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집으로 가자니 2집에서 조금 남은 이야기가 3집으로 연결되여서
우선 2집 후속으로 이야기해야겠다
마누라와 연해하면서 일본수속신청했고 또 졸업도 무사히했다.
그런데 일본수속결과 나만 인정서받고
마누란 불허가..이런 청천병력이라구야...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오삭하다.마누라가 넘 불쌍했다.
그러나 나 일본으로 유학가야했으니 갖 붙은불에 랭기가 올줄이야..
서로 갈라져서 살아야할 신세니깐..
마누라 그떄 그 슬픔 마음……울어서 해결할문제도 아니고…..
당시 돈 없어 우선 기차타고 대련까지 갔는데 떠날때
기차역전에서 기차를 따라잡으려고 정신없이 울면서
허겁지겁 달려오던 그 모습...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뭔가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올라오면서내 두눈에서 .....
그떄 나 마음속에 깊이 새겨둔건 [세상이 다 바뀌고 지구가 망가진다해도
꼭 마누라를 일본에 데려갈거라고...]
[남자로서 꼭 약속은 지킬거다]고 ………
심양까지는 부친과 같이 왔다.심양에서 난 대련으로 가고 부친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였는데 서로 갈라지는 순간 일생에서 처음으로 아버지란 뒤모습을
보았다.나한테 기대도 크면서 걱정도 많이 하는지 아무말없이 나를 기차에 태워주곤
뒤도 보지않고 내린다.
[아버지 몸 조심하시구.술 적게 마시고 ..아들이 꼭 효도할겁니다]
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
처음으로 일본에 오는지라 부모들은 일본의 모든 상품은 중국의 몇십배로 되니까
모든걸 중국에서 가져가라고 야단법석이였다.
치솔50개(하나에 20전이였다) 치약50개,빨래비누 30개, 가루비누 5개,
쌀도 10키로 가졌는데 넘 무거워서 나중엔 포기했었다.짐을 꾸리고 나니
일곱 여덟개는 되였다.
키도 크면 그래도 짐을 지고 다니기가 쉬웠겠지만….짐 두개만 쌓아도 앞이 안 보인다.
그리고올때는 일본어모르는 같은학교 유학생5명이나 데리고 왔다.
나리다 공항에 도착하니 학교에서 마중도 안 왔다.
전화하니 우리가 오는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참 한심하기라구야….마음속으로
울분이 울컷 올랐다.대체 웬 일이냐.
배는 고픈데 뭘 어떻게 사 먹어야하는지도 모르고
올떄는 부모님들 돈 도적맏일가봐 속 내의에 주머니를 만들어서
돈 넣고 바느실했으니 그렇다고 바지벗고 돈 꺼낼수도 없고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
다행이 일어를 전공했기에 리무진 뻐스타고 학교주소를 물어보면서 찾아갔다.
학교에도착하니 밤 11시 그때에서야 부모님들한테 일본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전화를 할수가있었다.
부모들은 전화가 오지 않으니 난리났다고 야단법석이였다.그때까지도 마누라는 울음을 끄치지않았다.
48시간......
우선 2집 후속으로 이야기해야겠다
마누라와 연해하면서 일본수속신청했고 또 졸업도 무사히했다.
그런데 일본수속결과 나만 인정서받고
마누란 불허가..이런 청천병력이라구야...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오삭하다.마누라가 넘 불쌍했다.
그러나 나 일본으로 유학가야했으니 갖 붙은불에 랭기가 올줄이야..
서로 갈라져서 살아야할 신세니깐..
마누라 그떄 그 슬픔 마음……울어서 해결할문제도 아니고…..
당시 돈 없어 우선 기차타고 대련까지 갔는데 떠날때
기차역전에서 기차를 따라잡으려고 정신없이 울면서
허겁지겁 달려오던 그 모습...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뭔가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올라오면서내 두눈에서 .....
그떄 나 마음속에 깊이 새겨둔건 [세상이 다 바뀌고 지구가 망가진다해도
꼭 마누라를 일본에 데려갈거라고...]
[남자로서 꼭 약속은 지킬거다]고 ………
심양까지는 부친과 같이 왔다.심양에서 난 대련으로 가고 부친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였는데 서로 갈라지는 순간 일생에서 처음으로 아버지란 뒤모습을
보았다.나한테 기대도 크면서 걱정도 많이 하는지 아무말없이 나를 기차에 태워주곤
뒤도 보지않고 내린다.
[아버지 몸 조심하시구.술 적게 마시고 ..아들이 꼭 효도할겁니다]
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
처음으로 일본에 오는지라 부모들은 일본의 모든 상품은 중국의 몇십배로 되니까
모든걸 중국에서 가져가라고 야단법석이였다.
치솔50개(하나에 20전이였다) 치약50개,빨래비누 30개, 가루비누 5개,
쌀도 10키로 가졌는데 넘 무거워서 나중엔 포기했었다.짐을 꾸리고 나니
일곱 여덟개는 되였다.
키도 크면 그래도 짐을 지고 다니기가 쉬웠겠지만….짐 두개만 쌓아도 앞이 안 보인다.
그리고올때는 일본어모르는 같은학교 유학생5명이나 데리고 왔다.
나리다 공항에 도착하니 학교에서 마중도 안 왔다.
전화하니 우리가 오는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참 한심하기라구야….마음속으로
울분이 울컷 올랐다.대체 웬 일이냐.
배는 고픈데 뭘 어떻게 사 먹어야하는지도 모르고
올떄는 부모님들 돈 도적맏일가봐 속 내의에 주머니를 만들어서
돈 넣고 바느실했으니 그렇다고 바지벗고 돈 꺼낼수도 없고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
다행이 일어를 전공했기에 리무진 뻐스타고 학교주소를 물어보면서 찾아갔다.
학교에도착하니 밤 11시 그때에서야 부모님들한테 일본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전화를 할수가있었다.
부모들은 전화가 오지 않으니 난리났다고 야단법석이였다.그때까지도 마누라는 울음을 끄치지않았다.
4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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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10)
ㅎㅎㅎㅎㅎㅎㅎㅎㅎ정말 유학생활은 다 그렇게 시작했나보네요 ...
그런데 정반대로 ..난 일본에 올때 학교 주소도 모르고 학교 이름도 모르고 ..
달라당 도랑크하나과 멜가방 하나 메고 왔는데 ..
그것도 혼자서 ....
다행이 공항까지 선생님이 마중나와서 ....
그때 생각해보면 아마 젊었음이라고 생각하죠 .....
그런데 정반대로 ..난 일본에 올때 학교 주소도 모르고 학교 이름도 모르고 ..
달라당 도랑크하나과 멜가방 하나 메고 왔는데 ..
그것도 혼자서 ....
다행이 공항까지 선생님이 마중나와서 ....
그때 생각해보면 아마 젊었음이라고 생각하죠 .....
님의 글을 읽노라니 꼭 8년전 일본으로 떠나는 신랑과 헤여지던 옛추억에 코마루가 찡해나네요.그리고 후편이 더 궁금해지네요.님의 안해분은 지금 일본에 왔는지....모든것이 궁금해지네요.다음편 빨리 읽고 싶어요.
님과 님의 안해 영원히 행복하길바라며 다음 편에서 만나요.
님과 님의 안해 영원히 행복하길바라며 다음 편에서 만나요.
제가 올때와는 전녕 다르지만 어쩐지 일본생활이 다 쉽게 시작되지 않았다는 그 가난했던 그때가 그리워 지면서 가끔 남한테 도움도 줬지만 ---보답을 받자는 건 아니지만---
전혀 전화도 주지않고 또 전화도 인차바꿔버리는 그런 사람들이 생각남니다.누구나 다 그런 경험이 있는건 아니지만 ---
근본을 잊지 맙시다.과거를 기억합시다. 그러면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분투할 힘이 나질겁니다.
다음편도 보고 싶습니다.잘 읽고 갑니다.
전혀 전화도 주지않고 또 전화도 인차바꿔버리는 그런 사람들이 생각남니다.누구나 다 그런 경험이 있는건 아니지만 ---
근본을 잊지 맙시다.과거를 기억합시다. 그러면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분투할 힘이 나질겁니다.
다음편도 보고 싶습니다.잘 읽고 갑니다.
다음편 기대할게요,,,ㅎㅎㅎㅎ 어험,,,ㅎㅎ
다음편 기대할게요,,,ㅎㅎㅎㅎ 어험,,,ㅎ
다음편 기대할게요,,,ㅎㅎㅎㅎ 어험,,,ㅎㅎ
다음편 기대할게요,,,ㅎㅎㅎㅎ 어험,,,ㅎㅎ
보이천사님. 요즘 바삐 보내시나 보네요...
다음집 언제 올라오나
자주 들리게 됩니다...
다음집 언제 올라오나
자주 들리게 됩니다...
다들 일본류학생생활은 이렇게 시작된듯 싶습니다. 이 글 읽으면 어딘가 찡해남니다. 다음편 기대합니다.

모르는 여자분이 기차떠나는데 기차를 따라가면설 울면서 손을 흔들던 정경이 떠올라서
뜨거운것이 가슴으로부터 올라오는 느낌입니다.
<치솔50개(하나에 20전이였다) 치약50개,빨래비누 30개, 가루비누 5개,
쌀도 10키로> 웃어서는 안되지만 많이 웃엇습니다.
또 담편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