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 2학년적에 상해복주로 로선장청년려관에서 早野와 처음 만났다.
우리는 모두 고중학생이였고 그는 여름방학을 리용하여 상해로 여행온 일본인이였다.
그적에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간단한 영어로 옆자리 침대를 차지한 早野와 대화를 할수있엇다.
려관에서 백메터쯤 떠러진곳에 해변가가 있었고 早野는 그곳에서 갖고온 카메라로
나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려관에 돌아간후 그는 천엔을 내밀며 나에게 간단한 영어단어를 말했다.
<change>
원래 그는 인민페가 수요된것이였다..
나는 100:7 의 환률로 그가 내민돈을 인민페로 건네주었다.
早野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모습으로 연신 고맙다며 허리를 구부정거렸고
외국인이라고 득보려하지않는 나에게 인사를 치르고있었다.
그래서 영어로 말했다
<인건 내가 인생사는 원칙이라고.>
<We are friends>
그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헤여지던 날.나와 早野는 저마다 피쥬 한병사리씩 들고있었다.
그는 종이장에 일본어로 한줄의 연락처를 남겼고
나도 내주소를 써주었었다.
한달후 그의 편지를 받았다.
안에는 그와함께 상해에서 남겼던 사진이 들어있었고
뒤면에는 영어.일어.중국어.세개국어로
우린친구란 글이 힘있게 새여져있었다.
후에 난 대학에 들어갔었고
줄곳 早野와 련락하고있었다.
그는 내가 문학애호가인걸 알고
일본의 화문잡지를 부쳐주기도햇었다.
그덕분에 그가 보내준 일본의 출판잡지에
투고하여 3000엔의 원고료를 받았다.
그돈과.早野하고 바꿨던 6000엔을 은행에 저금하였다.
대학졸업후 내가 은행에서 돈을 꺼낼땐
리자가 붙어 이미 12000엔이 되였었다.
태양이 기분좋게 비추던 어느날
나는 천진탕구강에서 오오사카로 향한 배에앉았다.
그때 몸엔 려행가방 하나만 달랑 지녔었고
그 안엔 후조.챈쩡.그리고 두터운 우표첩이 들어있었다.
오오사카에서 처음으로 일본땅에 발을 디뎠엇고
신깐쌘을 타고 동경에 도탁했다.
早野에게 전화하니 반시간후 맨보차를 몰고 내앞에 나타났다.
맨보차는 그가 알바하여 모은돈으로 산거란다..
나는 早野가 전에 다니던 동경외국어대학에 입학했고
본몬사부근에서 값싼 세집에 들었다.
낮에는 학교가고 저녁에는 일본료리점에서 사발씻는일했다.
시간당 800엔이였다.
소비가 높은 일본에서 내가 갖고온 현금은 모두
일년의 학비로 바쳤고
사발씻어 번돈은 생활소비로 인차 달아나군 했다.
두달후 주인이 다음키의 집세를 받으로 왔지만
내손엔 2000엔밖에 안남았다.
한달집세도 안댔다.
나는 려행가방에서 갖고왔던 두터운 우표첩을 꺼내
우판탠지하철역 우표상점에 갔다.
거기 앉아있는 일본여자애보고 우표를 팔겠다했다.
그녀는 우표첩을 번지고보더니
대신해 팔아줄수 있다고했다.
주인집 집세를 내기위해 우표첩은 여기 놓아둘테니
먼저 이만엔만 지불해줄수있냐고 사정얘기를 하며 물었다.
여자애는 매대안에서 오천엔지페를 넉장꺼내 주었다.
그녀는 우표의 가치를 알고있었던거다.
안에는 붉은원숭이 우표가 있었는데 그 한장만으로도 이만엔이 넘었다.
십년전 오십원돈으로 아빠가 생일선물로 사준거였다.
저녁에 早野가찾아왔다.
그는 아마 내눈빛에서 나의 상황을 알고있는같았다.
<알바를 더 하면 어때?동경생활은 리즘이 넘 빨라서 좀 힘들걸.
너 아침엔 머하는데?>
난 아무것도 안한다 했다.
<응당 이시간을 아주 적당하게 리용해야되잖아.>
원래早野는 아침마다 우유배달을 하고 여덟시쯤 문화중심에 간단다.
<우유한집만 배달하면 한달에 천엔을 벌수있어.
매일 50집에서 내가 배달하는 우유를 마시고고있어.>
웃으며 말하고있는 그의 표정엔 자호감이 배여있었다.
우유배달하나만으로 早野는 매달5만엔을 벌고있었다.
인차.나도 우유회사 림시인원이 되였다.
처음엔 고객5집밖에 안되였고 매일아침
자전거를 타고 우유회사에 갔다.
우유병사리마다에 이름이 씌여져있었고 나는 그우유를 배달하러
거의 절반의 동경을 매일 자전거로 돌았다.
5000엔을 벌기위한 대가였다.
早野는 웃으며 이건 단련의 계단이라했다.
한달후 나는 우유회사 재무부에서 건네주는
반짝반짝 빛나는 열개의 500엔짜리 동전을 받았다.
그걸 호주머니에 넣으니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후에 나의 고객은30집으로 불었고 나는 변함없이 자전거로
려명전의 동경을 돌고돌았다.
매일마다 아름다운 태양이 동경에 솟아오르는걸 보며
또 새로운 알바를 시작했다..
아사히신분의 임시인원으로
우유와함께 신문배달도 같이했다.
내은행카드에 들어오는 액수는 점점 불었고
생활에 쓰는 용돈은 변함없이 아껴쓰니까
어느새 30만엔을 저축했다.
나는 저당했던 우표첩을 되찾았다.
점주는 이미 대신해 7만엔분의 우표를 팔아주었었다.
그쯤에 난 제일 간고했던 동경유학생활을 마무리지었다.
早野는 원래의 문화중심을 떠나 혼자 작은 문화회사를 꾸렸다.
기껏해야 그를 포함한 사명의 인원밖에 없는 회사였다.
어느날 그가 날 찾아와 일중번역을 해줄수있냐 물었다..
물론되지 하고 인차 승낙하니까
<매 천자에 1500원씩 지불할거니까
괜찮으냐?>
묻는다.
<너무 좋네.내가 사발가시는거에 비하면
너무 득이잖아.>
그날 早野가 건네주는 5만자의 중초약원고를 번역하기에 여념없엇다.
일본학사가 상해교류회에서 쓰게될 원고였는데 시간이 긴장하여
사흘이란 시간밖에 없었다.
원래 약에 대해선 잘몰랐기에
연속 두날 학교안가고 집에 들어박혀
사전을 찾으며 번역에 몰두했다.
번역후 早野와 함께 열심히 잘됐나 검사까지 했다.
내가 한번역은 그 학자의 찬탄을 받았고
그후엔 학자의 친구마저 早野의 손님으로 되였다.
나는 早野의 <외부인원>이였다.
매일아침 신문과 우유배달이 끝나면
학교에 갔고 또 수업이 끝나면
신쥬크의 료리점에서달려갔다..
주방에 들가면 무더기로 쌓인 사발들이 나를 기다리고있엇다.
그리고 가끔은 早野로부터 많은 번역자료도 받았다.
그런날들속에서 나는 하루하루 바삐보냈고
힘들었지만 충실한 나날들이였다.
사년후 동경외국어학원을 졸업할때 은행카드에는
300만원이 저금되여있었다.
早野는 언녕 웅배달을 중지했고
그의 모든 고객은 모두 내가 넘겨받았다.
내가 우유회사에서의 지위도 조금 변화가 있었다.
내가 회사의 백분의 일의 구펀을 샀던거였다.
매일아침 자전거를 타고 우유회사에 올때면
밖에 줄줄이 서있는 공장방들을 보며 격동됐다.
이건 생기발랄한 우유회사였다.
나는 내가 산 구펀이 점점 커지기를 꿈꿨다.
이러면 난 매일아침 힘들게 자전거로 동경을
바퀴돌이할 필요도 없어질거였다.
잡지에서 본글 너무 감동적이고
또 지금 류학생활하고잇는 많은분들이 보고
용기를 얻지않을가하여 타자해서 올렷슴다.
이전에 한번 올린적 잇지만 삭제햇다가
다시 올립니다.
모든분들에게 좋은 글이 되길.....
우리는 모두 고중학생이였고 그는 여름방학을 리용하여 상해로 여행온 일본인이였다.
그적에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간단한 영어로 옆자리 침대를 차지한 早野와 대화를 할수있엇다.
려관에서 백메터쯤 떠러진곳에 해변가가 있었고 早野는 그곳에서 갖고온 카메라로
나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려관에 돌아간후 그는 천엔을 내밀며 나에게 간단한 영어단어를 말했다.
<change>
원래 그는 인민페가 수요된것이였다..
나는 100:7 의 환률로 그가 내민돈을 인민페로 건네주었다.
早野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모습으로 연신 고맙다며 허리를 구부정거렸고
외국인이라고 득보려하지않는 나에게 인사를 치르고있었다.
그래서 영어로 말했다
<인건 내가 인생사는 원칙이라고.>
<We are friends>
그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헤여지던 날.나와 早野는 저마다 피쥬 한병사리씩 들고있었다.
그는 종이장에 일본어로 한줄의 연락처를 남겼고
나도 내주소를 써주었었다.
한달후 그의 편지를 받았다.
안에는 그와함께 상해에서 남겼던 사진이 들어있었고
뒤면에는 영어.일어.중국어.세개국어로
우린친구란 글이 힘있게 새여져있었다.
후에 난 대학에 들어갔었고
줄곳 早野와 련락하고있었다.
그는 내가 문학애호가인걸 알고
일본의 화문잡지를 부쳐주기도햇었다.
그덕분에 그가 보내준 일본의 출판잡지에
투고하여 3000엔의 원고료를 받았다.
그돈과.早野하고 바꿨던 6000엔을 은행에 저금하였다.
대학졸업후 내가 은행에서 돈을 꺼낼땐
리자가 붙어 이미 12000엔이 되였었다.
태양이 기분좋게 비추던 어느날
나는 천진탕구강에서 오오사카로 향한 배에앉았다.
그때 몸엔 려행가방 하나만 달랑 지녔었고
그 안엔 후조.챈쩡.그리고 두터운 우표첩이 들어있었다.
오오사카에서 처음으로 일본땅에 발을 디뎠엇고
신깐쌘을 타고 동경에 도탁했다.
早野에게 전화하니 반시간후 맨보차를 몰고 내앞에 나타났다.
맨보차는 그가 알바하여 모은돈으로 산거란다..
나는 早野가 전에 다니던 동경외국어대학에 입학했고
본몬사부근에서 값싼 세집에 들었다.
낮에는 학교가고 저녁에는 일본료리점에서 사발씻는일했다.
시간당 800엔이였다.
소비가 높은 일본에서 내가 갖고온 현금은 모두
일년의 학비로 바쳤고
사발씻어 번돈은 생활소비로 인차 달아나군 했다.
두달후 주인이 다음키의 집세를 받으로 왔지만
내손엔 2000엔밖에 안남았다.
한달집세도 안댔다.
나는 려행가방에서 갖고왔던 두터운 우표첩을 꺼내
우판탠지하철역 우표상점에 갔다.
거기 앉아있는 일본여자애보고 우표를 팔겠다했다.
그녀는 우표첩을 번지고보더니
대신해 팔아줄수 있다고했다.
주인집 집세를 내기위해 우표첩은 여기 놓아둘테니
먼저 이만엔만 지불해줄수있냐고 사정얘기를 하며 물었다.
여자애는 매대안에서 오천엔지페를 넉장꺼내 주었다.
그녀는 우표의 가치를 알고있었던거다.
안에는 붉은원숭이 우표가 있었는데 그 한장만으로도 이만엔이 넘었다.
십년전 오십원돈으로 아빠가 생일선물로 사준거였다.
저녁에 早野가찾아왔다.
그는 아마 내눈빛에서 나의 상황을 알고있는같았다.
<알바를 더 하면 어때?동경생활은 리즘이 넘 빨라서 좀 힘들걸.
너 아침엔 머하는데?>
난 아무것도 안한다 했다.
<응당 이시간을 아주 적당하게 리용해야되잖아.>
원래早野는 아침마다 우유배달을 하고 여덟시쯤 문화중심에 간단다.
<우유한집만 배달하면 한달에 천엔을 벌수있어.
매일 50집에서 내가 배달하는 우유를 마시고고있어.>
웃으며 말하고있는 그의 표정엔 자호감이 배여있었다.
우유배달하나만으로 早野는 매달5만엔을 벌고있었다.
인차.나도 우유회사 림시인원이 되였다.
처음엔 고객5집밖에 안되였고 매일아침
자전거를 타고 우유회사에 갔다.
우유병사리마다에 이름이 씌여져있었고 나는 그우유를 배달하러
거의 절반의 동경을 매일 자전거로 돌았다.
5000엔을 벌기위한 대가였다.
早野는 웃으며 이건 단련의 계단이라했다.
한달후 나는 우유회사 재무부에서 건네주는
반짝반짝 빛나는 열개의 500엔짜리 동전을 받았다.
그걸 호주머니에 넣으니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후에 나의 고객은30집으로 불었고 나는 변함없이 자전거로
려명전의 동경을 돌고돌았다.
매일마다 아름다운 태양이 동경에 솟아오르는걸 보며
또 새로운 알바를 시작했다..
아사히신분의 임시인원으로
우유와함께 신문배달도 같이했다.
내은행카드에 들어오는 액수는 점점 불었고
생활에 쓰는 용돈은 변함없이 아껴쓰니까
어느새 30만엔을 저축했다.
나는 저당했던 우표첩을 되찾았다.
점주는 이미 대신해 7만엔분의 우표를 팔아주었었다.
그쯤에 난 제일 간고했던 동경유학생활을 마무리지었다.
早野는 원래의 문화중심을 떠나 혼자 작은 문화회사를 꾸렸다.
기껏해야 그를 포함한 사명의 인원밖에 없는 회사였다.
어느날 그가 날 찾아와 일중번역을 해줄수있냐 물었다..
물론되지 하고 인차 승낙하니까
<매 천자에 1500원씩 지불할거니까
괜찮으냐?>
묻는다.
<너무 좋네.내가 사발가시는거에 비하면
너무 득이잖아.>
그날 早野가 건네주는 5만자의 중초약원고를 번역하기에 여념없엇다.
일본학사가 상해교류회에서 쓰게될 원고였는데 시간이 긴장하여
사흘이란 시간밖에 없었다.
원래 약에 대해선 잘몰랐기에
연속 두날 학교안가고 집에 들어박혀
사전을 찾으며 번역에 몰두했다.
번역후 早野와 함께 열심히 잘됐나 검사까지 했다.
내가 한번역은 그 학자의 찬탄을 받았고
그후엔 학자의 친구마저 早野의 손님으로 되였다.
나는 早野의 <외부인원>이였다.
매일아침 신문과 우유배달이 끝나면
학교에 갔고 또 수업이 끝나면
신쥬크의 료리점에서달려갔다..
주방에 들가면 무더기로 쌓인 사발들이 나를 기다리고있엇다.
그리고 가끔은 早野로부터 많은 번역자료도 받았다.
그런날들속에서 나는 하루하루 바삐보냈고
힘들었지만 충실한 나날들이였다.
사년후 동경외국어학원을 졸업할때 은행카드에는
300만원이 저금되여있었다.
早野는 언녕 웅배달을 중지했고
그의 모든 고객은 모두 내가 넘겨받았다.
내가 우유회사에서의 지위도 조금 변화가 있었다.
내가 회사의 백분의 일의 구펀을 샀던거였다.
매일아침 자전거를 타고 우유회사에 올때면
밖에 줄줄이 서있는 공장방들을 보며 격동됐다.
이건 생기발랄한 우유회사였다.
나는 내가 산 구펀이 점점 커지기를 꿈꿨다.
이러면 난 매일아침 힘들게 자전거로 동경을
바퀴돌이할 필요도 없어질거였다.
잡지에서 본글 너무 감동적이고
또 지금 류학생활하고잇는 많은분들이 보고
용기를 얻지않을가하여 타자해서 올렷슴다.
이전에 한번 올린적 잇지만 삭제햇다가
다시 올립니다.
모든분들에게 좋은 글이 되길.....
쉼터에 새로운 글 쓰기는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소중한 기록 중에 꼭 다른 분들에게도 읽었으면 하는 좋은 글들은 「추천하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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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6)
언제한번 본기억이 나는 글이지만
다시봐도 좋은글입니다.
잘복감다.
다시봐도 좋은글입니다.
잘복감다.
저두 언제 한번 밧던 글이엿엇는데.................
이글 보면 볼수록 힘이 나네용~~~~
나 정말 ~~~ 정말 ~~~ 노력할거에요....
그럼 화아팅~~~
이글 보면 볼수록 힘이 나네용~~~~
나 정말 ~~~ 정말 ~~~ 노력할거에요....
그럼 화아팅~~~
우리후배들에게너무나좋은글이라생각합니다. 외로운섬너라 외로운타향에서 하루하루바삐보내는모든분들에게주는선배의따듯한마음을감사히받으면서 이후에더욱열심히 자기의꿈을위해뛸수있으리라굳게믿어요 . 감사해요 잘보구갑니다
참 보기 좋네요;;;ㅠ
행복한 날이 올거에요;;;
행복한 날이 올거에요;;;
smale81가 몸소 겪은 일인가 했는데 아니구나 .아무튼 눈시울이 뜨거워지네,난 아직 이런 체험을 해보지 못해서그런지,,,,

이 만큼 하느라고 애로도 많았다고 봅니다.
사발씻어서 버는돈 백만원보다 미래에 이어지는
일에서 버는 십만원이 더욱 가치가 잇고
기억에도 남으리라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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