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 고령에 입당한 맹인 김봉숙할머니의 념원
“오래동안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념원을 실현했습니다…”
“당의 덕분에 살아오면서 마음속으로 늘 당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있었습니다.”
“비록 앞을 못보는 맹인이지만 앞이 탁 트이는듯한 느낌입니다. 오늘 당의 일원으로 된 이 영광을 잊지 않고 당의 따사로움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며 뢰봉처럼 베풀며 사는 사람으로 되겠습니다.”
지난 7월 1일, 74세 고령에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 예비당원으로 된 김봉숙 맹인할머니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애를 가진 몸이지만 당과 정부, 사회 각계의 도움으로 그 누구보다 외롭지 않고 힘들지 않게 살아온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마냥 스쳐지나갔다.
혈육 잃은 슬픔
사랑하는 남편, 딸과 함께 남부럽지 않은 오붓한 살림을 이어오던 그들한테 재난이 들이닥친것은 지난 1986년, 29살에 나는 하나밖에 없는 딸을 백혈병이라는 무서운 병으로 잃어버린 김봉숙할머니는 하늘땅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 그런데 믿고의지하던 남편마저 2003년에 암으로 저세상 사람이 되자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방황속에서 헤매였고 그 미열로 돌이킬수 없는 “어둠”의 심연속에 빠지게 됐다. 그가 두눈이 실명되여 삶의 변두리에서 해매일 때 많은 사랑의 손길들이 그한테 다가왔다.
연길시 북산가두 “뢰봉반” 창시자인 한무길선생이 철남 단층집에서 홀로 힘들게 살아가고있는 그의 안타까운 사정을 헤아려 그한테 35평방메터짜리(6만여원) 집을 해결해주었고 그후에도 매사에서 친혈육처럼 그를 보살펴주었다. 그리고 다병한 그가 몸이 조금이라도 불편해도 여기저기서 사랑의 자원봉사자들이 나타났다. 지난해말 그가 심장병으로 쓰러지자 평소에 물심량면으로 그를 돌보아주던 가두지도부 성원들이 또 많은 약과 치료비를 갖고 달려왔고 연길시인민법원 윤성일원장도 4000원을 입원예약금으로 내놓았으며 연변만국국제무역유한회사의 홍명옥리사장도 직원들의 사랑의 마음이 담긴 3800원의 성금을 들고 달려왔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기간 그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병치료를 무사히 마칠수 있었고 또 한번 당의 따사로움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받은 사랑 사회에 환원
사회의 도움으로 외로움을 모르고 살아온 김봉숙 맹인할머니는 받은 사랑만큼 사회에 환원하고싶은 마음이 항상 굴뚝같았다. 그래서 1000원 좌우되는 퇴직금을 아껴 먹고 아껴 쓰면서 불우이웃돕기에 나섰다. 몇년 동안 그는 6명 불우학생과 인연을 맺고 그들한테 사랑의 성금과 물품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주면서 자상한 친할머니로 그들의 마음속에 다가갔다. 2007년부터는 연길시 북산가두 “뢰봉반” 반장을 맡고 본격적인 사랑의 "전도사"로 나섰다. 그는 불편한 몸으로 화룡, 룡정 등지를 전전하면서 가치가 1000여원에 달하는 의복을 기증받아 주로동교양소에서 로동교양을 받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가져다주고 따스한 어머니사랑으로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며 자신이 겪은 진실한 이야기로 그들을 감화시키기도 했다.
사람들이 “김봉숙할머니의 호주머니에는 돈이 없어야 한다. 돈만 있으면 남을 돕지 못해 애를 태운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김봉숙할머니의 마음에는 자나깨나 어떻게 하면 더 남을 도울수 있을가 하는 생각뿐이였다. 그는 국경 60돐을 맞으면서 자기가 절약한 돈 300원으로 국기 9폭을 사서 9개의 사회구역에 나누어주어 게양하게 하였고 아끼고 아끼던 자기의 결혼반지를 팔아 1000원을 사천재해구에 보내고 올해 또 1000원을 옥수지진재해구에 보냈다. 그리고 2004년에는 유체기증승낙까지 했다.
당과 정부 그리고 사회를 향한 그의 뜨거운 마음은 결국 열매를 보고야말았다. 지난 6월 18일, 연길시 북산가두 당조직에서는 만장일치로 그의 입당을 통과했고 74세 고령인 그를 특수당원으로 받아들였다. 오매불망 고대하던 당휘장을 가슴에 다는 순간 김봉숙 맹인할머니는 감격에 목이 메여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고맙습니다. 당과 정부에 감사드립니다. 남은 여생을 당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연변일보 글 사진 차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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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5)
공산당이란게 받으면 좋구 외면하면 뒤에서 욕지걸이 당하기 마련임다
받앗으면 감사하게 사는것도 은혜를 베푸는것이 되므로 머 암튼 잘됏네
몸이 편찮으셔서 집에 누워있어야만 하는 정도가 되였어도
당비는 달달마다 자식을 시켜 꼭꼭 내게 했고
마지막에 정부에서 위안왔는데 자식들이 당비 안냈는가해서 성을 쓰던 할아버지..
참 할아버지세대사람들은 그래두 다 당을 소중히 여기는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때의 당원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셨으니까.


지금의 당과 정부느 아매 모다둔 꽁짓돈까지두 뺏아가지 못해서 매삼질합꾸마...
진정 감사해야 할거느 아매 전생에 쌓은 덕과 현생의 복에 감사해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