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취업하려고 그동안 노력을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면서 면접을 봤다..
하지만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보시는 면접관들의 최종 판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 기분 넘 착잡하다..
나한테 머가 문제 일가 ?
나를 소개할겸 나의 사상, 나의 생애를 한번 적어볼가한다.......
“우물안 개구리” 라는 표현이 딱일 것이다. 내가 사는 그곳은 내가 생각하는 천국이었다. 모든게 평화롭고 모든게 활기차며 모든게 행복했다. 그렇게 그 세상이 전부인냥 그안에서 활기차게 살았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때였던 것 같다. 다른 넓은 세상의 존재를 깨달았던게. 식구들과 함께한 친척어른들을 찾아뵈었던 그 기나긴 여행길에서 참 많은걸 느꼈었던 것 같다. 내가 우물안 개구리였다는걸.
하지만 유난히 행복하게 기억되는 그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난 지금도 행복하다. 간부이신 아빠는 엄마와 여행을 가끔 다니셨는데 오실적마다 들고오셨던 맛난 과자들 그리고 일요일이면 엄마가 항상 튀겨주시던 그 도너츠.. 친구들과 삐비를 뽑는다며 하루종일 시골길을 걷기도 했구 딱치치기 한다구 종이란 종이는 죄다 딱지만들구 엽전놀이 한다구 병뚜껑모아 망치로 두들기고 우물가에 둘러앉아 뱀딸기 먹는다고 눈썹하나씩 뽑았던 기억두 나고 모든 것들이 자연을 벗삼아 이루어졌던 것 같다. 이렇게 사소한것에서 찾는 행복이야말로 정말 값지며 정말 소중하다는걸 지금도 종종 느끼곤한다.
학교도 들어가게되고 그리구 주변것들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더 확실해졌을 때 더 이상 행복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동전에 양면성이 있듯이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선과악이 존재한다.
또한 동질성과 이질성이 항시 대립한다.
나의 엄마와 할머니는 항시 그런 대립관계였던거 같다.
종교관의 차이가 그것이었다.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라는 것에서의 동질성을 찾으려했다면 문제가 되지않았겠지만 불교와 기독교라는것의 이질성을 찾았기에 항시 문제가 되었던것같다.
엄마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지만 또 할머니 입장에서는 그것역시도 항시 부족해보였던 것 같다. 종교를 떠난 그 ..며느리에 대한 사명이랄까? 제사상의 음식을 안먹는다고해서 그것마저도 문제를 삼았던걸보면 골이 참 깊었던거 같다. 우연보다는 그런모든것들은 난 필연적이라고 본다. 어떠한 원인이 분명 있었을것이며 그 원인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런 문제의 골이 깊어짐에 따라 항시 자상하게만 느껴지던 아빠마저도 때론 너무 얄미워보일정도로 할머니 입장에서만 생각하셨던거 같다.
언제나 본인의 어머니가 우선이었다. 자식된 도리라지만 그럼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그때부터 서로의 상처가 시작됐던 것 같다. 그 종교문제는 내 어린시절 기억속에 너무도 단단히 뿌리박혀서 난 지금도 무교다. 그렇치만 신은 존재한다고 믿는며 전생도 존재할거라 생각하며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태어나는 운명도 전생의 업보이며 우리가 그것을 다 알고있으며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알면서 잘 하지못하기에 또다시 반복되는 그런것이라 그냥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있다.
책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엄마아빠 때문에 수많은 동화책과 문학전집 위인집 등 많은 독서를 했다.
하지만 그게 유년시절에 멈췄던 것 같다. 아직두 그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엄마와 할머니의 종교문제가 내겐 종교전쟁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으며 그렇기에 가정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되었다.
종교전쟁이 시작된뒤로 내겐 학업이나 학벌, 권력은 중요한게 아니었다.
왜 아무것도 아닌걸 가지고 대립하고 감정상해야 하는지 언제나 내겐 그게 더 큰 관심이었구 의문이었다. 그냥 한쪽에서만 지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잘하면 될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고 아무튼 그시절 내 기억속엔 언제나 머리아픈 것들로 가득차있었던 것 같다.
삶이 무엇이며 왜 살아야하며 왜 종교를 가지며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 종교의 믿음을 정말 믿는것일까 하는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의문들이 가득차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길어지고 사춘기를 맞이했을땐 정말 삶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왜 살아야하는걸까 하고. 아무생각없이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대학에대한 미련도 없었다. 하지만 교육열의가 있으셨던 부모님이 대학만은 가야한다고 해서 대학역시 별 의미를 갖지못한채 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열의가 없었으며 기쁨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내가 나가서 느낀 사회는 나같은 약간의 비현실주의자는 거의 없었다.
내가 보고 느낀 또다른 냉철한 사회를 느꼈으니까.
또한 부모님의 마음역시도 크게 작용했다. 청렴결백상을 받으실정도로 결백하시고 성실하신아빠밑에서 큰딸로써 더 이상의 불효는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역시 강했기 때문이다.
산다면 삶에대해 아무리 회의적이고 비관적이고 긍정적이든 간데 가장 중요한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 세상에서 지금 내가 숨쉬고 있기에 나는 죽는 그날까지 노력하는 자세로 모든 것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의미없이 보내버린 시간들이 많은 아쉬움으로 느껴질때가 많다. 공부도 때가 있다고하듯 가장적절했던 그 때를 놓치긴 했지만 그 때라는게 어쩌면 영원일수도 있다. 언제나 공부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죽는순간까지인 것이다.
학업에 충실하지못해 그 시간들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아픔뒤에 성숙이 있듯이 그런시간이 있었기에 오히려 반성하고 노력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것 그런것들에 대한 올바른 발판이 된 것 같다.
노력하는 모습이 가장아름답다고들 말한다.
나역시도 노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며 가장 기본적인 삶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지키기 어려울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이 없는 삶.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되고 권력을 가지게 되더라도 명성을 떨치게 되더라도 진실이 없는 그러한 삶은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된다.
난 가끔 이순신장군이 자신의 아버지던가 돌아가실려고 할때 자신의 집에 가지못하고 전쟁터로 발길을 돌렸다고 했을 때 그게 의문이다. 과연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할까? 집안을 먼저 생각해야하는걸까? 물론 이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전쟁터로 당연히 가야한다고 생각하겠지만...만약에 평범한 사람이 회사가 급해서와 집사람이 위독하다고 했을 경우 어떤 처사를 해야하는걸까? 사소한 교통질서를 어기는 사람과 중요한 교통질서를 어기는거. 10만원정도의 사기를 쳐서 감옥에 가는 경우와 몇백억의 사기를 쳐서 보면 며칠뒤면 멀쩡히 돌아다니고.... 별 상관도 없는 것들이지만 이 안에서도 진실이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작은 것과 큰 것의 사이에서 진실을 쫓아야함은 소리없는 고문일수 있다. 부득이한 진실의 외면은 용서될지 모르지만 진실의 회피는 용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많은 회사들이 학벌위주 지식위주 경력위주로 인재를 등용하기도 하지만 경쟁률이 치열한 도시에서의 취업전쟁은 많은 인재들이 더욱더 많은 실력과 더욱더 능숙한 외국어 실력으로인해서 인재등용에 있어서의 그 기본이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곳을 내자리로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고 또한 노력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인정받을수있겠지 하는 조금은 막연한 생각으로 이력서를 제출해보려는 것이다.
살면서 미친 듯이 무언가에 열중하며 사는 것 역시도 나의 하나의 바램이다.
그게 무엇이 되든 무슨일이든 옳다고 생각되는것에는 미친듯한 열정을 불어넣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얼마만큼의 이득을 드릴지는 장담할순없지만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겠다는 남들이 다하는 말정도는 자신있게 할 수 있다. 또한 정직하고 성실하게 임하겠다는것도 자신있게 말씀드릴수 있다.
무슨일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야에서는 인정받을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희망을 가지면 행복하다. *^^*
하지만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보시는 면접관들의 최종 판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 기분 넘 착잡하다..
나한테 머가 문제 일가 ?
나를 소개할겸 나의 사상, 나의 생애를 한번 적어볼가한다.......
“우물안 개구리” 라는 표현이 딱일 것이다. 내가 사는 그곳은 내가 생각하는 천국이었다. 모든게 평화롭고 모든게 활기차며 모든게 행복했다. 그렇게 그 세상이 전부인냥 그안에서 활기차게 살았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때였던 것 같다. 다른 넓은 세상의 존재를 깨달았던게. 식구들과 함께한 친척어른들을 찾아뵈었던 그 기나긴 여행길에서 참 많은걸 느꼈었던 것 같다. 내가 우물안 개구리였다는걸.
하지만 유난히 행복하게 기억되는 그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난 지금도 행복하다. 간부이신 아빠는 엄마와 여행을 가끔 다니셨는데 오실적마다 들고오셨던 맛난 과자들 그리고 일요일이면 엄마가 항상 튀겨주시던 그 도너츠.. 친구들과 삐비를 뽑는다며 하루종일 시골길을 걷기도 했구 딱치치기 한다구 종이란 종이는 죄다 딱지만들구 엽전놀이 한다구 병뚜껑모아 망치로 두들기고 우물가에 둘러앉아 뱀딸기 먹는다고 눈썹하나씩 뽑았던 기억두 나고 모든 것들이 자연을 벗삼아 이루어졌던 것 같다. 이렇게 사소한것에서 찾는 행복이야말로 정말 값지며 정말 소중하다는걸 지금도 종종 느끼곤한다.
학교도 들어가게되고 그리구 주변것들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더 확실해졌을 때 더 이상 행복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동전에 양면성이 있듯이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선과악이 존재한다.
또한 동질성과 이질성이 항시 대립한다.
나의 엄마와 할머니는 항시 그런 대립관계였던거 같다.
종교관의 차이가 그것이었다.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라는 것에서의 동질성을 찾으려했다면 문제가 되지않았겠지만 불교와 기독교라는것의 이질성을 찾았기에 항시 문제가 되었던것같다.
엄마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지만 또 할머니 입장에서는 그것역시도 항시 부족해보였던 것 같다. 종교를 떠난 그 ..며느리에 대한 사명이랄까? 제사상의 음식을 안먹는다고해서 그것마저도 문제를 삼았던걸보면 골이 참 깊었던거 같다. 우연보다는 그런모든것들은 난 필연적이라고 본다. 어떠한 원인이 분명 있었을것이며 그 원인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런 문제의 골이 깊어짐에 따라 항시 자상하게만 느껴지던 아빠마저도 때론 너무 얄미워보일정도로 할머니 입장에서만 생각하셨던거 같다.
언제나 본인의 어머니가 우선이었다. 자식된 도리라지만 그럼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그때부터 서로의 상처가 시작됐던 것 같다. 그 종교문제는 내 어린시절 기억속에 너무도 단단히 뿌리박혀서 난 지금도 무교다. 그렇치만 신은 존재한다고 믿는며 전생도 존재할거라 생각하며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태어나는 운명도 전생의 업보이며 우리가 그것을 다 알고있으며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알면서 잘 하지못하기에 또다시 반복되는 그런것이라 그냥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있다.
책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엄마아빠 때문에 수많은 동화책과 문학전집 위인집 등 많은 독서를 했다.
하지만 그게 유년시절에 멈췄던 것 같다. 아직두 그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엄마와 할머니의 종교문제가 내겐 종교전쟁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으며 그렇기에 가정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되었다.
종교전쟁이 시작된뒤로 내겐 학업이나 학벌, 권력은 중요한게 아니었다.
왜 아무것도 아닌걸 가지고 대립하고 감정상해야 하는지 언제나 내겐 그게 더 큰 관심이었구 의문이었다. 그냥 한쪽에서만 지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잘하면 될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고 아무튼 그시절 내 기억속엔 언제나 머리아픈 것들로 가득차있었던 것 같다.
삶이 무엇이며 왜 살아야하며 왜 종교를 가지며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 종교의 믿음을 정말 믿는것일까 하는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의문들이 가득차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길어지고 사춘기를 맞이했을땐 정말 삶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왜 살아야하는걸까 하고. 아무생각없이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대학에대한 미련도 없었다. 하지만 교육열의가 있으셨던 부모님이 대학만은 가야한다고 해서 대학역시 별 의미를 갖지못한채 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열의가 없었으며 기쁨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내가 나가서 느낀 사회는 나같은 약간의 비현실주의자는 거의 없었다.
내가 보고 느낀 또다른 냉철한 사회를 느꼈으니까.
또한 부모님의 마음역시도 크게 작용했다. 청렴결백상을 받으실정도로 결백하시고 성실하신아빠밑에서 큰딸로써 더 이상의 불효는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역시 강했기 때문이다.
산다면 삶에대해 아무리 회의적이고 비관적이고 긍정적이든 간데 가장 중요한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 세상에서 지금 내가 숨쉬고 있기에 나는 죽는 그날까지 노력하는 자세로 모든 것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의미없이 보내버린 시간들이 많은 아쉬움으로 느껴질때가 많다. 공부도 때가 있다고하듯 가장적절했던 그 때를 놓치긴 했지만 그 때라는게 어쩌면 영원일수도 있다. 언제나 공부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죽는순간까지인 것이다.
학업에 충실하지못해 그 시간들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아픔뒤에 성숙이 있듯이 그런시간이 있었기에 오히려 반성하고 노력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것 그런것들에 대한 올바른 발판이 된 것 같다.
노력하는 모습이 가장아름답다고들 말한다.
나역시도 노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며 가장 기본적인 삶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지키기 어려울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이 없는 삶.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되고 권력을 가지게 되더라도 명성을 떨치게 되더라도 진실이 없는 그러한 삶은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된다.
난 가끔 이순신장군이 자신의 아버지던가 돌아가실려고 할때 자신의 집에 가지못하고 전쟁터로 발길을 돌렸다고 했을 때 그게 의문이다. 과연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할까? 집안을 먼저 생각해야하는걸까? 물론 이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전쟁터로 당연히 가야한다고 생각하겠지만...만약에 평범한 사람이 회사가 급해서와 집사람이 위독하다고 했을 경우 어떤 처사를 해야하는걸까? 사소한 교통질서를 어기는 사람과 중요한 교통질서를 어기는거. 10만원정도의 사기를 쳐서 감옥에 가는 경우와 몇백억의 사기를 쳐서 보면 며칠뒤면 멀쩡히 돌아다니고.... 별 상관도 없는 것들이지만 이 안에서도 진실이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작은 것과 큰 것의 사이에서 진실을 쫓아야함은 소리없는 고문일수 있다. 부득이한 진실의 외면은 용서될지 모르지만 진실의 회피는 용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많은 회사들이 학벌위주 지식위주 경력위주로 인재를 등용하기도 하지만 경쟁률이 치열한 도시에서의 취업전쟁은 많은 인재들이 더욱더 많은 실력과 더욱더 능숙한 외국어 실력으로인해서 인재등용에 있어서의 그 기본이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곳을 내자리로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고 또한 노력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인정받을수있겠지 하는 조금은 막연한 생각으로 이력서를 제출해보려는 것이다.
살면서 미친 듯이 무언가에 열중하며 사는 것 역시도 나의 하나의 바램이다.
그게 무엇이 되든 무슨일이든 옳다고 생각되는것에는 미친듯한 열정을 불어넣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얼마만큼의 이득을 드릴지는 장담할순없지만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겠다는 남들이 다하는 말정도는 자신있게 할 수 있다. 또한 정직하고 성실하게 임하겠다는것도 자신있게 말씀드릴수 있다.
무슨일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야에서는 인정받을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희망을 가지면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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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3)
제목하구 너무 멀리까지 달려나가신것 같네여
다음부터 좀 짧께 쓰주구려~쫌 눈이 안아프게! 그럼 따라나니메 리플쫌 달께 씨리~ㅎㅎㅎ

읽는사람두 생각해서 적어줫으면
그렇게 주루룩 적어놓으면
재미잇는이야기도 읽고싶은생각없지요
면접에 자아소개도 간단명료하게
읽어보고인츰 알기쉽게 적는것이
포인트의 하나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