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절이 다가오니 이번해 설은 또 부모하고 못지내는구나... 아쉬움이 한층 깊어짐니다. 매년마다 춘절이 되면 다짐함니다. 래년 설엔 꼭 집에 돌아갈꺼야 혹은 래년엔 두분을 일본으로 모셔와서 함께 지내자고.
남친은 올해 딱 서른이 되는데 아버지가 고칠수 없는 병으로 이젠 의사로부터 후사를 준비해라고 말들었담니다... 그래도 보름전엔 중국에 가니깐 큰 달이 둥실한 보름날밤엔 일가단란히 따뜻한 식사를 할수있겠다 생각하니 남친이 아주 안타깝겠다는 생각도 있고 또한 부럽군요.
여기 체험수기에서도 여러분들의 자신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에 대해 쓴 글을 잘 읽었씀니다. 헌데 난 이상하게 슬픈 느낌이 없이 참으로 부럽다... 임니다.
지금의 세월에 적어도 연변엔 부모가 리혼했거나 혹은 한사람이 세상뜬집이 참으로 많고도 많지요. 나도 그저 그런 집의 아이중의 한사람일뿐이고, 11살때 엄마가 세상떴담니다. 매장하는날엔 관우에 흙을 처넣는거도 상관않하고 무덤에 함께 뛰여들기까지 했지만 날 반겨주지 않더군요. 계모가 들어왔고 여러가지 모순이 참으로 심했지요... 지금에 생각하면 두가지 일외엔 다 잊어버렸지만...
내 방으로 돌아오면 전등을 켜는 습관이 없고, 창밖의 달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멍하니 몇년을 지냈담니다. 그래도 줄곧 리과반에서 성적이 괜찮은축이였고 난생처음으로 연변을 떠나 중점대학에도 붙었지요. 대학정원에 있는 값비싼 호텔의 젤 웃층에 들면서 입학날엔 아주 즐거워하던 아버지하고 지금의 어머니가 있었지만 내 친어머닌 그런 달성감도 느낄수가 없었담니다. 그뒤로 점점 더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사고방식에 여러가지로 흠집이 많다는걸 혼자서 알게되였지요. 그리고 성장과정에 친어머니가 있는거하고 없는거 참으로 아이의 미래에 큰 영향이 있다는걸 절실하게 느끼고 있씀니다.
우리 엄마가 아직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령 식물인이라 할지언정 그저 내가 볼수있는곳에서 살아있다면 난 절때절때 일본이고뭐고 결혼이고 뭐고 다 뿌리치고 그저 엄마의 시중만 들면서 살아갈꺼라고 지금에도 길가다가 저도모르는 사이에 생각에 잠기기도 함니다. 이제곧 일본에 려행오게될 아버지하고 지금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친엄마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쉬움이 확실히 있지만 노력해도 개변할수 없는 운명이란 따로 있는거네요.
사람은 너그럽고 적극적인 사상으로 주위사람들을 대하고 곤난을 이겨내면서 살아가면 복이 가득 들어오는가 봄니다. 한동안은 아주 바보처럼 아무거도 모르거나 생각이 없는거처럼 그저 허허 웃으면서 지냈었는데 그런 태도도 아마 좀은 락관적이였나 봄니다.
찌나미니 우리집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고 확실한 가정적인 분위기도 없지만 나름대로 활기있게 살지요. 부모들이 한국에 일하러 가지않아 쌓아놓은 돈은 없겠지만 매달 퇴직금과 어머니가 심심할때 버는 돈을 보태면 5천원은 쉽게 넘고 아주 건강하고 자식들이 부조하지 않아도 동남아 려행도 다니고. 형제들도 자신이 마음드는 국내도시에 각기 호구하고 괜찮은 직업과 집을 갖추었고. 그래도 지금의 상황으로 저그마한 만족감을 느낌니다.
그리고 나의 지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올해엔 80살 생일을 크게쇠는거처럼 아버지의 아버지도 아주 건강했던거처럼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변함없이 사이좋고 건강하기만을 바라고 바람니다.
ㅎㅎ 올림픽도 두분을 모시고 나까지 세사람이 함께 신나게 볼러가자 맘속으로 다짐했는데 내 현실이 또 않되는거 같씀니다. 그대신 상해만박때엔 꼭 두분을 모시고 맘껏 볼수있도록 하겠씀니다. 물론 확실하게 행동에 옮기기전엔 두분하고 말않하겠지만.
남친은 올해 딱 서른이 되는데 아버지가 고칠수 없는 병으로 이젠 의사로부터 후사를 준비해라고 말들었담니다... 그래도 보름전엔 중국에 가니깐 큰 달이 둥실한 보름날밤엔 일가단란히 따뜻한 식사를 할수있겠다 생각하니 남친이 아주 안타깝겠다는 생각도 있고 또한 부럽군요.
여기 체험수기에서도 여러분들의 자신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에 대해 쓴 글을 잘 읽었씀니다. 헌데 난 이상하게 슬픈 느낌이 없이 참으로 부럽다... 임니다.
지금의 세월에 적어도 연변엔 부모가 리혼했거나 혹은 한사람이 세상뜬집이 참으로 많고도 많지요. 나도 그저 그런 집의 아이중의 한사람일뿐이고, 11살때 엄마가 세상떴담니다. 매장하는날엔 관우에 흙을 처넣는거도 상관않하고 무덤에 함께 뛰여들기까지 했지만 날 반겨주지 않더군요. 계모가 들어왔고 여러가지 모순이 참으로 심했지요... 지금에 생각하면 두가지 일외엔 다 잊어버렸지만...
내 방으로 돌아오면 전등을 켜는 습관이 없고, 창밖의 달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멍하니 몇년을 지냈담니다. 그래도 줄곧 리과반에서 성적이 괜찮은축이였고 난생처음으로 연변을 떠나 중점대학에도 붙었지요. 대학정원에 있는 값비싼 호텔의 젤 웃층에 들면서 입학날엔 아주 즐거워하던 아버지하고 지금의 어머니가 있었지만 내 친어머닌 그런 달성감도 느낄수가 없었담니다. 그뒤로 점점 더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사고방식에 여러가지로 흠집이 많다는걸 혼자서 알게되였지요. 그리고 성장과정에 친어머니가 있는거하고 없는거 참으로 아이의 미래에 큰 영향이 있다는걸 절실하게 느끼고 있씀니다.
우리 엄마가 아직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령 식물인이라 할지언정 그저 내가 볼수있는곳에서 살아있다면 난 절때절때 일본이고뭐고 결혼이고 뭐고 다 뿌리치고 그저 엄마의 시중만 들면서 살아갈꺼라고 지금에도 길가다가 저도모르는 사이에 생각에 잠기기도 함니다. 이제곧 일본에 려행오게될 아버지하고 지금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친엄마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쉬움이 확실히 있지만 노력해도 개변할수 없는 운명이란 따로 있는거네요.
사람은 너그럽고 적극적인 사상으로 주위사람들을 대하고 곤난을 이겨내면서 살아가면 복이 가득 들어오는가 봄니다. 한동안은 아주 바보처럼 아무거도 모르거나 생각이 없는거처럼 그저 허허 웃으면서 지냈었는데 그런 태도도 아마 좀은 락관적이였나 봄니다.
찌나미니 우리집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고 확실한 가정적인 분위기도 없지만 나름대로 활기있게 살지요. 부모들이 한국에 일하러 가지않아 쌓아놓은 돈은 없겠지만 매달 퇴직금과 어머니가 심심할때 버는 돈을 보태면 5천원은 쉽게 넘고 아주 건강하고 자식들이 부조하지 않아도 동남아 려행도 다니고. 형제들도 자신이 마음드는 국내도시에 각기 호구하고 괜찮은 직업과 집을 갖추었고. 그래도 지금의 상황으로 저그마한 만족감을 느낌니다.
그리고 나의 지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올해엔 80살 생일을 크게쇠는거처럼 아버지의 아버지도 아주 건강했던거처럼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변함없이 사이좋고 건강하기만을 바라고 바람니다.
ㅎㅎ 올림픽도 두분을 모시고 나까지 세사람이 함께 신나게 볼러가자 맘속으로 다짐했는데 내 현실이 또 않되는거 같씀니다. 그대신 상해만박때엔 꼭 두분을 모시고 맘껏 볼수있도록 하겠씀니다. 물론 확실하게 행동에 옮기기전엔 두분하고 말않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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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9)
난 부모형제들과 같이 음력설을 못 쇠본지 15년되는데 .......
1997년 음력설은 단 혼자서 회사를 지키면서 한주일동안 있엇음...맥주 두상자 하고 라면 한박스를 먹어버리고....비록 냉장고에 먹을게 많았지만 해먹을 기분이 아니여서 그냥 라면만 먹었짐
마지막엔 눈물도 나올게 없었짐
1997년 음력설은 단 혼자서 회사를 지키면서 한주일동안 있엇음...맥주 두상자 하고 라면 한박스를 먹어버리고....비록 냉장고에 먹을게 많았지만 해먹을 기분이 아니여서 그냥 라면만 먹었짐
마지막엔 눈물도 나올게 없었짐
나 어릴때 그런생각 자주 했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아빠가 죽으면 모주석처럼 안썩게 그냥 보관해두겟다고...
이젠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아빠가 죽으면 어쩌나싶고...막막합니다...
이번설을 같이 쉬게 되였는데
이게 6년만인가?7년만인가~
요즘은 잠두 안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아빠가 죽으면 모주석처럼 안썩게 그냥 보관해두겟다고...
이젠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아빠가 죽으면 어쩌나싶고...막막합니다...
이번설을 같이 쉬게 되였는데
이게 6년만인가?7년만인가~
요즘은 잠두 안옵니다~^^
일본와서 한번두 음력설에 집간적이 없어서 춘절의 분위기도 다 잊어먹었습니다.
물론 제일 큰 명절인 설을 가족들과 같이 쇨수 잇으면 제일 기쁘겠지만 효성만 있다면 설이 아니라도 부모님들은 기뻐하실거라 믿습니다.요즘 일체에 부모를 그리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데 이런걸 볼때마다 우리 아버지,어머니의 신체건강이 자꾸 걱정됩니다.년세가 있으니까 .제발 오래오래 앉으셨으면 하고. 래년부턴 설에 꼭 고향가 쇠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제일 큰 명절인 설을 가족들과 같이 쇨수 잇으면 제일 기쁘겠지만 효성만 있다면 설이 아니라도 부모님들은 기뻐하실거라 믿습니다.요즘 일체에 부모를 그리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데 이런걸 볼때마다 우리 아버지,어머니의 신체건강이 자꾸 걱정됩니다.년세가 있으니까 .제발 오래오래 앉으셨으면 하고. 래년부턴 설에 꼭 고향가 쇠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항이는 이젠 취뉴비두 슬슬 감춰가메 잘 치는구만
俺も7年ぶりた、
後何年で、家族揃えるか分からない、
확실히 성장과정에 부모님이 없으면 동년배들보다 틀리더군요...
그나마 계모두 좋은분인거 같고,시부모님두 두분 다 계신것만으로도 참 행복이라구 생각합니다.
저두 4년만에 양력설을 가족들과 함께 쇴슴다.참 여태 참느라 눈물도 더 이상 안나오고 그냥 홈 씽크에 미칠것만 같더라구요...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긴거 같아요...
부모님들은 있을때 잘 해야 썩 후에라도 후회안될것 같습니다...ㅎㅎ
저두 그냥 나름대루 엄니한테 효성하느라 하는데...
근데 아무리 생각해두 효성이란게 따루 없는거 같습니다.자식으로서 어떤 일이 있어두 건강하게 씩씩하게 살아가는것을 보여드리는거라구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나마 계모두 좋은분인거 같고,시부모님두 두분 다 계신것만으로도 참 행복이라구 생각합니다.
저두 4년만에 양력설을 가족들과 함께 쇴슴다.참 여태 참느라 눈물도 더 이상 안나오고 그냥 홈 씽크에 미칠것만 같더라구요...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긴거 같아요...
부모님들은 있을때 잘 해야 썩 후에라도 후회안될것 같습니다...ㅎㅎ
저두 그냥 나름대루 엄니한테 효성하느라 하는데...
근데 아무리 생각해두 효성이란게 따루 없는거 같습니다.자식으로서 어떤 일이 있어두 건강하게 씩씩하게 살아가는것을 보여드리는거라구 절실히 느꼈습니다..
孙悦:常回家看看,回家看看
그러구보면 나두 일본에 와서부터 6년째로 부모님들과 설을 쇠여본적없지요.가끔은 친척들이 모여들어서 흥성흥성하게 설을 쇠구싶구, 그 요란한 폭죽소리도 듣기싶구, 눈이쌓인 거리를 산뽀하기두 싶지만 그럴수없네요.

불구자가 되더라두 살아남아야갰다는 생각을 해봤씀더. ㅠ
자식땜이라두 오래 살아야갰죠?
살아있는 자체가 힘이된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