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배달이 고달프다 해도 마음보다 더 고달프랴...
연애해서 얼마 안되여 등기하고 갈라져있어야 할 나의 비참한 처지였다.
진짜 마음같아서는 당금이라도 집에 가고싶었으나 짊어지고 온 빚과 나의 꿈을
위하여 참을수밖에 없었다.
학교수업이라해도 이미 일본어는 꽤나 하는정도라 학교에 가도 배울건 없었다.
게다가 지친 몸에 피곤속에서 머리속엔 잠을 자는것과 유일하게 사랑하는 안해한테
편지쓰는 일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두번 세번은 꼭 꼭 안해한테 편지를 쓰군했다.
아침에 학교에 가면 우선 편지쓰는것이 제일 중요한 과제였다.
할말을 또 하고 또 한 말을 하고 하면서 안해한테 그리운 마음을 전달할수밖에 없었다.
그리군 침을 온 얼굴에 바르면서 잠을 자고 꺠면 수업이 끝나군했다.
반년동안 야채만 사 먹은 생각밖에 없다.쌀도 5키로 사면 꽤나 오래간다.
부근에 있는 슈퍼에 가면 일주일에 한번씩은 싸게 파는게 적지 않다.
더우기 라면 10개에 50엔이다.나한텐 너무나도 큰 배려였다
그리고 집에서 갖고온 마른 음식을 반년동안 깨끗하게 먹어버렸다.
음료수는 거의 반년동안 사 마신적이 없고 수도물만 마였다.
이렇게 반년동안 휴식일 하루없이 꼬박꼬박 열심이 돈 모았으니.....
이렇게 휴식일을 모아서 반년만에 중국에 일시귀국을 했지...
그것도 보고싶은 사람을 하도 너무 보고싶어서 병날거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귀국할때 북경으로해서 갔는데 북경 출입국에서 내보내지 않았다.
여권사진하고 나 얼굴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판단했던거였다.
나 자신이 보기에도 넘 흉측했다.감옥생활 일년해도 이렇게 되였을가 싶게 말이다.
그런대로 중국에 부모들과 전화통화하고 생년월일 확인하고 해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이튿날 고향에 가서 부모님들살고있는 집 문앞에서 [어머니!]하고 힘차게 불렀는데....
밖에 나온 저를 낳아준 부모도 저를 못 알아볼줄이야. 내가 억지로 웃으니.....
그제야 뭔가 알았다는싶이 넘어지다 싶이 나 앞으로 달려오는 어머니..
신발이 벗겨졌는데도 모르고 있었다.
불시에 끄거운 눈물줄기가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린탓에 앞에 쓰러질뜻이 달려오는
어머니마저 보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언젠오다 싶히 기다리면 료리를 준비하던 안해도 허겁지겁 달려나와선 나한테서 짐을 받아안는다..
하지만 웃는 얼굴이라 하기보다 눈물이 옆게 화장한 얼굴에 그림을 그려놓았다.
반갑다고 웃으면 울며....얼굴을 만져보면서 우는 저의 어머니 옆에서 더 서럽게 우는 안해....
아마 내 인생에서 유일한 감동적인 장면일것이다.
그래도 반년동안 고생한끝에 현금도 꽤나 갖고 가게 되였으니....
한달에 30만벌었으니 그대로 현금을 몽땅 중국에 갖고갔었다.
이만하면 고리대빚은 거의 벗은셈이였다. 도착한 첫날은 지금도 생각이 안 난다.
뭘 먹었고 어떻게 지냈는지 말이다. 그날저녁은 피곤이 몰려와 그대로 일찍 잠을 잤는데....
새벽 2시에 저도 몰래 일어나 옷 입고 신 신고있는데 불이 켜질줄이야.
어머니가 잠결에서 꺠여나서 불을 켰다.저하고 뭘 하는가고 묻자 아무런 생각없이
신문배달 시간이 됐어요...라고 대답하고나서야 자신이 부모집에 있다는걸 느꼈다.
어머니가 또 눈물을 흘린다..
내가 네 놈을 낳은게 죄구나....왜 널 이런 고생을 시켜야 하는지 모르겠구나 하면
통곡한다...참 남자들이 이런 고생하는게 뭐 그렇게 아깝다고...고생은 돈 주고도 사지 못하는데...
이렇게 갖고간 돈 빚 갚으려 하니 생각밖에 조금 모자랗다.설마 하고 생각했지뭐...
갖고 간돈 인민페로 10만원인데 꾼돈은 8만원 리자 4만원하니까 12만원이 된것이였다.
휴..설마 했는데..그러나 약속은 약속이니까.....
일본에 오자마자 친구들한테서 돈 꿔서 인츰 나머지를 보내드리고 빗 완전히 갚았다.
지금 생각해도 목구멍에 뭔가 결렸던것이 한숨에 내려갔던 느낌이였다.....
그제야 자신이 넘 피곤했다는걸 느꼈고 또 이대로 그냥 나갈수는 없었다고 생각하고
국립대학원 지망했는데 상상밖에 합격될줄이야...
하느님이 도와준셈이였다....
하지만 일년학비 30만엔인데 돈 꿔서 빚 물고나니 학비가 없었다.휴..어떻게 하는데
주위에 애들도 집에 돈 보낸다 알바 한다 야단인데 거기에 돈 꿀수도 없고..
생각하던 끝에 일본에서 우연하게 알게 된 일본어학교 이사장이 생각났다.
그런데 어떻게 연락할수도 없고...방정맞게도 명함잠도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 안난다.
중국에 전화해서 안해한테 부탁하여 겨우 명함장 찾아가지고 전화를 했지...
생각밖에 대방에서 반갑에 만나주면서 저녁식사를 했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일본 음식점에 들어가서 일본음식맛을 보게 되였다.행복했지뭐.....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제가 바쁜세월이라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면서 30만엔 꿔달라고 했더니...
대방에서 생각밖에 이외의 선택길을 나한테 알려줬다.대학원은 아무떄건 들어갈수 있다는거다.
돈만 있으면 들어갈수있는데 돈 없으면 공부는 생각하지 말라는거다.그러니 일단 일본어 학교에
취직해서 돈 벌어서 국립대학원에 들어가면 공 먹고 알 먹기라나..하기야 잘 생각해보니까 취직은
나쁜것도 아니고....그런데 내가 왜 취직까지 생각못했던지....
그일로 난 일본에 와서 일년도 되지않고 일본어 학교에 취직하게 되였다.
물론 안해한테 편지는 정상수업과 마찬가지로 일주일에 두번 세번은 꼭 꼭 썼으니깐.
지금도 시간만 되면 편지를 꺼내놓고 보면서 웃기만 한다. 왜 그렇게 단순했던지.
내용은 신선한건 없었다.지금 읽어보니까....
사랑하는 안해에게...
그리곤 나 이틀동안 사상회보.뭐 매일 같은일 하고있으니깐 같은 말밖에 없지뭐...
그리곤 보고싶다던가..꼭 일본에 데려올거니까 락심하지말고 기다려달라고 말이야..
그러면서도 은근히 걱정도 많았다.꽤나 여쁘게 생겼는데 혹시 중국에서 다른 남자한테
홀리지나 않는지. 진짜 나를 믿고 기다릴 사람인지 하면서 말이야.그러니 나도 여기에서
꽤나 마음고생하면서 살았지뭐...
취직은 넘 순조롭게 되였다.서류신청해서 2주많에 내렸으니까..물론 나만 비자받으면 안되니까..
이사장하고 사정해서 일주일후에 가족비자를 신청했는데 그것도 10일만에 내릴줄이야...
체류자격인정서를 받는순간 옆에 선생들이 있던 없던 관계없이 소리내며 울었다.너무너무 기뻐서
너무너무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그리고 얼마 안되여 만나게 될 나 사랑하는 안해를 생각하면서..
전화를 받는 우리 부모들도 안해도 내가 롱담인줄 알았다.
하기야 취직해서 그렇게 인츰 비자를 신청할줄은 생각못했으니깐 말이다...
다음집으로 .....
연애해서 얼마 안되여 등기하고 갈라져있어야 할 나의 비참한 처지였다.
진짜 마음같아서는 당금이라도 집에 가고싶었으나 짊어지고 온 빚과 나의 꿈을
위하여 참을수밖에 없었다.
학교수업이라해도 이미 일본어는 꽤나 하는정도라 학교에 가도 배울건 없었다.
게다가 지친 몸에 피곤속에서 머리속엔 잠을 자는것과 유일하게 사랑하는 안해한테
편지쓰는 일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두번 세번은 꼭 꼭 안해한테 편지를 쓰군했다.
아침에 학교에 가면 우선 편지쓰는것이 제일 중요한 과제였다.
할말을 또 하고 또 한 말을 하고 하면서 안해한테 그리운 마음을 전달할수밖에 없었다.
그리군 침을 온 얼굴에 바르면서 잠을 자고 꺠면 수업이 끝나군했다.
반년동안 야채만 사 먹은 생각밖에 없다.쌀도 5키로 사면 꽤나 오래간다.
부근에 있는 슈퍼에 가면 일주일에 한번씩은 싸게 파는게 적지 않다.
더우기 라면 10개에 50엔이다.나한텐 너무나도 큰 배려였다
그리고 집에서 갖고온 마른 음식을 반년동안 깨끗하게 먹어버렸다.
음료수는 거의 반년동안 사 마신적이 없고 수도물만 마였다.
이렇게 반년동안 휴식일 하루없이 꼬박꼬박 열심이 돈 모았으니.....
이렇게 휴식일을 모아서 반년만에 중국에 일시귀국을 했지...
그것도 보고싶은 사람을 하도 너무 보고싶어서 병날거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귀국할때 북경으로해서 갔는데 북경 출입국에서 내보내지 않았다.
여권사진하고 나 얼굴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판단했던거였다.
나 자신이 보기에도 넘 흉측했다.감옥생활 일년해도 이렇게 되였을가 싶게 말이다.
그런대로 중국에 부모들과 전화통화하고 생년월일 확인하고 해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이튿날 고향에 가서 부모님들살고있는 집 문앞에서 [어머니!]하고 힘차게 불렀는데....
밖에 나온 저를 낳아준 부모도 저를 못 알아볼줄이야. 내가 억지로 웃으니.....
그제야 뭔가 알았다는싶이 넘어지다 싶이 나 앞으로 달려오는 어머니..
신발이 벗겨졌는데도 모르고 있었다.
불시에 끄거운 눈물줄기가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린탓에 앞에 쓰러질뜻이 달려오는
어머니마저 보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언젠오다 싶히 기다리면 료리를 준비하던 안해도 허겁지겁 달려나와선 나한테서 짐을 받아안는다..
하지만 웃는 얼굴이라 하기보다 눈물이 옆게 화장한 얼굴에 그림을 그려놓았다.
반갑다고 웃으면 울며....얼굴을 만져보면서 우는 저의 어머니 옆에서 더 서럽게 우는 안해....
아마 내 인생에서 유일한 감동적인 장면일것이다.
그래도 반년동안 고생한끝에 현금도 꽤나 갖고 가게 되였으니....
한달에 30만벌었으니 그대로 현금을 몽땅 중국에 갖고갔었다.
이만하면 고리대빚은 거의 벗은셈이였다. 도착한 첫날은 지금도 생각이 안 난다.
뭘 먹었고 어떻게 지냈는지 말이다. 그날저녁은 피곤이 몰려와 그대로 일찍 잠을 잤는데....
새벽 2시에 저도 몰래 일어나 옷 입고 신 신고있는데 불이 켜질줄이야.
어머니가 잠결에서 꺠여나서 불을 켰다.저하고 뭘 하는가고 묻자 아무런 생각없이
신문배달 시간이 됐어요...라고 대답하고나서야 자신이 부모집에 있다는걸 느꼈다.
어머니가 또 눈물을 흘린다..
내가 네 놈을 낳은게 죄구나....왜 널 이런 고생을 시켜야 하는지 모르겠구나 하면
통곡한다...참 남자들이 이런 고생하는게 뭐 그렇게 아깝다고...고생은 돈 주고도 사지 못하는데...
이렇게 갖고간 돈 빚 갚으려 하니 생각밖에 조금 모자랗다.설마 하고 생각했지뭐...
갖고 간돈 인민페로 10만원인데 꾼돈은 8만원 리자 4만원하니까 12만원이 된것이였다.
휴..설마 했는데..그러나 약속은 약속이니까.....
일본에 오자마자 친구들한테서 돈 꿔서 인츰 나머지를 보내드리고 빗 완전히 갚았다.
지금 생각해도 목구멍에 뭔가 결렸던것이 한숨에 내려갔던 느낌이였다.....
그제야 자신이 넘 피곤했다는걸 느꼈고 또 이대로 그냥 나갈수는 없었다고 생각하고
국립대학원 지망했는데 상상밖에 합격될줄이야...
하느님이 도와준셈이였다....
하지만 일년학비 30만엔인데 돈 꿔서 빚 물고나니 학비가 없었다.휴..어떻게 하는데
주위에 애들도 집에 돈 보낸다 알바 한다 야단인데 거기에 돈 꿀수도 없고..
생각하던 끝에 일본에서 우연하게 알게 된 일본어학교 이사장이 생각났다.
그런데 어떻게 연락할수도 없고...방정맞게도 명함잠도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 안난다.
중국에 전화해서 안해한테 부탁하여 겨우 명함장 찾아가지고 전화를 했지...
생각밖에 대방에서 반갑에 만나주면서 저녁식사를 했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일본 음식점에 들어가서 일본음식맛을 보게 되였다.행복했지뭐.....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제가 바쁜세월이라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면서 30만엔 꿔달라고 했더니...
대방에서 생각밖에 이외의 선택길을 나한테 알려줬다.대학원은 아무떄건 들어갈수 있다는거다.
돈만 있으면 들어갈수있는데 돈 없으면 공부는 생각하지 말라는거다.그러니 일단 일본어 학교에
취직해서 돈 벌어서 국립대학원에 들어가면 공 먹고 알 먹기라나..하기야 잘 생각해보니까 취직은
나쁜것도 아니고....그런데 내가 왜 취직까지 생각못했던지....
그일로 난 일본에 와서 일년도 되지않고 일본어 학교에 취직하게 되였다.
물론 안해한테 편지는 정상수업과 마찬가지로 일주일에 두번 세번은 꼭 꼭 썼으니깐.
지금도 시간만 되면 편지를 꺼내놓고 보면서 웃기만 한다. 왜 그렇게 단순했던지.
내용은 신선한건 없었다.지금 읽어보니까....
사랑하는 안해에게...
그리곤 나 이틀동안 사상회보.뭐 매일 같은일 하고있으니깐 같은 말밖에 없지뭐...
그리곤 보고싶다던가..꼭 일본에 데려올거니까 락심하지말고 기다려달라고 말이야..
그러면서도 은근히 걱정도 많았다.꽤나 여쁘게 생겼는데 혹시 중국에서 다른 남자한테
홀리지나 않는지. 진짜 나를 믿고 기다릴 사람인지 하면서 말이야.그러니 나도 여기에서
꽤나 마음고생하면서 살았지뭐...
취직은 넘 순조롭게 되였다.서류신청해서 2주많에 내렸으니까..물론 나만 비자받으면 안되니까..
이사장하고 사정해서 일주일후에 가족비자를 신청했는데 그것도 10일만에 내릴줄이야...
체류자격인정서를 받는순간 옆에 선생들이 있던 없던 관계없이 소리내며 울었다.너무너무 기뻐서
너무너무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그리고 얼마 안되여 만나게 될 나 사랑하는 안해를 생각하면서..
전화를 받는 우리 부모들도 안해도 내가 롱담인줄 알았다.
하기야 취직해서 그렇게 인츰 비자를 신청할줄은 생각못했으니깐 말이다...
다음집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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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18)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읽은 글입니다.
너무너무 감동받았읍니다.저도 온지 11년 철이 들구요.금방왔을때의 자신과 더불려 읽게되는군요.
다음집 기대할게요.빨리 올려주세요.
너무너무 감동받았읍니다.저도 온지 11년 철이 들구요.금방왔을때의 자신과 더불려 읽게되는군요.
다음집 기대할게요.빨리 올려주세요.
일본유학생활이 참 힘들엇지만 잘 뻗텨왓다는 생각에 저도 몰래 눈물이 핑돌게 돼요,,,초년고생은 금주고도 못산다고 유학생활이 힘들엇지만 좋은 경험으로 해줫어요,,당신의 글을 보면서 또다시 확신하게 돼요,,,
다음집을 기대할게요,,,ㅎㅎㅎ 어험,,,ㅎㅎ
,,,감동되는사실이군요,,,
오늘두 잘 보구 갑니다...
너무 힘차게살아온 보스천사님의 글을 읽도 많은걸느끼게되군요
조그마한 고생도 난 매일매일 피곤하고 어쩌궁하면서 노랑피울때도 많았는데
나두 보스천사님따라배워서 자기목표위해 더욱더 분투해야겟습다
고생끝에 락이온다는말 잊지말면서 힘내야지
다음집 빨리 보고싶어요
조그마한 고생도 난 매일매일 피곤하고 어쩌궁하면서 노랑피울때도 많았는데
나두 보스천사님따라배워서 자기목표위해 더욱더 분투해야겟습다
고생끝에 락이온다는말 잊지말면서 힘내야지
다음집 빨리 보고싶어요
잘 보구 갑니다.
웃고 울면서 지내왔던 일본생활을 보는것만 같습니다.
항상 묻고대답하기 게시판에 답글을 달아주시던 그 보이천사님이시네요~
그럼 담집두 기대합니다.
웃고 울면서 지내왔던 일본생활을 보는것만 같습니다.
항상 묻고대답하기 게시판에 답글을 달아주시던 그 보이천사님이시네요~
그럼 담집두 기대합니다.
꾸드 잘 썻슴다 감동먹엇짐 ㅎㅎㅎ
감동 먹었습니다...
왜 일본에 와서 이렇게 고생 사서 하면서 살아야 하나 낙심했었는데....
천사님 에 비하면 새발에 피네요...
천사님 본보기루 더 힘내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할까봐요...
잘 보구 갑니다...
다음집 기대하면서.....
오늘도 건강하시구 행복하세요!
왜 일본에 와서 이렇게 고생 사서 하면서 살아야 하나 낙심했었는데....
천사님 에 비하면 새발에 피네요...
천사님 본보기루 더 힘내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할까봐요...
잘 보구 갑니다...
다음집 기대하면서.....
오늘도 건강하시구 행복하세요!
여러분 리플 감사합니다.
모두들 힘내세요
아기자기님도 더 힘내시구요.
다음집도 빠른시일내에 올리겠습니다.
모두들 힘내세요
아기자기님도 더 힘내시구요.
다음집도 빠른시일내에 올리겠습니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말 정말 맞는말입니다..보이천사님의 글을 모두 감명깊게 보고 잇습니다....
힘든 모습을 부모님들에게 보일수 잇다는것도 행복한 일입니다.저는 아무리 힘든때라도
부모에겐 난 항상 잘 잇다고 모든것이 좋다고 거짓말만 하엿습니다.지금도 그렇습니다.
생각해보면 淋しいことですよね。。。님이 부럽습니다.
부모에겐 난 항상 잘 잇다고 모든것이 좋다고 거짓말만 하엿습니다.지금도 그렇습니다.
생각해보면 淋しいことですよね。。。님이 부럽습니다.
일본에 오셔서 많은 고생 겪으면서도 씩씩하게 삶을 향해 도전하는 모습
진짜 감동되였습니다.
특히 고향에 가셨을때 어머님과의 대면에 진짜 눈물 흘렸습니다.
보이 천사님 글에 끌리네요.다음집 기대하겠습니다.
진짜 감동되였습니다.
특히 고향에 가셨을때 어머님과의 대면에 진짜 눈물 흘렸습니다.
보이 천사님 글에 끌리네요.다음집 기대하겠습니다.
오늘두잘보구감다 ^0^
다음집기대함다^0^
다음집기대함다^0^
저도몰래 볼에서 눈물이 내려왓음다 ,,,,,,,,,어머니과의 대면에 서 그래서 나두 좀 소리 내서 울엇지무 ,,,슬퍼서 ,,,
여러분들이 항상 이렇게 뜨거운 마음을 닮아서 리플을 달아주니 넘 고맙구요.
앞으로도 제가 쉼터에서 할수있는 일을 열심히 하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쉼터에서 할수있는 일을 열심히 하려고 생각합니다.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하루라도 빠짐없이 보는 쉼터 임니다
어려운 유학생활 잘 버티고 이겨냈군요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임니다
새로운 한해에 행복이 깃들길 기원합니다
하루라도 빠짐없이 보는 쉼터 임니다
어려운 유학생활 잘 버티고 이겨냈군요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임니다
새로운 한해에 행복이 깃들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