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아름다운 별이 떨어졌다. 워낙은 나를 비롯한 200만 중국조선족으로 말하면 낮이면 해볓에, 밤
이면 달볓에 가리워, 그러찮으면 구름에 가리워져 그 존재조차 모를번한 소박한 별이였다하지만 예상치 못했
던 연분으로 우리들의 시선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별로 떠오른것이였다. 비록 그 아름다운 별은 반짝이는 별
찌처럼 너무나도 짧은 사이에 우리의 눈앞를 스쳐지났지만…
1997년,연변오동팀의 감독직을 맡고 중국축구갑A에서 4위를 빛내며 [연변오동팀]의 태풍을 일으켰던
최은택감독님이 2월5일 오전3시30분에 향년66세로 별세하였다.
최은택교수님이 한국에서 어느만한 유명인물이였는지는 나도 잘모른다.그분의 간력을 보면 프로급의 선
수;국가대표코치;대학교교수등등으로 한국에서는 정상급이였겠다는 느낌은 든다. 허나, 그러한 분이라지만
중국중국조선족으로 말하면 역시 거리가 먼, 생소한 존재라고 하겠다.
그러하던 그분이 우리 조선족들의 스타급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생겼으니,1997년 중국축구갑A의 하위
권에서 맴돌아치던 연변오동팀의 코치를 맡게 된것이다. 그래서 공격식축구를 인입,그 화려한 플레이는 중국
축구무대에 이채를 가져다주었고,우리 중국조선족들에게 많고 많은 아름다운 추억과 감동들을 가져다주었
다.
에피소드들이 많고많지만, 나와 가장 거리가 가까왔고 또 인상깊었던 한가지만 돌이키면 그분을 되새겨
본다.
때는 연변팀홈장에서 연변팀과 상해팀이 접선, 그 신기에 가까운 고종훈씨의 패스와 졸라씨의 뛰여난 챤
스의식으로 슛을 이루던 그 껨이였다. 손바닥이 부어나도록 박수를 쳐대며 껨의 종말을 맞이하하고있는데,
그 코대 높은 상해팀의 범지의가 최씨에게 다가와 굽석 인사를 한다. 불의의 사변에 모두들 아연해졌다가 다
시 일어나는 환호성,그리고 박수소리…
적수로부터 존경받는 이는 영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헌데 그렇게 [강철]팬도 아니고 그저 남의 풍에 따
르거나, 생겨나는 관람표를 써먹는 그러루한 정도의 [팬]이라는 내가 왜서 최씨의 별세를 두고 이렇게 슬퍼하
며 추모하고 있는가?
나를 비롯한 축구에 그저 그러하게 관심하거나, 신경없는 조선족으로 말하연 최교수님이 어떠한 존재일
가? 교수님의 피타는 노력은 중국축구무대에서 선풍을 일으킨것이 직접적인 영향이고,그 더욱 깊은 차원으
로 고찰한다면 우리 조선족의 존재를 전 중국에 과시한것으로 된다고 본다. 그해의 우리 조선족들은 그분의
덕분에 으시대며 타민족의 앞에 나설수 있었다는것이다.
그러한 영향럭은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을 바래는것도 아니였다. 작년에 중국에 학술회의를 다녀왔을
때 내가 조선족이라하니 한결같이 [아, 그럼 연변에서 왔겠구먼, 조선족은 축구를 잘하지]하고.. 허허.. 90년
대초 내지에서 대학을 다닌 내 고중친구의 소리였는데 연변대학이라하니 연안에 있는가고 하더라며 허글픈
웃음을 짓던 그때를 돌이켜보며 그이가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일을 해주셨는가 새삼스럽게 느껴본다.
춤추고 노래하기 좋아한다는 우리민족을 다른 말로 해석하여 먹고마이기 좋아하고 일하기 싫어한다는 뜻으
로 타민족들이 곡해하고 있는 그때, 그이는 규률산만한 연변팀에[축구는 정신이 필요하다]는 [정신력]을 불
어넣은것이다. 또 그러한 노력이 풍성한 열매를 거두은것이다.
조선족은 중국에세도 교육수평이 제일높다고 우리는 항상 자랑스러이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놓고 말하
면 연변은 점점 그 존재위치를 잃어가고 있다. 물론 연변의 지리적위치를 놓고 말할때 일부 막연한 것도 있겠
고, 글로벌시대에 눈이 뜬 조선족이 전국으로 세계로 흩어져나가는것은 피면못한다지만, 우리는 잊지말아야
할 그 무엇과 멀어져가고있어 더구나 우리의 고향이 위험해가고 있지 않을가.
한국사람이라면 조선족들은 아마 열에 7,8은 도리머리를 칠것이다. 깍쟁이요,허풍 잘치오,누구를 잘 떼
먹소등등,, 그러한 한국인이라지만 교수님의 경우는 달랐다. 조선족최대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쉼터]에서 유
일하게 조선족,한국사람의 구별을 받음없이 조선족들의 한결같은 찬양과 아름다운 추억을 향유하게되는 영
광을 지니게 되였고, 나도 이렇게 그이를 추모한다.우리 조선족을 위하여 헌신하신 교수님을 우리는 잊지않
고있으며 또 우리 조선족들의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기억하겠다고..
맥아더씨는 [병사는 죽어가는것이 아니라 사라져간다]하였고 우리 민족에는 [범은 죽어도 가죽을 남기
고 사람은 죽어도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교수님은 우리 조선족들에게 별찌같은 인생이였지
만 아름다운 그리고 강렬한 추억을 남겨주었다. 비록 우리는 멀리 떨어져있다하지만 교수님의 [정신력]으로
똘똘 뭉쳐살아가자. 그것이 우리 민족의 길이고 또 교수님도 구천에서 기뻐하실 유일한 방식이라고 느낀다.
주: 새해의 벽두에 서서 창밖은 찬비만 주룩주룩...
그래서인지 기분도 조금 침울합니다.
지나간 사이 나에게 고마웠던 분들의 매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사연들을 되새기며
삼가 새해의 복을 빕니다.
그리고 잊지않으리라고 결심합니다.
이면 달볓에 가리워, 그러찮으면 구름에 가리워져 그 존재조차 모를번한 소박한 별이였다하지만 예상치 못했
던 연분으로 우리들의 시선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별로 떠오른것이였다. 비록 그 아름다운 별은 반짝이는 별
찌처럼 너무나도 짧은 사이에 우리의 눈앞를 스쳐지났지만…
1997년,연변오동팀의 감독직을 맡고 중국축구갑A에서 4위를 빛내며 [연변오동팀]의 태풍을 일으켰던
최은택감독님이 2월5일 오전3시30분에 향년66세로 별세하였다.
최은택교수님이 한국에서 어느만한 유명인물이였는지는 나도 잘모른다.그분의 간력을 보면 프로급의 선
수;국가대표코치;대학교교수등등으로 한국에서는 정상급이였겠다는 느낌은 든다. 허나, 그러한 분이라지만
중국중국조선족으로 말하면 역시 거리가 먼, 생소한 존재라고 하겠다.
그러하던 그분이 우리 조선족들의 스타급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생겼으니,1997년 중국축구갑A의 하위
권에서 맴돌아치던 연변오동팀의 코치를 맡게 된것이다. 그래서 공격식축구를 인입,그 화려한 플레이는 중국
축구무대에 이채를 가져다주었고,우리 중국조선족들에게 많고 많은 아름다운 추억과 감동들을 가져다주었
다.
에피소드들이 많고많지만, 나와 가장 거리가 가까왔고 또 인상깊었던 한가지만 돌이키면 그분을 되새겨
본다.
때는 연변팀홈장에서 연변팀과 상해팀이 접선, 그 신기에 가까운 고종훈씨의 패스와 졸라씨의 뛰여난 챤
스의식으로 슛을 이루던 그 껨이였다. 손바닥이 부어나도록 박수를 쳐대며 껨의 종말을 맞이하하고있는데,
그 코대 높은 상해팀의 범지의가 최씨에게 다가와 굽석 인사를 한다. 불의의 사변에 모두들 아연해졌다가 다
시 일어나는 환호성,그리고 박수소리…
적수로부터 존경받는 이는 영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헌데 그렇게 [강철]팬도 아니고 그저 남의 풍에 따
르거나, 생겨나는 관람표를 써먹는 그러루한 정도의 [팬]이라는 내가 왜서 최씨의 별세를 두고 이렇게 슬퍼하
며 추모하고 있는가?
나를 비롯한 축구에 그저 그러하게 관심하거나, 신경없는 조선족으로 말하연 최교수님이 어떠한 존재일
가? 교수님의 피타는 노력은 중국축구무대에서 선풍을 일으킨것이 직접적인 영향이고,그 더욱 깊은 차원으
로 고찰한다면 우리 조선족의 존재를 전 중국에 과시한것으로 된다고 본다. 그해의 우리 조선족들은 그분의
덕분에 으시대며 타민족의 앞에 나설수 있었다는것이다.
그러한 영향럭은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을 바래는것도 아니였다. 작년에 중국에 학술회의를 다녀왔을
때 내가 조선족이라하니 한결같이 [아, 그럼 연변에서 왔겠구먼, 조선족은 축구를 잘하지]하고.. 허허.. 90년
대초 내지에서 대학을 다닌 내 고중친구의 소리였는데 연변대학이라하니 연안에 있는가고 하더라며 허글픈
웃음을 짓던 그때를 돌이켜보며 그이가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일을 해주셨는가 새삼스럽게 느껴본다.
춤추고 노래하기 좋아한다는 우리민족을 다른 말로 해석하여 먹고마이기 좋아하고 일하기 싫어한다는 뜻으
로 타민족들이 곡해하고 있는 그때, 그이는 규률산만한 연변팀에[축구는 정신이 필요하다]는 [정신력]을 불
어넣은것이다. 또 그러한 노력이 풍성한 열매를 거두은것이다.
조선족은 중국에세도 교육수평이 제일높다고 우리는 항상 자랑스러이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놓고 말하
면 연변은 점점 그 존재위치를 잃어가고 있다. 물론 연변의 지리적위치를 놓고 말할때 일부 막연한 것도 있겠
고, 글로벌시대에 눈이 뜬 조선족이 전국으로 세계로 흩어져나가는것은 피면못한다지만, 우리는 잊지말아야
할 그 무엇과 멀어져가고있어 더구나 우리의 고향이 위험해가고 있지 않을가.
한국사람이라면 조선족들은 아마 열에 7,8은 도리머리를 칠것이다. 깍쟁이요,허풍 잘치오,누구를 잘 떼
먹소등등,, 그러한 한국인이라지만 교수님의 경우는 달랐다. 조선족최대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쉼터]에서 유
일하게 조선족,한국사람의 구별을 받음없이 조선족들의 한결같은 찬양과 아름다운 추억을 향유하게되는 영
광을 지니게 되였고, 나도 이렇게 그이를 추모한다.우리 조선족을 위하여 헌신하신 교수님을 우리는 잊지않
고있으며 또 우리 조선족들의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기억하겠다고..
맥아더씨는 [병사는 죽어가는것이 아니라 사라져간다]하였고 우리 민족에는 [범은 죽어도 가죽을 남기
고 사람은 죽어도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교수님은 우리 조선족들에게 별찌같은 인생이였지
만 아름다운 그리고 강렬한 추억을 남겨주었다. 비록 우리는 멀리 떨어져있다하지만 교수님의 [정신력]으로
똘똘 뭉쳐살아가자. 그것이 우리 민족의 길이고 또 교수님도 구천에서 기뻐하실 유일한 방식이라고 느낀다.
주: 새해의 벽두에 서서 창밖은 찬비만 주룩주룩...
그래서인지 기분도 조금 침울합니다.
지나간 사이 나에게 고마웠던 분들의 매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사연들을 되새기며
삼가 새해의 복을 빕니다.
그리고 잊지않으리라고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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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4)
답글 감사합니다.
틀린 수자를 수정했습니다.
내 기억에도 이호은감독님에 전공전속의 전술로 전운회에서 우승을 따낸후부터 연변팀의 기본풍격은 줄시를 잡았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은택교수님은 한국의 공격형축구를 연변팀에 활성화하여 더한층 완미하게 하였다하는점이 더 적절할지도 모릅니다.
그외로 한국의 축구리념이 연변팀에서 그렇게 꽃을 피울수 있었던것은 동일 민족의 동 일언어와 민족성이 상당히 큰 역할을 하였다는 설도 있군한데 나도 상당히 그렇게 믿고싶습니다. 아마 그래서 교수님이 더욱 친근해보이는지도 모르겠구요.
틀린 수자를 수정했습니다.
내 기억에도 이호은감독님에 전공전속의 전술로 전운회에서 우승을 따낸후부터 연변팀의 기본풍격은 줄시를 잡았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은택교수님은 한국의 공격형축구를 연변팀에 활성화하여 더한층 완미하게 하였다하는점이 더 적절할지도 모릅니다.
그외로 한국의 축구리념이 연변팀에서 그렇게 꽃을 피울수 있었던것은 동일 민족의 동 일언어와 민족성이 상당히 큰 역할을 하였다는 설도 있군한데 나도 상당히 그렇게 믿고싶습니다. 아마 그래서 교수님이 더욱 친근해보이는지도 모르겠구요.
이호은감독님에 전공전속의 전술로 전운회에서 우승을 따낸후부터 ---
제 기억에는 우승은 못햇던거 같습니다.아마 4강에 들엇을겁니다.헌데 확실히 중국축구에 공격이란 단어를 심어준 시즌이엿다고 봅니다 .
축구를 사랑하던 팬이엿습니다.헌데 언제부터인가는 싫어지기 시작햇거든요.
왜냐하면 중국축구를 보면서 운동에 그렇게 많은 검은 돈이 오가고 비리에 범죄까지
그리고 중국축구선수들이 차한 자질 실망가던것이 인젠 중국축구는 안 보는걸로 발전햇습니다.현재는 세계컵은 보지만 다른 경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한때는 소나기를 맞아가면서 운동장가서 열심히 응원하던 팬이였댓는데....
제 기억에는 우승은 못햇던거 같습니다.아마 4강에 들엇을겁니다.헌데 확실히 중국축구에 공격이란 단어를 심어준 시즌이엿다고 봅니다 .
축구를 사랑하던 팬이엿습니다.헌데 언제부터인가는 싫어지기 시작햇거든요.
왜냐하면 중국축구를 보면서 운동에 그렇게 많은 검은 돈이 오가고 비리에 범죄까지
그리고 중국축구선수들이 차한 자질 실망가던것이 인젠 중국축구는 안 보는걸로 발전햇습니다.현재는 세계컵은 보지만 다른 경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한때는 소나기를 맞아가면서 운동장가서 열심히 응원하던 팬이였댓는데....
이호은감독님에 전공전속의 전술로 전운회에서 우승을 따낸후부터 ---
우에 두분이 다 진정한 축구팬이 아니구먼
우선먼저 이호은이 아니구 리호은이짐, 누구 한번 그를 이호은이라구 부른걸 못들엇짐
그리구 전운회에서는 우승두 아니구 4강두 아니구 5등했댔짐.
1/4준결승에서 북경팀과 붙어서 0:2로 져서 4강에 못들가구
5 6위 전에서 상해팀과 붙어서 전번전에 0:2로 뒤진정황에서 후반전에 4꼴이나
넣어서 4:2로 이겼댔짐 ..ㅎㅎㅎ
우에 두분이 다 진정한 축구팬이 아니구먼
우선먼저 이호은이 아니구 리호은이짐, 누구 한번 그를 이호은이라구 부른걸 못들엇짐
그리구 전운회에서는 우승두 아니구 4강두 아니구 5등했댔짐.
1/4준결승에서 북경팀과 붙어서 0:2로 져서 4강에 못들가구
5 6위 전에서 상해팀과 붙어서 전번전에 0:2로 뒤진정황에서 후반전에 4꼴이나
넣어서 4:2로 이겼댔짐 ..ㅎㅎㅎ

글 잘 봣습니다.
그리고 공격형 축구를 선택한건 최은택교수님부터가 아니라 그전 이호은 감독님부터라고 생각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