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하나가 바뀜으로써 세상 아니 일본이 이처럼 달리 보일줄은 몰랐다.
힘든 하루하루와 더불어 따분하게만 느껴지던 류학생활이
아침해살처럼 따스하게 느껴졌다.
찌뿌둥하게 보이던 길옆의 꽃들도 유난히 이쁘게 반짝거리고
귀찮기만하던 새들의 지저귐소리도 구수하게 들려왔다.
3년만에 중국에 있을때의 자신감을 되찾은듯 싶었고
류학생으로서의 즐거움을 이제야 만끽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쁨은 얼마가지 못했다.
한달후 월급봉투를 받아쥔 나는
현실은 필경 꿈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아프게 느꼈다.
일년학비를 모으려면 한달에 적어도 5만엔씩은 저축해야 되고
거기에 집세, 생활비까지 합치면 월수입이 적어도 13만엔은 있어야 하는데
봉투에 들어있는 명세의 금액은 그 절반액수밖에 안되였던것이다.
원래 바이트의 2분의 1의 수입이였다.
신입강사인지라 당시 맡고있는 수업이 얼마 안되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6년간의 중국류학경험이 있는 일본인 면접관을 상대로
수업시강까지 해가면서 어렵게 얻은 바이트이고
또 현재 정말로 자신이 하고싶은 일이였기에 쉽게 포기하고 싶지않았다.
장학금을 꼭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최근 지속되는 일본경제의 저락으로
류학생장학금제도가 나날이 엄연해지고 있는 현황에서
장학금을 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무엇보다도 대부분 장학금의 지정학교범위에 포함되여있지 않는
평범한 사립대인 경우 더더욱 어려웠다.
장학금리스트를 아무리 훑어봐도 신청할 장학금이 없었다.
전공 아니면 지역제한때문에 자격에 부합되지 않았다.
문부성의 장학금은 교내에서도 경쟁이 치렬하여 그것만 바라보고 있을수는 없었다.
정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이어서 떠오르는것이 국제교류회관이였다.
시간도 5월이라 금년4월부터 지급의 장학금이 있을리 만무했지만
한가닥의 희망을 품고 한달음에 국제교류회관까지 달려갔다.
허나 유력한 정보는 없었다.
안타까운 나머지 혹시나 하고 게시판에 눈길을 돌렸다.
게시판은 중고전기기구를 싸게 처리한다는둥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둥
지금의 나한테는 의미가 없는 종이장들로 꽉 메워져있었다.
한껏 부풀어올랐던 희망이 천천히 실망으로 바뀌고
이어서 막연함으로 전환되는 변화가 심히 느껴지면서 눈물이 나올려고 했다.
연길에서 일어만 배웠고 또 영어기초가 없다는 리유 하나만으로
일본에 와서 사립대를 선택할수 밖에 없었던 일,
사립대중에서도 영어시험이 없는 학교에 진학해야만 했던 일,
국립대학인 동경외국어대학 일본어전업에 도전했지만 미끄럼을 탔던일 등
대학교진학시의 아픈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리속을 스쳐지나면서
자신의 앞길의 선택범위가 점점 좁아지는듯한 느낌에 더없이 괴로웠다.
일어를 외국어로 배우게 한 학교가 야속했고
대학아닌 중등전문학교에 입학했던 자신이 밉기까지 했다.
착잡한 심정으로 출입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게시판을 막 등뒤로 하려는 찰나,
맨 모서리 아래쪽의 종이 한장이 희미하게 안겨왔다.
글씨체가 너무 작아 내용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은근히 지푸래기도 잡고 싶은 나의 호기심을 불러이르켰다.
뭘가 하면서 무심히 다가가 보았다.
어마나! 장학금응모장이였다. 두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한달 최고지급액이 십만원이였는데
나의 전공인 인문전업의 학부생으로부터 박사생까지 전부가 모집대상이였다.
지급기한도 금년도4월부터 거슬러올라가 이듬해 3월까지라고 적혀져있었다.
믿겨지지가 않았다.
서둘러 모집기일을 보니 아직 시간이 있었다.
학교교장님의 직접적인 추천까지 필요했지만
추호의 주저도 없이 회관의 인포메션에 부탁하여 복사한후 학교로 갖고갔다.
문부성장학금의 적은 명액으로
골머리를 앓던 국제과과장선생님께서도 적극 협력해주셨다.
한달후, 집에 돌아오니 포스트안에 장학금결과통지서가 들어있었다.
선뜻 결과를 꺼내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먼저 심호흡을 했다.
조심조심 봉투를 열고 속지를 꺼냈다.
한쪽눈만 빠끔히 뜨고 도적고양이마냥 살그머니 펼쳐보았다.
합격이란다. 나는 행운아였다.
지금의 바이트를 계속할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전에는 부모님곁에서 근심걱정과는 담을 쌓고 살았기에
기쁨도 진하게 느껴본적 없었다.
일본땅에서 처음으로 기쁨의 희열을 느꼈다.
후에야 알았지만 합격된 응모자 9명가운데서 학부생은 두명뿐이였다.
포기는 금물이라는것을 일본사회가 나한테 깨닫게 했다.
힘든 하루하루와 더불어 따분하게만 느껴지던 류학생활이
아침해살처럼 따스하게 느껴졌다.
찌뿌둥하게 보이던 길옆의 꽃들도 유난히 이쁘게 반짝거리고
귀찮기만하던 새들의 지저귐소리도 구수하게 들려왔다.
3년만에 중국에 있을때의 자신감을 되찾은듯 싶었고
류학생으로서의 즐거움을 이제야 만끽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쁨은 얼마가지 못했다.
한달후 월급봉투를 받아쥔 나는
현실은 필경 꿈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아프게 느꼈다.
일년학비를 모으려면 한달에 적어도 5만엔씩은 저축해야 되고
거기에 집세, 생활비까지 합치면 월수입이 적어도 13만엔은 있어야 하는데
봉투에 들어있는 명세의 금액은 그 절반액수밖에 안되였던것이다.
원래 바이트의 2분의 1의 수입이였다.
신입강사인지라 당시 맡고있는 수업이 얼마 안되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6년간의 중국류학경험이 있는 일본인 면접관을 상대로
수업시강까지 해가면서 어렵게 얻은 바이트이고
또 현재 정말로 자신이 하고싶은 일이였기에 쉽게 포기하고 싶지않았다.
장학금을 꼭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최근 지속되는 일본경제의 저락으로
류학생장학금제도가 나날이 엄연해지고 있는 현황에서
장학금을 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무엇보다도 대부분 장학금의 지정학교범위에 포함되여있지 않는
평범한 사립대인 경우 더더욱 어려웠다.
장학금리스트를 아무리 훑어봐도 신청할 장학금이 없었다.
전공 아니면 지역제한때문에 자격에 부합되지 않았다.
문부성의 장학금은 교내에서도 경쟁이 치렬하여 그것만 바라보고 있을수는 없었다.
정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이어서 떠오르는것이 국제교류회관이였다.
시간도 5월이라 금년4월부터 지급의 장학금이 있을리 만무했지만
한가닥의 희망을 품고 한달음에 국제교류회관까지 달려갔다.
허나 유력한 정보는 없었다.
안타까운 나머지 혹시나 하고 게시판에 눈길을 돌렸다.
게시판은 중고전기기구를 싸게 처리한다는둥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둥
지금의 나한테는 의미가 없는 종이장들로 꽉 메워져있었다.
한껏 부풀어올랐던 희망이 천천히 실망으로 바뀌고
이어서 막연함으로 전환되는 변화가 심히 느껴지면서 눈물이 나올려고 했다.
연길에서 일어만 배웠고 또 영어기초가 없다는 리유 하나만으로
일본에 와서 사립대를 선택할수 밖에 없었던 일,
사립대중에서도 영어시험이 없는 학교에 진학해야만 했던 일,
국립대학인 동경외국어대학 일본어전업에 도전했지만 미끄럼을 탔던일 등
대학교진학시의 아픈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리속을 스쳐지나면서
자신의 앞길의 선택범위가 점점 좁아지는듯한 느낌에 더없이 괴로웠다.
일어를 외국어로 배우게 한 학교가 야속했고
대학아닌 중등전문학교에 입학했던 자신이 밉기까지 했다.
착잡한 심정으로 출입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게시판을 막 등뒤로 하려는 찰나,
맨 모서리 아래쪽의 종이 한장이 희미하게 안겨왔다.
글씨체가 너무 작아 내용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은근히 지푸래기도 잡고 싶은 나의 호기심을 불러이르켰다.
뭘가 하면서 무심히 다가가 보았다.
어마나! 장학금응모장이였다. 두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한달 최고지급액이 십만원이였는데
나의 전공인 인문전업의 학부생으로부터 박사생까지 전부가 모집대상이였다.
지급기한도 금년도4월부터 거슬러올라가 이듬해 3월까지라고 적혀져있었다.
믿겨지지가 않았다.
서둘러 모집기일을 보니 아직 시간이 있었다.
학교교장님의 직접적인 추천까지 필요했지만
추호의 주저도 없이 회관의 인포메션에 부탁하여 복사한후 학교로 갖고갔다.
문부성장학금의 적은 명액으로
골머리를 앓던 국제과과장선생님께서도 적극 협력해주셨다.
한달후, 집에 돌아오니 포스트안에 장학금결과통지서가 들어있었다.
선뜻 결과를 꺼내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먼저 심호흡을 했다.
조심조심 봉투를 열고 속지를 꺼냈다.
한쪽눈만 빠끔히 뜨고 도적고양이마냥 살그머니 펼쳐보았다.
합격이란다. 나는 행운아였다.
지금의 바이트를 계속할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전에는 부모님곁에서 근심걱정과는 담을 쌓고 살았기에
기쁨도 진하게 느껴본적 없었다.
일본땅에서 처음으로 기쁨의 희열을 느꼈다.
후에야 알았지만 합격된 응모자 9명가운데서 학부생은 두명뿐이였다.
포기는 금물이라는것을 일본사회가 나한테 깨닫게 했다.
쉼터에 새로운 글 쓰기는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소중한 기록 중에 꼭 다른 분들에게도 읽었으면 하는 좋은 글들은 「추천하기」를 눌러주세요.
일부 글들은 악성광고나 의미없는 스팸들일 수 있습니다. 읽는 분들에게 피해가 되거나 삭제를 희망하는 글에는 신고를 클릭해주세요. 로봇을 통하여 정기적으로 확인 및 정리를 합니다.
코멘트 (15)
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これからも頑張ってください。いつも主観的な考えよりも客観的に物ことを見つめていくように頑張ってください。
해성님,우선 미숙한 글을 읽어주시고
또 리플까지 달아주셔셔 너무 고맙습니다.
님의 말처럼 체험속에서 배우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함께 일본이라는 이 배움터에서 노력해갑시다!
화이팅!!
청아님,리플 그리고 충고 고맙습니다.
일본에 와서 제일 깊은 감수가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자기의것이라도 객관적입장에서 보게될수 있게된 점이라고 늘 대답을 햇었는데
아마 아직도 거리가 먼가 봅니다.
다시 한번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또 리플까지 달아주셔셔 너무 고맙습니다.
님의 말처럼 체험속에서 배우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함께 일본이라는 이 배움터에서 노력해갑시다!
화이팅!!
청아님,리플 그리고 충고 고맙습니다.
일본에 와서 제일 깊은 감수가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자기의것이라도 객관적입장에서 보게될수 있게된 점이라고 늘 대답을 햇었는데
아마 아직도 거리가 먼가 봅니다.
다시 한번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많이 동감이 가는 글이네요.
열심히 하는한 기회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봐요.
그냥 힘차게 열심히 사는 모습 기대해볼게요.
열심히 하는한 기회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봐요.
그냥 힘차게 열심히 사는 모습 기대해볼게요.
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大勢の留学生達に感銘を与える文章だと思います。
やっぱりチャンスって、自分自身でつかむモノですね。
良かった!良かった!
大勢の留学生達に感銘を与える文章だと思います。
やっぱりチャンスって、自分自身でつかむモノですね。
良かった!良かった!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
いい体験談ですね。
いくら大変であってもせっかくのチャンスを見逃さないためにがんばらなきゃ。。。^^
いくら大変であってもせっかくのチャンスを見逃さないためにがんばらなきゃ。。。^^
홀로서기님.
관리자께서 리플을 달아주셔서
너무 힘이 되고 용기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주는 사랑님.
남의 성적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시는
님의 사랑이야말로 저한테 감명을 줍니다.
그 사랑 고맙습니다!
관리자께서 리플을 달아주셔서
너무 힘이 되고 용기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주는 사랑님.
남의 성적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시는
님의 사랑이야말로 저한테 감명을 줍니다.
그 사랑 고맙습니다!
참 좋은 글입니다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한테 오는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사람한테 온다는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네요 ...
힘든 외국생활에서 보참차게 생활해 나가는 유리님 ~ 하루하루 충실하고 유쾌히 보내기 바랍니다 화이팅 ~~
힘든 외국생활에서 보참차게 생활해 나가는 유리님 ~ 하루하루 충실하고 유쾌히 보내기 바랍니다 화이팅 ~~
TIAM님.
노력에 노력을 가하면 성공의 그날 꼭 오겠죠?
리플 고맙구요.그 말씀 다시한번 명심하겠습니다!
노력에 노력을 가하면 성공의 그날 꼭 오겠죠?
리플 고맙구요.그 말씀 다시한번 명심하겠습니다!
미깐님.
아이콘이 참 재밌네요.수업도 지긋지긋한데 귤 하나 갖고 가요.ㅎㅎ
노력도 노력이겠지만
기회도 놓지지말아야 한다는 그 말 저도 동감입니다.
리플 그리고 귤 고맙습니다^^;
파란장미님.
우선 이쁘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님 또한 열심히 살아가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우리 함께 창조해갑시다!
님도 늘 유쾌하기를 기원합니다!
아이콘이 참 재밌네요.수업도 지긋지긋한데 귤 하나 갖고 가요.ㅎㅎ
노력도 노력이겠지만
기회도 놓지지말아야 한다는 그 말 저도 동감입니다.
리플 그리고 귤 고맙습니다^^;
파란장미님.
우선 이쁘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님 또한 열심히 살아가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우리 함께 창조해갑시다!
님도 늘 유쾌하기를 기원합니다!
あなたの文章を読みながら、感動しました。わが民族の留学生は日本に多いが、貴方みたいな留学生はそんなに多くはありません。確かに留学生活は苦しいが、何かの夢を持って頑張らなければいけません。私も4年間の留学生生活を終えて、研究者として教員として日本人を教える立場になり、4年経っております。入学の問題は確かに貴方の言うとおりです。英語ができないから、国立には無理でしょうね。でも中国で中等専門学校を卒業したら直接大学院研究生として入学が可能です。これらについては殆どの留学生が知らないかもしりません。母国で14年の学歴があれば外国人研究生として国立にも入学できます。ただし、大学院に入学するには2年間の研究生の勉強が必要です。文章が長くなりました。これからも頑張ってください。そして奨学金獲得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ではでは・・・・
힘내세요!!!
히로시마남자님.리플 고마운데요 지금까지 못느꼈던 유감도 없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14년 학력이 있으면 직접 연구생으로 대학원에 진학할수있다는걸 전 몰랐으니 말입니다.
참, 선배님도 언녕 알려주시지.ㅎㅎ
님의 경력이 저한텐 많은 힘이 되구요 님의 리플 또한 쉼터 많은 식구들의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늘 유쾌하세요!
남뚝지님.
짤막한 리플이지만 님의 격려의 마음 충분히 읽었습니다.
리플 고맙구요.우리함께 힘내자요.화이팅!!
국내에서 14년 학력이 있으면 직접 연구생으로 대학원에 진학할수있다는걸 전 몰랐으니 말입니다.
참, 선배님도 언녕 알려주시지.ㅎㅎ
님의 경력이 저한텐 많은 힘이 되구요 님의 리플 또한 쉼터 많은 식구들의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늘 유쾌하세요!
남뚝지님.
짤막한 리플이지만 님의 격려의 마음 충분히 읽었습니다.
리플 고맙구요.우리함께 힘내자요.화이팅!!
계속 힘내세여
밝은 앞날을 기대하면서
밝은 앞날을 기대하면서

유리님의 참답게 사는모습 넘 보기좋습니다.
살면서 이로이로 아루까라꼬소 그만큼 많이 배우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일본유학생활, 계속하여 마이페스데 잘 가꾸어가기를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