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2년 9월 일본땅에 발을 내딛었다.
할 일도 없이 날마다 길거리를 헤매는 날이 일주일 정도 계속되였다.
친구의 친구소개로 나는 처음으로 바이트하게 나가게 되였다.
콘테나의 짐을 부리는 일이였다. 우리를 데리고 간 보스는 조선족이였다.
나른 제외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한족이였다. 일이년 지났것만 일어는 잘 못하는 애들 같았다.
일시작해 얼마안되니 말그대로 물병아리가 되여버렷다.
점심이 되여 보스가 야끼니끄점에 데리고 갔다.
일본와서 처을 먹어보는 신선한 소고기였다.
보스가 자기 사라의 고기 한점을 내 사라에 놓는다.
코가 찡^^^해났다. 일본오기전에는 고기 한점에 감동될지는 꿈에도 생각못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날 하루 나의 규료는 한족애들의 배나 되였다.
난 그럭저럭 콘테나를 한 두달 정도 하였다.
지금도 힘든 일 하고나면 허리가 아프다.
그만큼 콘테나는 필만 들고 씨름하던 나에게는 힘드는 일이였다.
(계속)
할 일도 없이 날마다 길거리를 헤매는 날이 일주일 정도 계속되였다.
친구의 친구소개로 나는 처음으로 바이트하게 나가게 되였다.
콘테나의 짐을 부리는 일이였다. 우리를 데리고 간 보스는 조선족이였다.
나른 제외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한족이였다. 일이년 지났것만 일어는 잘 못하는 애들 같았다.
일시작해 얼마안되니 말그대로 물병아리가 되여버렷다.
점심이 되여 보스가 야끼니끄점에 데리고 갔다.
일본와서 처을 먹어보는 신선한 소고기였다.
보스가 자기 사라의 고기 한점을 내 사라에 놓는다.
코가 찡^^^해났다. 일본오기전에는 고기 한점에 감동될지는 꿈에도 생각못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날 하루 나의 규료는 한족애들의 배나 되였다.
난 그럭저럭 콘테나를 한 두달 정도 하였다.
지금도 힘든 일 하고나면 허리가 아프다.
그만큼 콘테나는 필만 들고 씨름하던 나에게는 힘드는 일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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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4)
ㅎㅎㅎ 암튼 힘든 일 잘 이겨내셨네요..
계속 힘내세요~
계속 힘내세요~
순 댈씽이구먼.....
운 좋은분이시네요,
좋은사람 만나서,,,,,,
다음편 기대,,
좋은사람 만나서,,,,,,
다음편 기대,,

다음은 어떻게 될가요???
ㅎㅎㅎ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