.
님은 지금 빛나는 길을 힘차게 걷고있으리라 생각하면서 , 다음집도 기대합니다.
들려주신 여러분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노력은 재능이랍니다.
하지만 재능보다 더 값진 것은 노력이 아닐가 생각합니다...
운명은 노력하는 사람을 배반하지는 않을거라 믿습니다..
노력한 사람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노력한 이들이 아닐가 싶네요..
다함께 꿈을 향해 열심히 뛰여볼까요?
아자아자^^
노력은 재능이랍니다.
하지만 재능보다 더 값진 것은 노력이 아닐가 생각합니다...
운명은 노력하는 사람을 배반하지는 않을거라 믿습니다..
노력한 사람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노력한 이들이 아닐가 싶네요..
다함께 꿈을 향해 열심히 뛰여볼까요?
아자아자^^

일본에서 몇년씩 공부한 유학생들도 그렇게 맞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