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두 한번 두서없는 글이나마 올려봅니다.많이 아껴주세요.
내가 일본땅을 디딘 목적은 세가지다.
하나는, 돈 벌라 나왔다---필업해서 금방 회사에 취직한 나로서 그때의 한 800원 남짓한 수입으로는 앞으로 결혼하구 집사구 하는 돈 마련될것 같지 않았다.우리 두 형제를 위해 로심초사하신 부모님들은 지금도 힘겨운 지구수리일을 하구 계시는지라 더는 등쳐먹을수 없었다.
둘째는, 동생 학비 대줄려구 나왔다---금방 대학에 입학한 동생의 학비가 우리 부모 일년 농사수입과 맞먹는다.내가 억이 막혀서 원 참!뒤바라지를 할려면 도저히 힘든 일이다.내가 알바한 수입으로 4년동안 한 10만 대줬다.한배를 타고 난 형제니깐 방법이 없지.
셋째는,더 배워서 출세하려구 나왔다---금방 대학을 졸업하구 회사에 출근하니 모든게 새롭구 신기하구 떳떳한게 꼭마치 개잡은 포수마냥 어깨가 들썽거리구 대단한것 같았다.현실은 엄준했다.내가 넘 모르는구나 생각 되였고 또 그때는 일본 류학바람이 불었다.에라- 돈두 없구 젊은데 돈이나 꿔서 일본이나 가자.듣자니 일본은 돈이 많아서 저 구을러 다니는 말똥보담두 더 많단다.주어서 살자꾸나!
이게 나의 일본행의 시작이다.내 그때 팔팔 끓는 만 24살 ,어언간 5년반이란 시간이 지났다.시간이 정말 류수구나 하는 생각 다시 난다.소학교땐 그 6년공부 그렇게 지루하구 멀던게 또 하나의 소학교를 다닐수 있는 시간을 내가 일본에서 보낸것이다.그동안 난 한번두 돌아가본적 없다.왜서인가구???돈두 없었구 집 돌아가는 돈두 아까웠구 아 인제야 발 편히 잠들겠구나 할 지금은 또 시간(?!)이 없다.그래서 여러분들이 전해주는 고향소식 그렇게두 반갑구 또한 목마르게 기다리면서 읽어보군 한다. 반가운 소식 ,가슴을 치는 소식 ,허구픈 슬픈 소식들이지만 나한텐 정말로 필요한 고향 메아리이다.택시운전기사들의 형편없는 직업도덕이랑 읽고 아 연변이 타락되여가는걸 느끼고 가슴 아프다.정말로 이제 고향이구나 하구 돌아갈 때 그런 일 당하게 되면 정말로 억이 막힌 일 아닐수 없다.뭐 예전부터 그랫지만 ...정이 뚝뚝 떨어질것 같다...
연길에서 엄마의 바램속에서 기차에 몸을 실을 때 눈물이 나는걸 억제할수 없었다.바로 그옆에 여친이 아쉬운 눈길로 나를 바랫지만 난 웬지 엄마를 떠나 머나먼 이국타향에 간다는것이 더 슬펐다.여친이 그렇게 정성껏 나의 짐을 싸주고 여기저기 뛰여다녔지만 난 웬지 엄마하구 갈라진다는 슬픔이 앞섰다.지금 생각하면 그때 여친한테 미안한 생각에 가끔 가슴이 아파난다.아마 첫사랑이란 이래서 한 말(?!)이겠다.동생이 나와 함께 대련까지 가지만 난 동생앞에서 엄마하며 멀어저가는 엄마를 불렀다.그렇게 못나고 초라한 나의 엄마,같이 있으면 내가 신경만 쓰는 엄마였지만 나를 위해 그날도 기차역에서 여기저기 뛰여다니면서 먹을거 사왔구 난 또 늦어진다구 엄마한테 화를 내였었다.기차에 올라서 한참이나 후회하였다.마지막 갈라질때까지 화를 낸 내가 너무도 초라했다.엄마한테 이후 꼭 효성하리라 다지면서두 눈물은 줄 끊어지 구슬마냥 남아의 볼을 타구 내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기차가 대련역에 거의 도착한다구 아나운서가 울려 퍼진다.아 인젠 사랑하는 내 조국(?!)에 머믈러 있을 시간두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니 더욱 슬퍼났다.그 심란한 정서 때문이였는지 택시타구 공항부근에서 내릴때 가방을 두고 내렸다.에이 -가기전부터 불길한 징조구나 !!! 일이 될라구 그랬던지 마침 한 기차로 역시 일본류학 가는분이 뒤에서 택시타구 우리뒤를 따르면서 택시번호를 기억하구 있었던것이다.락키!!!으하하하 웃음이 나올정도로 기뻣다.그 내 소중한 가방 되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깐.마침 대련리공대학을 다니는 동생의 친구놈이 핸드폰을 빌려가지고 마중 나왔는지라 그걸루 사처에 한시간 정도 연락하더니 마침내 택시를 찾아내는데 성공하였다.(다음호에...)
내가 일본땅을 디딘 목적은 세가지다.
하나는, 돈 벌라 나왔다---필업해서 금방 회사에 취직한 나로서 그때의 한 800원 남짓한 수입으로는 앞으로 결혼하구 집사구 하는 돈 마련될것 같지 않았다.우리 두 형제를 위해 로심초사하신 부모님들은 지금도 힘겨운 지구수리일을 하구 계시는지라 더는 등쳐먹을수 없었다.
둘째는, 동생 학비 대줄려구 나왔다---금방 대학에 입학한 동생의 학비가 우리 부모 일년 농사수입과 맞먹는다.내가 억이 막혀서 원 참!뒤바라지를 할려면 도저히 힘든 일이다.내가 알바한 수입으로 4년동안 한 10만 대줬다.한배를 타고 난 형제니깐 방법이 없지.
셋째는,더 배워서 출세하려구 나왔다---금방 대학을 졸업하구 회사에 출근하니 모든게 새롭구 신기하구 떳떳한게 꼭마치 개잡은 포수마냥 어깨가 들썽거리구 대단한것 같았다.현실은 엄준했다.내가 넘 모르는구나 생각 되였고 또 그때는 일본 류학바람이 불었다.에라- 돈두 없구 젊은데 돈이나 꿔서 일본이나 가자.듣자니 일본은 돈이 많아서 저 구을러 다니는 말똥보담두 더 많단다.주어서 살자꾸나!
이게 나의 일본행의 시작이다.내 그때 팔팔 끓는 만 24살 ,어언간 5년반이란 시간이 지났다.시간이 정말 류수구나 하는 생각 다시 난다.소학교땐 그 6년공부 그렇게 지루하구 멀던게 또 하나의 소학교를 다닐수 있는 시간을 내가 일본에서 보낸것이다.그동안 난 한번두 돌아가본적 없다.왜서인가구???돈두 없었구 집 돌아가는 돈두 아까웠구 아 인제야 발 편히 잠들겠구나 할 지금은 또 시간(?!)이 없다.그래서 여러분들이 전해주는 고향소식 그렇게두 반갑구 또한 목마르게 기다리면서 읽어보군 한다. 반가운 소식 ,가슴을 치는 소식 ,허구픈 슬픈 소식들이지만 나한텐 정말로 필요한 고향 메아리이다.택시운전기사들의 형편없는 직업도덕이랑 읽고 아 연변이 타락되여가는걸 느끼고 가슴 아프다.정말로 이제 고향이구나 하구 돌아갈 때 그런 일 당하게 되면 정말로 억이 막힌 일 아닐수 없다.뭐 예전부터 그랫지만 ...정이 뚝뚝 떨어질것 같다...
연길에서 엄마의 바램속에서 기차에 몸을 실을 때 눈물이 나는걸 억제할수 없었다.바로 그옆에 여친이 아쉬운 눈길로 나를 바랫지만 난 웬지 엄마를 떠나 머나먼 이국타향에 간다는것이 더 슬펐다.여친이 그렇게 정성껏 나의 짐을 싸주고 여기저기 뛰여다녔지만 난 웬지 엄마하구 갈라진다는 슬픔이 앞섰다.지금 생각하면 그때 여친한테 미안한 생각에 가끔 가슴이 아파난다.아마 첫사랑이란 이래서 한 말(?!)이겠다.동생이 나와 함께 대련까지 가지만 난 동생앞에서 엄마하며 멀어저가는 엄마를 불렀다.그렇게 못나고 초라한 나의 엄마,같이 있으면 내가 신경만 쓰는 엄마였지만 나를 위해 그날도 기차역에서 여기저기 뛰여다니면서 먹을거 사왔구 난 또 늦어진다구 엄마한테 화를 내였었다.기차에 올라서 한참이나 후회하였다.마지막 갈라질때까지 화를 낸 내가 너무도 초라했다.엄마한테 이후 꼭 효성하리라 다지면서두 눈물은 줄 끊어지 구슬마냥 남아의 볼을 타구 내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기차가 대련역에 거의 도착한다구 아나운서가 울려 퍼진다.아 인젠 사랑하는 내 조국(?!)에 머믈러 있을 시간두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니 더욱 슬퍼났다.그 심란한 정서 때문이였는지 택시타구 공항부근에서 내릴때 가방을 두고 내렸다.에이 -가기전부터 불길한 징조구나 !!! 일이 될라구 그랬던지 마침 한 기차로 역시 일본류학 가는분이 뒤에서 택시타구 우리뒤를 따르면서 택시번호를 기억하구 있었던것이다.락키!!!으하하하 웃음이 나올정도로 기뻣다.그 내 소중한 가방 되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깐.마침 대련리공대학을 다니는 동생의 친구놈이 핸드폰을 빌려가지고 마중 나왔는지라 그걸루 사처에 한시간 정도 연락하더니 마침내 택시를 찾아내는데 성공하였다.(다음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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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3)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짙다고하는거예요!ㅎㅎ
그래서 어머니는 위대한거얘요.자신의 솔직한 감정그대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가슴이 찡해나면서 나도 내가 떠날때 모습을 그려봤어요.님은 오년 반사이에 한번도
고향에 다녀오지 못했다했죠. 많이 그립고 많이 가슴아플거라고 상상 됩니다.
이제 상봉할 날을 그리며 자신이 꿈을 하나 하나 실현해나가기 바람니다.
가슴이 찡해나면서 나도 내가 떠날때 모습을 그려봤어요.님은 오년 반사이에 한번도
고향에 다녀오지 못했다했죠. 많이 그립고 많이 가슴아플거라고 상상 됩니다.
이제 상봉할 날을 그리며 자신이 꿈을 하나 하나 실현해나가기 바람니다.

환갑을 쇨때까지도 자식은 자식이라.
피를 같이 나눈 아픔이 있고
곤난을 같이 겪은 정이 있기에
사람은 책임감이 있고 분투할 방향이 있다고 봅니다.
어떠한 정황하에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가족이 있다는걸 잊지 마시고
광풍폭우를 물리치고 솟아나는 무지개를 감개무량한 기분으로 감상하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