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두주일동안 꼬박 수업이 끝나면 빵 하나를 사서 주린 배를 달래고 알바 찾으러 다니군 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 어두컴컴해져서야 집에 돌아오는 일을 매일처럼 반복했다. 집근처로부터 시작해서 소부센(総武線)의 아사쿠사바시-신쥬쿠(浅草橋ー新宿)구간을 돌고 또 돌았다. 알바모집이라고 써붙인 음식점은 빼놓지 않고 찾아 들어갔다.
일본에 와서 한달이 거의 되어가는 어느날, 연이가 킨시쵸(錦糸町)에 있는 한 중국음식점의 알바 면접에 성공했다. 그날부터 연이는 알바하러 나갔다. 혼자 남은 난 속이 바질바질 탔다. 난 언제쯤에야 알바를 구할수 있을지 너무나 막막하고 답답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그날도 자전거를 타고 킨시쵸에서 일을 찾아 헤맸다. 면접하러 음식점을 너무 드나들어서인지 간단한 대화정도는 할 수가 있었다. 어느 일본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다. 음식점을 책임진 듯한 사람과 몇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이 음식점에서는 한 중국여자애가 일하고 있으니 일어수준이 낮아도 그 여자애와 물어보면서 일하면 괜찮겠다고 하면서 나보고 이튿날부터 일하러 나오라고 했다. 시급은 일단 900엔으로 정해졌다. 나를 채용해준 그 일본분이 정말 감사했다. 손가락을 꼽아보면 이 음식점은 내가 그동안 무작정 쳐들어간 30여번째 음식점이었다.
이렇게 나와 연이는 일본에 온지 한달이 거의 되어가는 날부터 알바생활을 시작했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음식점 홀에서 주문을 받거나 사발을 가시는 일을 했다. 우리가 알바하는 곳은 서로 가까웠고 매일 집으로부터 15분쯤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내가 일하는 곳의 음식점은 주방을 둘러싸고 카운터가 있었고 그 뒤에 좌석이 놓여있는 극히 평범한 일본 음식점이었다. 지하에는 회사 연회에만 사용하는 방이 따로 있었다. 음식점에 오는 손님은 거개가 일반 회사원이었다. 단골손님은 주로 카운터에 마주앉아 술을 마시면서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군 했다. 드문드문 사발을 가시고 있는 나한테 말도 건네군 했는데 그럴 때면 난 일본어 회화능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같이 간단히 얘기도 나누군 했다.
단골손님중에 시청에서 일하는 손님이 있었는데 술을 마시면 사발 가시는 나한테 잡담을 늘여놓군 했다. 일어능력이 차해서 대부분은 잘 알아들을수가 없었지만 인상은 별로였다. 거리에서 그분의 사진이 찍혀있는 선전포스터를 본적 있는데 그 뒤로부터 며칠뒤 선거활동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하지만 낙선되었는지 선거활동이 끝나서부터는 우리 음식점에 다시 나타나는 일이 없었다.
힘들게 찾은 알바인지라 난 열심히 일했다. 일이 없어도 찾아 했고 닥치는대로 닦고 또 닦았다. 그래서인지 음식점 주인이 일해서 나흘만에 내 시급을 1000엔으로 올려주었다.
그런데 한달쯤 알바를 계속하고 나니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끄떡끄떡 졸고마는 현상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이하고 한 약속이 있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학교는 결석하지 말자는 약속이었다.(계속)
일본에 와서 한달이 거의 되어가는 어느날, 연이가 킨시쵸(錦糸町)에 있는 한 중국음식점의 알바 면접에 성공했다. 그날부터 연이는 알바하러 나갔다. 혼자 남은 난 속이 바질바질 탔다. 난 언제쯤에야 알바를 구할수 있을지 너무나 막막하고 답답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그날도 자전거를 타고 킨시쵸에서 일을 찾아 헤맸다. 면접하러 음식점을 너무 드나들어서인지 간단한 대화정도는 할 수가 있었다. 어느 일본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다. 음식점을 책임진 듯한 사람과 몇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이 음식점에서는 한 중국여자애가 일하고 있으니 일어수준이 낮아도 그 여자애와 물어보면서 일하면 괜찮겠다고 하면서 나보고 이튿날부터 일하러 나오라고 했다. 시급은 일단 900엔으로 정해졌다. 나를 채용해준 그 일본분이 정말 감사했다. 손가락을 꼽아보면 이 음식점은 내가 그동안 무작정 쳐들어간 30여번째 음식점이었다.
이렇게 나와 연이는 일본에 온지 한달이 거의 되어가는 날부터 알바생활을 시작했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음식점 홀에서 주문을 받거나 사발을 가시는 일을 했다. 우리가 알바하는 곳은 서로 가까웠고 매일 집으로부터 15분쯤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내가 일하는 곳의 음식점은 주방을 둘러싸고 카운터가 있었고 그 뒤에 좌석이 놓여있는 극히 평범한 일본 음식점이었다. 지하에는 회사 연회에만 사용하는 방이 따로 있었다. 음식점에 오는 손님은 거개가 일반 회사원이었다. 단골손님은 주로 카운터에 마주앉아 술을 마시면서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군 했다. 드문드문 사발을 가시고 있는 나한테 말도 건네군 했는데 그럴 때면 난 일본어 회화능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같이 간단히 얘기도 나누군 했다.
단골손님중에 시청에서 일하는 손님이 있었는데 술을 마시면 사발 가시는 나한테 잡담을 늘여놓군 했다. 일어능력이 차해서 대부분은 잘 알아들을수가 없었지만 인상은 별로였다. 거리에서 그분의 사진이 찍혀있는 선전포스터를 본적 있는데 그 뒤로부터 며칠뒤 선거활동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하지만 낙선되었는지 선거활동이 끝나서부터는 우리 음식점에 다시 나타나는 일이 없었다.
힘들게 찾은 알바인지라 난 열심히 일했다. 일이 없어도 찾아 했고 닥치는대로 닦고 또 닦았다. 그래서인지 음식점 주인이 일해서 나흘만에 내 시급을 1000엔으로 올려주었다.
그런데 한달쯤 알바를 계속하고 나니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끄떡끄떡 졸고마는 현상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이하고 한 약속이 있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학교는 결석하지 말자는 약속이었다.(계속)
쉼터에 새로운 글 쓰기는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소중한 기록 중에 꼭 다른 분들에게도 읽었으면 하는 좋은 글들은 「추천하기」를 눌러주세요.
일부 글들은 악성광고나 의미없는 스팸들일 수 있습니다. 읽는 분들에게 피해가 되거나 삭제를 희망하는 글에는 신고를 클릭해주세요. 로봇을 통하여 정기적으로 확인 및 정리를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그렇게 보내고있지만....일본인들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면 중국인이라도 잘 대해주지요...물론 개별적으로 나쁜 인간들도 있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