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고 있는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이 식민지 지배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결코 해결됐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뜻을 밝혔습니다.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한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과 아소 다로 간사장이 외국인 특파원 클럽에 초청받았습니다.
역사 인식과 외교정책에 관한 질문이 주로 쏟아졌습니다.
후쿠다 전 장관은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따른 문제와 관련해 결코 해결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해결됐다고 생각해도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일본 내부에도 있습니다. 결코 해결됐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위안부와 강제연행 피해 문제를 포함한 전후 보상 문제에 대한 언급으로 풀이됩니다.
후쿠다 전 장관은 그러나 그럼 미해결인가 하면 그 또한 잘라 말할 수 있는지, 문제의 복잡성이 있다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후쿠다 전 관방장관은 이어 1995년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의 뜻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는 올바른 것이었다며 계승할 뜻을 밝혔습니다.
또 야스쿠니 신사 문제는 커다란 정치 문제가 돼 불행한 일이라며 참배하지 않을 뜻을 거듭 밝혔습니다.
"가능한 한 정치, 외교문제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될 것 같으면 피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아소 간사장은 야스쿠니 참배를 옹호했습니다.
자기 나라를 위해 당당히 목숨을 내던진 사람에 대해 정부가 최고의 영예를 갖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며 정치문제가 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자신의 아버지가 2차 대전 당시 만여 명의 조선인을 강제 연행해 아소 탄광에서 노역시킨 것과 관련해서도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오는 25일 일본의 새 총리 자리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는 후쿠다 전 장관이 고이즈미 전 총리나 아베 총리와는 다른 역사인식과 아시아 중시 정책을 표방하고 있어 한일관계에도 긍정적 변화가 예상됩니다.
출처:http://news.media.daum.net/foreign/others/200709/19/YTN/v18203618.html
또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뜻을 밝혔습니다.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한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과 아소 다로 간사장이 외국인 특파원 클럽에 초청받았습니다.
역사 인식과 외교정책에 관한 질문이 주로 쏟아졌습니다.
후쿠다 전 장관은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따른 문제와 관련해 결코 해결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해결됐다고 생각해도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일본 내부에도 있습니다. 결코 해결됐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위안부와 강제연행 피해 문제를 포함한 전후 보상 문제에 대한 언급으로 풀이됩니다.
후쿠다 전 장관은 그러나 그럼 미해결인가 하면 그 또한 잘라 말할 수 있는지, 문제의 복잡성이 있다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후쿠다 전 관방장관은 이어 1995년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의 뜻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는 올바른 것이었다며 계승할 뜻을 밝혔습니다.
또 야스쿠니 신사 문제는 커다란 정치 문제가 돼 불행한 일이라며 참배하지 않을 뜻을 거듭 밝혔습니다.
"가능한 한 정치, 외교문제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될 것 같으면 피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아소 간사장은 야스쿠니 참배를 옹호했습니다.
자기 나라를 위해 당당히 목숨을 내던진 사람에 대해 정부가 최고의 영예를 갖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며 정치문제가 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자신의 아버지가 2차 대전 당시 만여 명의 조선인을 강제 연행해 아소 탄광에서 노역시킨 것과 관련해서도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오는 25일 일본의 새 총리 자리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는 후쿠다 전 장관이 고이즈미 전 총리나 아베 총리와는 다른 역사인식과 아시아 중시 정책을 표방하고 있어 한일관계에도 긍정적 변화가 예상됩니다.
출처:http://news.media.daum.net/foreign/others/200709/19/YTN/v182036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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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32)
나뜨 후꾸다 좋아 함다. 아소 입삐뚜렁이는 보기만 해두 재수없지무.
입이 삐뚠게 마음두 삐뚤었갯지무. ㅎㅎ
입이 삐뚠게 마음두 삐뚤었갯지무. ㅎㅎ
과분한 기대는 금물이지만, 후꾸다상이 수상으로 되여, 그 재임중에 랍치문제를 포함한 대북관계정상화도, 옛 성노예들에 대한 사죄와 보상 등 전후처리도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될만하무 모두들 열매를 줍쇼.ㅎㅎ
유리아빠두.ㅋㅋ

유리아빠두.ㅋㅋ
햐. 각서리 와가지구 눈팅 햇땠쏘? 거정마 재미없게 논다얌.
그저
는 유리아빠 열매몇개 있는가 보구 말하우..ㅉㅉㅉ
어즌 제 마이 모닸째? 주머니 풀때두 됏째?
좀 나두 주오. 내 빚으 갚게서리.
는 유리아빠 열매몇개 있는가 보구 말하우..ㅉㅉㅉ
어즌 제 마이 모닸째? 주머니 풀때두 됏째?
좀 나두 주오. 내 빚으 갚게서리.
산디느 정치르 아이 한다면서리?ㅋㅋ
하마트무 내 밥으 끊을뻔 했지무.ㅎㅎ
하마트무 내 밥으 끊을뻔 했지무.ㅎㅎ
후쿠다씨가 차기 수상이 거의 확정된 상태지무. 잘 된 일이꾸마.
아시아에 강경정책으 실시하는 놈들이 정권으 잡으면 피곤하지무. ㅎㅎㅎ
아시아에 강경정책으 실시하는 놈들이 정권으 잡으면 피곤하지무. ㅎㅎㅎ
산디.내 결혼한 여자들인데 열매줄 정도루 용기 없지무.ㅋㅋ
어느 면목 모를 나그낸데 맞아대라구.ㅎㅎ
어느 면목 모를 나그낸데 맞아대라구.ㅎㅎ
노을이두 방가방가.ㅎㅎ 
그저 내 아께 아이 하갯땠찌.
내 아께 청소할라 가는게 어찌 정치 하우?
내 언제 계속 아이 한다 햇쏘. ㅉㅉㅉ
글구 제 열매 줄사람두 아인거 내 알구 있쏘.
제 아이줘두 나는 이미 억만 장자요. ㅎ
내 아께 청소할라 가는게 어찌 정치 하우?
내 언제 계속 아이 한다 햇쏘. ㅉㅉㅉ
글구 제 열매 줄사람두 아인거 내 알구 있쏘.
제 아이줘두 나는 이미 억만 장자요. ㅎ
그저 이빨이 벩! 아는샤 하지 마오. 쫌. 영사하게.
유리 아빠 좀 말려줍소.ㅠㅠ




그저느 로우후리이지무 ㅎㅎㅎ 유리아빠 무스거 말려줄게 있다구? 무시합소. 그저란 아 영 사무럽단대.
노을이 아는척 하지 마오.내 얼매나 상냥하다구.ㅠㅠ
코끼리 한마리두 볿아죽인적이 없는데.
코끼리 한마리두 볿아죽인적이 없는데.
궁금한게 있는데,
열매 많이 따면 좋아지는 게 뭐가 있나요?
열매 많이 따면 좋아지는 게 뭐가 있나요?
추천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꾸벅.
할말이 없는거 어찌겠소?ㅎㅎㅎ
내 영 심심한 사램이래서 .ㅋㅋ
내 영 심심한 사램이래서 .ㅋㅋ
그저 이빨이 매난에 벩! 할 일이 없으므 콧궁기나 쑤시오. 캬컄
노을이.이래다 정이 들무 큰일이요.ㅠㅠ 
그저 벩! 정이 들 일이사 없지무. 제 무스거 게이요?
노을이 설마 남자?


이완용이 바로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고 자국의 식민지로 삼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던 매국노(친일반역자)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고 자국의 식민지로 삼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던 매국노(친일반역자)입니다.
이완용 /이완용
처음에는 친러파로 아관파천을 주도했으나 이후 일본이 세력을 확장하자 을사조약·한일합병의 주역으로 민족을 배반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중추원의원·고문을 역임하면서 각종 단체에 참가하여 친일행적으로 일관했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경덕(敬德), 호는 일당(一堂). 아버지는 석준(奭俊)이며, 10세 때 판중추부사 호준(鎬俊)에게 입양되었다. 1882년(고종 19) 증광별시에 합격하여 주서가 되었다. 이어 대교가 되고 그후 수찬·검상·해방영군사마(海防營軍司馬)를 거쳐 1886년 육영공원에서 영어와 신학문을 배웠다. 1887년 참찬관으로 미국에 갔다가 이듬해 5월 병으로 소환되어 동부승지·이조참의·외무참의 등을 지냈다. 같은 해 주차미국참찬관(駐箚美國參贊官)으로 미국에 갔다가 12월에 대리공사(代理公使)로 승진하여 약 2년간 있다가 돌아왔다. 대사성·형조참판·동지의금부사·동지성균관사·동지춘추관사·전환국총판·육영공원판리·교환서총판 등을 역임했다. 1895년 학부대신이 되고 중추원의관이 되었으나, 8월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형인 이윤용(李允用)과 함께 미국공사관 서기관으로 있던 앨런의 알선으로 미국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임최수(林最洙)·이도철(李道澈)·이재순(李載純) 등과 더불어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다시 1896년 아관파천을 주동하고 친러내각의 외부대신·학부대신·농상공부대신서리를 겸직했다. 이 시기 독립협회에 참가하여 위원장·회장을 지냈다. 1897년 고종이 환궁하자 세력을 잃고 평안남도관찰사·전라북도관찰사 등 지방관으로 전전하다가 1901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1905년 학부대신이 되어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서 의정대신임시서리 및 외부대신서리까지 겸했다. 1907년 의정부참정대신으로 농상공부대신서리·광산사무국총재를 겸했고, 6월 내각총리대신으로 궁내부대신서리를 겸했다. 1907년 7월 헤이그 밀사사건이 일어나자 고종의 책임을 추궁하며 고종의 양위를 주장하여, 궁내부대신을 겸하면서 고종의 퇴위를 성사시켰으며 한일신협약을 체결했다. 8월 매국친일의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욱일동화대수장(旭日桐花大綬章)을 받았다. 1909년 12월 이재명(李在明)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으나 회생했다. 1910년 8월 총리대신으로 내각회의를 소집하여 합병에 관한 건을 상정하고, 어전회의를 소집하여 합병안을 가결시키는 동시에 스스로 한일양국병합전권위원이 되어 데라우치[寺內正毅]의 관사로 찾아가 합병조약을 체결했다. 한일합병의 주역으로 훈1등 백작과 잔무처리수당 60여 원, 퇴직금 1,458원 33전, 총독부의 은사공채 15만 원을 받았다. 같은 해 중추원고문이 되고 1912년에는 중추원부의장이 되었으며 일선융화(日鮮融化)를 주장했다. 1919년 3·1운동을 비난하는 경고문과 담화를 3차례에 걸쳐 〈매일신보〉·〈경성일보〉에 발표했으며 1920년 12월 후작으로 승급했다. 1921년 중추원이 개편된 후에도 계속 중추원부의장을 지냈다. 그외에 조선귀족원 회원, 농사장려회 회장, 조선물산공진협찬회 명예회원, 일본제국군인후원회 조선지부 평의원, 조선귀족회 부회장, 농림주식회사고문, 교육조사위원, 총독부산업조사위원,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원, 조선사편찬위원회 고문, 조선농업교육연구회 고문, 선만노몽연구협회 고문 등의 많은 명예직을 겸하며 친일행적으로 일관했다.
매국반역자나 중국 공산당 빨갱이나 다 같은 족속들이다. ㅎㅎㅎㅎ
노을.さよなら
이 뉴스 역시 저 아래 자연속으로 님의 말을 긍정하게 하는구나,
강경파 아베를 떨어뜨리고 완화파인 후꾸다를 올려세우는 일본정계의 예술???
강경파 아베를 떨어뜨리고 완화파인 후꾸다를 올려세우는 일본정계의 예술???
후꾸다가 올라가면 주변나라들에게도 좋을것이다?
음,,,,,,,,,,,,글쎄,,,,ㅎㅎㅎㅎ
난 왠지 후꾸다가 기회주의자라는 느낌을 벗어버릴수 없다니깐?
이전에 아베가 자민당총재후보선거에 나설때에도 후꾸다는 처음엔 나설 의향이 있다가 인차 포기했는데,,,,,
주요한 이유는 승산이 없었기때문이라고 하던데,,,,,
이번엔 승산이 있으니까 제깍 나선게구~
후꾸다의 얼굴을 보면,,,,,,,사람이 영 못때게 생기구,,,,,마음속에 뭘 생각하는지 좀체로 알수 없는 사람이지무~
좀 음흉하다는 느낌이,,,,,,,,,,속담에 짖지 않는개가 사람을 문다~라고까지 했는데,,,
아무튼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무~
음,,,,,,,,,,,,글쎄,,,,ㅎㅎㅎㅎ
난 왠지 후꾸다가 기회주의자라는 느낌을 벗어버릴수 없다니깐?
이전에 아베가 자민당총재후보선거에 나설때에도 후꾸다는 처음엔 나설 의향이 있다가 인차 포기했는데,,,,,
주요한 이유는 승산이 없었기때문이라고 하던데,,,,,
이번엔 승산이 있으니까 제깍 나선게구~
후꾸다의 얼굴을 보면,,,,,,,사람이 영 못때게 생기구,,,,,마음속에 뭘 생각하는지 좀체로 알수 없는 사람이지무~
좀 음흉하다는 느낌이,,,,,,,,,,속담에 짖지 않는개가 사람을 문다~라고까지 했는데,,,
아무튼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무~
换汤不换药 一个JB味
1995년 무라야마 수상 담화문
내각총리대신 담화
1995년 8월 15일
지난 대전이 종말을 고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시금 그 전쟁으로 인하여 희생되신 내외의 많은 분들을 상기하면 만감에 가슴이 저미는 바입니다.
패전 후 일본은 불타버린 폐허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그것을 위하여 기울인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영지(英知)와 꾸준한 노력에 대하여 저는 진심으로 경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진 지원과 협력에 대하여 다시 한번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또 아시아·태평양 근린제국, 미국, 구주제국과의 사이에 오늘날과 같은 우호관계를 구축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본은 평화롭고 풍요로워 졌지만 우리는 자칫하면 이 평화의 존귀함과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근린제국의 국민들과 협조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확고히 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히 근현대에 있어서 일본과 근린 아시아제국과의 관계에 관한 역사 연구를 지원하고 각 국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하여 이 두 가지를 축으로 하는 평화우호교류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전후 처리문제에 대하여도 일본과 이들 나라와의 신뢰관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저는 앞으로도 성실히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에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패전의 날로부터 50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고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협조를 촉진하고 그것을 통하여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나라는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를 지향하여 핵확산금지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간요(肝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이며 희생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의지하는 데는 신의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 기념할만한 때에 즈음하여 신의를 시책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내외에 표명하며 저의 다짐의 말씀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1995년 8월 15일
내각총리대신 村山富市
<출처:주한일본대사관web site>
내각총리대신 담화
1995년 8월 15일
지난 대전이 종말을 고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시금 그 전쟁으로 인하여 희생되신 내외의 많은 분들을 상기하면 만감에 가슴이 저미는 바입니다.
패전 후 일본은 불타버린 폐허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그것을 위하여 기울인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영지(英知)와 꾸준한 노력에 대하여 저는 진심으로 경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진 지원과 협력에 대하여 다시 한번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또 아시아·태평양 근린제국, 미국, 구주제국과의 사이에 오늘날과 같은 우호관계를 구축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본은 평화롭고 풍요로워 졌지만 우리는 자칫하면 이 평화의 존귀함과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근린제국의 국민들과 협조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확고히 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히 근현대에 있어서 일본과 근린 아시아제국과의 관계에 관한 역사 연구를 지원하고 각 국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하여 이 두 가지를 축으로 하는 평화우호교류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전후 처리문제에 대하여도 일본과 이들 나라와의 신뢰관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저는 앞으로도 성실히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에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패전의 날로부터 50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고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협조를 촉진하고 그것을 통하여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나라는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를 지향하여 핵확산금지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간요(肝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이며 희생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의지하는 데는 신의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 기념할만한 때에 즈음하여 신의를 시책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내외에 표명하며 저의 다짐의 말씀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1995년 8월 15일
내각총리대신 村山富市
<출처:주한일본대사관web site>
위 담화문 가운데 가장 맘에 안 드는 구절: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젊은 세대에게 전해야 할 것이 전쟁의 비참함 뿐인가요???
TV프로그램도 온통 전쟁의 비참한 면만 보여주고. ㅠㅠㅠ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과거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가르쳐야되는데...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젊은이들 대부분이 도대체 어떤 잘못을 했는지 거의 모르고 있죠.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젊은 세대에게 전해야 할 것이 전쟁의 비참함 뿐인가요???
TV프로그램도 온통 전쟁의 비참한 면만 보여주고. ㅠㅠㅠ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과거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가르쳐야되는데...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젊은이들 대부분이 도대체 어떤 잘못을 했는지 거의 모르고 있죠.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반성이 가능할까요?
입으로만 반성하는 것이죠.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반성이 가능할까요?
입으로만 반성하는 것이죠.

방가방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