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初詣랑 갔다오셨어요? 뭘 기원하셨는지요? 세계평화? 중일친선? ...무엇보다도 가족의 건
강과 소원성취겠지요. 여하튼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나는 일본에 있는 이 몇해사이 거의 해마다 갔댔지만 올해만은 눈섭이 하얗게 세도록 이불
속에서 늦잠만 잤습니다. 래일, 모레 중국에 돌아가겠는데 일본의 신령님들께 더는 페를 끼칠 필
요가 없을것 같아서요. 안그랬다가는 일본신령의 가호를 받는 몸이 신주땅에 들어가면 중국의
신령들과 맞지 않아 가뜩이나 시끌벅적한 중일관계가 더 복잡해질테니깐요.
나는 일본에 와서 처음 몇해동안은 설날에도 일에 쫓기고 또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初詣에
못갔습니다. 그러다가 녀자친구가 생겨서 끌려갔는데 첨 간곳이 浅草寺였습니다. 내가 <떵-떵->울
리는 除夜の鐘에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경건한 심정으로 우리의 행복을 빌때 그녀는 아마 나를 바보
로 만들어달라고 한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2년도 안 사귀는 동안 나한테서 뽑아낼대로 다 뽑아내
고 빨아낼대로 다 빨아내고는 어데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두번째는 사장한테서 돈 얻어가지고 가게애들과 같이 웃고떠들며 神社에 갔다왔는데 끝내 가게가
문닫아버리고 가족같던 우리식구들은 산지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外汇交易해
서 한50만 날리고, 또 그해 크리스마스날엔 40넘은 한국로처녀와 쌈을 다 해보고, 말로는 석사학위까
지 같고 있다는데 얼굴과 손등에 老年斑이 더덕더덕 덕지덕지 돋아있는 추녀였습니다. 밥 먹을땐
꼭 잔소리하며 바이트애들을 못살게구는 인간이였는데 그날 성탄절에도 야단부리니 나는 참다못해
밥사발을 뒤엎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웃기는건 그 녀자가 열손톱을 쫙 펼쳐들고 덮쳐드는것이였습니
다. 딱 梅草疯이 张牙舞爪하는것 같았습니다. 만일 高丰莲같은 덩치가 남자에게 손댄다면 리해되는
데 이건 150도 안되는 키에 맨날 고기를 그렇게 처먹어도 皮包骨인 몸뚱이로 뭘 믿고 날뛰는지ㅉㅉ
ㅉ, 뒤덜미를 잡아서 바닥에 천천히눌러버렸습니다. 원래는 콱 눌러버리려했지만 그러면 가뜩이
나 못난 얼굴이 콩트리트바닥에 부딛쳐 장마당이 되는건 間違いない! 참 슬펐습니다. 눈물이 나오
도록, 나는 いけ面에 優しい하다보니 女子高校生로부터 아줌마들하고도 다 사이 좋은데 , 참 재수가
옴에 붙었나?! ちなみに 그날 화김에 뒤집다보니 내것 아니고 옆의 장춘애밥사발을 엎어놓았다는
것, 그래서 걔한테 밥사주기로 했는데, 지금도...
그다음 初詣는 재일교포친구와 함께 차디찬 겨울비를 무릎쓰고 大雄山절에 갔습니다. 大雄山에
는 세계에서 제일 큰 下駄가 있는데 산우에는 눈이 하얗게 내렸습니다. 우린 종도 치고 부들부
들 떨며 귀밝히기 술도 마셨습니다. 올해에는 운이 열리려나? 더 한심했습니다.
그해 나는 여태껏 살다가 최대의 모욕을 당했습니다. 5월에 한국점장 하고 쌈이 붙었는데 <이
犬野郎야.>하는것이였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犬野郎소리가 나올땐 이미 상대는 피투성이 일테인데,
이 인간은 주둥이만 나불거리는것이였습니다. 나는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너 개野郎가 개소리밖
에 못치지>했습니다. 나는 중국에서 쌈이란것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일본에 와서 얼
마 안되여 맥주병으로 한국애머리를 까버린적이 있습니다. 옆에서 안 말렸으면 아예 죽여버렸을겁
니다. 그런데 화가 갈앉은뒤 보니 걔 생일날이랍디다. 다같이 외국에 나와 고생하는판에 생일날
에 무슨 날벼락이야? 너무 미안해서 일 끝난뒤 모여앉아 술한잔 하고 화해했습니다. 사나이 세계
가 다 이렇잖아요? 그리고 원래 쌈못하는 나이지만 이제 두번 다시 사람을 안치겠다고 속다짐했는
데 또 이런 눔이 튀여나오다니, <이 거지野郎야, 죽여버리겠다.> 나는 쇼크에 까무러칠번
했습니다. 머리속이 다 새하얘났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한국사람들 불쌍하다고 여러모로 도와주고 생
활비고 가게 차리는데 돈 빌려주고 하며 살아왔는데 진짜 한국거지한테서 거지소리 들으니 미치기
반보직전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인젠 일본에서 몇해 굴러먹어서 참을성이 자란것 같았습니다. 또
옆에 친구 하나 없어서 끝내는 참았습니다. 만일 내가 발광할때 친구라도 있어야 말릴수 있지 안
그러면 ... 이 한국점장은 조실부모해서 그런지 가족애를 모르고 뭐나 제멋대로고 인정머리란 꼬물만
치도 없는 피도 눈물도 모르는 인간이였습니다. 40넘어갖고도 애도 없이 몇백만의 빚에 허덕이
고 있는 거지주제에 지주(내 별명)인 나보고 거지라고 하니 真TMD狗眼看人低!
<누가 거지인가는 네가 더 잘 알거고 너 사람 어떻게 죽이는지 죽는지 본적 있어?>
....... ......
나보고 래일부터 출근 안해도 된답니다. <자르겠다고? 네가 점장이지 사장이야?> 그뒤 7월까
지 일하고 8월에 お盆이 되여서 가게가 바빠질때 나와버렸습니다. 점장이 남아달라 하는것을 뿌리치고...
벌써 2006년이 되였습니다. 올해 初詣에 갔다온분들한테는 진짜 액막이기에 행운이 되길 바라면서
...
강과 소원성취겠지요. 여하튼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나는 일본에 있는 이 몇해사이 거의 해마다 갔댔지만 올해만은 눈섭이 하얗게 세도록 이불
속에서 늦잠만 잤습니다. 래일, 모레 중국에 돌아가겠는데 일본의 신령님들께 더는 페를 끼칠 필
요가 없을것 같아서요. 안그랬다가는 일본신령의 가호를 받는 몸이 신주땅에 들어가면 중국의
신령들과 맞지 않아 가뜩이나 시끌벅적한 중일관계가 더 복잡해질테니깐요.
나는 일본에 와서 처음 몇해동안은 설날에도 일에 쫓기고 또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初詣에
못갔습니다. 그러다가 녀자친구가 생겨서 끌려갔는데 첨 간곳이 浅草寺였습니다. 내가 <떵-떵->울
리는 除夜の鐘에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경건한 심정으로 우리의 행복을 빌때 그녀는 아마 나를 바보
로 만들어달라고 한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2년도 안 사귀는 동안 나한테서 뽑아낼대로 다 뽑아내
고 빨아낼대로 다 빨아내고는 어데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두번째는 사장한테서 돈 얻어가지고 가게애들과 같이 웃고떠들며 神社에 갔다왔는데 끝내 가게가
문닫아버리고 가족같던 우리식구들은 산지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外汇交易해
서 한50만 날리고, 또 그해 크리스마스날엔 40넘은 한국로처녀와 쌈을 다 해보고, 말로는 석사학위까
지 같고 있다는데 얼굴과 손등에 老年斑이 더덕더덕 덕지덕지 돋아있는 추녀였습니다. 밥 먹을땐
꼭 잔소리하며 바이트애들을 못살게구는 인간이였는데 그날 성탄절에도 야단부리니 나는 참다못해
밥사발을 뒤엎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웃기는건 그 녀자가 열손톱을 쫙 펼쳐들고 덮쳐드는것이였습니
다. 딱 梅草疯이 张牙舞爪하는것 같았습니다. 만일 高丰莲같은 덩치가 남자에게 손댄다면 리해되는
데 이건 150도 안되는 키에 맨날 고기를 그렇게 처먹어도 皮包骨인 몸뚱이로 뭘 믿고 날뛰는지ㅉㅉ
ㅉ, 뒤덜미를 잡아서 바닥에 천천히눌러버렸습니다. 원래는 콱 눌러버리려했지만 그러면 가뜩이
나 못난 얼굴이 콩트리트바닥에 부딛쳐 장마당이 되는건 間違いない! 참 슬펐습니다. 눈물이 나오
도록, 나는 いけ面에 優しい하다보니 女子高校生로부터 아줌마들하고도 다 사이 좋은데 , 참 재수가
옴에 붙었나?! ちなみに 그날 화김에 뒤집다보니 내것 아니고 옆의 장춘애밥사발을 엎어놓았다는
것, 그래서 걔한테 밥사주기로 했는데, 지금도...
그다음 初詣는 재일교포친구와 함께 차디찬 겨울비를 무릎쓰고 大雄山절에 갔습니다. 大雄山에
는 세계에서 제일 큰 下駄가 있는데 산우에는 눈이 하얗게 내렸습니다. 우린 종도 치고 부들부
들 떨며 귀밝히기 술도 마셨습니다. 올해에는 운이 열리려나? 더 한심했습니다.
그해 나는 여태껏 살다가 최대의 모욕을 당했습니다. 5월에 한국점장 하고 쌈이 붙었는데 <이
犬野郎야.>하는것이였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犬野郎소리가 나올땐 이미 상대는 피투성이 일테인데,
이 인간은 주둥이만 나불거리는것이였습니다. 나는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너 개野郎가 개소리밖
에 못치지>했습니다. 나는 중국에서 쌈이란것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일본에 와서 얼
마 안되여 맥주병으로 한국애머리를 까버린적이 있습니다. 옆에서 안 말렸으면 아예 죽여버렸을겁
니다. 그런데 화가 갈앉은뒤 보니 걔 생일날이랍디다. 다같이 외국에 나와 고생하는판에 생일날
에 무슨 날벼락이야? 너무 미안해서 일 끝난뒤 모여앉아 술한잔 하고 화해했습니다. 사나이 세계
가 다 이렇잖아요? 그리고 원래 쌈못하는 나이지만 이제 두번 다시 사람을 안치겠다고 속다짐했는
데 또 이런 눔이 튀여나오다니, <이 거지野郎야, 죽여버리겠다.> 나는 쇼크에 까무러칠번
했습니다. 머리속이 다 새하얘났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한국사람들 불쌍하다고 여러모로 도와주고 생
활비고 가게 차리는데 돈 빌려주고 하며 살아왔는데 진짜 한국거지한테서 거지소리 들으니 미치기
반보직전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인젠 일본에서 몇해 굴러먹어서 참을성이 자란것 같았습니다. 또
옆에 친구 하나 없어서 끝내는 참았습니다. 만일 내가 발광할때 친구라도 있어야 말릴수 있지 안
그러면 ... 이 한국점장은 조실부모해서 그런지 가족애를 모르고 뭐나 제멋대로고 인정머리란 꼬물만
치도 없는 피도 눈물도 모르는 인간이였습니다. 40넘어갖고도 애도 없이 몇백만의 빚에 허덕이
고 있는 거지주제에 지주(내 별명)인 나보고 거지라고 하니 真TMD狗眼看人低!
<누가 거지인가는 네가 더 잘 알거고 너 사람 어떻게 죽이는지 죽는지 본적 있어?>
....... ......
나보고 래일부터 출근 안해도 된답니다. <자르겠다고? 네가 점장이지 사장이야?> 그뒤 7월까
지 일하고 8월에 お盆이 되여서 가게가 바빠질때 나와버렸습니다. 점장이 남아달라 하는것을 뿌리치고...
벌써 2006년이 되였습니다. 올해 初詣에 갔다온분들한테는 진짜 액막이기에 행운이 되길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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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5)
경력이 참 굴곡적이네요~ㅎㅎㅎ 행운을 빌게요~중국가서는 일이 척척 잘 풀리기를~
일본에 절당가서 비는가 자꾸 그렇지
일본신도 일본사람돌보지 중구사람돌보겟슴둥 ㅎㅎㅎ
일본신도 일본사람돌보지 중구사람돌보겟슴둥 ㅎㅎㅎ
남자는 운이 나쁜해가 30살 전에 한번 있습니다.보통 24살 번밍낸에 많지요.
그것도 짧으면 1년 길면 3년
난 래일 모레면 30이 다가오는 사람이지만 일본와서 연속 2년이나 운이 개똥운수였습니다.하나하나 열거하면 사람들이 아마 믿어주지 않을껄요..ㅋㅋㅋ
귀국해서 잘 하시우!!!
그것도 짧으면 1년 길면 3년
난 래일 모레면 30이 다가오는 사람이지만 일본와서 연속 2년이나 운이 개똥운수였습니다.하나하나 열거하면 사람들이 아마 믿어주지 않을껄요..ㅋㅋㅋ
귀국해서 잘 하시우!!!
僕は何よりもまず両親、弟、彼女、親戚、友達らの健康を祈ったよ!
shimtoで知り合ったたくさんの友たちの健康ももちろん祈ったし!!
shimtoで知り合ったたくさんの友たちの健康ももちろん祈ったし!!
황세인이 가련하구먼, 여자친구한테 몸두 다 빨리구,한국계집한테 마음두 다 빨리구, 한국거지한테 뇌수두 손상받구..가련하게 보여두 제놀쑤는 꽁꽁 잘할같은데..모다논 돈가지구 중국가서 예쁜색시만나 잘살아보게,찌 빠진 몸에 하구 빨리 쌔싹이 돋아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