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국내에 있는 남친한테 전화를 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 원인인지 나도 모르게 남친한테 힘들다는 말을 했다. 부모님한테 못하는 말을 남친한테 해서라도 위로받고 싶었다. 사실 A형인 난 생각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하찮은 일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고 앞에 놓여진 많은 일도 먼 앞날까지 생각하며 계획을 짜기가 일쑤였다. 남친이 일본에 오게 된다는 사실을 앞두고 난 생각이 많았다. 집도 새로 맡아야 하고 생활용품도 따로 구입해야 했다. 남친이 와서 3달동안 알바를 찾지 못했을 경우에 대비해서 생활비도 마련해놓아야 했고 얼마뒤엔 학비를 내야 했다. 생각할수록 돈으로부터 오는 심리적압력이 컸다. 하지만 일본의 실정을 잘 모르는 남친은 다른 사람은 왜 일본에서 공부도 잘 하고 돈도 잘 벌던데 너만 왜 이렇게 힘들어 하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억울해서 전화기를 놓고 펑펑 울었다.
사실 일본에서 정상적으로 알바하며 공부하면 남는 돈이 얼마 없다. 아니, 제대로 공부하면서 알바하려면 학비 내기도 여간 힘들지 않다. 공부와 알바중에서 방황하다가 결국은 학업을 버리는 유학생도 우린 주위에서 수없이 많이 봐왔다. 한가지만 예를 든다면 일본어 학교에서는 진학문제를 둘러싸고 정기적으로 학생들한테 문의조사를 한다. 처음엔 어학원에 다니는 애들 거의 절반이 국립대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수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내가 언어학원을 졸업하는 그해에도 국립에 간 유학생은 세명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유학생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학업과 돈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 그 말에는 모든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도 난 행복한 축이었다. 적어도 빚을 갚을 염려를 안해도 괜찮았다. 유학할 때 갖고 온 아빠 엄마 돈은 이담 내가 성공하면 갚겠다고 했다. 잠시는 불효녀로 있더라도 내 학업을 견지하고 싶었다. 아빠 엄마도 돈을 갚을 생각은 말고 몸만 조심하라고 했다. 이러는 아빠 엄마가 감사했고 그래서 난 행복했다. 그런데 일본에 유학온 애들을 둘러보면 불행한 애들도 있었다. 집으로부터 돈재촉이 심해서 매일 돈을 벌기 위해 학교에 나가지도 않는 학생도 있었고 또 꿔온 돈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불법으로 나가는 학생도 있었다. 이런 애들의 경우 학교에 나가는건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출석율을 위해서였다. 출석율이 80%이하면 다음번 비자신청이 상당히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4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남친이 일본에 도착한 그날 공항으로 마중나갔다. 일년동안 만나지 않아서인지 조끔은 서먹서먹했다. 나와 남친은 전문학교때 동창이다. 그땐 우린 이미 안지 9년, 사귄지 만 5년이 되는 해였다. 친구의 말을 빈다면 우린 마라톤식연애를 한 셈이다. 국내에 있을 때 이미 상대방 부모님한테 인사를 다녀왔던 상황이었고 내가 일본에 오기 직전엔 혼담도 오갔었다. 하지만 그 결혼을 뒤로 미루고 내가 일본유학을 나왔던거다.
이렇게 난 남친과 같이 원래 살던 층집의 3층에서 살게 되었고 연이는 그해 4월에 일본에 온 친구와 함께 그냥 그 집에서 살게 되었다. 연이의 친구는 이미 결혼해서 애까지 있었다. 만나서 얘기하면 무엇보다 애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남친이 와서부터 난 새벽 3시까지 하던 일을 11시좌우까지만 했다. 그래도 학업이 우선이었다. 그때부터 나와 연이는 수업이 끝나면 학교 자습실에서 공부하군 했다. 수면부족이어서 그런지 점심밥을 먹으면 졸리기만 했다. 그럴때면 자습실의 책상에 골을 틀어박고 쪽잠을 자군 했다. 자고 깨나서는 커피 한잔 마시고 공부하다가 시간에 맞춰 알바하러 나가군 했다.
그때 학교에서 컴퓨터 강좌를 개최했다. 주요하게 컴을 다루어본적이 없는 학생을 상대로 한 강좌였다. 모집하는 학생은 다섯명, 그 이상은 모집 안 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난 그때까지 컴을 다루어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가서 이 강좌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선생님이 놀란 눈길을 지으며 이 강좌는 컴을 한번도 다루어본적이 없는 학생을 상대로 하는거라고 했다. 아마 중국에서 회사생활도 하고 왔다는 내가 컴을 한번도 다루어본적이 없다는게 믿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솔직히 부끄러웠지만 그걸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컴에 대해서 깜깜이라는 현실 자체가 더 부끄러운거지 배우려는게 부끄러운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난 컴퓨터 특별강좌에 들어가서 컴을 기동하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타자하는 법, 간단한 문서를 작성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 강좌에는 박우와 복이도 참가했다. 짧은 기간이었기에 얼마 배우진 못했지만 그래도 일본어 타자법은 배웠다.
남친은 내 예측대로 2달이 넘어서야 첫 알바를 구하게 되었다. 알바 찾기 위해 남친도 매일 나가 헤매고 다녔었다. 일본에 금방 왔을 때 일본실정을 하나도 모르는 남친과 사고방식의 차이점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 차이점도 점점 희미해졌다. 남친도 일본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던거다. 그나마 남친이 알바를 찾게 되어 나도 한시름 놓았다.
그해 여름, 우리 학교에서 해마다 하는 스피치콘테스트가 있었다. 우리 반급을 대표하여 내가 이 스피치콘테스트에 나가게 되었다. 그때 난 우리 학교 한국학생들한테 꼭 하고싶은 말이 있었다. 90%이상이 한국학생었던 학교생활에서 내가 느낀 점 ,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점들을 꼭 들려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 조선족의 감정, 사고방식에 대해 들려주고 싶었다. 스피치콘테스트가 있은 날, 우리 학교 전체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난 한국상품과 한국드라마가 중국에서 인기가 높아갈 때 느꼈던 민족적 자호감을 언급하면서 조선족의 우리 민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토로했다. 그날 난 스피치콘테스트에서 1등상을 수여받았고 그뒤로 나를 보면 인사하는 얼굴 모르는 한국학생도 있었다. 역시 우리지간에도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일본에서 정상적으로 알바하며 공부하면 남는 돈이 얼마 없다. 아니, 제대로 공부하면서 알바하려면 학비 내기도 여간 힘들지 않다. 공부와 알바중에서 방황하다가 결국은 학업을 버리는 유학생도 우린 주위에서 수없이 많이 봐왔다. 한가지만 예를 든다면 일본어 학교에서는 진학문제를 둘러싸고 정기적으로 학생들한테 문의조사를 한다. 처음엔 어학원에 다니는 애들 거의 절반이 국립대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수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내가 언어학원을 졸업하는 그해에도 국립에 간 유학생은 세명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유학생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학업과 돈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 그 말에는 모든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도 난 행복한 축이었다. 적어도 빚을 갚을 염려를 안해도 괜찮았다. 유학할 때 갖고 온 아빠 엄마 돈은 이담 내가 성공하면 갚겠다고 했다. 잠시는 불효녀로 있더라도 내 학업을 견지하고 싶었다. 아빠 엄마도 돈을 갚을 생각은 말고 몸만 조심하라고 했다. 이러는 아빠 엄마가 감사했고 그래서 난 행복했다. 그런데 일본에 유학온 애들을 둘러보면 불행한 애들도 있었다. 집으로부터 돈재촉이 심해서 매일 돈을 벌기 위해 학교에 나가지도 않는 학생도 있었고 또 꿔온 돈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불법으로 나가는 학생도 있었다. 이런 애들의 경우 학교에 나가는건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출석율을 위해서였다. 출석율이 80%이하면 다음번 비자신청이 상당히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4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남친이 일본에 도착한 그날 공항으로 마중나갔다. 일년동안 만나지 않아서인지 조끔은 서먹서먹했다. 나와 남친은 전문학교때 동창이다. 그땐 우린 이미 안지 9년, 사귄지 만 5년이 되는 해였다. 친구의 말을 빈다면 우린 마라톤식연애를 한 셈이다. 국내에 있을 때 이미 상대방 부모님한테 인사를 다녀왔던 상황이었고 내가 일본에 오기 직전엔 혼담도 오갔었다. 하지만 그 결혼을 뒤로 미루고 내가 일본유학을 나왔던거다.
이렇게 난 남친과 같이 원래 살던 층집의 3층에서 살게 되었고 연이는 그해 4월에 일본에 온 친구와 함께 그냥 그 집에서 살게 되었다. 연이의 친구는 이미 결혼해서 애까지 있었다. 만나서 얘기하면 무엇보다 애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남친이 와서부터 난 새벽 3시까지 하던 일을 11시좌우까지만 했다. 그래도 학업이 우선이었다. 그때부터 나와 연이는 수업이 끝나면 학교 자습실에서 공부하군 했다. 수면부족이어서 그런지 점심밥을 먹으면 졸리기만 했다. 그럴때면 자습실의 책상에 골을 틀어박고 쪽잠을 자군 했다. 자고 깨나서는 커피 한잔 마시고 공부하다가 시간에 맞춰 알바하러 나가군 했다.
그때 학교에서 컴퓨터 강좌를 개최했다. 주요하게 컴을 다루어본적이 없는 학생을 상대로 한 강좌였다. 모집하는 학생은 다섯명, 그 이상은 모집 안 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난 그때까지 컴을 다루어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가서 이 강좌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선생님이 놀란 눈길을 지으며 이 강좌는 컴을 한번도 다루어본적이 없는 학생을 상대로 하는거라고 했다. 아마 중국에서 회사생활도 하고 왔다는 내가 컴을 한번도 다루어본적이 없다는게 믿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솔직히 부끄러웠지만 그걸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컴에 대해서 깜깜이라는 현실 자체가 더 부끄러운거지 배우려는게 부끄러운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난 컴퓨터 특별강좌에 들어가서 컴을 기동하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타자하는 법, 간단한 문서를 작성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 강좌에는 박우와 복이도 참가했다. 짧은 기간이었기에 얼마 배우진 못했지만 그래도 일본어 타자법은 배웠다.
남친은 내 예측대로 2달이 넘어서야 첫 알바를 구하게 되었다. 알바 찾기 위해 남친도 매일 나가 헤매고 다녔었다. 일본에 금방 왔을 때 일본실정을 하나도 모르는 남친과 사고방식의 차이점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 차이점도 점점 희미해졌다. 남친도 일본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던거다. 그나마 남친이 알바를 찾게 되어 나도 한시름 놓았다.
그해 여름, 우리 학교에서 해마다 하는 스피치콘테스트가 있었다. 우리 반급을 대표하여 내가 이 스피치콘테스트에 나가게 되었다. 그때 난 우리 학교 한국학생들한테 꼭 하고싶은 말이 있었다. 90%이상이 한국학생었던 학교생활에서 내가 느낀 점 ,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점들을 꼭 들려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 조선족의 감정, 사고방식에 대해 들려주고 싶었다. 스피치콘테스트가 있은 날, 우리 학교 전체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난 한국상품과 한국드라마가 중국에서 인기가 높아갈 때 느꼈던 민족적 자호감을 언급하면서 조선족의 우리 민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토로했다. 그날 난 스피치콘테스트에서 1등상을 수여받았고 그뒤로 나를 보면 인사하는 얼굴 모르는 한국학생도 있었다. 역시 우리지간에도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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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10)
모두 몇집까지 있습니까 ?
>>xkim님,
글쎄요. 써봐야 알것 같은데...
죄송해요, 넘 길게 써서...
근데 모든걸 상세하게 쓰자니 글이 자꾸 길어지는군요.
마지막 끝까지 읽어줄 사람이 몇이 될지 궁금해지네요.
이 글을 끝까지 다 읽으려면 아마 의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ㅋㅋ
글쎄요. 써봐야 알것 같은데...
죄송해요, 넘 길게 써서...
근데 모든걸 상세하게 쓰자니 글이 자꾸 길어지는군요.
마지막 끝까지 읽어줄 사람이 몇이 될지 궁금해지네요.
이 글을 끝까지 다 읽으려면 아마 의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ㅋㅋ
추천 누르고 갑니다
글도 잘쓸줄 모르는데다가
게으르기까지 해서 가물에 콩나물나듯
드문드문 리플달군 합니다
지금껏 읽어왓습니다
금방 유학왔을때를 돌이키면서 ...
힘내세요
글도 잘쓸줄 모르는데다가
게으르기까지 해서 가물에 콩나물나듯
드문드문 리플달군 합니다
지금껏 읽어왓습니다
금방 유학왔을때를 돌이키면서 ...
힘내세요
연두색님 글 잘쓰는구만~~~~~
자비감을 가지지말고 막 써요~~~~~
안개꽃님은 힘드시겠지만 힘내세요~~~~~
좋은 날이 올거요~~~~~~
자비감을 가지지말고 막 써요~~~~~
안개꽃님은 힘드시겠지만 힘내세요~~~~~
좋은 날이 올거요~~~~~~
읽는게사 헐치무 쓰는게 바빠그렇지 ㅋㅋ
혹시 아까몽가이 다녔었어요?
좋은글 잘 보구 감다... 아기자기하면서사는 연이룸메이트랑 부럽네요...
글씨수평이 대단하시네요,,,
1집부터 검색해보느라고 시간 꽤나 허비했지요.
좋은글이네요.
좋은글이네요.
일집부터 단숨에 쭉~ 읽자니까 쉽질 않네요.ㅎㅎ
근데 안개꽃님덕분에 저도 일본유학 지난 4년간이 눈앞에 다시 떠오르게 되어서
뿌듯하네요. 너무 고마워요.
다음집 기대합니다.
깡통 맥주 하나씩 했다는 글 보고 웃음을 금할수가 없네요. ㅎㅎㅎ
홀로 삭인 일들 많고도 많죠~~~
근데 안개꽃님덕분에 저도 일본유학 지난 4년간이 눈앞에 다시 떠오르게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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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집 기대합니다.
깡통 맥주 하나씩 했다는 글 보고 웃음을 금할수가 없네요. ㅎㅎㅎ
홀로 삭인 일들 많고도 많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