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일기 9 - 이별을 앞둔 나날들

일본체험수기 · #227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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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봉 · 2004-07-27 00:50:25 · 조회 766
취직일기 9 - 이별을 앞둔 나날들

인생은 예측할 수가 없다. 래일은 무슨 바람이 불며 어떤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가 인생은 모험이라고 했다. 격정과 기쁨과
아픔과 슬픔으로 엉켜진 깊은 숲속을 헤치면서 우리는 각자의 리상의 락원을 찾아서
헤메고 있는 것이었다...

[ 돌변하는 인생 ]

채용통지를 받긴 했지만 언제 이사가고 언제 출근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이 없었기에 5월초부터 5월중순까지는 비교적 한가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그 두주간은 내가 아주 궁금해했던 신의 존재,
인생의 윤회, 종교 등에 파묻겨 고민하고 더듬고 깨닫는 아주 흡족한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모든것이 5월 17일 면담이 있은후로부터 돌변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돌아가던 시계바늘이 갑자기 팔랑개비처럼 돌아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6월 1일부터 출근을 하자면 늦어도 이틀전인 5월 30일에는 니이가다로 이사를
가야 했고, 이사를 하기 위해서는 미리 한주전인 5월 23일쯤에는 이사짐센터와
연계를 해서 날자와 비용을 정해야 했다. 그리고 현재 살고있는 집(와라비 도시공단)을
물리기 위해서는 두주전(5월 21일)에 수속을 해야 했고, 그러자면 미리 니이가다의
주소가 확정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사하기 위해서 짐들을 정리해야 했고, 큰
짐들과 가구들에 대해서도 미리 정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중요한것은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것... 하지만 시간이 너무나 짧았고
회사측에서의 통지가 촉박하다보니 각종 수속을 하고, 이사짐센터와 가격 및 날자를
정하고, 짐들을 정리하는데 마음이 지쳐서 일일이 연락할 시간도 없었다.... 시간은
무정하게 하루하루 흘러갔고 큰보따리 작은 보따리들로 쌓여 초라해져가는 집안의 모습을
보면서 또 같이 짐싸기에 수고하는 안해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도 하루하루 여위어갔다.

드디어 5월 21일 금요일(이사하기 딱 한주전)에 회사로부터 통지를 받았고 마음이 조금
안착되었다. 5월 24일 월요일에 이사짐센터에 날자를 잡아놓고, 5월 25일 화요일에는 직접
니이가다로 가서 집 계약을 맺었다.

그리하여 같은 공단에 살고있는 친구들에게 니이가다로 이사를 가게 된다는 확실한 소식을
통지하게 된 것은 바로 5월 21일 ~ 24일 전후 였던것이다.

[ 친구의 의미 ]

니이가다로 간다는 소식에 놀라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취직중이라는 소식은 들었지만
동경을 벗아난다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반응은 너무나 정상적이었다.
장차 동경을 떠나 멀리 니이가다로 가게 될거라고는 나 자신도 예상 못했으니깐...

한 고장이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인정\"이 아닌가 싶다. 부모님이 계시는
집이 나의 마음을 끄는 것은 바로 부모님의 사랑과 그동안 같이 생활해왔던 \"정\"때문인것이다.
동경을 떠나는 것이 이토록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바로 그동안 쌓아왔던 친구들과의
\"우정\"이 아닌가 싶다. 인정이 각박하기로 이름난 동경에서도 우리들이 \"정\"에 메마르지 않고
열심히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같이 모여서 부담없이 술 한잔속에 속심을 털어놓고,
어려움이 있을 때 서로 밀고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

\"집에서는 부모를 의지하고 밖에서는 친구들에게 의지한다\"는 말이 있다. 2001년도 4월
일본이라는 섬에 발을 디디고 나서 연변과기대 동문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중 한 선배의
소개로 \"꽃망울회\"와의 만남, 그 모임을 통하여 \"천지협회\" 및 \"동북아청년련의회\"와의
만남, \"천지협회\"를 통하여 더욱 많은 조선족 선배,후배,로썅들과의 만남, 인터넷을 통하여
\"쉼터\"와 \"느낌닷컴\"의 만남, \"진달래마을\"과의 만남, MSN메신져를 통하여 10년만에 할빈시
조선족제일중동창들과의 만남..... 정든 부모와 고향을 멀리 떠나 바다건너 외로운
이국타향이었지만, 젊은 친구, 늙은 친구, 옛 친구, 새 친구들과의 만남과 교류가 있었기에
3년간의 생활은 격정과 즐거움으로 가득찬 생기있는 나날들이었던 것이다.

친구란 바로 인생 그 자체였다. 마치 가족에서 부모형제와의 관계를 갈라놓을 수 없듯이
사나이가 천하를 집으로 생각하고 타향살이를 하고 있을 때면 친구들이 가족이 되는 것이다.
친구들이 잘 될때면 자신도 기쁘고, 친구들이 어려워할때면 속으로 괴로워하게 되는 것은
바로 친구 역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의 \"나\"였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삶의 모습을 통하여 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웠다. 태산처럼 무거운 빚더미와
마음과 정신을 피곤하게 하는 아르바이트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속에서
나는 \"용기\"라는 것을 배웠고, 자신의 배도 불리지 못하면서 선뜻이 고향의 어린이들을 위해
조학금을 보내주는 모습속에서 \"사랑\"이라는 것을 배웠다. 오랜 세월의  분투를 통하여 끝내
성과를 이루고 일본땅에서도 억세게 생존해가는 선배들의 모습속에서 \"희망\"이라는 것을 배웠고,
몇년을 열심히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피곤함과 어려운 환경속에 빠져 고민하고 있는 선배들의
모습속에서 나는 \"인생\"의 뜻대로 되지 아니함을 깨닫게 되었다...

촉박한 가운데서 날자는 하루하루 건너갔고, 그러한 가운데서 친구들과의 소중한
모임의 시간이 이루어졌다.

[ 동문과의 만남 ]

5월 27일, 집청소를 마치고, 주택공단 관리자로부터 회수검사를 마치고 안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연변과기대 동문 김봉산, 허옥실 부부의 요청으로 그들이 살고 있는 근처의 대만요리집에서
만남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허옥실선배는 대학교 때 같은 전산과의 선배였으며, 일본에 와서도 같은 교회에 다닌적이
있다. 그들 부부는 열심히 다녔지만 나는 중도에서 점차 빼먹다가 지금은 다니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 니이가다로 취직하여 이사를 하게 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축하한다며
꼭 만나자고 해서 이렇게 모임을 가지게 된것이다. 너무나 감사했다.

맥주가 없는 식사였다. 3년간 일본의 맥주에 습관이 되어온 나에게는 신선함을 주는
식사였다. 맛있는 채를 시켜놓고 맥주대신 물을 따라놓고 우리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서로의 현황, 앞으로의 계획, 이번 취직활동의 진전, 기타 동문들의 현황등을 두루두루
이야기 하다가 드디어 서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비록 나 역시 성경을 학습한 적이 있고, 교회를 다닌 역사가 몇년되었지만 신에 대한
관점은 많이 달랐다.

나는 신이란 아주 사라으로 넘치는 분이며, 우리가 죄를 짓든, 살인을 하든, 착한 일을
하든 관계없이 우리를 사랑해주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성경에서처럼 절대로 분노하거나
죄지은 자들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참혹한\"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도 나는 우리에게는 여러차례의 인생이 있다고 믿었다. 우리의 생명은 이번 인생에서
마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생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살게 될거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교회에 가서는 따돌림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상한 생각들이었지만 동문들 앞에서는 부담없이 꺼낼 수 있어서 좋았다. 당연히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치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우리에게는 한번밖에 인생이 없으며, 성경속에
모든 답안이 들어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론은 불교에 가까운 것으로서
크리스챤으로서는 정확하지 않은 생각이라고 나에게 귀뜸해주었다. 하지만 나 역시 생각없이
아무렇게나 말한게 아니었다. 나 역시 오래전부터 고민을 해왔으며, 많은 책들을 읽고
열심히 답을 찾아왔다....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들도 오랫동안의 고민과 체험속에서
깨달아온것이었다...

토론은 치렬했고 입장도 서로 달랐지만 나는 이런 솔직한 토론이 좋았다. 나는 동문들의
신앙에 대하여 탄복을 했다. 솔직히 부러웠다. 항상 흔들리지 않는 굳센 신앙을 가지고
참답게 인생을 살아가는 동문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들과 비겨보면 나의 모습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등잔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에 꺼질가말가하면서 정착된 곳이
없이 좌우로 흔들리는 등잔... 하지만 나는 나의 모습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방황하며 고민하면서 신의 진리를 찾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신은 나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리라~

종교에 대한 토론을 마치고 앞으로의 계획, 애기를 언제 키우겠는가 하는
이야기랑(그들도 아직 애기가 없었다) 하다가 저녁이 늦어져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속에서 허옥실선배가 기도를 해주었다. 나에게는 참으로 오랜만에
받아보는 기도였다.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주께서 지켜달라고, 그리고 새로운 출발에 주님의
사랑이 가득하라고... 그 기도문들을 들으면서 감동되었다. 이렇게 모처럼 귀한 시간을
내주어 식사에 요청해주고 진심으로 기도해주는 동문이 너무나 감사했다...

[ 와라비에서의 환송회 ]

5월 28일, 오후 이사짐 센터에서 와서 짐들을 실어갔다. 짐들을 다 싣고 나가서 텅텅
비어있는 집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허전함과 해방감이 섞인 이름못할 느낌이 들었다.
2년반동안 살아왔던 기억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는 집, 드디어 내가 2년반전에 첨으로 이 방에
들어왔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옷장도 없고, 세탁기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에어콘도 없고, 이불도 없고... 텅 비어있는 모습으로... 우리의 인생도 이러하겠지,
올때는 알몸으로 왔다가 갈 때 다시 알몸으로 돌아가는 것.... 허전함과 동시에 해방된듯한
느낌도 들었다. 마치 고중때 대학시험을 치르고 교과서들을 갈기갈기 찢어 하늘공중으로
쥐어뿌려 그 흩날리는 쪼각속에서 환호하는 듯한 그런 느낌....

환송회의 날자는 황광호 형님이 정해주었다. 23일 이사짐을 정리하고 이사짐센터에 미쯔모리를
내고 날자가 초보적으로 정해져서 전화를 했던것이다. 모두들 주중에는 출근과 학습으로 바쁘므로
주말에 하는게 좋겠다고.. 그래서 28일 금요일 저녁으로 정했던 것이다.

와라비는 살기 좋은 동네였다. 교통이 편리한 것은 물론, 도시공단이라 많은 사람들이 집중되어
살고 있고, 여러가지 상점, 음식점들과 밤 11시까지 문을 닫지 않는 슈퍼가 있어서 너무나
편리했다. 여기에는 중국인들이 약 1000명정도 살고 있었는데 그중 조선족이 약 50명정도
살고 있는것으로 추측되었다. 앞으로의 일본동경지역에서의 \"차이나타운\", 혹은 \"조선족타운\"으로
불리워질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동네였던 것이다.

장소도 넓고, 공원도 많고, 걸상도 많아 날씨가 좋을 때면 친구들 몇몇이 모여 맥주 한병에
한담을 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작년의 조선족 망년회를 앞두고, 방정화 선생이랑
황광호 형님이랑 같이 밤 12시까지 걸상에 앉아 추위에 바들바들 떨면서 열심히 행사에 대하여
토론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또 한가한 주말의 저녁에는 이성일 형님으로부터 한담삼아
애기키우는 이야기랑, 조선족의 역사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와라비에 이사해오는 분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이사짐 센터 비슷한 조직이 생기기도 했다. 황광호형님과 김철형님은 운전사였고,
이성일 형님이랑 나는 힘군이었다. ㅋㅋ, 그리고 김철 형님은 이사오자마자 \"정치부주임\" 이성일 형님의
건의로 민주투표를 진행하여 \"촌장\"으로 당선되었으며 와라비 도시공단의 운동장에서 많은 조선족분들이
참가한 불고기파티도 열렸었다.... 한마디로 점점 살기좋아지는 동네였다. ^^

와라비 도시공단은 나의 젊음의 생각과 포부가 싹트는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었을 분만 아니라
친구들과의 소중한 기억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곳이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그 앞마당의
한그루 한그루의 나무들, 그 나무들을 둘러싼 걸상들이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하지만 드디어
나는 정든 이 곳을 떠나게 되었다. 나의 성장의 흔적과 친구들과의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한채로...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

환송회의 모임장소는 김철선배의 집이었다. 8시쯤부터 시작된 환송회에는 약 17명정도가 참석하였다.
와라비에 살고있는 촌민들은 물론 지난기 \"천지협회\"회장이었던 한학봉 부부도 있었고, 지난기와
이번기의 \"천지협회\"를 통하여 알게된 선배, 후배들도 참석을 해주었다. ^^ 아래의 링크는 그때의
사진이었다. 사진은 그날 환송회에 참석했던 \"사랑의 손길\" 담당자 폰선배님이 올려주었다.
링크: http://www.nagaza.com/app/bbs/zboard.php?id=gcomm_album&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82

\"환송회\"는 하나의 계기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계기를 통하여 만나는 것이었다. 모두들
바쁜 생활속에서 어려움이 많지만 이러한 만남을 통하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우정\"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돈 많이 벌고 잘 사는 것만이 타향살이의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는 아직 젊었고
꿈은 열심히 싹트고 있으며 다같이 힘을 합쳐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각박한 일본땅에서도 우리의 민족의 정, 고향의 정을 나누며
\"인정\"에 메마르지 않게 사는것이 중요한 것이다.

김철촌장의 료리솜씨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구수한 고향의 맛에 힘입어 모임의 분위기는
불이 붙는듯 뜨거웠으며 유쾌한 웃음으로 작은 방은 즐거운 공기로 꽉 찼다. 이렇게 모처럼
모여서 이국타향에 있음을 잊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게 너무나 좋았다.

화제는 \"환송\"에만 그치지 않았다. 세계정치로부터 일본, 중국의 경제까지, 사소한 생활의
재미있는 이야기로부터 인생결혼대사에까지, 바람따라 구름따라 화제가 굴러가는데로 모두
몰려들어 목청을 아끼지 않았다. 열심히 마시고 떠들고 웃고 하는 사이에 어느새 마지막
전철이 끊어지는 시간이 되었고, 아쉽게 헤어지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날지 모른다는 아쉬움에,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항상
같이 있고,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이 되어있다는 데서 격려와 축복의 말들을 나누면서
헤어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황광호형님네 집에서 머물렀다.

[ 마지막 날 밤 ]

이튿날. 5월 29일 토요일.
안해는 겨우 잠깐의 자유시간을 가지고 동경에 있는 고중시절 딱친구와 작별인사를 하러 떠났다.
나따라 고생하는 안해에게 미안했다. 이제 니이가다에 가면 고생이 많을것을 알면서도 아무말
없이 따라준 안해가 고마웠다. 그리고 안해의 친구들도 열심히 행복한 날들을 보낼수 있기를 속으로 빌었다.

저녁에 나는 술과 요리를 조금 마련했다. 그리고 1년넘게 같이 \"천지협회\"에서 활동을 해왔던
이성일 형님과 황광호 형님을 불렀다. 이제는 이사짐도 다 가져가고 그릇도 없고, 밥상도 없는 텅 빈
집이라 종이상자를 찾아다가 엎어놓고 그위에 요리들를 올려놓았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황소바람아 들어오라 하고, 웃옷을 벗어던지고 팬티바람으로 맨바닥에 앉아서
맥주를 했다. 우리들의 화제는 여전히 평시의 이야기 화제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모여서 같이 술을 하면 무슨 화제라도 다 즐거웠다.

9시넘어 안해도 돌아와서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11시쯤에는 김철형도 퇴근하고 돌아왔기에  
요청하여 같이 술을 마셨다. 12시가 넘었지만 도저히 멈출수가 없어, 결국 안해를 집에서 쉬게끔 하고
나그네 셋은 독신인 김철촌장집으로가서 또 계속했다. 이렇게 새벽 두시까지 마음껏 이야기 하다가
헤어졌다....  

[ 넓은 벌판과 푸른 하늘이 잇대어 있는 그 곳에서 ]

이튿날 아침, 하루저녁 빌렸던 이불을 황광호 형님에게 돌리고, 같이 역전으로 향했다. 수도, 가스등의
마무리를 짓지 못했지만 책임지고 마무리져주겠다고 해서 너무나 감사했다. 개찰구에서 표를 검사하고
건너와서 아직 개찰구의 건너편에서 지켜보고 있는 황광호 형님과 손을 흔들고 작별을 했다.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이제는 진짜로 떠나는 것인가?...

와라비역에서 매일매일 타던 \"케이힌토우호꾸센\"전차에 올라 신간선이 있는 오오미야 역으로 향했다.
항상 출근길에 타던 전철이었지만 오늘을 방향이 반대였다. 들컹거리는 전철의 문옆에서서 눈앞에
지나가는 와라비 도시공단의 건물을 다시 바라보았다. 얼마나 익숙하고 기억에 남는 곳이었던가....
이제 이렇게 떠나면 다시 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언제든지 오고 싶으면
자전거타고라도 올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었다. 나의 몸은 점점
멀리 니이가다로 가고 있었다.

신간선은 약 두시간을 질주했다. 넓을 벌판을 지나고, 큰 도시들을 몇개 지나고,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건너 드디어 푸르른 하늘과 파란 벼들이 저 멀리에서 잇대어있는 시원한 고장에 이르렀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동경에서는 맛볼 수 없는 참신한 공기가 가슴가득 안겨왔고, 동경의 더위와는
다른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왔다. 길거리는 넓고 깨끗했으며, 머리를 들지 않고서도 볼 수 있는
푸른 하늘은 손만 내밀면 다칠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것이 새롭고 참신했다. 동경 전철역의
인산인해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고 모두가 여유롭고 한가한 모습이었다...

시원한 바다의 향기가 섞여 있는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비로소 제정신이 든 느낌이었다.
아.... 이제부터 여기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구나... 라고.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술을 마시며 천하만사를 담론하던 친구가 생각났고, 토요일 같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이게 불과 이틀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이었다. 서로가 떨어져 있지만 앞으로 만나 다시 함께
하게될 그날을 그리며 열심히 열심히 살아가야 했다....

친구들이여... 잘 있어다오... 모두모두 행복하게,
언젠가 예약없이 다가오게 될 다음날의 만남을 위하여....
나는 신간선을 향하여 속삭였다. 신간선이 나의 축복과 념원을 동경의 친구들에게 전해주길 바랐다.

그리고 안해와 함께 이제 우리의 새로운 개척이 시작될 집으로 향해 떠났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신기하기만 했다....


-- 다음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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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취직일기 9 - 이별을 앞둔 나날들
# 작성자: 배상봉
# 작성일: 2004년 7월 26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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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의 이야기가 발생한 기간: 2004년 3월말 ~ 2004년 6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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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4)

메리 · 2004-07-27 01:18:20
배상봉 님이 잘 되시길 바랍니다.
rladofus · 2004-07-28 11:55:30
안녕하세요,취직축하해요.
니이가다 어디세요?저두 니이가다 에서 일보구 있는데...
따뜻한 손 · 2004-07-29 21:55:11
요즘 회사일이 바빠 쉼터에 뽀우또우를 못하다보니 참 죄송합니다.

메리님, 감사합니다. ^^ 모두모두 잘 되길 바랍니다.


rladofus님, 안녕하세요. 답이 늦어져서 죄송하네요.
저는 오우미라는 곳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신간선이 지나가고 있고, 부근에 HardOff가 있습니다. ^^

니이가다가 참으로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도 맑고, 공기도 좋고...
하지만 듣자니 겨울에는 눈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내린다는데... ㅋㅋㅋ
백두호 · 2004-07-30 00:52:19
상봉동생에게:


니이가다, 새로운 삶터에서 우리 제수님이랑 같이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늦게나마 재미있는 글을 읽으면서, 항상 어디서나 부지런하고 선량한 상봉동생이 잘 되리라 기대하면서, 종종 소식을 전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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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서현2004-07-13 22:47113418
오늘 재수없이 쥐한테 물렸어요!다모클리스2004-07-13 20:13169433
힘든 하루 ...할미꽃2004-07-13 19:436968
취직일기 4 - 두번째 회사의 1차면접배상봉2004-07-13 01:408123
취직일기 3 - 깊은 반성, 반복되는 도전과 좌절배상봉2004-07-11 02:357675
취직일기 2 - 신심과 좌절배상봉2004-07-10 21:478375
알고도 모를 일할미꽃2004-07-10 20:006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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