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기다려라고 그녀하고 말을 하지는 못했다 .
집을 떠나 두달후의 어느날 그녀한테서 전화가 왔다
너의 어머니가 전화가 왔단다 ,
시간있으면 빨리 집에 전화를 해보아라고 그녀가 말을 하였다
내가 집을 떠날때 어머니한테 그녀의 련락처를 알려주었던것이다
왜나하면 내가 일하는 식당에서는 개인의 전화를 리용하지 못하게 하기 떄문이다
삐삐 번호를 남겨도 칠줄을 모른다네요 .
그떄 내가 쓰고 있던 삐삐는 전국어디서나 삐삐를 치면 다 받을 수 있기에 일년에
딱 백원 .그것도 지금 보면 얼마안되는 돈이지만 그당시에는 나한테 큰돈이였다
그리하여 그날저녁에 집에다 전화를 넣었다 .전화는 어머니가 받았다 .
"아들아! 너 일본수속을 하고 있는데 잘된 증명사진이 없어서 그랜다
래일이라도 빨리 찍어서 집에 붙쳐라 ."
이거 무슨 소리냐 그렇게 류학을 반대를 하던 아버지가 동의를 하였단 말인가
전화는 예 한마디만 하고 끊어버렸다 .
그날저녁 숙사에 들어가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
이튼날 같이 일하는 경리한테서 씨좡을 빌려입고 사진찍으로 갔다 .그런데 난생처음 씨쫭을 입은것이 어찌도 거북한지 얼굴이 찡해났다 .
사진관에 들어서니 복무원이 어떤것을 요구 하는가고 물었다 .
잘하지도 못하지는 중어로 증명사진 40장을 찍어달라고 청을 하였다 .
그러자 사진관에 있던 사람들이 놀래하였다 .
어디 출국을 하는가고 물었다 .아니 그냥 수요되여서 …
사진을 찍고 식당에 돌아왔다 .경리도 물었다 너 어디로 가기에
옷까지 빌려입는가고 옷빌린 값으로 한번 청해라는것이였다
밍빠이러 .오케
중어에 영어까지 답씨기지머 그러구 그복장차림에 그녀한테 달려가서
워찐탠 헌쏴이봐 하고도 물어볼가 하였지만 알바시간이라서
아쉬운대로 일을 하였다 .
그녀가 언제부터 내가 씨쐉을 입은 모습을 보구 싶다해서 보고주고싶었지만
몇년 사귀고 갈라질떄까지도 앞에서 보여준적이 없다 .사진도 없었기 말이지
난 그런 정차림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며칠후 사진이 씻어서 집에 보냈지만 퇴자를 맞았다 .
며칠후 그녀한테서 또소식이 왔다 .빨리 전화를 하란다 .
그녀도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에 궁금하여도 하였지만
아직은 시기가 되지 않아서 말도 꺼내지 않았다 .
집에 전화를 하니 사진도 퇴자를 맞고 해서 너 본인이 빨리 고향으로 돌아오라는것이였다
두달이 좀되였는데 또 그녀하고 갈라지라고 마음은 속상하였다
저녁 일끝나고 그녀한테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
그날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안위해주는 덕분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말도 옳았다 .남자로 태여나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경험도 쌓는것이 옳았던것이였다 .
그떄 나는 19살 일본나이로 18살 .그렇게 어린것이 류학을 간다는것이 말이 안되는 소리기도 하였다 .
그녀를 학교숙사까지 발래주고 난 알바숙사에 돌아 왔다 .
그런데 기분도 우울 한데 사고를 쳤다 .같이 일을 하고 있는 한 직원하고 말다툼으로
자그마한 폭력까지 하였다 .
그날 그직원은 많이 상했다 .그리하여 경리같이 병원에 가서 씨티까지 찍고 약도 발랐다 .
한밤중에야 기숙사로 돌아 왔다.
이튼날 경리가 두사람의 경과를 알고서 두 사람 다 잘랐다 .
그직원은 시내에 집이 있어서 인츰 자리를 떠났지만 경리는 나를 많이 봐주었다 .
너 일자리를 구하기도 그렇고 잠자리도 힘드니까 단칸으로 내주겠다는것이다 .
기숙사에 일자리를 구할때까지 있어라는것이였다 .
다른 직원들을 전화를 넣어 일자리까지 구해주겠다고 하였다 .
그렇지만 나도 곧 떠나야 할 몸여서 모두 감사하다면서 거절을 하였다 .
그리고 경리는 생활비에 보태라면서 자기 돈지갑에서 3백원을 주었다 .
3일후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
그녀는 바래줄러 나오지 않았다 .
그건 그녀의 마음도 쓸쓸하기 때문이다 .
일년남짓이 사겨서 또 언제 만날지 ……
길림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이튼날 새벽에 기차는 연길역에 도착하였따 .
역에는 어머니가 마중을 나왔다 .
어머니가 날보자 웃는 얼굴로 한마디 하였다 .
너 다시는 돌아 오지 않는다는것이 왜 왔지 .
난 그저 미안함다 .용서를 빔니다.
그리고 택시로 집으로 들어갔다 .
아버지는 어 울 아들이 돌아 왔구나 많이 컸네 ….
아침밥을 먹고나서 낮잠을 잘려고 하였으나 어머니는 안된다 .빨리
사진을 찍으러 가야 한다면서 나를 못 자게 만들었다 .
그날 피곤 도 하였지만 그래도 류학을 간다는 맘인지 둥둥 떠다녔다
사진도 제일 좋은것으로 찍구 맛있는것도 사먹었다 .
그렇지만 마음은 그냥 어쩐지 할빈에 있는 느낌이 였다 .
그녀의 모습 .
진짜 환장하고 있었다 .
련애를 하는것은 모두 그렇다고 들었다 .의학에서는 남녀 련애를 할때
면 정신병환자라고 한단다네요
그런가 보다 정신이 제정신이 아니다
그날 많이 피곤하였다 .
잠도 많이 잤다
며칠후 일본어 회화학습반인지 먼지 참가하라면서 나를 데리고 어머니가
학원에 갔다 .
학생들은 몇명되지 않았으나 다 잊어먹은 일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책을 놓은지도 일년남짓한데 필을 지자니 글이 쓰여지지 않
았다 .골통이 또 터졌다 .
집에 돌아 와서 그녀한테 전화를 하는것을 까먹었다 .이리하여
저녁에 그녀의 기숙사에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여자 침실이대서 그런지 그렇게도 걸리지 않았다 .네시간을 걸어서10분정도
말을 하였다 .얼마나 보고 싶은지 …
지금 같으면 왕빠에 가서 채팅하면 되였지만 그렇게 보편적이 되지 않았기떄문에
할수 없다 .
집으로 오는 길에 일본에 가기전에 한번 가보기로 마음 먹었다
집에 돌아와서 백일계획을 하였다 .딱 2월 13까지 백일이 되나 마나 하였다
낮에는 학원에 가서 일어를 배우고 저녁에는 그 계획날자수에 곱하기를 하루에 하나씩
쳤다 .
그해 2월 16일에 음력설이 되던것으로 기억난다
하루에 곱하기 하나를 치는것이 그렇게 도 힘든지 백년을 기다리는것같았다
거울도 보니 백발이 나기 시작하였다 .마음고생이 힘들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번 아니면 세번씩 편지를 썼다.
그러나 편지는 하나도 부치지 못하고 서랍속에 넣었다 .
편지를 보낼 용기가 없었던것이다 그녀가 편지를 읽고 나면 쓸픈 모습이 상상되여서
몇번이나 갈라지자고 마음 먹었으나 많이 힘들었다 .
그리고 매주 2.3번씩 전화를 하였다 .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때마다 보고싶었다 .힘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떨어져있는것이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해야 하는지
마음속에는 물음표밖에 없다
세월이 흘러가고 추운겨울 도 절반 지나갔다
드디여 할빈에 갈 계획하였던날과 멀지 않았다
갈 려비를 마련하여야 하였기때문에 문제도 많았다 .
적어도 700원정도 .그동안 학원에 다니느라고
매일 소비돈 8원씩 받은것을 절약해서 200원 모았는데
집전화를 너무치다보니 부모들한테 알려지면 또 좋은일이
없을거다 .그리하여 자기절로 모아 두었던 돈으로 지불하였다
남은것이란 30원밖에 없었다 .
매일 학원에 다니면서 친구들한테 돈꾸러 돌아 다니고
부모들한테도 청을 해봤으나 그런돈은 너절로 해결해라는것이였다 .
그렇지만 모두들 신세타령이였다 .10일쯤돌아서야 겨우300정도
밖에 얻지못하였다 . 나머지는 어떻게 하면 좋을가?
이제 남은 날수도 며칠남지 않았다 어머니한테가서 돈을 꾸어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걸 해서 멀하려고 목적을 말해라 하는것이다
그래서 자기 계획을 말했다 .아버지는 또 반대 …음력설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쳐 열도 많이 받았다
그날 저녁도 먹지 않고 방법대책을 세웠다 안되면 지금 있는 돈이라도
잘 쓰면 된다 .
이리하여 300원을 가지고 2월 12일 저녁에 차로 집을 떠나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안쪽에서 설세러 고향으로 돌아 오는데
난 그녀를 보러 간다 .누구 어떻게 생각하던 난 내갈데로 가야해
집문을 나갈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한마디를 했다 .울집아들에게 돈을 좀주우 라고
어머니한테 말을 건넜다 .
난데없는 소리에 난 많이 감사하기도 했고 격동되기도 했다 .
300원을 손에 받았다 .
다른 말없이 난 역전으로 갔다 .다른 친구도 바래줄러 나왔다 .
2월 12일 저녁 10시 22분 기차 다
지금은 기차시간이 바뀌여 질수 도 모르지만 그떈 이시각에 집을 떠났다 .
이튼날 2월 13일 12시경에 할빈에 다시 도착했다 .
세번째로 할빈역에 온것이다.
그녀가 마중하러 나왔다 .백일만에 보는 얼굴이라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
그녀하고 오후시간에는 놀러 다녔다 .
저녁이되자 자그마한 려관으로 들어갔다 .
내가 올적에 부치지 못한 편지를 그녀한테 주었다 .그리고 연변의 핑궈리
즉 사과배도 주었다. 비록 몇알되지 않지만 그녀는 많이 좋아 했다 .
편지는 너 집에돌아 가서 읽고 래일 다시 만나자 .
편지는 몇십통에 달하였다 .아미 소설을 읽는것같을것이다
이튼날 다시 그녀가 찾아 왔다 .몹씨 초라한 모습이였다 .
아무말도 없이 쪽지를 주는것이 였다 .
네가 집에 돌아간다음에 보라는것이 였다 .
편지에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
그렇지만 난 그자리에서 그쪽지를 읽어보았다 .
갈라지잖다 .
그러고 그녀는 친구 집으로 갔다 .
마음은 몹씨 서운하였다 .이렇게 까지 찾아 왔는데 .
그날은 2월 14일 칭런제에 갈라졌다 .
집을 떠나 두달후의 어느날 그녀한테서 전화가 왔다
너의 어머니가 전화가 왔단다 ,
시간있으면 빨리 집에 전화를 해보아라고 그녀가 말을 하였다
내가 집을 떠날때 어머니한테 그녀의 련락처를 알려주었던것이다
왜나하면 내가 일하는 식당에서는 개인의 전화를 리용하지 못하게 하기 떄문이다
삐삐 번호를 남겨도 칠줄을 모른다네요 .
그떄 내가 쓰고 있던 삐삐는 전국어디서나 삐삐를 치면 다 받을 수 있기에 일년에
딱 백원 .그것도 지금 보면 얼마안되는 돈이지만 그당시에는 나한테 큰돈이였다
그리하여 그날저녁에 집에다 전화를 넣었다 .전화는 어머니가 받았다 .
"아들아! 너 일본수속을 하고 있는데 잘된 증명사진이 없어서 그랜다
래일이라도 빨리 찍어서 집에 붙쳐라 ."
이거 무슨 소리냐 그렇게 류학을 반대를 하던 아버지가 동의를 하였단 말인가
전화는 예 한마디만 하고 끊어버렸다 .
그날저녁 숙사에 들어가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
이튼날 같이 일하는 경리한테서 씨좡을 빌려입고 사진찍으로 갔다 .그런데 난생처음 씨쫭을 입은것이 어찌도 거북한지 얼굴이 찡해났다 .
사진관에 들어서니 복무원이 어떤것을 요구 하는가고 물었다 .
잘하지도 못하지는 중어로 증명사진 40장을 찍어달라고 청을 하였다 .
그러자 사진관에 있던 사람들이 놀래하였다 .
어디 출국을 하는가고 물었다 .아니 그냥 수요되여서 …
사진을 찍고 식당에 돌아왔다 .경리도 물었다 너 어디로 가기에
옷까지 빌려입는가고 옷빌린 값으로 한번 청해라는것이였다
밍빠이러 .오케
중어에 영어까지 답씨기지머 그러구 그복장차림에 그녀한테 달려가서
워찐탠 헌쏴이봐 하고도 물어볼가 하였지만 알바시간이라서
아쉬운대로 일을 하였다 .
그녀가 언제부터 내가 씨쐉을 입은 모습을 보구 싶다해서 보고주고싶었지만
몇년 사귀고 갈라질떄까지도 앞에서 보여준적이 없다 .사진도 없었기 말이지
난 그런 정차림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며칠후 사진이 씻어서 집에 보냈지만 퇴자를 맞았다 .
며칠후 그녀한테서 또소식이 왔다 .빨리 전화를 하란다 .
그녀도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에 궁금하여도 하였지만
아직은 시기가 되지 않아서 말도 꺼내지 않았다 .
집에 전화를 하니 사진도 퇴자를 맞고 해서 너 본인이 빨리 고향으로 돌아오라는것이였다
두달이 좀되였는데 또 그녀하고 갈라지라고 마음은 속상하였다
저녁 일끝나고 그녀한테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
그날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안위해주는 덕분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말도 옳았다 .남자로 태여나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경험도 쌓는것이 옳았던것이였다 .
그떄 나는 19살 일본나이로 18살 .그렇게 어린것이 류학을 간다는것이 말이 안되는 소리기도 하였다 .
그녀를 학교숙사까지 발래주고 난 알바숙사에 돌아 왔다 .
그런데 기분도 우울 한데 사고를 쳤다 .같이 일을 하고 있는 한 직원하고 말다툼으로
자그마한 폭력까지 하였다 .
그날 그직원은 많이 상했다 .그리하여 경리같이 병원에 가서 씨티까지 찍고 약도 발랐다 .
한밤중에야 기숙사로 돌아 왔다.
이튼날 경리가 두사람의 경과를 알고서 두 사람 다 잘랐다 .
그직원은 시내에 집이 있어서 인츰 자리를 떠났지만 경리는 나를 많이 봐주었다 .
너 일자리를 구하기도 그렇고 잠자리도 힘드니까 단칸으로 내주겠다는것이다 .
기숙사에 일자리를 구할때까지 있어라는것이였다 .
다른 직원들을 전화를 넣어 일자리까지 구해주겠다고 하였다 .
그렇지만 나도 곧 떠나야 할 몸여서 모두 감사하다면서 거절을 하였다 .
그리고 경리는 생활비에 보태라면서 자기 돈지갑에서 3백원을 주었다 .
3일후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
그녀는 바래줄러 나오지 않았다 .
그건 그녀의 마음도 쓸쓸하기 때문이다 .
일년남짓이 사겨서 또 언제 만날지 ……
길림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이튼날 새벽에 기차는 연길역에 도착하였따 .
역에는 어머니가 마중을 나왔다 .
어머니가 날보자 웃는 얼굴로 한마디 하였다 .
너 다시는 돌아 오지 않는다는것이 왜 왔지 .
난 그저 미안함다 .용서를 빔니다.
그리고 택시로 집으로 들어갔다 .
아버지는 어 울 아들이 돌아 왔구나 많이 컸네 ….
아침밥을 먹고나서 낮잠을 잘려고 하였으나 어머니는 안된다 .빨리
사진을 찍으러 가야 한다면서 나를 못 자게 만들었다 .
그날 피곤 도 하였지만 그래도 류학을 간다는 맘인지 둥둥 떠다녔다
사진도 제일 좋은것으로 찍구 맛있는것도 사먹었다 .
그렇지만 마음은 그냥 어쩐지 할빈에 있는 느낌이 였다 .
그녀의 모습 .
진짜 환장하고 있었다 .
련애를 하는것은 모두 그렇다고 들었다 .의학에서는 남녀 련애를 할때
면 정신병환자라고 한단다네요
그런가 보다 정신이 제정신이 아니다
그날 많이 피곤하였다 .
잠도 많이 잤다
며칠후 일본어 회화학습반인지 먼지 참가하라면서 나를 데리고 어머니가
학원에 갔다 .
학생들은 몇명되지 않았으나 다 잊어먹은 일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책을 놓은지도 일년남짓한데 필을 지자니 글이 쓰여지지 않
았다 .골통이 또 터졌다 .
집에 돌아 와서 그녀한테 전화를 하는것을 까먹었다 .이리하여
저녁에 그녀의 기숙사에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여자 침실이대서 그런지 그렇게도 걸리지 않았다 .네시간을 걸어서10분정도
말을 하였다 .얼마나 보고 싶은지 …
지금 같으면 왕빠에 가서 채팅하면 되였지만 그렇게 보편적이 되지 않았기떄문에
할수 없다 .
집으로 오는 길에 일본에 가기전에 한번 가보기로 마음 먹었다
집에 돌아와서 백일계획을 하였다 .딱 2월 13까지 백일이 되나 마나 하였다
낮에는 학원에 가서 일어를 배우고 저녁에는 그 계획날자수에 곱하기를 하루에 하나씩
쳤다 .
그해 2월 16일에 음력설이 되던것으로 기억난다
하루에 곱하기 하나를 치는것이 그렇게 도 힘든지 백년을 기다리는것같았다
거울도 보니 백발이 나기 시작하였다 .마음고생이 힘들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번 아니면 세번씩 편지를 썼다.
그러나 편지는 하나도 부치지 못하고 서랍속에 넣었다 .
편지를 보낼 용기가 없었던것이다 그녀가 편지를 읽고 나면 쓸픈 모습이 상상되여서
몇번이나 갈라지자고 마음 먹었으나 많이 힘들었다 .
그리고 매주 2.3번씩 전화를 하였다 .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때마다 보고싶었다 .힘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떨어져있는것이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해야 하는지
마음속에는 물음표밖에 없다
세월이 흘러가고 추운겨울 도 절반 지나갔다
드디여 할빈에 갈 계획하였던날과 멀지 않았다
갈 려비를 마련하여야 하였기때문에 문제도 많았다 .
적어도 700원정도 .그동안 학원에 다니느라고
매일 소비돈 8원씩 받은것을 절약해서 200원 모았는데
집전화를 너무치다보니 부모들한테 알려지면 또 좋은일이
없을거다 .그리하여 자기절로 모아 두었던 돈으로 지불하였다
남은것이란 30원밖에 없었다 .
매일 학원에 다니면서 친구들한테 돈꾸러 돌아 다니고
부모들한테도 청을 해봤으나 그런돈은 너절로 해결해라는것이였다 .
그렇지만 모두들 신세타령이였다 .10일쯤돌아서야 겨우300정도
밖에 얻지못하였다 . 나머지는 어떻게 하면 좋을가?
이제 남은 날수도 며칠남지 않았다 어머니한테가서 돈을 꾸어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걸 해서 멀하려고 목적을 말해라 하는것이다
그래서 자기 계획을 말했다 .아버지는 또 반대 …음력설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쳐 열도 많이 받았다
그날 저녁도 먹지 않고 방법대책을 세웠다 안되면 지금 있는 돈이라도
잘 쓰면 된다 .
이리하여 300원을 가지고 2월 12일 저녁에 차로 집을 떠나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안쪽에서 설세러 고향으로 돌아 오는데
난 그녀를 보러 간다 .누구 어떻게 생각하던 난 내갈데로 가야해
집문을 나갈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한마디를 했다 .울집아들에게 돈을 좀주우 라고
어머니한테 말을 건넜다 .
난데없는 소리에 난 많이 감사하기도 했고 격동되기도 했다 .
300원을 손에 받았다 .
다른 말없이 난 역전으로 갔다 .다른 친구도 바래줄러 나왔다 .
2월 12일 저녁 10시 22분 기차 다
지금은 기차시간이 바뀌여 질수 도 모르지만 그떈 이시각에 집을 떠났다 .
이튼날 2월 13일 12시경에 할빈에 다시 도착했다 .
세번째로 할빈역에 온것이다.
그녀가 마중하러 나왔다 .백일만에 보는 얼굴이라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
그녀하고 오후시간에는 놀러 다녔다 .
저녁이되자 자그마한 려관으로 들어갔다 .
내가 올적에 부치지 못한 편지를 그녀한테 주었다 .그리고 연변의 핑궈리
즉 사과배도 주었다. 비록 몇알되지 않지만 그녀는 많이 좋아 했다 .
편지는 너 집에돌아 가서 읽고 래일 다시 만나자 .
편지는 몇십통에 달하였다 .아미 소설을 읽는것같을것이다
이튼날 다시 그녀가 찾아 왔다 .몹씨 초라한 모습이였다 .
아무말도 없이 쪽지를 주는것이 였다 .
네가 집에 돌아간다음에 보라는것이 였다 .
편지에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
그렇지만 난 그자리에서 그쪽지를 읽어보았다 .
갈라지잖다 .
그러고 그녀는 친구 집으로 갔다 .
마음은 몹씨 서운하였다 .이렇게 까지 찾아 왔는데 .
그날은 2월 14일 칭런제에 갈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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