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0년전에 일본의 어떤 산골의 목재가공공장에 연수생으로 온적이 잇다.
1년동안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당시 인민페로 8만여원을 벌어서 일본 류학의 자금을 마련햇다.
그때 그 목재가공공장의 사장과 1년동안 같이 일하면서 여러가지를 많이 느낀점이 잇다.
사장님 집안 래력은 엣날 조상때는 부락민(部落民)출신으로서 갖은 멸시를 다 받는 사회최하층의 집안이엿다.
그러다. 제2차세계대전이 종식후 미 군정밑에서 일본사회는 대변혁의 시기에 처한다.
그때 사장님의 할아버지가 목재가공공장을 꾸리면서 집안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사회가 대변혁이 일어날때엔 언제나 사회최하층이 먼저 기회를 잡게 되고 성공하는 법이다.
중국에서도 개혁개방이 일어나면서 처음엔 누구도 거들떠도 안보는 매대를 꾸리고 물건을 파는 보따리 장사군들이 제일 먼저 부자가 되엿고,감옥을 금방 나와서 어디에서나 알맞는 직업을 구할수 없던 사람들이 제일 처음으로 부자가 되엿었다.
그때는 누구나 다 국영기업에 들어가지 못해서 애를 썼고 보따리 장사군에 대해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앗엇다. 지금에야 국영기업에 대한 이메지는 일락천장으로 되엿지....정말이지 30년 하동.30년 하서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대에서 창업하여 아버지대에서 흥성햇던 회사가 지금 손자대에 와서는 거의 찌부러져가는 형세엿다.
사장은 거의 모든 일본인들이 그러하듯
일주일 눈앞의 형세에는 아주 민감하고 투철하지만,
좀더 장래의 일. 좀더 큰 전략적인 문제에 대한 사고력은 거의 초등학생 레벨....
회사는 점점 기울어져가는 추세엿고 사장은 거의 매일저녁 술놀이에만 파뭇혀잇고...ㅎㅎㅎ
그러한때 우리 연변의 연수생 3명이 그 회사에서 1년동안 일하게 된것이다.
히로시마의 그곳은 산골이여서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가 적엇다. 거기에다 중국의 경제가 아직 발전하지 못한 10년전이고 하니 우리 중국인들에 대한 이메지가 아주 개판이엿다.
그 곳의 일본인들은 우리들이 중국에서 전등도 없고 아주 원시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는가 생각하고들 있었다.중국에는 비행기가 잇는가?하는 질문도 있을지경이엿다.ㅎㅎㅎ 나는 그때마다 이번에 일본올때 비행기가 없어서 바다를 헤염쳐서 건너왓다고 대답햇다.ㅎㅎㅎ
그리고 조선민족에 대해서 깔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똑마치 엣날 우리 연변사람들이 남방에서 일하러 들어온
민공들에게 차별의식을 갖고있던것처럼 말이다....어찌나 기분이 잡치던지... 닫힌 생활을 하면 이렇게 우매하게 되는구나..하고 깊이 느끼던 때였다.
그러다 나는 1년동안의 연수를 꿑내고 중국에 돌아가서 2년쯤 잇다가 일본에 류학오고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동경에서 취직도 하게 됏다.
전번에 일이 잇어 그곳으로 가게됐는데 10년만에 그 사장과 다시 만나게 됐다.
사장의 지금 형편을 알아보니.
워낙 사이가 좋지않던 안해가(고중때 한반 동창으로서 고중졸업후 즉각 결혼햇다) 사장 친구인 다른 남자와 바람쓰는걸 당장에서 붙잡고 간통죄로 기소하고 친구에게서 손해비로 몇천만엔을 받아내고 리혼.
아들늠은 히로시마 대학에 보냇는데 공부가 재미없다고 중도 퇴학 ! (내가 혈혈단신으로 동경에서 알바하며 대학 다녓다니 감탄에 감탄을 거듭...ㅎㅎ) 아들일로 지금은 속이 타서 재가 다 되엿단다.
지금은 중국 남방의 강소성 등지에서 온 연수생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어를 통 모르니 진짜 답답한 모양이다. (그래두 너희들 연변의 연수생들이 제일 레벨이 높아 )
사장은 깊이 느낀 모양이엿다.ㅎㅎㅎ
그러면서 나보고 중국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한다.ㅎㅎㅎ
서글프게 웃는 사장이 가련해보엿다..........
사장의 친구들이랑 다 만나보게 됐는데 이 시골사람들이 내가 동경에서 왔다고 하니 좀씩 우러러보는 느낌.ㅎㅎㅎ
일본에 사는 일본인이여도 동경 구경은 마음대로 되는게 아닌 모양이다 ...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였다....
1년동안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당시 인민페로 8만여원을 벌어서 일본 류학의 자금을 마련햇다.
그때 그 목재가공공장의 사장과 1년동안 같이 일하면서 여러가지를 많이 느낀점이 잇다.
사장님 집안 래력은 엣날 조상때는 부락민(部落民)출신으로서 갖은 멸시를 다 받는 사회최하층의 집안이엿다.
그러다. 제2차세계대전이 종식후 미 군정밑에서 일본사회는 대변혁의 시기에 처한다.
그때 사장님의 할아버지가 목재가공공장을 꾸리면서 집안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사회가 대변혁이 일어날때엔 언제나 사회최하층이 먼저 기회를 잡게 되고 성공하는 법이다.
중국에서도 개혁개방이 일어나면서 처음엔 누구도 거들떠도 안보는 매대를 꾸리고 물건을 파는 보따리 장사군들이 제일 먼저 부자가 되엿고,감옥을 금방 나와서 어디에서나 알맞는 직업을 구할수 없던 사람들이 제일 처음으로 부자가 되엿었다.
그때는 누구나 다 국영기업에 들어가지 못해서 애를 썼고 보따리 장사군에 대해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앗엇다. 지금에야 국영기업에 대한 이메지는 일락천장으로 되엿지....정말이지 30년 하동.30년 하서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대에서 창업하여 아버지대에서 흥성햇던 회사가 지금 손자대에 와서는 거의 찌부러져가는 형세엿다.
사장은 거의 모든 일본인들이 그러하듯
일주일 눈앞의 형세에는 아주 민감하고 투철하지만,
좀더 장래의 일. 좀더 큰 전략적인 문제에 대한 사고력은 거의 초등학생 레벨....
회사는 점점 기울어져가는 추세엿고 사장은 거의 매일저녁 술놀이에만 파뭇혀잇고...ㅎㅎㅎ
그러한때 우리 연변의 연수생 3명이 그 회사에서 1년동안 일하게 된것이다.
히로시마의 그곳은 산골이여서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가 적엇다. 거기에다 중국의 경제가 아직 발전하지 못한 10년전이고 하니 우리 중국인들에 대한 이메지가 아주 개판이엿다.
그 곳의 일본인들은 우리들이 중국에서 전등도 없고 아주 원시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는가 생각하고들 있었다.중국에는 비행기가 잇는가?하는 질문도 있을지경이엿다.ㅎㅎㅎ 나는 그때마다 이번에 일본올때 비행기가 없어서 바다를 헤염쳐서 건너왓다고 대답햇다.ㅎㅎㅎ
그리고 조선민족에 대해서 깔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똑마치 엣날 우리 연변사람들이 남방에서 일하러 들어온
민공들에게 차별의식을 갖고있던것처럼 말이다....어찌나 기분이 잡치던지... 닫힌 생활을 하면 이렇게 우매하게 되는구나..하고 깊이 느끼던 때였다.
그러다 나는 1년동안의 연수를 꿑내고 중국에 돌아가서 2년쯤 잇다가 일본에 류학오고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동경에서 취직도 하게 됏다.
전번에 일이 잇어 그곳으로 가게됐는데 10년만에 그 사장과 다시 만나게 됐다.
사장의 지금 형편을 알아보니.
워낙 사이가 좋지않던 안해가(고중때 한반 동창으로서 고중졸업후 즉각 결혼햇다) 사장 친구인 다른 남자와 바람쓰는걸 당장에서 붙잡고 간통죄로 기소하고 친구에게서 손해비로 몇천만엔을 받아내고 리혼.
아들늠은 히로시마 대학에 보냇는데 공부가 재미없다고 중도 퇴학 ! (내가 혈혈단신으로 동경에서 알바하며 대학 다녓다니 감탄에 감탄을 거듭...ㅎㅎ) 아들일로 지금은 속이 타서 재가 다 되엿단다.
지금은 중국 남방의 강소성 등지에서 온 연수생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어를 통 모르니 진짜 답답한 모양이다. (그래두 너희들 연변의 연수생들이 제일 레벨이 높아 )
사장은 깊이 느낀 모양이엿다.ㅎㅎㅎ
그러면서 나보고 중국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한다.ㅎㅎㅎ
서글프게 웃는 사장이 가련해보엿다..........
사장의 친구들이랑 다 만나보게 됐는데 이 시골사람들이 내가 동경에서 왔다고 하니 좀씩 우러러보는 느낌.ㅎㅎㅎ
일본에 사는 일본인이여도 동경 구경은 마음대로 되는게 아닌 모양이다 ...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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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14)
일본에도 불쌍하고 어이없는 사람이 많은줄로 압니다.
정말 인생세월은 순번으로 바꿔가면서 돌아가는가 봐요....
좋은 예기 잘 보고갑니다.
좋은 예기 잘 보고갑니다.
8년만에 사장님을 찾아간 님이 정말로 대단하십니다..감탄!!!
좋은 얘기 잘 보구 갑니다...
좋은 얘기 잘 보구 갑니다...
별로요.
그곳은 일이 있어서 가게 되고 겸사겸사 사장한테도 찾아가게 된겁니다.
그곳은 일이 있어서 가게 되고 겸사겸사 사장한테도 찾아가게 된겁니다.
정말 분투정신이 대단하구만요....계속 화이팅..
お前!広島を舐めるな!田舎だと・・・?
東京のどこがいいの?
お前は最低な人間だよ。
東京にいるのがそんなに偉いと思うの?
根知らずアホ!
東京のどこがいいの?
お前は最低な人間だよ。
東京にいるのがそんなに偉いと思うの?
根知らずアホ!
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다...
몇년 뒤, 이말이 내 맘에 더욱 와닿을듯...
세월의 흐름을 느끼다...
몇년 뒤, 이말이 내 맘에 더욱 와닿을듯...
좋은글 보고 갑니다...
네,좋은 글이였습니다.
진짜 문장 잘썼다...역시 속에 든 사람의 문장은 한꺼번에 독자로써 알려주고싶은 것을
한방에 알아보게 쓰시는군요...정말로 탐복입니다....
좋은 글 부탁합니다....분투하는 인생님 이라... 이름 기억해야지...
짧은 문장이지만... 진정으루 몽땅 필요한 단어들입니다... 좋은글 기대합니다..
한방에 알아보게 쓰시는군요...정말로 탐복입니다....
좋은 글 부탁합니다....분투하는 인생님 이라... 이름 기억해야지...
짧은 문장이지만... 진정으루 몽땅 필요한 단어들입니다... 좋은글 기대합니다..
히로시마 어느 모태인데요? 나두 찾아가보기싶은데,,,내 사는 근처인지라,ㅎㅎ
エッセイ같은 잔잔한 글이였습니다.
분투하는 인생님: 이름처럼 그냥 열심히 사세요!!
그리고,
せっかく꼬리말 달아 주신 인생의 기로님: 포티 했구먼요 ㅎ
분투하는 인생님: 이름처럼 그냥 열심히 사세요!!
그리고,
せっかく꼬리말 달아 주신 인생의 기로님: 포티 했구먼요 ㅎ
글쎄 말이.....
인생의 기로님.ㅎㅎㅎ 성격이 급한 분같군요. 저 산골사람들이라고 업수이보는일은 없습니다.
kouginka님.감사합니다.
거부기님.꼬부니님. 별 말씀을요.
쯔리맨님. 허술한 문장에 과분한 칭찬입니다.
생각중님. 별 볼데 없는 곳입니다.
콩깍지님. 감사합니다.
손목시계님. ?
kouginka님.감사합니다.
거부기님.꼬부니님. 별 말씀을요.
쯔리맨님. 허술한 문장에 과분한 칭찬입니다.
생각중님. 별 볼데 없는 곳입니다.
콩깍지님. 감사합니다.
손목시계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