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든 집 집주인은 아오키(青木)라는일본인이었다. 중국말을 유창하게 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탄복했는데 후에 사실이 밝혀졌다. 1층 다락방에서 사는 중국애한테서 집주인이 사실은 잔류고아라는 말을 들었다. 중국에서 자랐기에 일어를 중국말보다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우리 앞에서는 그런 내색을 낸적이 한번도 없었다. 부인은 중국여자였고 소학교 다니는 아들 둘이 있었다.
이사하고 나서야 그 층집에 살고있는 애들이 거의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란걸 알았다. 층집 1층에 공동샤워실이 하나 있었는데 알바가 끝난 저녁시간이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누추한 샤워실이였지만 그나마 샤워실이 있다는게 우리한테는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일본에 도착하자 바람으로 나와 연이는 자전거를 샀었다. 그 자전거를 타고 동경시내를 일주했다. 여자애 둘이서 도로표식 쳐다보며 여기저기 다녔다. 덕분에 슈퍼랑 근처 어디에 박혀있는지 인츰 알 수가 있었다.
우리가 이사와서 며칠뒤, 오른켠에 있는 옆방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자애 둘이 함께 들게 됐다. 그중 한 여자애(이름은 숙)는 나보다도 이상이었고 다른 한 여자애(이름은 복)는 나보다 4살 어렸다.
왼켠에는 우리보다 먼저 일본에 온 중국여자애가 둘이 살고 있었는데 옷차림을 보면 스낵같은데서 알바하는것 같아 아예 말도 건늬지 않았다. 스낵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여자를 일본에서는 물장사하는 여자라고 한다.
집도 잡았으니 이젠 나가서 알바를 찾아야 했다. 일본 올 때 갖고 온 돈으로는 한달정도밖에 못 버틸것 같았다. 우리가 정식으로 알바를 찾기 시작한건 일본에 도착해서 두주일후부터였다. 먼저 집주위에서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처음엔 둘이 함께 일 찾으러 다녔지만 그게 일 찾는데 불리하다고 누군가 귀띰해주어서 나와 연이는 따로 다니기로 약속했다.
집근처에서 알바모집이라고 써붙인 간판이 걸려있는 음식점을 발견하기만 하면 무작정 들어갔다. 처음엔 발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몇번을 거듭하니 괜찮았다. 하지만 채용하겠다는 곳이 나지질 않았다. 아직 일어수평이 안돼서 채용하기는 힘들다는 말만 수없이 들었다.
한번은 면접하러 나온 점원한테 무작정 며칠동안은 돈도 안받고 공짜로 일해주겠으니 채용해달라고 사정했다. 이렇게라도 빨리 일을 시작해서 알바 경험을 쌓지 않으면 일본땅에서 살아남을것 같지 못했다. 점원이 그건 안된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한번은 아사쿠사 카미나리몬(浅草雷門)근처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나와서 면접했다. 몇마디 말을 건네보시더니 아직 일어를 잘 못하니깐 일주일동안 일어를 더 배운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뒤 일주일동안 줄곧 알바 찾아 헤맸지만 채용해주는 곳이 없기에 일주일뒤에 정말 그 음식점에 찾아갔다. 결국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때에야 난 이것도 일본사람들의 애매한 대화방식이라는걸 알았다. 직접 거절하기가 미안해서 이런 식으로 거절했는데 내가 그걸 중국의식으로 이해하고 만거다.(계속)
이사하고 나서야 그 층집에 살고있는 애들이 거의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란걸 알았다. 층집 1층에 공동샤워실이 하나 있었는데 알바가 끝난 저녁시간이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누추한 샤워실이였지만 그나마 샤워실이 있다는게 우리한테는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일본에 도착하자 바람으로 나와 연이는 자전거를 샀었다. 그 자전거를 타고 동경시내를 일주했다. 여자애 둘이서 도로표식 쳐다보며 여기저기 다녔다. 덕분에 슈퍼랑 근처 어디에 박혀있는지 인츰 알 수가 있었다.
우리가 이사와서 며칠뒤, 오른켠에 있는 옆방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자애 둘이 함께 들게 됐다. 그중 한 여자애(이름은 숙)는 나보다도 이상이었고 다른 한 여자애(이름은 복)는 나보다 4살 어렸다.
왼켠에는 우리보다 먼저 일본에 온 중국여자애가 둘이 살고 있었는데 옷차림을 보면 스낵같은데서 알바하는것 같아 아예 말도 건늬지 않았다. 스낵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여자를 일본에서는 물장사하는 여자라고 한다.
집도 잡았으니 이젠 나가서 알바를 찾아야 했다. 일본 올 때 갖고 온 돈으로는 한달정도밖에 못 버틸것 같았다. 우리가 정식으로 알바를 찾기 시작한건 일본에 도착해서 두주일후부터였다. 먼저 집주위에서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처음엔 둘이 함께 일 찾으러 다녔지만 그게 일 찾는데 불리하다고 누군가 귀띰해주어서 나와 연이는 따로 다니기로 약속했다.
집근처에서 알바모집이라고 써붙인 간판이 걸려있는 음식점을 발견하기만 하면 무작정 들어갔다. 처음엔 발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몇번을 거듭하니 괜찮았다. 하지만 채용하겠다는 곳이 나지질 않았다. 아직 일어수평이 안돼서 채용하기는 힘들다는 말만 수없이 들었다.
한번은 면접하러 나온 점원한테 무작정 며칠동안은 돈도 안받고 공짜로 일해주겠으니 채용해달라고 사정했다. 이렇게라도 빨리 일을 시작해서 알바 경험을 쌓지 않으면 일본땅에서 살아남을것 같지 못했다. 점원이 그건 안된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한번은 아사쿠사 카미나리몬(浅草雷門)근처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나와서 면접했다. 몇마디 말을 건네보시더니 아직 일어를 잘 못하니깐 일주일동안 일어를 더 배운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뒤 일주일동안 줄곧 알바 찾아 헤맸지만 채용해주는 곳이 없기에 일주일뒤에 정말 그 음식점에 찾아갔다. 결국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때에야 난 이것도 일본사람들의 애매한 대화방식이라는걸 알았다. 직접 거절하기가 미안해서 이런 식으로 거절했는데 내가 그걸 중국의식으로 이해하고 만거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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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5)
고생 많이 하셨네요.님의 글을 읽느라니 저도 6년전 자기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잘 보고 갑니다^^
보기 쉽게 한줄씩 비워 써주셨으면 더욱 고맙겠슴니다.
담편도 기대해 봅니다.
보기 쉽게 한줄씩 비워 써주셨으면 더욱 고맙겠슴니다.
담편도 기대해 봅니다.
다 읽고 나니 눈이 아물아물---ㅎㅎ
한때는 같은 길을 걸어와서 그런지.
남 일 같지두 않고 ....
아무튼 또 기대 -___-
한때는 같은 길을 걸어와서 그런지.
남 일 같지두 않고 ....
아무튼 또 기대 -___-
이러구 보면 난 그래두 고생을 덜 한 축이네요..
그때의 고생이 있기에 지금의 님이 있겠죠...
그때의 고생이 있기에 지금의 님이 있겠죠...

지금쯤은 좀 편하리라 생각 하면서...
그리구, 글들을 붙혀서 쓰지 말앗으면 하는 바입니다.
읽는게 눈이 아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