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당한 그달 말부터 난 할아버지 음식점을 그만두고 새로운 음식점에서 알바하게 됐다. 이번에 알바하게 된 곳은 오사카에 본사를 둔 체인점, 개인음식점에 비해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메뉴를 들여다보니 음식이름은 별로 어려운게 없었는데 쭉 적혀있는 일본술 이름만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면접이 성공되어 채용된 그날, 음식점 책임자(店長)의 동의를 얻고 그 메뉴를 집에 갔고 왔다.
이튿날, 학교 갈 때 그 메뉴를 갖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한테서 한자로 씌어져 있는 술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가르침 받았다. 그리고는 알바 들어가기전에 그걸 다 기억해 놓았다.
알바를 바꾸면서 난 다시 오후반으로부터 오전반으로 옮겨왔다. 사실 같은 레벨의 반급이였지만 오전반의 일어실력이 오후반에 비해 많이 높다는걸 그동안 실감했다. 일어실력을 빨리 제고하려면 그래도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이 많은 오전반으로 옮기는게 나을것 같았다. 새로 재편성한 반급에는 박우, 그리고 룸이이트 연이도 있었다. 이렇게 나와 연이는 같은 반급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난 아사히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신문배달을 하는 박우가 매일 아침 나한테 신문을 갖다 주었다. 이렇게 난 박우 덕분에 많은 일어공부를 하게 됐다. 당시 일어일급시험에 통과한 나였지만 신문을 읽기에는 능력이 많이 부족했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나 많았던거다. 그래서 자습실에 앉아 신문을 읽으면서 읽을 줄 모르는 한자랑, 단어를 골라서 작은 노트에 적어넣었다. 그리고는 그 노트를 들고 선생님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내가 왜서 사전을 뒤지지 않고 선생님을 찾아갔냐 하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였다. 하나하나 사전을 뒤져보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수요됐지만 나한테는 그런 충족한 시간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하여 빨리 많은 단어를 장악하는게 급선무였다. 노트에 적어놓은 한자와 단어는 학교로 오가는 길에서, 전차안에서 기억했다. 억지로 기억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반복해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들여다보는 차수가 많아짐에 따라 그 단어들이 어느샌가 내 머리속에 들어왔다.
미나가와 선생님이 자진해서 우리한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일본애들이 배우는 중학교교과서를 사서 처음부터 시작했다. 이렇게 영어를 전혀 배운적 없는 애들을 상대로 한 영어특별강좌가 시작되었다. 미나가와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친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실은 대부분을 자기절로 배워야 했다. 미나가와 선생님이 내준 영어숙제를 집에서 해오면 선생님이 체크해주셨다. 그리고 규정된 시간에 미나가와 선생님과 같이 영어연습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영어기초가 전혀 없는 나한테 있어서 영어배우는 일은 참 힘에 벅찬 일이었다. 문제는 영어공부를 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기때문이다. 영어특별강좌가 금방 시작되었을 때, 강좌에 참가하는 애들이 꽤 많았다. 대부분이 조선족이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강좌에 안 나오는 애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엔 나와 미화라는 애만 남았다.
내가 새로 알바를 시작한 음식점은 손님이 많아서인지 매일매일 뛰어다녀야만 했다. 저녁 11시까지로 결정된 알바시간도 잔업때문에 12시를 넘기기가 일수였다. 오전반으로 옮겼기에 오전시간을 이용해서 했던 콘비니 알바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나가기로 했다.
그때 남자친구의 일본수속도 순조롭게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4월이면 남자친구도 일본에 오게 된다는 얘기다. 사실 또 하나의 근심거리가 생겼다. 솔직히 내 남자친구는 가정형편이 우리 집보다 많이 차했다. 대부분의 돈을 꿔가지고 와야 했다. 그리고 남자들이 일본에서 알바를 찾기가 여자들보다 더 힘들었다. 보통 첫 알바를 하기까지 2-3달정도 걸린다. 더우기 남친의 경우는 영어를 배웠기에 일어는 히라가나 읽을줄도 몰랐다. 남친의 가정형편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 난, 남친이 일본에 오기전에 빨리 생활비를 모아놓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그때 알바하는 곳의 음식점에서도 일손이 딸리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난 오후 5시부터 새벽 3까지 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알바하는 곳이 집 근처여서 다행이었다. 일이 끝나 집에 오면 새벽 3시반쯤이었다. 샤워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새벽 4시. 이튿날 아침 7시쯤에는 일어나서 학교갈 준비를 해야했다. 나한테 있어서 토요일과 일요일은 지옥이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한시까지 콘비니에서 알바하고 저녁엔 또 음식점에 나가 알바해야 했다. 다른 유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나한테는 휴일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학교에는 매일 나갔다. 출석율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어공부를 하기 위해서 나갔다. 그리고 학교에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휴식시간을 타서 친구들과 얘기하느라면 알바중에 쌓인 스트레스도 많이 해소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대학입시를 위한 특별강좌에 참가했다.
알바하는 시간이 길어서인지 많이 피곤했다. 다만 알바하는 곳의 일본사람들이 너나없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여서 정신적으로는 그래도 편한 축이었다. 알바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는건 주요하게 손님들로부터 오는 원성이었다. 일손이 모자라기에 요리가 제때에 나가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홀에서 헐레벌떡 뛰어다니는 내가 손님들의 갖가지 불만을 다 들어주어야 했다. 일할 때는 일하느라 힘겨운줄도 몰랐다. 하지만 집에 오면 온몸이 해나른해났다. 샤워하고 나면 인츰 쓰러질 것 같았지만 정작 잠자리에 누우면 잠이 오질 않았다. 이상했다. 몸은 피곤한테 인츰 잠이 오지 않는게 참 이상했다. 그땐 연이도 남자친구한테 가 있을 때가 많았다. 연이가 없는 텅빈 집안에 들어설 때면 고독이 밀물처럼 몰려오군 했다.
잠을 빨리 자지 않으면 이튿날 학교에 나가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난 자기전에 깡통 맥주를 하나씩 마시고 잤다.
일본생활을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 국내에 있을 땐 기분이 나쁘거나 힘들 때면 친구를 찾아서 하소연 할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금방 일본에 왔을 땐 더욱 그러했다. 너나없이 바삐 보내는 세월이라 친구 만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같은 동경에서 생활하는 친구라도 일년에 두세번 만나면 많이 만난 편이라고 할가? 하여튼 일상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인지 일본에 와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는 여자애들이 많았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여자가 담배 피우것도 보편화되어 있었다. 나도 그때 일순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힘든 알바생활, 골머리를 앓게 하는 영어공부, 장래에 대한 불안감, 거기에 여러가지 번뇌가 뒤엉켜 사람을 고달프게 했다. 그래서 담배 한갑을 사왔다. 알바가 끝난 뒤 텅빈 집안에 앉아 담배를 피워봤다. 멍하니 가물가물거리는 담배연기를 쳐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일주일뒤 담배를 끊었다. 나한테 담배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봄방학이 시작됐다. 하지만 난 매일 학교에 나갔다. 미나가와 선생님이 우리를 위해서 방학에도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해서였다. 대학입시전에 조금이라도 우리의 영어실력을 높여주려고 미나가와선생님은 속도를 빨리기 시작했다. 강좌에 나오는 사람은 나와 미화밖에 없었다. 우리 둘 때문에 학교에 나오시는 미나가와 선생님이 너무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몸이 고달픈 상태에서 영어공부까지 하려고 하니 참 힘들었다. 장악해놓은 단어량이 적은데 숙제는 해야 했고 그 숙제를 하려면 온종일 사전과 씨를질해야 했다. 나한텐 정말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했다. 한번은 영어공부하다가 눈물을 흘린적도 있었다. 그날도 미나가와 선생님과 같이 공부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물어보시는 영어단어를 하나도 대답 못했다. 너무나 속상해서 슬그머니 교실을 나와버렸다. 정처없이 걸어갔는데 나도 모르게 발길이 공원으로 옮겨졌다. 그땐 벗꽃이 만발하는 계절이었다. 벗꽃나무밑에서 점심밥을 먹고 있는 몇몇 회사원의 모습이 눈에 안겨왔다. 웬일인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아름답게 피어있는 벗꽃을 보고 있으니 엉망이던 심리가 어느정도 평정을 되찾게 되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나가와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었고 우린 계속해서 문제집을 풀어나갔다................
이튿날, 학교 갈 때 그 메뉴를 갖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한테서 한자로 씌어져 있는 술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가르침 받았다. 그리고는 알바 들어가기전에 그걸 다 기억해 놓았다.
알바를 바꾸면서 난 다시 오후반으로부터 오전반으로 옮겨왔다. 사실 같은 레벨의 반급이였지만 오전반의 일어실력이 오후반에 비해 많이 높다는걸 그동안 실감했다. 일어실력을 빨리 제고하려면 그래도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이 많은 오전반으로 옮기는게 나을것 같았다. 새로 재편성한 반급에는 박우, 그리고 룸이이트 연이도 있었다. 이렇게 나와 연이는 같은 반급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난 아사히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신문배달을 하는 박우가 매일 아침 나한테 신문을 갖다 주었다. 이렇게 난 박우 덕분에 많은 일어공부를 하게 됐다. 당시 일어일급시험에 통과한 나였지만 신문을 읽기에는 능력이 많이 부족했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나 많았던거다. 그래서 자습실에 앉아 신문을 읽으면서 읽을 줄 모르는 한자랑, 단어를 골라서 작은 노트에 적어넣었다. 그리고는 그 노트를 들고 선생님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내가 왜서 사전을 뒤지지 않고 선생님을 찾아갔냐 하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였다. 하나하나 사전을 뒤져보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수요됐지만 나한테는 그런 충족한 시간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하여 빨리 많은 단어를 장악하는게 급선무였다. 노트에 적어놓은 한자와 단어는 학교로 오가는 길에서, 전차안에서 기억했다. 억지로 기억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반복해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들여다보는 차수가 많아짐에 따라 그 단어들이 어느샌가 내 머리속에 들어왔다.
미나가와 선생님이 자진해서 우리한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일본애들이 배우는 중학교교과서를 사서 처음부터 시작했다. 이렇게 영어를 전혀 배운적 없는 애들을 상대로 한 영어특별강좌가 시작되었다. 미나가와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친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실은 대부분을 자기절로 배워야 했다. 미나가와 선생님이 내준 영어숙제를 집에서 해오면 선생님이 체크해주셨다. 그리고 규정된 시간에 미나가와 선생님과 같이 영어연습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영어기초가 전혀 없는 나한테 있어서 영어배우는 일은 참 힘에 벅찬 일이었다. 문제는 영어공부를 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기때문이다. 영어특별강좌가 금방 시작되었을 때, 강좌에 참가하는 애들이 꽤 많았다. 대부분이 조선족이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강좌에 안 나오는 애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엔 나와 미화라는 애만 남았다.
내가 새로 알바를 시작한 음식점은 손님이 많아서인지 매일매일 뛰어다녀야만 했다. 저녁 11시까지로 결정된 알바시간도 잔업때문에 12시를 넘기기가 일수였다. 오전반으로 옮겼기에 오전시간을 이용해서 했던 콘비니 알바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나가기로 했다.
그때 남자친구의 일본수속도 순조롭게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4월이면 남자친구도 일본에 오게 된다는 얘기다. 사실 또 하나의 근심거리가 생겼다. 솔직히 내 남자친구는 가정형편이 우리 집보다 많이 차했다. 대부분의 돈을 꿔가지고 와야 했다. 그리고 남자들이 일본에서 알바를 찾기가 여자들보다 더 힘들었다. 보통 첫 알바를 하기까지 2-3달정도 걸린다. 더우기 남친의 경우는 영어를 배웠기에 일어는 히라가나 읽을줄도 몰랐다. 남친의 가정형편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 난, 남친이 일본에 오기전에 빨리 생활비를 모아놓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그때 알바하는 곳의 음식점에서도 일손이 딸리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난 오후 5시부터 새벽 3까지 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알바하는 곳이 집 근처여서 다행이었다. 일이 끝나 집에 오면 새벽 3시반쯤이었다. 샤워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새벽 4시. 이튿날 아침 7시쯤에는 일어나서 학교갈 준비를 해야했다. 나한테 있어서 토요일과 일요일은 지옥이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한시까지 콘비니에서 알바하고 저녁엔 또 음식점에 나가 알바해야 했다. 다른 유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나한테는 휴일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학교에는 매일 나갔다. 출석율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어공부를 하기 위해서 나갔다. 그리고 학교에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휴식시간을 타서 친구들과 얘기하느라면 알바중에 쌓인 스트레스도 많이 해소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대학입시를 위한 특별강좌에 참가했다.
알바하는 시간이 길어서인지 많이 피곤했다. 다만 알바하는 곳의 일본사람들이 너나없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여서 정신적으로는 그래도 편한 축이었다. 알바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는건 주요하게 손님들로부터 오는 원성이었다. 일손이 모자라기에 요리가 제때에 나가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홀에서 헐레벌떡 뛰어다니는 내가 손님들의 갖가지 불만을 다 들어주어야 했다. 일할 때는 일하느라 힘겨운줄도 몰랐다. 하지만 집에 오면 온몸이 해나른해났다. 샤워하고 나면 인츰 쓰러질 것 같았지만 정작 잠자리에 누우면 잠이 오질 않았다. 이상했다. 몸은 피곤한테 인츰 잠이 오지 않는게 참 이상했다. 그땐 연이도 남자친구한테 가 있을 때가 많았다. 연이가 없는 텅빈 집안에 들어설 때면 고독이 밀물처럼 몰려오군 했다.
잠을 빨리 자지 않으면 이튿날 학교에 나가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난 자기전에 깡통 맥주를 하나씩 마시고 잤다.
일본생활을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 국내에 있을 땐 기분이 나쁘거나 힘들 때면 친구를 찾아서 하소연 할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금방 일본에 왔을 땐 더욱 그러했다. 너나없이 바삐 보내는 세월이라 친구 만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같은 동경에서 생활하는 친구라도 일년에 두세번 만나면 많이 만난 편이라고 할가? 하여튼 일상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인지 일본에 와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는 여자애들이 많았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여자가 담배 피우것도 보편화되어 있었다. 나도 그때 일순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힘든 알바생활, 골머리를 앓게 하는 영어공부, 장래에 대한 불안감, 거기에 여러가지 번뇌가 뒤엉켜 사람을 고달프게 했다. 그래서 담배 한갑을 사왔다. 알바가 끝난 뒤 텅빈 집안에 앉아 담배를 피워봤다. 멍하니 가물가물거리는 담배연기를 쳐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일주일뒤 담배를 끊었다. 나한테 담배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봄방학이 시작됐다. 하지만 난 매일 학교에 나갔다. 미나가와 선생님이 우리를 위해서 방학에도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해서였다. 대학입시전에 조금이라도 우리의 영어실력을 높여주려고 미나가와선생님은 속도를 빨리기 시작했다. 강좌에 나오는 사람은 나와 미화밖에 없었다. 우리 둘 때문에 학교에 나오시는 미나가와 선생님이 너무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몸이 고달픈 상태에서 영어공부까지 하려고 하니 참 힘들었다. 장악해놓은 단어량이 적은데 숙제는 해야 했고 그 숙제를 하려면 온종일 사전과 씨를질해야 했다. 나한텐 정말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했다. 한번은 영어공부하다가 눈물을 흘린적도 있었다. 그날도 미나가와 선생님과 같이 공부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물어보시는 영어단어를 하나도 대답 못했다. 너무나 속상해서 슬그머니 교실을 나와버렸다. 정처없이 걸어갔는데 나도 모르게 발길이 공원으로 옮겨졌다. 그땐 벗꽃이 만발하는 계절이었다. 벗꽃나무밑에서 점심밥을 먹고 있는 몇몇 회사원의 모습이 눈에 안겨왔다. 웬일인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아름답게 피어있는 벗꽃을 보고 있으니 엉망이던 심리가 어느정도 평정을 되찾게 되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나가와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었고 우린 계속해서 문제집을 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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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4)
남친오면 행복하게 잘사세요 감동 노력하는 모습에 보람찬 인생
1부부터 13부까지 단숨에 읽느라니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더군여~
언니 덕분에 초보인 제가 많은 경험을 얻어 앞으로 유학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되네여~
고마워여`
언니 덕분에 초보인 제가 많은 경험을 얻어 앞으로 유학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되네여~
고마워여`
とても感動しました。今後も頑張ってください。そして彼氏が日本にきたらもっと楽になるかもしれません。英語も彼氏から教えてもらうし、いろんな相談にも乗ってくれるはずし・・・
くれぐれもお体に気をつけてください。
くれぐれもお体に気をつけてください。
힘내세요 노력한보람이 잇을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