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셔서 제 결혼식에 참석해주세요.
맬맬 똑같은 기도를 하나님한테 한다..
며칠전에 여친부모랑 결혼날을 잡았다.12월10일..여친이랑 나한테 다 좋은 날이란다.
근데 여친의 고향--부산에서 하게 됬다..그러면 울 부모가 한국에 가야 하는 것이다.
근데 아버지가 1년전에 갑자기 쓸어지셔서 말두 못하고 걷을수도 없게 되였다.아직 젊으신데.아직 58세인데..(젊었을때 고생을 많이 하셔서 그런것이다.)
그러면 결혼 중국에서 하면 되잔아요..이렇게 말하는데 사정이 있어서 부산에서 하게 됬음.
어릴때 아버지 기억은 어머니한테 자주 화내고 욕하고 그랬었다..하지만 어머니를 때리진 않았다.벌꺽벌꺽 어머니한테 화낼때마다 아버지가 그렇게 미웠었다.
하루는 어머니한테<엄마,만약에 내가 아버지라면 자살했을거야..왜 엄마랑 결혼했을면서 맬맬엄마한테 화내구 욕하는데..>
그래서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그러면 안된다..그래두 니 아버지다..그런소리 하지마라.>
난 어릴때부터 아버지가 많이 무서웠다.아버지한테 맞은적두 많았지..어디 놀러가도 아버지한테 허락 받아야 했다..난 형제3이다.누나.나.여동생.하지만 아버지는 아들딸 따지지 않는다.어디 놀러가도 가기전에 아버지 허락을 받아야 했고.저녘7시반전에는 꼭 집에 들어와야 했었다..9시에는 꼭 자야 했고..친구집에서 자는건 절때 용서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가 많이 무섭고 싫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한테 많은걸 기대하고 계셨다..아버지가 문화대혁명땜에 학교를 다니시지 못하고 그래서 울형제들에 대해서 많은걸 기대하셨다..
소학교5학년때부터 아버지가 고생하셔서 모은 돈으로 가정교사 청해서 영어공부를 3년이나 했다..그때는 울조선족은 외국어가 일본어였기에..아버지가 영어는 나중에 꼭 필요한다고 이렇게 난 아버지덕분에 영어를 배우게 되였다..
하지만 젤 아버지한테 감사하는건 고등하교때.고등학교때는 기숙사생활을 하였다..
학교는 집에서 자전거로 40분정도.기숙사에는 TV도 없구..
고중3학년때 TV교육방송에서 맬맬 대학시험문제풀이,과거문제,자주 나오는 문제같은거 나오곤했다..이걸 아버지가 맬 비디오로 록화해서 내가 주말에 집에 가면 아버지가 록화해주신 그문제집들을 다 보구 다음주에 또 록화해주시고 하셨다..
그때부터 난 아버지.부모님들의 자식들에 대한 정성이란게 먼지..알게 되였다..
어릴때 아버지한테 얻어맞을때 아버지가 넘넘 싫었었는데..
이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졸업하는해에 아버지는 또 나한테 일본에 유학가라는 말을 꺼내셨다.<외국에 나가서 많은걸 보고 많은걸 배워..>
아버지는 내가 어릴때부터 나의 유학계획을 하고 계셨다.내가 고중2학년때 미국으로 유학갈수있는 기회가 생겼었는데..어머니의 반대하에 포기했다..넘 어리다고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에아버지도 그때는 포기하셨다.
그러던 대학졸업하는해에 아버지가 일본유학수속을 밟았다..7월에 졸업하구 10월생으로 유학할수 있게...근데 첨 수속에서 떨어졌다..그때 아버지는 며칠간 많이 속상해 하셨다..
나랑 같이 수속을 낸 친구가 됬고 내가 떨어진것이다.내 재료는 가짜가 하나도 없고 그친구의 재료가 가짜가 많은데 그친구가 되고 난 떨어졌다..
아버지는 결국 포기하지 않고 다시 수속을 하셨고 난 대학졸업하구 심양으로 돌아왔다가 수속이 되자 않아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서 취직을 해서 회사를 다녔다.
회사는 패션브랜드 PlayBoy(花花公子)란 회사. 본사가 홍콩.미국브랜드지만 홍콩에 있는 본사가 저작권을 사서 했다.주로 옷,가방,신발,돈지갑.벨트.등등..학교에서 컴전공이라 회사시스템관리를 하게 됬고,내가 그 회사들어 가서 원래 회계4명 있던게 3면 짤리고 1명만 남았다..컴하나로 4명의 일을 대채한것이다.
외지사람이 북경에서 취직하는거 우리그때는 힘들었다.다행이 북경지사사장이 외지사람이라 날 채용해 주셨다.Lucky..울 홍콩회장은 홍콩깡패출신이란다.한번은 심천의 한 호텔에서 각지방 지사장들이 모여서 회장이랑 술 마시는데 써빙하는 애가 실수하여 국을 회장한테 엎어서 회장 열받아서 전화한통해서 깡패들이 그 호텔을 둘러샀다는 애기...보통 회장이 시찰오면 다들 쩔쩔 맨다..휴~~난 딱 한번 받지만 그렇게 무섭게 생긴건 아닌데..그냥 고생한다구 지사장한테 월급만 올려줘라는 말만 해주고 히히..나야 앗싸 쪼아짐..)
(여기서 에피소드 하나..그때는 여친이 북경에 있어 심양에서 결정된 회사 가지 않고 북경에 가서 회사 찾는다고집에서 나왔다.어릴때는 아버지말이라면 반항두 못하는 내가 대학졸업하구 아버지뜻을 거역하고 북경에로 돌아갔다.사기는 여친두 한족.아버지가 한족이라 많이 반대하셨는데..근데 후에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결국 아버지는 여친이랑 사기는걸 허락하셨다.북경에서 주말이면 여친집에 가서 여친부모랑 여친이랑 놀러다니군 했었다.여친이 주말에 집에 없어도 난 여친집에 가서 여친부모님들이랑 놀군 했다.여친부모님들이 날 아들처럼 대해주셨다..ㅎㅎ 여친집에 아들이 없고 딸이 3이라서 인지.내가 일본에 유학오지 않았으면 지금쯤 그여랑 결혼했을지도 모른다.지금여친 있는데 이런말 하면 안되지만.그여랑은 일본 유학와서 1년반만에 헤여졌다..여친이 어느날 회사에서 자기한테 잘해주는 친구가 있단다.중국으로 한번 저보러 오란다.그러면 안 흔들린다고.하지만 난 그때는 아직 안정되지도 않고 내 꿈도 있었다.그냥 한달 지나 난 그여한테 전화해서 그냥 잘해주는 사람한테 가라고했다..결국 그여랑 4년반 사기고 해여졌다.근데 이상한건 왜 미련이 없는지.지금도 난 모른다.지금도 그냥 친국처럼 가끔씩 연락하고 산다.날 떠나구 사긴 남자랑 결혼까지 한다고 집두 사구 그랬었는데 지금은 해여졌다구 한다.이유는 묻지 않았다.이거는 그냥 내 지나간 사랑얘기입니다.)
이러다 보니 엉뚱한데로 가버렸네..아버지애기를 떠나서..
회사를 다닌지 1년거이 되는 어느날.집에서 전화가 왓다.아버지가 일본유학수속이 됫다구 유학가란다.
그때는 회사에서 따로 내 사무실도 하나 있고 회사에서는 편하게 잘 지냈었고 반면후면 홍콩본사로 파견되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었다..하지만 할수 없이 아버지 뜻을 거역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됬다.
이렇게 난 일본에 유학오게 되였고 회사도 다니고 지금 여친두 만나고 결혼날도 잡았는데...
아버지가 그사이에 많이 늙으셧고 몸두 편찬으시고 꼭 내 결혼식에 참가하시고 싶어 하실건데..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랑 같이 오시면 좋은데.어머니가 아버지 아직 그렇게까지 나으신거 아니라고 안된다구 하신다..
이젠 날씨도 좋아져서 아버지 밖에 나가셔서 걷는것두 연습하시구 빨리빨리 건강해져셔서 제 결혼식에 꼭 참가해주세요.....
하나님..저 힘들때만 하나님 찾지만 그래도 바주세요..저 아버지 제발 건강해져셔서 걷게 해주세요.. 아멘.
지금까지 내멋대로 살아왔지만 이젠 부모님한테 효도하겠습니다.
맬맬 똑같은 기도를 하나님한테 한다..
며칠전에 여친부모랑 결혼날을 잡았다.12월10일..여친이랑 나한테 다 좋은 날이란다.
근데 여친의 고향--부산에서 하게 됬다..그러면 울 부모가 한국에 가야 하는 것이다.
근데 아버지가 1년전에 갑자기 쓸어지셔서 말두 못하고 걷을수도 없게 되였다.아직 젊으신데.아직 58세인데..(젊었을때 고생을 많이 하셔서 그런것이다.)
그러면 결혼 중국에서 하면 되잔아요..이렇게 말하는데 사정이 있어서 부산에서 하게 됬음.
어릴때 아버지 기억은 어머니한테 자주 화내고 욕하고 그랬었다..하지만 어머니를 때리진 않았다.벌꺽벌꺽 어머니한테 화낼때마다 아버지가 그렇게 미웠었다.
하루는 어머니한테<엄마,만약에 내가 아버지라면 자살했을거야..왜 엄마랑 결혼했을면서 맬맬엄마한테 화내구 욕하는데..>
그래서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그러면 안된다..그래두 니 아버지다..그런소리 하지마라.>
난 어릴때부터 아버지가 많이 무서웠다.아버지한테 맞은적두 많았지..어디 놀러가도 아버지한테 허락 받아야 했다..난 형제3이다.누나.나.여동생.하지만 아버지는 아들딸 따지지 않는다.어디 놀러가도 가기전에 아버지 허락을 받아야 했고.저녘7시반전에는 꼭 집에 들어와야 했었다..9시에는 꼭 자야 했고..친구집에서 자는건 절때 용서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가 많이 무섭고 싫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한테 많은걸 기대하고 계셨다..아버지가 문화대혁명땜에 학교를 다니시지 못하고 그래서 울형제들에 대해서 많은걸 기대하셨다..
소학교5학년때부터 아버지가 고생하셔서 모은 돈으로 가정교사 청해서 영어공부를 3년이나 했다..그때는 울조선족은 외국어가 일본어였기에..아버지가 영어는 나중에 꼭 필요한다고 이렇게 난 아버지덕분에 영어를 배우게 되였다..
하지만 젤 아버지한테 감사하는건 고등하교때.고등학교때는 기숙사생활을 하였다..
학교는 집에서 자전거로 40분정도.기숙사에는 TV도 없구..
고중3학년때 TV교육방송에서 맬맬 대학시험문제풀이,과거문제,자주 나오는 문제같은거 나오곤했다..이걸 아버지가 맬 비디오로 록화해서 내가 주말에 집에 가면 아버지가 록화해주신 그문제집들을 다 보구 다음주에 또 록화해주시고 하셨다..
그때부터 난 아버지.부모님들의 자식들에 대한 정성이란게 먼지..알게 되였다..
어릴때 아버지한테 얻어맞을때 아버지가 넘넘 싫었었는데..
이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졸업하는해에 아버지는 또 나한테 일본에 유학가라는 말을 꺼내셨다.<외국에 나가서 많은걸 보고 많은걸 배워..>
아버지는 내가 어릴때부터 나의 유학계획을 하고 계셨다.내가 고중2학년때 미국으로 유학갈수있는 기회가 생겼었는데..어머니의 반대하에 포기했다..넘 어리다고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에아버지도 그때는 포기하셨다.
그러던 대학졸업하는해에 아버지가 일본유학수속을 밟았다..7월에 졸업하구 10월생으로 유학할수 있게...근데 첨 수속에서 떨어졌다..그때 아버지는 며칠간 많이 속상해 하셨다..
나랑 같이 수속을 낸 친구가 됬고 내가 떨어진것이다.내 재료는 가짜가 하나도 없고 그친구의 재료가 가짜가 많은데 그친구가 되고 난 떨어졌다..
아버지는 결국 포기하지 않고 다시 수속을 하셨고 난 대학졸업하구 심양으로 돌아왔다가 수속이 되자 않아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서 취직을 해서 회사를 다녔다.
회사는 패션브랜드 PlayBoy(花花公子)란 회사. 본사가 홍콩.미국브랜드지만 홍콩에 있는 본사가 저작권을 사서 했다.주로 옷,가방,신발,돈지갑.벨트.등등..학교에서 컴전공이라 회사시스템관리를 하게 됬고,내가 그 회사들어 가서 원래 회계4명 있던게 3면 짤리고 1명만 남았다..컴하나로 4명의 일을 대채한것이다.
외지사람이 북경에서 취직하는거 우리그때는 힘들었다.다행이 북경지사사장이 외지사람이라 날 채용해 주셨다.Lucky..울 홍콩회장은 홍콩깡패출신이란다.한번은 심천의 한 호텔에서 각지방 지사장들이 모여서 회장이랑 술 마시는데 써빙하는 애가 실수하여 국을 회장한테 엎어서 회장 열받아서 전화한통해서 깡패들이 그 호텔을 둘러샀다는 애기...보통 회장이 시찰오면 다들 쩔쩔 맨다..휴~~난 딱 한번 받지만 그렇게 무섭게 생긴건 아닌데..그냥 고생한다구 지사장한테 월급만 올려줘라는 말만 해주고 히히..나야 앗싸 쪼아짐..)
(여기서 에피소드 하나..그때는 여친이 북경에 있어 심양에서 결정된 회사 가지 않고 북경에 가서 회사 찾는다고집에서 나왔다.어릴때는 아버지말이라면 반항두 못하는 내가 대학졸업하구 아버지뜻을 거역하고 북경에로 돌아갔다.사기는 여친두 한족.아버지가 한족이라 많이 반대하셨는데..근데 후에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결국 아버지는 여친이랑 사기는걸 허락하셨다.북경에서 주말이면 여친집에 가서 여친부모랑 여친이랑 놀러다니군 했었다.여친이 주말에 집에 없어도 난 여친집에 가서 여친부모님들이랑 놀군 했다.여친부모님들이 날 아들처럼 대해주셨다..ㅎㅎ 여친집에 아들이 없고 딸이 3이라서 인지.내가 일본에 유학오지 않았으면 지금쯤 그여랑 결혼했을지도 모른다.지금여친 있는데 이런말 하면 안되지만.그여랑은 일본 유학와서 1년반만에 헤여졌다..여친이 어느날 회사에서 자기한테 잘해주는 친구가 있단다.중국으로 한번 저보러 오란다.그러면 안 흔들린다고.하지만 난 그때는 아직 안정되지도 않고 내 꿈도 있었다.그냥 한달 지나 난 그여한테 전화해서 그냥 잘해주는 사람한테 가라고했다..결국 그여랑 4년반 사기고 해여졌다.근데 이상한건 왜 미련이 없는지.지금도 난 모른다.지금도 그냥 친국처럼 가끔씩 연락하고 산다.날 떠나구 사긴 남자랑 결혼까지 한다고 집두 사구 그랬었는데 지금은 해여졌다구 한다.이유는 묻지 않았다.이거는 그냥 내 지나간 사랑얘기입니다.)
이러다 보니 엉뚱한데로 가버렸네..아버지애기를 떠나서..
회사를 다닌지 1년거이 되는 어느날.집에서 전화가 왓다.아버지가 일본유학수속이 됫다구 유학가란다.
그때는 회사에서 따로 내 사무실도 하나 있고 회사에서는 편하게 잘 지냈었고 반면후면 홍콩본사로 파견되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었다..하지만 할수 없이 아버지 뜻을 거역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됬다.
이렇게 난 일본에 유학오게 되였고 회사도 다니고 지금 여친두 만나고 결혼날도 잡았는데...
아버지가 그사이에 많이 늙으셧고 몸두 편찬으시고 꼭 내 결혼식에 참가하시고 싶어 하실건데..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랑 같이 오시면 좋은데.어머니가 아버지 아직 그렇게까지 나으신거 아니라고 안된다구 하신다..
이젠 날씨도 좋아져서 아버지 밖에 나가셔서 걷는것두 연습하시구 빨리빨리 건강해져셔서 제 결혼식에 꼭 참가해주세요.....
하나님..저 힘들때만 하나님 찾지만 그래도 바주세요..저 아버지 제발 건강해져셔서 걷게 해주세요.. 아멘.
지금까지 내멋대로 살아왔지만 이젠 부모님한테 효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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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22)
무슨 사정 있는지는 모르겟지만 먼저 중국 돌아가서 아버지 정황보세요ㅏ,
더 낫아 질지도 모르니까.
가봐서 잔치날까지 회복 될것같으면 그대로하고 안되면 날짜앞당겨 식치르세요,
만약 아버지가 귀공자님의 잔치에 참석 못하게 되면 누구보다 후회 할 사람 님이라구 생각합니다,평생 후회할지도,
그사정이 아버지건강,결혼식참석 보다 더 중요할까?
더 낫아 질지도 모르니까.
가봐서 잔치날까지 회복 될것같으면 그대로하고 안되면 날짜앞당겨 식치르세요,
만약 아버지가 귀공자님의 잔치에 참석 못하게 되면 누구보다 후회 할 사람 님이라구 생각합니다,평생 후회할지도,
그사정이 아버지건강,결혼식참석 보다 더 중요할까?
귀공자님의 아버지 빨리 병이 나으시길 바랍니다.......행복하세요.............
사람마다 이런저런 일이 많지만 너그럽게 생각해요!
세상에서 제일불쌍한게 부모라고 생각해요.
부모님 빨리빨리 건강 하시길 바래요!
세상에서 제일불쌍한게 부모라고 생각해요.
부모님 빨리빨리 건강 하시길 바래요!
하루빨리 아버지 건강이 회복되길 바랄게요...글구 행복하삼..
사정상 부산에서 식 올리게 되면 그렇게 하시고요,
두 분이 휴가내서 연변으로 가셔서 간단하게라도 음식 차려서 인사 드리세요.
그러니까 결혼식을 2번 하시라는 말씀. 어차피 신랑신부 고향이 다르고 너무 머니까
양쪽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우리 민족 (이름이 조선족이든 한민족이든) 혼례풍습이 옛날에는 신부집에서
잔치하고 첫날밤 치르고 사흘 뒤에 신랑이 신부 데리고 집에 와서 폐백 드리는 거였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격식에 별로 어긋나지는 않아요. 한국에서 아무리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도 말 못할 겁니다.
그리고, 아버님도 아버님이시지만, 님이 장래 처가에서 대접 받으시려면 꼭 그렇게 간단하게라도 2번 한다고 주장하세요.
두 분이 휴가내서 연변으로 가셔서 간단하게라도 음식 차려서 인사 드리세요.
그러니까 결혼식을 2번 하시라는 말씀. 어차피 신랑신부 고향이 다르고 너무 머니까
양쪽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우리 민족 (이름이 조선족이든 한민족이든) 혼례풍습이 옛날에는 신부집에서
잔치하고 첫날밤 치르고 사흘 뒤에 신랑이 신부 데리고 집에 와서 폐백 드리는 거였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격식에 별로 어긋나지는 않아요. 한국에서 아무리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도 말 못할 겁니다.
그리고, 아버님도 아버님이시지만, 님이 장래 처가에서 대접 받으시려면 꼭 그렇게 간단하게라도 2번 한다고 주장하세요.
한국이 아직 봉건적인 부분이 있어서 일단 혼담이 결정되면 신랑이 발언권이 강합니다.
사정상 결혼식은 부산에서 하지만, 폐백 겸해서 며칠 뒤든 몇달 뒤든 부부가 연변에 꼭 가야겠다고 주장하세요.
요즘은 한국도 절차가 많이 간단해졌지만, 신부가 처음 시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갈 때는 친정에서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서 보냅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님이 걱정할 게 아니라 님 신부측이 알아서 준비할 부분이죠. 시부모님한테 잘 보여야 딸 장래가 편안하니까 친정에서 알아서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주장하셔도 됩니다.
사정상 결혼식은 부산에서 하지만, 폐백 겸해서 며칠 뒤든 몇달 뒤든 부부가 연변에 꼭 가야겠다고 주장하세요.
요즘은 한국도 절차가 많이 간단해졌지만, 신부가 처음 시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갈 때는 친정에서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서 보냅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님이 걱정할 게 아니라 님 신부측이 알아서 준비할 부분이죠. 시부모님한테 잘 보여야 딸 장래가 편안하니까 친정에서 알아서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주장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골 아프게 격식이니, 대접이니 안 따져도 며느리가 들어왔으면 일단 시부모님 포함해서 일가친척한테 얼굴은 보여주는 게 좋죠.
님이 처가를 걱정하셔서 이런 부분 주장 안 하시면 오히려 처가에서 사위 얕봅니다.
님이 처가를 걱정하셔서 이런 부분 주장 안 하시면 오히려 처가에서 사위 얕봅니다.
귀공자님의 아버님이 하루빨리 건강은 회복해
결혼날에 참석할수 잇게끔 같이 빌께요.
결혼날에 참석할수 잇게끔 같이 빌께요.
너무 안타까운 사연이네요. 문장을 읽어보면 아버님의 기대가 무척 컸던가봅니다. 그만큼 아버님께서는 비록 결혼식에 참석못하시더라도 지금 너무 기뻐하고계실것같습니다. 그리고 우의분의 말씀처럼 결혼식은 한국에서 하시더라도, 인차 고향가셔서 아버님을 뵙는것이 좋을것같습니다. 하지만 제일 기원하는것은 , 아버님께서 빨리 회복하셔서 직접 자신의 눈으로 행복의 순간을 만끽하시길!!
아버님이 빨리 일어나시길 바라면서...
아버지가 빨리 건강을 되찾기 바랍니다.
결혼을 축하합니다. 많이 행복하세요.
결혼을 축하합니다. 많이 행복하세요.
아버지가 하루빨리 일어나시기를 바람더...
잘 되시길
xkim님...중국가서두 간단하게 하기루 했습니다.
도투바이님..님 말에 동감입니다..
멧돼지님..감사합니다.
아로하님...땐큐,,
바라님...감사..
이진수님..한국에 계시는가 보네요.한국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조언 감사합니다.
쟈스민님..네 그렇게 되는게 젤 좋죠.
그시절님..감사합니다.네 아버지가 많이 기대하셨어요..지금부터 효도드려야죠.
수진...감사
아니님..감사합니다.
거부기..땐큐..그리구 저번에 중국갔다올때 뉴우러우깔 가져왔다.가지러 와라
수까투리님..감사합니다.
도투바이님..님 말에 동감입니다..
멧돼지님..감사합니다.
아로하님...땐큐,,
바라님...감사..
이진수님..한국에 계시는가 보네요.한국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조언 감사합니다.
쟈스민님..네 그렇게 되는게 젤 좋죠.
그시절님..감사합니다.네 아버지가 많이 기대하셨어요..지금부터 효도드려야죠.
수진...감사
아니님..감사합니다.
거부기..땐큐..그리구 저번에 중국갔다올때 뉴우러우깔 가져왔다.가지러 와라
수까투리님..감사합니다.
사람이란게 정말 언제 쓸어질지 몰라요.
우리 엄마도 작년가을에 갑자기 쓸어져서 , 하지만 지금은 많이 나져서 정말 기뻐요
부모옆에서 효도못하는게 제일 가슴아파요.
님의 아버지도 하루빨리 일어서길,,,,,
우리 엄마도 작년가을에 갑자기 쓸어져서 , 하지만 지금은 많이 나져서 정말 기뻐요
부모옆에서 효도못하는게 제일 가슴아파요.
님의 아버지도 하루빨리 일어서길,,,,,
사연 보았습니다. 먼저 아버님이 건강이 빨리 회복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귀공자님의 결혼 미리 축하드리구요....사실 저도 어려서 아버지가 반신을 못 쓰게 되엿습니다.
그래서 소학교 5년부터는 아버지 사랑을 거의 받지 못했죠. 그렇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 되는것도 많고... 학교 졸업하고 직업선택이라든가...많은걸 제 욕샘대로 했죠.
사람이 산들 얼마나 살랴..순간을 살아도별처럼 살자...이런말도 있지만 사람이 산들 얼
마나 살겠어요.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젤 사랑하고 젤 사랑받아온 사람이 가정이죠....자신의 원래 가정...그리고 가꿀 새 가정...이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고 당신의 생애
에서 떨어질수 없는 사람들이죠..부모..형제 안해..자식...이 사람들과 헤여지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 항상 웃으면서 볼수 있고 가끔은 같이산보도 하고....이게 사는게 아닌가도 가끔은 생각이 듭니다...그래서 지금잉 교통이 좋고..통신이 좋다고 하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 당신의 시간의 흐름과 같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이제 이미 여기서 취직도 하고 그랬지만...기회가 있으면 다시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소학교 5년부터는 아버지 사랑을 거의 받지 못했죠. 그렇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 되는것도 많고... 학교 졸업하고 직업선택이라든가...많은걸 제 욕샘대로 했죠.
사람이 산들 얼마나 살랴..순간을 살아도별처럼 살자...이런말도 있지만 사람이 산들 얼
마나 살겠어요.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젤 사랑하고 젤 사랑받아온 사람이 가정이죠....자신의 원래 가정...그리고 가꿀 새 가정...이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고 당신의 생애
에서 떨어질수 없는 사람들이죠..부모..형제 안해..자식...이 사람들과 헤여지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 항상 웃으면서 볼수 있고 가끔은 같이산보도 하고....이게 사는게 아닌가도 가끔은 생각이 듭니다...그래서 지금잉 교통이 좋고..통신이 좋다고 하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 당신의 시간의 흐름과 같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이제 이미 여기서 취직도 하고 그랬지만...기회가 있으면 다시 생각해 보세요.
정말? 내뉴뤄우깔 가져왔슴더.ㅋㅋ
아직두 닛뽀리에서 삼다? 아니문 이사를 했슴다?
아직두 닛뽀리에서 삼다? 아니문 이사를 했슴다?
무지개님...어머니도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적도님..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거부기..ㅎㅎ 아직 닛뽀리에 살짐..
적도님..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거부기..ㅎㅎ 아직 닛뽀리에 살짐..
결혼해서 더욱더 행복하시길...진심으로 축복합니다...^_____________^
그리구 아버님두 하루빨리 일어나시길...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구 아버님두 하루빨리 일어나시길...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오빠아버지가 빨리 걸을수,아니 뛸수 있으시길...ㅎㅎ
나두 기도할게요!
난 신자가 아니라서 효과있을지 모르겠지만...
조만간에 안하는 기도니까 아마 효과가 더 클지도...
나두 기도할게요!
난 신자가 아니라서 효과있을지 모르겠지만...
조만간에 안하는 기도니까 아마 효과가 더 클지도...
결혼 축하 드리구요,, 아버님의 건강회복을 빕니다~

그리고 아버님이하루빨리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