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일기 10 - 새로운 출발
새로운 환경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마치 깜깜한 닭알속에서 21일 잠자고 있다가
껍질을 뚫고 나와 푸른 나무잎과 눈부신 태양을 본 햇병아리처럼, 나에게는
모든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 새로운 환경 ]
동경에서만 3년동안 살았던 나는 일본은 어디로가나 동경과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했다.
김밥처럼 붐비는 전철역, 5분이 멀다하게 왔다갔다하는 전차, 깨끗하고 아담한 좁은 길들,
24시간 잠잘줄 모르는 번화한 거리, 숨막히는 높고 비좁은 건물들, 명절날의 인산인해...
하지만 당연할거라고 생각했던 동경의 모습들은 어느새 회색추억으로 되고말았다.
두 바구니만 달랑달랑 다니는 전철, 그것도 20분간격으로 한번씩! 동경에서는 사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활짝 트인 길들과 넓은 주차장들, 저녁 8시가 넘으면 깜깜해지는 마을들,
항상 조용함과 아늑함이 감도는 길목, 길옆에 볼 수 있는 남새밭과 논밭... 도시의 중간을
유유히 흘러지나는 넓은 강, 푸른잔디가 소복히 담겨있는 포근한 강뚝, 높은 건물이 막혀있지
않아 머리를 들지 않고도 볼 수 있는 푸르른 하늘과 하얀 구름, 맑고 푸른 해수욕장, 하늘과
바다가 붙어있는 바다의 저쪽 끝에서 왔다갔다 하는 만경봉호...
태어나서 첨으로 보는 너무나 아름답고 신기한 고장이었다.
[ 신의 사랑 ]
나는 신에게 감사했다. 나는 단지 내가 일하고 밥 먹을 수 있는 직장 하나를 구했을 뿐인데
신께서는 나에게 좋은 직장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푸른바다와 시원한 공기와 즐거운 인생도
선물해주셨다. ^^
20몇년동안 바다를 구경도 못하며 자라온 내가 첨으로 바닷가에가서 돌 틈새에서 볕쪼임을
하는 신기한 동물(게)을 발견했을 때의 그 심정을 어떻게 묘사하랴! 어린이처럼 퐁당퐁당 뛰며
그물로 한마리 잡아서 땅위에 놓았을 때 정말 교과서에서처럼 옆으로 기어가는 그 신기한 동물을
보았을 때 나의 심정을 어떻게 묘사하랴... 푸르른 바다, 하얀 모래, 시원한 바람.... 이제는
일년에 한번이 아니라 가고싶으면 하루라도 몇번씩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끝없는 바다를 보았을 때
나의 심정은 어떠했으랴!! 시원한 공기, 유유한 강물, 넓은 다리... 그 위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신께서 주신 황홀한 선물의 기쁨에 함빡 젖어있는 나의 모습은 또 어떠했으랴... 끝없는 바다위에 비낀
황홀한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부드러운 모래위에서 친구들과 고함치며
떠들며 뛰어다닐 때 그 기쁨 또 어떠했으랴...
두달도 안되는 사이에, 취직을 하면서 쓰라린 하루하루를 지나면서 상상도 못했던 생활이 드디어
나의 앞에 활짝 펼쳐졌다. 마치 깜깜한 닭알속에서 21일동안 잠 자던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순간 한눈에 안겨오는 황홀한 세상의 모습처럼...
집에서 10분정도(걸어서)밖에 떨어지지 않는 회사에서 일하게 될수 있다는 현실 ... 매일매일 그토록
좋아하는 바다와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현실, 넓은 길 시원한 공기 유유한 강물 푸르른 곡식들과 함께하는
자연의 도시에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현실... 이 모든것이 이제는 실현되어 있는 현실이었다. 우연한
것 처럼, 하지만 시계부속품처럼 계획있게 정확하게 나에게 열려진 새로운 세상... 신의 놀라운 사랑의
손길이 없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들, 두달만에 나에게 기적같이 열렸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직장 ]
회사의 이름은 TokyoApplicationSystem이었으며 동경에 본사를 가지고 있고 니이가다에 가장 큰
규모의 분사를 가지고 있었다. 회사는 6층짜리 빌딩이었으며, 종업원 80명이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 ERP의 충격 ]
회사의 시스템은 나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모든 것들이 전자시스템으로 진행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3년간 동경에서 직장생활을 한 나였지만 그 것을 체험하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 이게 바로 ERP였구나.. 라는 감탄이 자기절로 나왔다. 여태껏 ERP라는 단어를 말만 들어왔지 본적도
경험한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자화 시스템은 참으로 편리하고 신속했다. 층계를 오르고 내리거나 전화를 쳐서 일일이 서두를
필요없이 제자리에 않아서 거의 모든 통지, 행사, 신청 등 업무들을 진행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자화시스템은 거의 회사의 모든 분야의 모든 진척, 회의, 결정등 분야를 덮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게시판이나 전자메일이 아니라 하나의 종합된, 입체적인 영혼이었다. 회사의 방대한 정보,
영활한 업무처리, 신속한 커뮤니케이션 등이 이런 방식으로 융합되어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종이는 거의 필요가 없었고, 회사원에게는 회사전체가 투명해진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맑은 물 속에서
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을 보는것 처럼, 사원 한명한명의 신상, 프로잭트, 진척, 스케쥴이 완전히 공개되어
있으며 심지어 사장의 스케쥴과 출퇴근 기록마저도 볼 수가 있었다. ^^ 개발팀 내부의 연락은 거의 모두
실시간으로 진행이 되었고, 멀리 있는 동경본사와 중국의 개발자들과도 MSN을 통하여 실시간 연락을 하고 있었다.
[ 기업의 문화 ]
회사를 많이 다녀보지 못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회사마다 각자의 문화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매일 아침 9시에 조회를 한다. 한개 층의 사람들이 돌아가며 한주간씩 조회담당을 한다. 그리고
매 주 월요일 아침 9시에는 3층 회의실에서 전체회사의 조회가 있었다. 회사의 령도층들이 나와서
한주가 열심히 하자면서 바람을 넣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매 달 달말에는 정례회가 있었다. 한달간의
회사의 경제상황을 공개하고, 사장으로부터의 메세지가 전달된다. 회사의 행사들은 심장박동을 하는 것
처럼 일정한 주기로 이벤트가 열렸으며, 그 속에서 각자의 심정과 생각방식이 전달되어 하나의 융합된
회사전체적인 분위기로 응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모든 업무는 팀이라는 단위로 진척이 되었으며, 개개인의 임무와 목표가 명확했다. 또 그 성과에 의하여
개개인의 가치가 평가되었는데 이것이 개인에게 주는 압력은 만만하지 않았다. 아직 구체적으로 담당한
프로잭트가 없었지만 이미 그러한 압력을 느낄수가 있을 정도였다.
내가 있는 4층 개발실에는 약 20명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20대 후반으로부터 30대 초반의
중청년들이었다. 이제는 가정도 이루고, 한창 사업에서 젊은시절 닦아왔던 기술과 능력을 활용해서
크다란 발전을 하게 되는 나이들인것이다. 그래서인지 분위기는 아주 활약했다. 20대초반의 들뜬
충동도 없고, 40대들의 엄숙함도 없고, 우스개와 농담을 하면서도 일을 착실하게 해나갈 수 있는
좋은 나이들인것이었다.
[ 시대의 흐름 ]
회사에 들어가서 한주동안 전자시스템속에서 회사의 역사와 정보들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내가 알지 못했던 회사의 흐름을 조금씩 알아볼 수가 있었다. TASC는 2년전부터 중국측과의
합작을 해왔지만 순리롭지가 못했다. 와타나베라는 일본인이 중국회사에 거주하면서 중국<->일본의
업무를 총관리 해 왔지만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했던 것 같았다. 그러다가 금년도 7월달부터는
와타나베를 중국에서 철거하고 대신 프로잭트 담당자가 직접 중국측의 담당자와 연계하는 방식으로
변화되기 시작되었던 것이다.
회사내부의 게시판에중국인 SE 배양에 관한 내용이 3월달에 싣겨 있었던걸 봐서는
회사측에서의 흐름이 바뀌어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품질관리과의 일본인과
한담을 통하여 중국에 대한 합작의 영역을 더욱 넓힐 계획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내가 취직을 시작한 시기와 회사에서 한창 열심히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시기가 묘하게 겹쳤다는 것, 이게 바로 신께서 지정해 준 시기가 아닌가 싶었다.
회사가 나에게 대한 기대치가 상당히 큼을 느꼈다. 중국어도 알고 있고, 일본어도 통하고,
3년간의 일본 IT업계의 경험을 몸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아직 감당하기 어려운
임무였지만 충분히 인기있는 도전이었다. 나의 재능을 활용해서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성경의 말이 생각났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계절에 맞추어 꽃을 피운다\" 라고..
(똑같지는 않지만 대개 같은 뜻인것 같다.) 내가 성경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중의 하나였다.
인생에는 역시 흐름과 시기라는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역사책속에 시기를 잘못
태어나 인생을 한탄하는 인재들이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승인하건 부인하건
기회와 흐름이라는 것은 확실히 우리의 인생을 영향줄 만큼 크다만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운\"이 좋은 사람들이란 바로 알게 모르게 그러한 흐름에 맞추어 준비하고 잡고 발전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 새로운 도전 ]
새로운 환경이 가져다 주는 발전의 길은 넓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도전 또한 만만하지
않았다. 특히 데이타베이스 분야에 전혀 업무경력이 없는 나에게 내려진 임무가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정말 참지 못할것 같을 때도 있었다. 나보고 이틀사이에 Oracle의
3000줄짜리 PL/SQL 프로그램을 수개하라고 했을 때, 그리고 이틀동안 정신없이 책을 읽고
배우고 해서 겨우 프로그램을 요구대로 수개하자 이번에는 하루동안에 복잡한 임무를 완성하는
프로그램을 짜라고 했을 때... 그 압력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신없이
달라붙어 노력한 결과로 완벽하게 잘 돌아가는 500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
첫 한달은 정말로 시련의 연속이었다. 경험하지도 못했던 CrystalReport, ObjectBrowser,
MetaFrame, Spread .... 덕분에 나의 진전은 아주 빨랐다. 이때까지 태어나서 경험한 적이
없는 빠른 속도로 나는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기술들을 익힐 수가 있었다.
상사는 약 30대초반의 물병사리였다. 분석하기 좋아하고 활동하기 좋아하는 성격이었으며
농담을 잘 했다. 분위기가 아주 활약적이고 냉철한 별자리였다. 나 역시 물병사리였기
때문에 같은 물병사리 상사와의 접촉은 아주 순리로왔다. 상사의 성격과 심리변화는 이미
나의 장악중에 있기 때문이다. ㅋㅋㅋ ^^
직장 첫 날에 상사는 나보고 SE의 역할이 뭔지를 아느냐고 물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것대로 \"프로잭트를 어떻게 개발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상사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 SE는 \"시간과, 자원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프로잭트를 완성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같은 물병사리였지만 상사에 비하면 나는 아직 자그마한 물병사리였다. 나에게는 아직도
배워야 할게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SE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학습과 경험을 쌓아야
함을 느꼈다.
일본인을 관리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특히 여태껏 3년동안 관리만 당하면서 일해온 내가
갑자기 일본인을 관리하라는 것은 아름찼다. 더우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언어였는데 나의
서투른 일본어로 일본인에게 지시를 내린다는 것은 꽤 도전성이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일본인동료는 인내심있게 끝까지 들어주었으며 가끔씩 나의 어슬픈 일본어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지시대로 열심히 임무를 완성하기에 힘써줘서 고마웠다.
점심시간이랑은 동료들과 같이 차를 몰고 니이가다시의 여기저기 괜찮다는 요리집을 찾아다니며
식사를 했다. 당연히 여러가지 한담을 하게 되는데 그것마저도 나에게는 쉽지가 않았다. 성장한
환경과 문화배경이 달랐기에 자주 오해가 발생했고, 재미있게 농담을 한마디 했는데도
때로는 동료들이 엄숙하게 받아들이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화제도 많이 달랐다. 그들의 화제는
주로 차, 골프, 야구, 여자, 해외여행 등이었다. 여태껏 자전거밖에 몰아보지 못하고, 골프대는
만져본적도 없고, 야구는 구경해도 뭐가 뭔지 모르는 나에게는 그들의 말에 같이 동참하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그리고 문화와 습관과 민족의 문제도 만만하지가 않았다. 전 회사에 외국인이라고는 나밖에
없다보니 많은 경우 그들에게는 아무런 어려움이 아니지만 나에게는 어려움과 갈등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연회석에서랑, 술상에서랑, 그리고 회사내의 전화를 받고 하는데서랑...
습관과 문화가 다르다보니 말의 뜻이 빗나가 틀리게 접수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실례를
범한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때로는 당돌한 질문을 받아서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어떤때는
민족적인 갈등을 느낄때도 있었다. 조선과 중국을 침략한 민족에게 과연 내가 이렇게 잘 대해줘도
되는가 하는 자책감을 가질때도 있었다.... 과연 내가 여기서 노력을 하여 어느정도 발전할 수
있을지 근심해본적도 없지 않다. 필경 같지 않은 핏줄을 가지고 있고 같지 않은 환경속에서
성장해왔으니깐...
[ 열리는 앞길 ]
회사가 나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컸다. 부장과 과장으로부터도 많은 당부를 받아왔다.
잘 해서 앞으로 보다 많은 프로잭트를 중국과 합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럴때마다
나는 가슴이 부풀어오는 느낌과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2년동안
어려움속에서 유지해온 이 관계가 나의 참석으로 인하여 활성화 될 수가 있을가? 그들이
희망한것처럼 보다 많은 프로잭트를 중국측과의 합작의 영역으로 확대시킬 수 있을가?
여러가지 문화적인 차이와 사고방식의 차이와 사업방식의 차이속에서 과연 나의 능력으로
이러한 어려움들을 뛰어넘어 새롭게 열어지는 시대를 개척해갈 수 있을가? 도전해보자는
생각은 불 같이 뜨겁지만 열정만으로 해 갈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보다 깊은
차원에서, 보다 높고 먼 의식으로 실력을 쌓아가며 차곡차곡 열어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앞으로 중국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고, 아세아지역의 합작과 교류는 더욱 많이 활발해
질것이다. 그리고 중소기업의 성장과 인터넷의 보편화로 인하여 인터넷 분야, 데이타베이스
분야는 각광을 받게 되는 분야라고 생각된다. 신의 은혜로 인하여 마침 좋은 기회를 잡아탔지만
아직은 락관적일 때가 아니었다. 앞길이 열리고 있는건 확실했지만 만약 노력을 하지 않고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그 문은 나를 통과시켜주지 않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노력을 배로 해야 했다.
앞으로의 시대는 황홀했다. 그 가운데서도 나는 출장이라는 기회에 집에 들릴수 있고
부모님과 만날 수 있다는데서 아주 기뻤다.^^ 새삼스레 생각해보면 나는 자신이 참새
한마리나 다름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벼 한 알에도 기뻐하고, 이슬 한방울에도 목을
추기며 작은 수림속에서 일생을 보내는 자그만 참새라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과 한국의
발전, 아시아의 발전은 볼 줄 모르고, 그저 자기의 자그마한 진보와 발전에 만족해서
기뻐하는 나의 모습이 자신이 보기에도 우습고 재미있었다. ^^
[ 깨달음 ]
취직활동은 순리롭게 끝났고, 새로운 회사에서 나의 생활도 점차 규칙적으로 되었다.
두달동안 고민과 아픔과 기쁨과 격동의 나날을 겪어 \"취직\"이라는 목적에 이르렀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이제 끝이 난게 아니라 이제부터 모든게 시작이었다.
인생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무수한 새로운 \"출발\"뿐이었다. 때문에
우리의 인생에는 실패와 성공도 없었다. 실패나 성공이나 모두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취직이 이국타향 생활의 종점이 아니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성공으로 연결된 중요한
고리였다. 오늘의 성공이 곧 래일의 성공이며, 오늘의 행복이 곧 래일의 행복이다. 래일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늘을 성공적으로 보내야 하며, 래일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게 중요했다.
인생이란 언젠가 다시 지치고 쓰러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다시금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일어나야 함을 깨달았다. 인생은 성공도, 실패도 없다.
있는 것은 단지 끝없이 이어진 도전과 실천뿐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하루하루
속에서 진정한 자신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고,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며, 신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고, 심령의 성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 다음편에 계속 --
드디어 10편까지 완성했습니다. 휴~ 마음이 활 놓입니다.
이제 한편 더 추가해서 이 문장을 완성해오면서, 그동안 경험과 마음을
정리해보면서 느껴왔던 것을 적어볼가 합니다. 다음편은 이번 \"취직일기\"의
마지막 편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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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취직일기 10 - 새로운 출발
# 작성자: 배상봉
# 작성일: 2004년 7월 29일 (금요일)
#
# 본문의 이야기가 발생한 기간: 2004년 3월말 ~ 2004년 6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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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환경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마치 깜깜한 닭알속에서 21일 잠자고 있다가
껍질을 뚫고 나와 푸른 나무잎과 눈부신 태양을 본 햇병아리처럼, 나에게는
모든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 새로운 환경 ]
동경에서만 3년동안 살았던 나는 일본은 어디로가나 동경과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했다.
김밥처럼 붐비는 전철역, 5분이 멀다하게 왔다갔다하는 전차, 깨끗하고 아담한 좁은 길들,
24시간 잠잘줄 모르는 번화한 거리, 숨막히는 높고 비좁은 건물들, 명절날의 인산인해...
하지만 당연할거라고 생각했던 동경의 모습들은 어느새 회색추억으로 되고말았다.
두 바구니만 달랑달랑 다니는 전철, 그것도 20분간격으로 한번씩! 동경에서는 사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활짝 트인 길들과 넓은 주차장들, 저녁 8시가 넘으면 깜깜해지는 마을들,
항상 조용함과 아늑함이 감도는 길목, 길옆에 볼 수 있는 남새밭과 논밭... 도시의 중간을
유유히 흘러지나는 넓은 강, 푸른잔디가 소복히 담겨있는 포근한 강뚝, 높은 건물이 막혀있지
않아 머리를 들지 않고도 볼 수 있는 푸르른 하늘과 하얀 구름, 맑고 푸른 해수욕장, 하늘과
바다가 붙어있는 바다의 저쪽 끝에서 왔다갔다 하는 만경봉호...
태어나서 첨으로 보는 너무나 아름답고 신기한 고장이었다.
[ 신의 사랑 ]
나는 신에게 감사했다. 나는 단지 내가 일하고 밥 먹을 수 있는 직장 하나를 구했을 뿐인데
신께서는 나에게 좋은 직장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푸른바다와 시원한 공기와 즐거운 인생도
선물해주셨다. ^^
20몇년동안 바다를 구경도 못하며 자라온 내가 첨으로 바닷가에가서 돌 틈새에서 볕쪼임을
하는 신기한 동물(게)을 발견했을 때의 그 심정을 어떻게 묘사하랴! 어린이처럼 퐁당퐁당 뛰며
그물로 한마리 잡아서 땅위에 놓았을 때 정말 교과서에서처럼 옆으로 기어가는 그 신기한 동물을
보았을 때 나의 심정을 어떻게 묘사하랴... 푸르른 바다, 하얀 모래, 시원한 바람.... 이제는
일년에 한번이 아니라 가고싶으면 하루라도 몇번씩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끝없는 바다를 보았을 때
나의 심정은 어떠했으랴!! 시원한 공기, 유유한 강물, 넓은 다리... 그 위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신께서 주신 황홀한 선물의 기쁨에 함빡 젖어있는 나의 모습은 또 어떠했으랴... 끝없는 바다위에 비낀
황홀한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부드러운 모래위에서 친구들과 고함치며
떠들며 뛰어다닐 때 그 기쁨 또 어떠했으랴...
두달도 안되는 사이에, 취직을 하면서 쓰라린 하루하루를 지나면서 상상도 못했던 생활이 드디어
나의 앞에 활짝 펼쳐졌다. 마치 깜깜한 닭알속에서 21일동안 잠 자던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순간 한눈에 안겨오는 황홀한 세상의 모습처럼...
집에서 10분정도(걸어서)밖에 떨어지지 않는 회사에서 일하게 될수 있다는 현실 ... 매일매일 그토록
좋아하는 바다와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현실, 넓은 길 시원한 공기 유유한 강물 푸르른 곡식들과 함께하는
자연의 도시에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현실... 이 모든것이 이제는 실현되어 있는 현실이었다. 우연한
것 처럼, 하지만 시계부속품처럼 계획있게 정확하게 나에게 열려진 새로운 세상... 신의 놀라운 사랑의
손길이 없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들, 두달만에 나에게 기적같이 열렸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직장 ]
회사의 이름은 TokyoApplicationSystem이었으며 동경에 본사를 가지고 있고 니이가다에 가장 큰
규모의 분사를 가지고 있었다. 회사는 6층짜리 빌딩이었으며, 종업원 80명이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 ERP의 충격 ]
회사의 시스템은 나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모든 것들이 전자시스템으로 진행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3년간 동경에서 직장생활을 한 나였지만 그 것을 체험하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 이게 바로 ERP였구나.. 라는 감탄이 자기절로 나왔다. 여태껏 ERP라는 단어를 말만 들어왔지 본적도
경험한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자화 시스템은 참으로 편리하고 신속했다. 층계를 오르고 내리거나 전화를 쳐서 일일이 서두를
필요없이 제자리에 않아서 거의 모든 통지, 행사, 신청 등 업무들을 진행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자화시스템은 거의 회사의 모든 분야의 모든 진척, 회의, 결정등 분야를 덮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게시판이나 전자메일이 아니라 하나의 종합된, 입체적인 영혼이었다. 회사의 방대한 정보,
영활한 업무처리, 신속한 커뮤니케이션 등이 이런 방식으로 융합되어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종이는 거의 필요가 없었고, 회사원에게는 회사전체가 투명해진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맑은 물 속에서
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을 보는것 처럼, 사원 한명한명의 신상, 프로잭트, 진척, 스케쥴이 완전히 공개되어
있으며 심지어 사장의 스케쥴과 출퇴근 기록마저도 볼 수가 있었다. ^^ 개발팀 내부의 연락은 거의 모두
실시간으로 진행이 되었고, 멀리 있는 동경본사와 중국의 개발자들과도 MSN을 통하여 실시간 연락을 하고 있었다.
[ 기업의 문화 ]
회사를 많이 다녀보지 못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회사마다 각자의 문화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매일 아침 9시에 조회를 한다. 한개 층의 사람들이 돌아가며 한주간씩 조회담당을 한다. 그리고
매 주 월요일 아침 9시에는 3층 회의실에서 전체회사의 조회가 있었다. 회사의 령도층들이 나와서
한주가 열심히 하자면서 바람을 넣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매 달 달말에는 정례회가 있었다. 한달간의
회사의 경제상황을 공개하고, 사장으로부터의 메세지가 전달된다. 회사의 행사들은 심장박동을 하는 것
처럼 일정한 주기로 이벤트가 열렸으며, 그 속에서 각자의 심정과 생각방식이 전달되어 하나의 융합된
회사전체적인 분위기로 응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모든 업무는 팀이라는 단위로 진척이 되었으며, 개개인의 임무와 목표가 명확했다. 또 그 성과에 의하여
개개인의 가치가 평가되었는데 이것이 개인에게 주는 압력은 만만하지 않았다. 아직 구체적으로 담당한
프로잭트가 없었지만 이미 그러한 압력을 느낄수가 있을 정도였다.
내가 있는 4층 개발실에는 약 20명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20대 후반으로부터 30대 초반의
중청년들이었다. 이제는 가정도 이루고, 한창 사업에서 젊은시절 닦아왔던 기술과 능력을 활용해서
크다란 발전을 하게 되는 나이들인것이다. 그래서인지 분위기는 아주 활약했다. 20대초반의 들뜬
충동도 없고, 40대들의 엄숙함도 없고, 우스개와 농담을 하면서도 일을 착실하게 해나갈 수 있는
좋은 나이들인것이었다.
[ 시대의 흐름 ]
회사에 들어가서 한주동안 전자시스템속에서 회사의 역사와 정보들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내가 알지 못했던 회사의 흐름을 조금씩 알아볼 수가 있었다. TASC는 2년전부터 중국측과의
합작을 해왔지만 순리롭지가 못했다. 와타나베라는 일본인이 중국회사에 거주하면서 중국<->일본의
업무를 총관리 해 왔지만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했던 것 같았다. 그러다가 금년도 7월달부터는
와타나베를 중국에서 철거하고 대신 프로잭트 담당자가 직접 중국측의 담당자와 연계하는 방식으로
변화되기 시작되었던 것이다.
회사내부의 게시판에중국인 SE 배양에 관한 내용이 3월달에 싣겨 있었던걸 봐서는
회사측에서의 흐름이 바뀌어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품질관리과의 일본인과
한담을 통하여 중국에 대한 합작의 영역을 더욱 넓힐 계획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내가 취직을 시작한 시기와 회사에서 한창 열심히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시기가 묘하게 겹쳤다는 것, 이게 바로 신께서 지정해 준 시기가 아닌가 싶었다.
회사가 나에게 대한 기대치가 상당히 큼을 느꼈다. 중국어도 알고 있고, 일본어도 통하고,
3년간의 일본 IT업계의 경험을 몸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아직 감당하기 어려운
임무였지만 충분히 인기있는 도전이었다. 나의 재능을 활용해서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성경의 말이 생각났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계절에 맞추어 꽃을 피운다\" 라고..
(똑같지는 않지만 대개 같은 뜻인것 같다.) 내가 성경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중의 하나였다.
인생에는 역시 흐름과 시기라는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역사책속에 시기를 잘못
태어나 인생을 한탄하는 인재들이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승인하건 부인하건
기회와 흐름이라는 것은 확실히 우리의 인생을 영향줄 만큼 크다만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운\"이 좋은 사람들이란 바로 알게 모르게 그러한 흐름에 맞추어 준비하고 잡고 발전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 새로운 도전 ]
새로운 환경이 가져다 주는 발전의 길은 넓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도전 또한 만만하지
않았다. 특히 데이타베이스 분야에 전혀 업무경력이 없는 나에게 내려진 임무가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정말 참지 못할것 같을 때도 있었다. 나보고 이틀사이에 Oracle의
3000줄짜리 PL/SQL 프로그램을 수개하라고 했을 때, 그리고 이틀동안 정신없이 책을 읽고
배우고 해서 겨우 프로그램을 요구대로 수개하자 이번에는 하루동안에 복잡한 임무를 완성하는
프로그램을 짜라고 했을 때... 그 압력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신없이
달라붙어 노력한 결과로 완벽하게 잘 돌아가는 500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
첫 한달은 정말로 시련의 연속이었다. 경험하지도 못했던 CrystalReport, ObjectBrowser,
MetaFrame, Spread .... 덕분에 나의 진전은 아주 빨랐다. 이때까지 태어나서 경험한 적이
없는 빠른 속도로 나는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기술들을 익힐 수가 있었다.
상사는 약 30대초반의 물병사리였다. 분석하기 좋아하고 활동하기 좋아하는 성격이었으며
농담을 잘 했다. 분위기가 아주 활약적이고 냉철한 별자리였다. 나 역시 물병사리였기
때문에 같은 물병사리 상사와의 접촉은 아주 순리로왔다. 상사의 성격과 심리변화는 이미
나의 장악중에 있기 때문이다. ㅋㅋㅋ ^^
직장 첫 날에 상사는 나보고 SE의 역할이 뭔지를 아느냐고 물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것대로 \"프로잭트를 어떻게 개발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상사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 SE는 \"시간과, 자원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프로잭트를 완성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같은 물병사리였지만 상사에 비하면 나는 아직 자그마한 물병사리였다. 나에게는 아직도
배워야 할게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SE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학습과 경험을 쌓아야
함을 느꼈다.
일본인을 관리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특히 여태껏 3년동안 관리만 당하면서 일해온 내가
갑자기 일본인을 관리하라는 것은 아름찼다. 더우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언어였는데 나의
서투른 일본어로 일본인에게 지시를 내린다는 것은 꽤 도전성이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일본인동료는 인내심있게 끝까지 들어주었으며 가끔씩 나의 어슬픈 일본어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지시대로 열심히 임무를 완성하기에 힘써줘서 고마웠다.
점심시간이랑은 동료들과 같이 차를 몰고 니이가다시의 여기저기 괜찮다는 요리집을 찾아다니며
식사를 했다. 당연히 여러가지 한담을 하게 되는데 그것마저도 나에게는 쉽지가 않았다. 성장한
환경과 문화배경이 달랐기에 자주 오해가 발생했고, 재미있게 농담을 한마디 했는데도
때로는 동료들이 엄숙하게 받아들이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화제도 많이 달랐다. 그들의 화제는
주로 차, 골프, 야구, 여자, 해외여행 등이었다. 여태껏 자전거밖에 몰아보지 못하고, 골프대는
만져본적도 없고, 야구는 구경해도 뭐가 뭔지 모르는 나에게는 그들의 말에 같이 동참하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그리고 문화와 습관과 민족의 문제도 만만하지가 않았다. 전 회사에 외국인이라고는 나밖에
없다보니 많은 경우 그들에게는 아무런 어려움이 아니지만 나에게는 어려움과 갈등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연회석에서랑, 술상에서랑, 그리고 회사내의 전화를 받고 하는데서랑...
습관과 문화가 다르다보니 말의 뜻이 빗나가 틀리게 접수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실례를
범한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때로는 당돌한 질문을 받아서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어떤때는
민족적인 갈등을 느낄때도 있었다. 조선과 중국을 침략한 민족에게 과연 내가 이렇게 잘 대해줘도
되는가 하는 자책감을 가질때도 있었다.... 과연 내가 여기서 노력을 하여 어느정도 발전할 수
있을지 근심해본적도 없지 않다. 필경 같지 않은 핏줄을 가지고 있고 같지 않은 환경속에서
성장해왔으니깐...
[ 열리는 앞길 ]
회사가 나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컸다. 부장과 과장으로부터도 많은 당부를 받아왔다.
잘 해서 앞으로 보다 많은 프로잭트를 중국과 합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럴때마다
나는 가슴이 부풀어오는 느낌과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2년동안
어려움속에서 유지해온 이 관계가 나의 참석으로 인하여 활성화 될 수가 있을가? 그들이
희망한것처럼 보다 많은 프로잭트를 중국측과의 합작의 영역으로 확대시킬 수 있을가?
여러가지 문화적인 차이와 사고방식의 차이와 사업방식의 차이속에서 과연 나의 능력으로
이러한 어려움들을 뛰어넘어 새롭게 열어지는 시대를 개척해갈 수 있을가? 도전해보자는
생각은 불 같이 뜨겁지만 열정만으로 해 갈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보다 깊은
차원에서, 보다 높고 먼 의식으로 실력을 쌓아가며 차곡차곡 열어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앞으로 중국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고, 아세아지역의 합작과 교류는 더욱 많이 활발해
질것이다. 그리고 중소기업의 성장과 인터넷의 보편화로 인하여 인터넷 분야, 데이타베이스
분야는 각광을 받게 되는 분야라고 생각된다. 신의 은혜로 인하여 마침 좋은 기회를 잡아탔지만
아직은 락관적일 때가 아니었다. 앞길이 열리고 있는건 확실했지만 만약 노력을 하지 않고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그 문은 나를 통과시켜주지 않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노력을 배로 해야 했다.
앞으로의 시대는 황홀했다. 그 가운데서도 나는 출장이라는 기회에 집에 들릴수 있고
부모님과 만날 수 있다는데서 아주 기뻤다.^^ 새삼스레 생각해보면 나는 자신이 참새
한마리나 다름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벼 한 알에도 기뻐하고, 이슬 한방울에도 목을
추기며 작은 수림속에서 일생을 보내는 자그만 참새라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과 한국의
발전, 아시아의 발전은 볼 줄 모르고, 그저 자기의 자그마한 진보와 발전에 만족해서
기뻐하는 나의 모습이 자신이 보기에도 우습고 재미있었다. ^^
[ 깨달음 ]
취직활동은 순리롭게 끝났고, 새로운 회사에서 나의 생활도 점차 규칙적으로 되었다.
두달동안 고민과 아픔과 기쁨과 격동의 나날을 겪어 \"취직\"이라는 목적에 이르렀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이제 끝이 난게 아니라 이제부터 모든게 시작이었다.
인생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무수한 새로운 \"출발\"뿐이었다. 때문에
우리의 인생에는 실패와 성공도 없었다. 실패나 성공이나 모두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취직이 이국타향 생활의 종점이 아니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성공으로 연결된 중요한
고리였다. 오늘의 성공이 곧 래일의 성공이며, 오늘의 행복이 곧 래일의 행복이다. 래일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늘을 성공적으로 보내야 하며, 래일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게 중요했다.
인생이란 언젠가 다시 지치고 쓰러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다시금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일어나야 함을 깨달았다. 인생은 성공도, 실패도 없다.
있는 것은 단지 끝없이 이어진 도전과 실천뿐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하루하루
속에서 진정한 자신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고,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며, 신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고, 심령의 성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 다음편에 계속 --
드디어 10편까지 완성했습니다. 휴~ 마음이 활 놓입니다.
이제 한편 더 추가해서 이 문장을 완성해오면서, 그동안 경험과 마음을
정리해보면서 느껴왔던 것을 적어볼가 합니다. 다음편은 이번 \"취직일기\"의
마지막 편이 될것 같습니다.
##############################################################
# 제 목: 취직일기 10 - 새로운 출발
# 작성자: 배상봉
# 작성일: 2004년 7월 29일 (금요일)
#
# 본문의 이야기가 발생한 기간: 2004년 3월말 ~ 2004년 6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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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4)
따뜻한 손 아뒤분이 배상봉 님이신가 보죠?
꽃망울에서 이름을 들어본것 같은데요... 맞죠?
(꽃망울에는 영 엣날에 좀 들려봣어요)
체험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요즘은 이국타향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조선족 동포분들... 많이 궁금햇었거든요.
그래서 짬짬이 여기두 들려보는거구,,,참고로 여긴 광쩌우 입니다^^
꽃망울에서 이름을 들어본것 같은데요... 맞죠?
(꽃망울에는 영 엣날에 좀 들려봣어요)
체험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요즘은 이국타향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조선족 동포분들... 많이 궁금햇었거든요.
그래서 짬짬이 여기두 들려보는거구,,,참고로 여긴 광쩌우 입니다^^
rladofus님, 감사합니다. ^^
바다와 가까와서 참 좋습니다. 자전거 타고 약 25분정도면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인생이 너무 활홀하다는 기분까지 듭니다. ㅋㅋㅋ
그런제 산죠는 지금 괜찮게 되었는지... 뉴스에서 보니깐 피해가 참 크던데..
무사히 그리고 새롭게 신심과 용기와 행복으로 향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일찍
홍수의 피해속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
hawon님, 반갑습니다. ^^
광쩌우에도 조선족이 많겠네요... 세상 어디에 가든지 항상 서로 돕고 같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조선족들이 아닐가요. 자주 들리시고 광쩌우의 조선족 소식들도
가끔씩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바다와 가까와서 참 좋습니다. 자전거 타고 약 25분정도면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인생이 너무 활홀하다는 기분까지 듭니다. ㅋㅋㅋ
그런제 산죠는 지금 괜찮게 되었는지... 뉴스에서 보니깐 피해가 참 크던데..
무사히 그리고 새롭게 신심과 용기와 행복으로 향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일찍
홍수의 피해속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
hawon님, 반갑습니다. ^^
광쩌우에도 조선족이 많겠네요... 세상 어디에 가든지 항상 서로 돕고 같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조선족들이 아닐가요. 자주 들리시고 광쩌우의 조선족 소식들도
가끔씩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체험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시스템관리에 대해 이정도로 파악하고 있는게 참 놀랍네요~
저 회사에 들어온 거의 반년동안 뭐가뭔지두 모르구 얼떨떨한 기분속에서
지냈는데 ...
오우미라면 니이가다 젤 아래쪽이잖아요,바다가 가까워 좋겠네요,
전 산죠라는곳에 있거든요,금방 홍수땜에 큰 피해를 입었던곳이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