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경기는 날로 못해갔다. 할아버지도 할수없이 10시만 되면 날 집으로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알바시간이 줄어듬에 따라 또 불안해나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일도 나한테는 더없이 중요했다.
그러던 어느날, 음식점에서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날 우리 음식점에는 단골손님이 한분 와 계셨다. 술이 어지간히 되자 나보고 자기한테 술을 부으라고 했다. 내가 여긴 스낵이 아니니깐 술을 부어주는 서비스도 없거니와 술은 부을 의무도 없다고 거절해버렸더니 손님이 언성을 높여 나를 훈계하기 시작했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할아버지 얼굴을 봐서 아무말도 안하고 참고 또 참았다. 일본에서는 손님을 왕으로 떠받든다. 때문에 손님이 뭐라 하든 손님과 다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서비스업에서 무난히 살아날 수가 없다.
손님의 원성을 들으니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 이상 홀에 서있을 수가 없었다. 소리없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엉~엉~ 소리내 울었다. 모든 울분, 모든 서러움, 모든 피로를 울음으로서라도 해결하지 않으면 지탱해 나갈 것 같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차거운 물에 얼굴을 씻고 홀에 돌아왔다. 팅팅 붓긴 내 눈으로부터 낌새를 눈치 챘는지 그 손님도 더 이상 아무말도 없이 술만 마셨다.
늦은 저녁이 돼서 예전처럼 마마가 음식점에 왔다. 내 얼굴을 보더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내가 눈물을 삼키며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마마가 술 붓는 일 거절한게 참 잘 했다고 했다. 여기서는 그런 일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마가 젊었을 때의 일을 나한테 들려주기 시작했다. 자기한테도 이런 일이 있었단다. 그래서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고 했다. 그러는 마마가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하지만 난 마마한테 조용히 말을 꺼냈다. 이 음식점을 그만두고 싶다고. 너무나 많은 신세를 졌지만 난 돈이 필요하기에 시간이 더 긴 알바를 찾아야 할 것 같다고. 그러니깐 다른 알바생을 구할 때까지 하겠으니 빨리 다른 사람을 구하라고 했다. 할아버지와 마마한테는 참 미안했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1월이 다가왔다. 우리학교에도 1월 입학생들이 오는 달이다. 학교 선생으로부터 재학생을 대표하여 입학생들 앞에서 일어로 스피치(speech)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잘 할 수가 있을지 걱정됐지만 쾌히 승낙했다. 이틀동안 학교로 오가는 길에서 스피치 원고문을 들고 중얼중얼 스피치 연습을 했다. 이렇게 1월 입학생 입학식을 맞이하게 됐다.
입학식 날, 스피치는 무난히 끝마쳤다. 선생한테서 참 잘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길거리에서 스피치 원고를 들고 다니며 스피치 연습한 보람을 느꼈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자그마한 네거리에서 소형트럭이 자전거를 타고 길을 건너는 나를 들이 박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난 몇미터밖으로 뿌리워 나갔다. 거리를 오가던 행인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다행이 의식은 잃지 않고 있었다. 한 할머니가 내 머리를 만지면서 머리가 괜찮느냐고 걱정어린 목소리로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당한 일이고 머리속이 텅 빈것 같은 느낌밖에 없었다. 잠시후, 구급차가 사건현장에 달려왔고 난 생전 처음으로, 그것도 고향과 멀리 떨어진 일본에서 구급차 구경을 하게 되었다.
구급차에 오르니 한 아저씨가 내 맥박을 재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어디가 특별히 아픈곳이 없냐, 이름은 뭐냐, 어디에 사냐 등등 하여튼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가 대답하는 족족 노트에 부지런히 적어내려갔다.(계속)
그러던 어느날, 음식점에서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날 우리 음식점에는 단골손님이 한분 와 계셨다. 술이 어지간히 되자 나보고 자기한테 술을 부으라고 했다. 내가 여긴 스낵이 아니니깐 술을 부어주는 서비스도 없거니와 술은 부을 의무도 없다고 거절해버렸더니 손님이 언성을 높여 나를 훈계하기 시작했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할아버지 얼굴을 봐서 아무말도 안하고 참고 또 참았다. 일본에서는 손님을 왕으로 떠받든다. 때문에 손님이 뭐라 하든 손님과 다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서비스업에서 무난히 살아날 수가 없다.
손님의 원성을 들으니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 이상 홀에 서있을 수가 없었다. 소리없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엉~엉~ 소리내 울었다. 모든 울분, 모든 서러움, 모든 피로를 울음으로서라도 해결하지 않으면 지탱해 나갈 것 같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차거운 물에 얼굴을 씻고 홀에 돌아왔다. 팅팅 붓긴 내 눈으로부터 낌새를 눈치 챘는지 그 손님도 더 이상 아무말도 없이 술만 마셨다.
늦은 저녁이 돼서 예전처럼 마마가 음식점에 왔다. 내 얼굴을 보더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내가 눈물을 삼키며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마마가 술 붓는 일 거절한게 참 잘 했다고 했다. 여기서는 그런 일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마가 젊었을 때의 일을 나한테 들려주기 시작했다. 자기한테도 이런 일이 있었단다. 그래서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고 했다. 그러는 마마가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하지만 난 마마한테 조용히 말을 꺼냈다. 이 음식점을 그만두고 싶다고. 너무나 많은 신세를 졌지만 난 돈이 필요하기에 시간이 더 긴 알바를 찾아야 할 것 같다고. 그러니깐 다른 알바생을 구할 때까지 하겠으니 빨리 다른 사람을 구하라고 했다. 할아버지와 마마한테는 참 미안했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1월이 다가왔다. 우리학교에도 1월 입학생들이 오는 달이다. 학교 선생으로부터 재학생을 대표하여 입학생들 앞에서 일어로 스피치(speech)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잘 할 수가 있을지 걱정됐지만 쾌히 승낙했다. 이틀동안 학교로 오가는 길에서 스피치 원고문을 들고 중얼중얼 스피치 연습을 했다. 이렇게 1월 입학생 입학식을 맞이하게 됐다.
입학식 날, 스피치는 무난히 끝마쳤다. 선생한테서 참 잘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길거리에서 스피치 원고를 들고 다니며 스피치 연습한 보람을 느꼈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자그마한 네거리에서 소형트럭이 자전거를 타고 길을 건너는 나를 들이 박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난 몇미터밖으로 뿌리워 나갔다. 거리를 오가던 행인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다행이 의식은 잃지 않고 있었다. 한 할머니가 내 머리를 만지면서 머리가 괜찮느냐고 걱정어린 목소리로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당한 일이고 머리속이 텅 빈것 같은 느낌밖에 없었다. 잠시후, 구급차가 사건현장에 달려왔고 난 생전 처음으로, 그것도 고향과 멀리 떨어진 일본에서 구급차 구경을 하게 되었다.
구급차에 오르니 한 아저씨가 내 맥박을 재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어디가 특별히 아픈곳이 없냐, 이름은 뭐냐, 어디에 사냐 등등 하여튼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가 대답하는 족족 노트에 부지런히 적어내려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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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9)
일본에서 교통사고까지 당하다니.힘드셨겠어요.다음편도 기대합니다.
오랜만으로 보는 글.....
고생두 많이 했내요.
그래두 고생한만큼 보람이 있으니까요.
고생두 많이 했내요.
그래두 고생한만큼 보람이 있으니까요.
두편 읽고 나니 눈물코물 범벅이 됐슴다...
휴---여러가지로 고생 많이 했네요...
휴---여러가지로 고생 많이 했네요...
전 아직 일본에 잇지만 ,,, 유학생치고 여자로 서 참 힘들엇겟어요...
안개꽃님 힘내세요.몸은괜찮으세요? 지금은 알바 학교 여러가지 힘들겟지만 언젠가는 님한테도 좋은일있을겁니다.열심히 사는 사람한테는 그만한대가가 잇으니깐....
저두 첨엔(19살)일본에와서 편의점 벤또야에서 알바하면서 힘들게 공부햇엇답니다.
지금보면 철모르구 한 고생 너무 의미잇다구 생각하구 또 생활하면서 많은도움이 되네요. 힘들게번돈은 그만한가치가 있으니깐요 .교통사고 잘처리되기를 기도할게요.꼭 힘내세요
저두 첨엔(19살)일본에와서 편의점 벤또야에서 알바하면서 힘들게 공부햇엇답니다.
지금보면 철모르구 한 고생 너무 의미잇다구 생각하구 또 생활하면서 많은도움이 되네요. 힘들게번돈은 그만한가치가 있으니깐요 .교통사고 잘처리되기를 기도할게요.꼭 힘내세요
내보다 더하게 트럭에 당햇어요
나는 밤에자전거타다가 비자배달하는 바이크에 당해서 날아낫는데
나는 감각이 디게묘합디다
다들 몸조심하세요
나는 밤에자전거타다가 비자배달하는 바이크에 당해서 날아낫는데
나는 감각이 디게묘합디다
다들 몸조심하세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쓰면 책 한권을 편찬하기에는 문제가 없을 갔습니다 작가가 될 생각은 없습니까
힘내세요
마니 아프시겠어요
지금은 괜찬으시세요?
저두 마니 조심해야겠어요
늘쌍 교통규칙 지키지 않으니
글구 좋은글 잘 부탁드립니다
마니 아프시겠어요
지금은 괜찬으시세요?
저두 마니 조심해야겠어요
늘쌍 교통규칙 지키지 않으니
글구 좋은글 잘 부탁드립니다
힘내세요 글솜씨좋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