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좀 김더. 여유있는 사람만 봅소.
**********************************************************
끝내 3월달이 왔다.
비록 이전에는 넘 기대하지 않았지만
진작 오고나니 좀 흥분되기는 되였다.
왜냐하면 4월달에 집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던것이다.
영원히 돌아가는 것은 아니고
그저 친구가 결혼을 하길래서
나도 좀 휴식도 할겸 한달 놀자구 돌아가기로 했다.
내가 일본 온 시간은 재작년 12월달.
일본에 있은지 지금까지 일년 3개월이 된다.
일본에 있은 기간을 저도모르게 뒤돌아보게 된다.
뒤돌아 보면서 자기가 변한점을 돌이켜 보게 된다.
일본을 오게된 계기부터 돌이켜 보게 되였다.
대학을 필업하여서 한 기업에 들어가서 로임을 1000원씩 받으면서
일년 남짓이 일을 하였다.
연길에서 1000원씩 받으면서 집을 사자는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였다.
그래서 앞날을 생각할 분투목표가 없이 그저 그럭저럭 일을 하였다.
그러다가 사장에게 잘못보여서 잘렸다.
다시 한 회사에 면접갔었는데 마침 학습반이 있는데 일본갈수 있다고 료해하였다.
그때는 나의 첫사랑도 일본갔는지라 한번 더 도전할겸
그리고 연길에 남아서도 별로 집도 못살것 같아서 한번 도전해보려고 결심했다.
결국 모든것이 순리롭게 일본에 오게 되였다.
정말 뜻밖에 일이였다. 대학 금방 필업할때까지는 아무 생각도 없던 내가 일본에 오게 되다니.
일본에 온 첫날밤 잠을 이룰수 없었다.
연길 룡정 도문밖에 못 가본 내가,
대학필업할때까지 그냥 집에만 붙어있고 외지생활경험이 꼬물만치도 없는 내가
외지에 그것도 외국에서 생존해나갈수 있는가 근심이 어진간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때 또 빚을 42만엔 짊어지고 왔다.
하두 올때 대학교에서 제일 친한 친구와 같이 왔기에
친구의 위로끝에 끝내 한번 해보기로 결심했다.
금방올때는 누구나 다 돈이 적었을것이다.
나도 올때 15만엔밖에 안 가지고 왔다.
그래서 첫 몇달은 그야말로 근검소박하게 살았다.
첫 한달은 돈을 별로 팔지 않았다
왜냐하면 친구와 둘이서 중국에서 올때
라면 100봉지와 썅창 160개를 가지고 왔다.
그리곤 100엔씩 하는 사과도 못 사먹었다.
그저 100엔에 4,5개씩 하는 바나나만 뜨문뜨문 먹었다.
지금은 뜨문뜨문 식당이랑 다니지만 그때당시에는 정말로 .........
그리고 점심도 사장님과 같이
사크라스이산에가서 500엔짜리 먹은게 그렇게 배아파서
딱 한번만 먹고 그후에는 마쯔야에 가서 290엔짜리 규돈하구 가레만 몇달씩 먹었다.
지금은 700,800엔짜리 점심을 먹으면서 끄떡도 안한다.
스트레스도 난생처음 경력해보았다.
이전에는 근본상 체험해본적이 없는 그런 느낌이였다.
말로 하지도 못하고 입으로 올라오는것을 토해내지도 못하는
그런 울컥한 느낌이였다.
역시 돈은 버는만큼 고생도 그만큼 해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이런것들을 회억해보면 확실히 내가 이전보다 더 성숙되였다는것을 발견할수 있다.
일본에 와서 제일 처음 한 내가 자랑할수 있는 일이라면
바로 중국에 있는 친동생에게 소비돈을 준 일이다.
솔직히 우리집은 잘 사는 축은 아니였다.
내가 대학교 시절에 한달 소비돈은 100원
거기서 점심값을 떼내면 기본상 다른데 쓸돈은 없었다.
내보다 어린 동생은 더 말할라위 없었다.
점심을 싸서 학교다니다보니 소비돈같은거는 없었다.
그리고 세배돈도 내 지금까지 기억에는
내가 쓴 차수가 2,3차밖에 안된다.
번마다 받은 족족 부모님에게 바쳤다.
동생은 고중 3학년이다 금년에 대학시험을 치게 된다.
그래서 아버지 몰래 동생에게 내가 돈을 5만엔 부쳐주었다.
적어도 고3인만큼 좀 여유있게 생활해라고.
5만엔이면 하루에 거의 10원씩 일년을 쓸수 있는 돈이였다.
나와 내 동생으로 말하면 매일마다 10원의 소비돈은 생각도 할수 없는 액수였다.
동생은 물론 우리 오누이 사정을 알고있는 외할머니와
우리 아버지의 딱딱함을 알고 있는 어머니는 내가 셈이 들었다고 눈물까지 흘리셨다.
5만엔. 일본에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단지 한달의 소비돈이지만
내 동생에게 있어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게다가 1년씩이나 쓸수 있는 큰 돈이였다.
돈. 그야말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물건이다.
그리고 일본에 와서 첫사랑을 보내주면서
사랑에 대해서 많은것을 알게 되였다.
물론 남녀간의 사랑뿐만 아니다
부모 사랑 형제 사랑 친구와의 우정도 포함해서 말이다.
연애 경험도 없는 내가 사랑계시판에서 이런 저런 사연을 도와주는 자신을 생각하니
정말 어이없었지만 그래도 대다수 사람들이 나의 견해에 동의를 표시하니
왠지 좀 뿌듯해난다.
이제 한달 있으면 중국 돌아가게 된다.
난생처음 부모앞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자기가 번 돈으로 밥도 사다드릴것을 생각하노라면
자호감이 든다.
<아버지, 어머니. 이 철없는 자식이 27년만에
끝내 자신의 노력으로 밥 한때 사주게 되였씁니다.>
*************************************************************
여기서 반전.
내 파스포트를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씀다.
만일 다시 신청하게되무 얼매 있으무 나옴두?
3주일이무 나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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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3월달이 왔다.
비록 이전에는 넘 기대하지 않았지만
진작 오고나니 좀 흥분되기는 되였다.
왜냐하면 4월달에 집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던것이다.
영원히 돌아가는 것은 아니고
그저 친구가 결혼을 하길래서
나도 좀 휴식도 할겸 한달 놀자구 돌아가기로 했다.
내가 일본 온 시간은 재작년 12월달.
일본에 있은지 지금까지 일년 3개월이 된다.
일본에 있은 기간을 저도모르게 뒤돌아보게 된다.
뒤돌아 보면서 자기가 변한점을 돌이켜 보게 된다.
일본을 오게된 계기부터 돌이켜 보게 되였다.
대학을 필업하여서 한 기업에 들어가서 로임을 1000원씩 받으면서
일년 남짓이 일을 하였다.
연길에서 1000원씩 받으면서 집을 사자는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였다.
그래서 앞날을 생각할 분투목표가 없이 그저 그럭저럭 일을 하였다.
그러다가 사장에게 잘못보여서 잘렸다.
다시 한 회사에 면접갔었는데 마침 학습반이 있는데 일본갈수 있다고 료해하였다.
그때는 나의 첫사랑도 일본갔는지라 한번 더 도전할겸
그리고 연길에 남아서도 별로 집도 못살것 같아서 한번 도전해보려고 결심했다.
결국 모든것이 순리롭게 일본에 오게 되였다.
정말 뜻밖에 일이였다. 대학 금방 필업할때까지는 아무 생각도 없던 내가 일본에 오게 되다니.
일본에 온 첫날밤 잠을 이룰수 없었다.
연길 룡정 도문밖에 못 가본 내가,
대학필업할때까지 그냥 집에만 붙어있고 외지생활경험이 꼬물만치도 없는 내가
외지에 그것도 외국에서 생존해나갈수 있는가 근심이 어진간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때 또 빚을 42만엔 짊어지고 왔다.
하두 올때 대학교에서 제일 친한 친구와 같이 왔기에
친구의 위로끝에 끝내 한번 해보기로 결심했다.
금방올때는 누구나 다 돈이 적었을것이다.
나도 올때 15만엔밖에 안 가지고 왔다.
그래서 첫 몇달은 그야말로 근검소박하게 살았다.
첫 한달은 돈을 별로 팔지 않았다
왜냐하면 친구와 둘이서 중국에서 올때
라면 100봉지와 썅창 160개를 가지고 왔다.
그리곤 100엔씩 하는 사과도 못 사먹었다.
그저 100엔에 4,5개씩 하는 바나나만 뜨문뜨문 먹었다.
지금은 뜨문뜨문 식당이랑 다니지만 그때당시에는 정말로 .........
그리고 점심도 사장님과 같이
사크라스이산에가서 500엔짜리 먹은게 그렇게 배아파서
딱 한번만 먹고 그후에는 마쯔야에 가서 290엔짜리 규돈하구 가레만 몇달씩 먹었다.
지금은 700,800엔짜리 점심을 먹으면서 끄떡도 안한다.
스트레스도 난생처음 경력해보았다.
이전에는 근본상 체험해본적이 없는 그런 느낌이였다.
말로 하지도 못하고 입으로 올라오는것을 토해내지도 못하는
그런 울컥한 느낌이였다.
역시 돈은 버는만큼 고생도 그만큼 해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이런것들을 회억해보면 확실히 내가 이전보다 더 성숙되였다는것을 발견할수 있다.
일본에 와서 제일 처음 한 내가 자랑할수 있는 일이라면
바로 중국에 있는 친동생에게 소비돈을 준 일이다.
솔직히 우리집은 잘 사는 축은 아니였다.
내가 대학교 시절에 한달 소비돈은 100원
거기서 점심값을 떼내면 기본상 다른데 쓸돈은 없었다.
내보다 어린 동생은 더 말할라위 없었다.
점심을 싸서 학교다니다보니 소비돈같은거는 없었다.
그리고 세배돈도 내 지금까지 기억에는
내가 쓴 차수가 2,3차밖에 안된다.
번마다 받은 족족 부모님에게 바쳤다.
동생은 고중 3학년이다 금년에 대학시험을 치게 된다.
그래서 아버지 몰래 동생에게 내가 돈을 5만엔 부쳐주었다.
적어도 고3인만큼 좀 여유있게 생활해라고.
5만엔이면 하루에 거의 10원씩 일년을 쓸수 있는 돈이였다.
나와 내 동생으로 말하면 매일마다 10원의 소비돈은 생각도 할수 없는 액수였다.
동생은 물론 우리 오누이 사정을 알고있는 외할머니와
우리 아버지의 딱딱함을 알고 있는 어머니는 내가 셈이 들었다고 눈물까지 흘리셨다.
5만엔. 일본에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단지 한달의 소비돈이지만
내 동생에게 있어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게다가 1년씩이나 쓸수 있는 큰 돈이였다.
돈. 그야말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물건이다.
그리고 일본에 와서 첫사랑을 보내주면서
사랑에 대해서 많은것을 알게 되였다.
물론 남녀간의 사랑뿐만 아니다
부모 사랑 형제 사랑 친구와의 우정도 포함해서 말이다.
연애 경험도 없는 내가 사랑계시판에서 이런 저런 사연을 도와주는 자신을 생각하니
정말 어이없었지만 그래도 대다수 사람들이 나의 견해에 동의를 표시하니
왠지 좀 뿌듯해난다.
이제 한달 있으면 중국 돌아가게 된다.
난생처음 부모앞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자기가 번 돈으로 밥도 사다드릴것을 생각하노라면
자호감이 든다.
<아버지, 어머니. 이 철없는 자식이 27년만에
끝내 자신의 노력으로 밥 한때 사주게 되였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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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반전.
내 파스포트를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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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21)
아직 고3인 동생한테 5만엔 부쳐주는건 돈액수가 넘많은것 같네요 ...
그돈을 어머니한테 줘서 동생한테 조금조금 소비돈을 주게하는것이 더 좋을상싶습니다 ..글쎄 동생이 정말 님말처럼 하루에 10원씩 일년쓸거라면 괜찮겠지만 ...지금 나이어린애들은 부모들이 외국나가 번돈을 아깝지않게 소비하는애들이 많아서 ..
그돈을 어머니한테 줘서 동생한테 조금조금 소비돈을 주게하는것이 더 좋을상싶습니다 ..글쎄 동생이 정말 님말처럼 하루에 10원씩 일년쓸거라면 괜찮겠지만 ...지금 나이어린애들은 부모들이 외국나가 번돈을 아깝지않게 소비하는애들이 많아서 ..
님께선 여동생의 조은 오빠이시군요. 글발따라 다 알립니다.ㅋㅋ^^
중국가서 편안하게 즐기면서 스트레스랑 다 방출하구 오세요..
물론 本場의 꿔보러두 드시구 오겠지요?! 크흐흣;;^^
(님의 글이랑 플이랑 보면서 들을말, 깨닫게 되는 말들이 참 많습니다. )
중국가서 편안하게 즐기면서 스트레스랑 다 방출하구 오세요..
물론 本場의 꿔보러두 드시구 오겠지요?! 크흐흣;;^^
(님의 글이랑 플이랑 보면서 들을말, 깨닫게 되는 말들이 참 많습니다. )
꿔보러 남자아니였어? 동생이 여동생이란 뜻?...
글구....샹창160개나 어떻게 들구왔대?
하기사..내두 올때 가방끈이 끊어지도록 메구 왔지모...
킨시쵸에 그때는 내려오는 엘레베터가 없어서..
계단으루 겨우 내려온 생각이 난다...ㅎㅎ
도중에 어떤 일본사람이 내가 불쌍해 보이던지...
도와주길래..끼어끼어...집에까지 끌구갔지모...
그게..이글을 보니까..엊그제일 같은데..
벌써..7년전 일이다...3월24일이면 꼭 7년...
지금 생각하면 그냥 재밌었단 추억밖에...
일본에 온 사람이면 누구나 다...한번씩은 겪었던 일..
그때...첨으로 비행기두 타보구...첨으루 전차두 타구..
새로운것두 너무 많구....힘든일두 너무 많았구..
머니머니해두..첨으루 중국가던날 밤새 잠두 못잤지모..
일본오던 전날 밤새 잠못잔거 처럼...
꿔보러...다음달에 중국간대니까...좋겠다...
내가 너무 길게 썼나?ㅎㅎㅎㅎ
하여간..잘 갔다와라....
가서 부모님이랑 동생한테 맜있는거 많이 사드리구...
글구....샹창160개나 어떻게 들구왔대?
하기사..내두 올때 가방끈이 끊어지도록 메구 왔지모...
킨시쵸에 그때는 내려오는 엘레베터가 없어서..
계단으루 겨우 내려온 생각이 난다...ㅎㅎ
도중에 어떤 일본사람이 내가 불쌍해 보이던지...
도와주길래..끼어끼어...집에까지 끌구갔지모...
그게..이글을 보니까..엊그제일 같은데..
벌써..7년전 일이다...3월24일이면 꼭 7년...
지금 생각하면 그냥 재밌었단 추억밖에...
일본에 온 사람이면 누구나 다...한번씩은 겪었던 일..
그때...첨으로 비행기두 타보구...첨으루 전차두 타구..
새로운것두 너무 많구....힘든일두 너무 많았구..
머니머니해두..첨으루 중국가던날 밤새 잠두 못잤지모..
일본오던 전날 밤새 잠못잔거 처럼...
꿔보러...다음달에 중국간대니까...좋겠다...
내가 너무 길게 썼나?ㅎㅎㅎㅎ
하여간..잘 갔다와라....
가서 부모님이랑 동생한테 맜있는거 많이 사드리구...
내 지금 시간여유가 있어서 읽어두 보고
글두 남기구...추천두 때리구..간다.....ㅎㅎㅎㅎㅎ
글두 남기구...추천두 때리구..간다.....ㅎㅎㅎㅎㅎ
화이님. 내 남자임더. ㅋㅋㅋ. 여자만 꿔보러 좋아하는가 하잼두?
아사히님. 근심해줘서 고맙쓰꾸마. 근데 우리처럼 처음부터 돈을 못써본 사람들은 돈을 많이 주었다해두 그거 쓸줄 모름다.
코스모스님. 감솨함더. 그나저나 다이어트중이래서 꿔보러 먹을까 어찔까 궁리중임더.
루피누나. 휴~~~~ 내 여자무 언니라지 어째 누나라겠쏘. 글구 썅창보다 그 方便面체적을 더 차지했쏘. 100개나 ㅋㅋㅋ 하두 친구하구 둘이서 가져와서 그렇지. 언제나 추천해줘서 고맙쏘. ㅋㅋㅋ
아사히님. 근심해줘서 고맙쓰꾸마. 근데 우리처럼 처음부터 돈을 못써본 사람들은 돈을 많이 주었다해두 그거 쓸줄 모름다.
코스모스님. 감솨함더. 그나저나 다이어트중이래서 꿔보러 먹을까 어찔까 궁리중임더.
루피누나. 휴~~~~ 내 여자무 언니라지 어째 누나라겠쏘. 글구 썅창보다 그 方便面체적을 더 차지했쏘. 100개나 ㅋㅋㅋ 하두 친구하구 둘이서 가져와서 그렇지. 언제나 추천해줘서 고맙쏘. ㅋㅋㅋ
그럼 됐구요 .내야말루 쓸데없는걱정했구먼 ..
내말 나쁘게는 듣지마슈 .
내말 나쁘게는 듣지마슈 .
아사히님. 무슨 나쁘게 듣기는. ㅋㅋㅋ 근데 확실히 요즘에 돈 망탕 쓰는 청소년들이 많짐.
연길와서 날 밥사주삼!~~~ㅠㅠ 배고파
내 그렇단의미에서 추천해줄게 흐흣
ㅎㅎㅎ 집에가 잘 먹구 잘놀구 오세요 그래 또 돌아와서 간밧데 하게서리 ..
집두 못가본난 부럽기만 하구만 .....
집두 못가본난 부럽기만 하구만 .....
김도진님. 글쎄 이쁜 여자무 사주겠는데 남자돼서 싫쓰꾸마 .ㅋㅋㅋㅋ
아사히님. 님두 그날이 있을껨더.
아사히님. 님두 그날이 있을껨더.
ㅎㅎ 나도 3월말이면 중국 들어가는데요~
님하구 다른건 일시적이 아니고 일본생활 완전히 접고 중국진출(?)한다는거죠~ㅎㅎ
올만에 집에 들어가시는것 같은데 많이 기대되겠네요^^
집에가서 가족들이란 단란한 시간보내시구요,여기서 지친 심신 편히 쉬워서 오세요^^
님하구 다른건 일시적이 아니고 일본생활 완전히 접고 중국진출(?)한다는거죠~ㅎㅎ
올만에 집에 들어가시는것 같은데 많이 기대되겠네요^^
집에가서 가족들이란 단란한 시간보내시구요,여기서 지친 심신 편히 쉬워서 오세요^^
평범한 냉용에 글솜씨 좋다.
우리유학생들이 많이겪어보는 평범한 내용인데 이렇게 적으니 나두 첨 유학생시절을 돌
이키게되네요. 쭈욱 힘내세요 .자기힘으로 깨끗하게번돈이면 부모님들한테 형제한테
써도 그만한 가치가 잇다구봐요ㅎㅎ
파스포트는 콰이잴루 하면 빨리나와요 .글구 지방이나 시간없어서 못간다면 우선 여기에전화해서 03-3571-1132 이유를 얘기해주면 다해주던데요 .화교클럽이라구 대사관에서 가르켜준 곳이에요 .
이키게되네요. 쭈욱 힘내세요 .자기힘으로 깨끗하게번돈이면 부모님들한테 형제한테
써도 그만한 가치가 잇다구봐요ㅎㅎ
파스포트는 콰이잴루 하면 빨리나와요 .글구 지방이나 시간없어서 못간다면 우선 여기에전화해서 03-3571-1132 이유를 얘기해주면 다해주던데요 .화교클럽이라구 대사관에서 가르켜준 곳이에요 .
난 일본에 올때 80만엔 빚에 현찰은 7만엔밖에 없었댔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도깨비였지.집 툭툭 털어두 돈으로 될게 별루 없는데서 그런 돈 만들어서 나왔다가 먼 일이라두 생겼더면.. 하두 씩씩해서 별일없었길래 다행이였지..
이젠 추억이오다.그때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도깨비였지.집 툭툭 털어두 돈으로 될게 별루 없는데서 그런 돈 만들어서 나왔다가 먼 일이라두 생겼더면.. 하두 씩씩해서 별일없었길래 다행이였지..
이젠 추억이오다.그때가..
정말 마음 들뜨겟어요..ㅎㅎ
집가서 부모님한테 잘해드리고..
동생한테두 맛있는거 많이 사주세요...
집가서 부모님한테 잘해드리고..
동생한테두 맛있는거 많이 사주세요...
그리고..파스포트재신청하면 보통 두달쯤 걸릴걸요.
구체적인 절차는 잘 기억안나는데
우선 파스포트분실증명과 경찰에서 내려준 파스포트재신청수락번호와 재신청재료로 대사관에 신청.
수리해서 대사관에서 국내호구가 있는 곳에 신분확인을 걸친 다음 수속이 시작되는데 주로 중국국내확인이 좀 시간걸릴걸요. 호구가 있는 당지공안국에 미리 말을 해놓으면 혹 두주일내로 나올 가능성두 있을겁니다.
こうしている間にパスポート見つかったりして。。。
구체적인 절차는 잘 기억안나는데
우선 파스포트분실증명과 경찰에서 내려준 파스포트재신청수락번호와 재신청재료로 대사관에 신청.
수리해서 대사관에서 국내호구가 있는 곳에 신분확인을 걸친 다음 수속이 시작되는데 주로 중국국내확인이 좀 시간걸릴걸요. 호구가 있는 당지공안국에 미리 말을 해놓으면 혹 두주일내로 나올 가능성두 있을겁니다.
こうしている間にパスポート見つかったりして。。。
내는 일본올때...만엔짜리 한장 들구 왔다문..
누가 믿어줄랜가?ㅎㅎㅎㅎ
누가 믿어줄랜가?ㅎㅎㅎㅎ
클로버님. 휴. 좋겠씸더. 외국고생이 끝났으니까. 아무튼 돈두 많이 벌었따구 봄니다. ㅋㅋㅋ
겐산님. 감솨. ㅋㅋㅋ. 그닥지 않은 글을 좋아해주셔서.
하니맘님. 감솨하꾸마. 이제 방법이 없으무 전화쳐보겠으꾸마. 근데 조선말 해도 됨두?
하늘자리님. 음 아무튼 고생을 겪어냈으니까 어저는 다 자기돈이잼두? ㅎㅎㅎ. 근데 2달씩 걸리면 내 또 중국못돌아가겠씀더.
다시시작해님. ㅎㅎㅎ. 그거사 당연한 일이죠. 감솨.
루피누나는 올때 일본에 친척이나 친구 있었재요? 그채무 집세만해두 넘겠는데.
겐산님. 감솨. ㅋㅋㅋ. 그닥지 않은 글을 좋아해주셔서.
하니맘님. 감솨하꾸마. 이제 방법이 없으무 전화쳐보겠으꾸마. 근데 조선말 해도 됨두?
하늘자리님. 음 아무튼 고생을 겪어냈으니까 어저는 다 자기돈이잼두? ㅎㅎㅎ. 근데 2달씩 걸리면 내 또 중국못돌아가겠씀더.
다시시작해님. ㅎㅎㅎ. 그거사 당연한 일이죠. 감솨.
루피누나는 올때 일본에 친척이나 친구 있었재요? 그채무 집세만해두 넘겠는데.
클클클........역시 꿔보러...똑똑해야...*^-^Y
그 만엔이 공중전화비...결국 못써먹었지무...ㄳㄳㄳㄳ....
그 만엔이 공중전화비...결국 못써먹었지무...ㄳㄳㄳㄳ....

중국가서 좋은 한달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