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한가지 살짝 꺽어/총각은 내 가슴에 안겨줬네/꽃처럼 깨끗한 그 맘 담아/그윽한 향기에 난 취햇네…
매양 텔레비브라운관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한 가수를 떠올리게 된다.
무릇 지난 세기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초를 보낸 연변사람이라면 모두 살구꽃녀자로 불리우더 아이돌가수 김경자씨(1965년생)를 기억할것이다. 문화기근시대가 바야흐로 끝나가고 사람마다 정신해방을 맞이하던 그 세월,김경자씨는 대학 4학년 때인 1986년에 부른 살구나무를 데뷔곡으로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와 애된 목소리로 열창하여 수많은 청춘남녀들을 감동의 무아몽경에 빠지게 했다.
이런 재미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1990년,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청취자들더러 지난 세기 80년대에 가장 사랑받은 노래 10곡을 뽑으라고 했다. 그런데 김경자씨가 짧디짧은 5년 사이에 부른 노래들중 3곡이나 선정될줄이야! 산향길이 제1위,살구나무가 제2위,돌다리가 제4위에 올라 카세트테프에 수록되였다. 분명 김경자씨는 연변인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들중 한 사람이였다. 그런데 김경자씨가 1992년에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열성팬들은 아쉽게도 그녀의 노래를 더는 들을수 없게 되였다.
17년만에 다시 선 연변무대
지난 6월26일 저녁, 기자는 일본에서 귀국한 김경자씨를 만나 그동안 궁금하던 사연들을 들을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김경자씨는 이날 오전,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 프로그람에 출연하려고 금방 리허설을 마친 뒤였다. 다음날인 27일 저녁 7시에는 생방송으로 소녀와 꽃을 부르기로 스케쥴이 잡혀있었다.
사랑으로 가는 길은 제가 17년만에 다시 연변의 시청자들에게 선을 보이는 컴백무대에서 가슴이 사뭇 떨리네요.
김경자씨의 말에는 고향사람들에 대한 애틋한 정이 묻어있었다.
운명적결혼으로 도일
김경자씨는 1986년에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한후 연길시방송국에서 7년간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업여가수로도 활약했었다. 또 밤시간을 리용하여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도 불렀다. 그러던 어느날 나이트클럽에서 국제고려학회회의에 참설하러 온 재일교포 변선생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였다 김경자씨는 7살 이상인 변선생과 1년 동안 서로 전화와 편지로 그리운 정을 주고 받다가 1992년에 결혼했다. 결혼후 일본으로 건너간 김경자씨는 딸을 낳은 뒤 줄곧 가정주부로 살아왔다. 현재 교수인 남편은 일본 모대학교에서 아시아문화리론을 가르치고 있고 딸은 서도꾜재일조선학교에서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라고 한다.
김경자씨는 2년전부터 자영업을 하고 있고 해외 한인무역협회 일본지회 리사직도 맡고 있다. 생활이 안정되고 딸도 장성하자 노래를 마저 부르지 못하고 포기한 아쉬움이 고개를 들면서 다시 자신을 찾고 싶은 욕망을 억누를수 없었다고 한다 .
다시 가수로 연변에 나타나고 싶었어요. 보다 성숙된 모습으로요.
김경자씨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시 짚이 희망의 불씨
작년에 김경자씨는 우연히 잠간 일본에 들린 김파씨(당년에 라이라크 필때를 부른 가수, 현재 상해 원록음실 음악스튜디오에서 근부)를 만났다, 김파씨는 김경자씨에게 이렇게 주문했다고 한다.
목소리가 아직도 그대로인데 다시 노래를 불러보고 싶지 않으세요?
김경자씨는 처음에는 주저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가슴속깊이 파 묻어두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타올라 한번 시도해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 시작으로 우선 앨범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들을 골라 상해에 있는 원록음실 김영준사장(베이스연주가,제작가)한테 보냈다. 그노래들은 살구나무와 같은 연변노래와 한국노래 일본곡에 스스로 가사를 붙인 노래들이였다. 그러자 김영준사장은 인차 아리랑처녀라는 노래를 편곡해서 보내주었다.스케일이 웅장하고 완전히 김경자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런 음악이라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구나!)
김경자씨에게 힘을 실어준 계기가 된 노래였다.
김경자씨는 금년 5월초와 6월초에 두번 상해에 다녀가면서 앨범에 수록될 사계절거리,망향아리랑,소녀와 꽃 등 11수의 노래의 록음을 전부 마쳤다. 앨범에 실린 평화의 잔치란 노래의 작사자 애미는 김경자씨의 딸이라고 한다.
향수에 젖은 노래앨범
김경자씨는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을 17살 소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불렀다고 한다.앨범의 주제는 고향을 떠난이들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아름다웠던 옛날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가려는 결심이라고 한다. 노래풍격은 한국풍격도 조선풍격도 아닌 순수한 연변풍격이라고 한다. 김영준사장은 록음할 때 기교보다는 진실한 감정을 담아달라고 주문했고 일본 엔까와 같은 기교에 심취해있던 김경자씨는 사유를 바꾸느라고 숱한 애를 먹었다고 한다.
김경자씨는 앨범을 준비하는 기간이 그렇게 설에이고 행복할수 없었다고 말한다. 록음일정이 잡히면 뛸듯이 기뻤고 록음하러 가는 길은 마냥 행복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한다. 록음할때는 음악에 심취해서 춤까지 절로 나오더란다.
한편 김경자씨는 일본에서 올해 6월초에 공영방송사인 NHK에 캐스팅되여 인터뷰를 하고 옛날 부르던 노래인 물소리 새소리와 이번 앨범에 수록되는 소녀와 꽃, 칠갑산을 불러 센세이숀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김영준사장은 아직까지 음악을 버리지 않은 김경자씨를 칭찬해마지 않는다.김경자씨는 김경자씨대로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김영준사장과 파트너가 되면서 음악을 들을수 있는 귀와 마음이 더 열린것 같다고 감회를 밝힌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 다 록음한 노래들에 만족하고 있다.
가수꿈은 영원히 간직할터
김경자씨는 일본에서 살면서 고향이 그립고 친척들, 동학들과 옛날 음악을 함께 하던 친구들이 무척 그리웠다고 말한다. 일본에 간지 3년만에 돌아왔을 때까지만해도 친구들을 만날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 뿔뿔이 흩어져있어 쓸쓸하다고 말한다. 연변에서 가수생활을 할때 사이 좋게 지낸 현철,허순금,박춘우,진영희,김홍옥, 등 등 익숙한 이름을 불러본다.
김경자씨는 또 음악을 포기한 친구들도 아주 많지만 자신은 절대로 가수꿈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올해는 자신에게 있어서 이제 겨우 첫시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김경자씨는 이번 앨범제작을 기점으로 장차 자주 고향과 련계를 가지고 음악활동을 하련다는 소망도 펴보였다
고향사람들에게 좋은 노래를 불러주는게 자신이 할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고 고향사람들에게 드리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김경자씨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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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앨범을 구입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서 일단 일본에서의 앨범구입처를 남깁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직접 전화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03-4570-6888
매양 텔레비브라운관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한 가수를 떠올리게 된다.
무릇 지난 세기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초를 보낸 연변사람이라면 모두 살구꽃녀자로 불리우더 아이돌가수 김경자씨(1965년생)를 기억할것이다. 문화기근시대가 바야흐로 끝나가고 사람마다 정신해방을 맞이하던 그 세월,김경자씨는 대학 4학년 때인 1986년에 부른 살구나무를 데뷔곡으로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와 애된 목소리로 열창하여 수많은 청춘남녀들을 감동의 무아몽경에 빠지게 했다.
이런 재미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1990년,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청취자들더러 지난 세기 80년대에 가장 사랑받은 노래 10곡을 뽑으라고 했다. 그런데 김경자씨가 짧디짧은 5년 사이에 부른 노래들중 3곡이나 선정될줄이야! 산향길이 제1위,살구나무가 제2위,돌다리가 제4위에 올라 카세트테프에 수록되였다. 분명 김경자씨는 연변인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들중 한 사람이였다. 그런데 김경자씨가 1992년에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열성팬들은 아쉽게도 그녀의 노래를 더는 들을수 없게 되였다.
17년만에 다시 선 연변무대
지난 6월26일 저녁, 기자는 일본에서 귀국한 김경자씨를 만나 그동안 궁금하던 사연들을 들을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김경자씨는 이날 오전,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 프로그람에 출연하려고 금방 리허설을 마친 뒤였다. 다음날인 27일 저녁 7시에는 생방송으로 소녀와 꽃을 부르기로 스케쥴이 잡혀있었다.
사랑으로 가는 길은 제가 17년만에 다시 연변의 시청자들에게 선을 보이는 컴백무대에서 가슴이 사뭇 떨리네요.
김경자씨의 말에는 고향사람들에 대한 애틋한 정이 묻어있었다.
운명적결혼으로 도일
김경자씨는 1986년에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한후 연길시방송국에서 7년간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업여가수로도 활약했었다. 또 밤시간을 리용하여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도 불렀다. 그러던 어느날 나이트클럽에서 국제고려학회회의에 참설하러 온 재일교포 변선생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였다 김경자씨는 7살 이상인 변선생과 1년 동안 서로 전화와 편지로 그리운 정을 주고 받다가 1992년에 결혼했다. 결혼후 일본으로 건너간 김경자씨는 딸을 낳은 뒤 줄곧 가정주부로 살아왔다. 현재 교수인 남편은 일본 모대학교에서 아시아문화리론을 가르치고 있고 딸은 서도꾜재일조선학교에서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라고 한다.
김경자씨는 2년전부터 자영업을 하고 있고 해외 한인무역협회 일본지회 리사직도 맡고 있다. 생활이 안정되고 딸도 장성하자 노래를 마저 부르지 못하고 포기한 아쉬움이 고개를 들면서 다시 자신을 찾고 싶은 욕망을 억누를수 없었다고 한다 .
다시 가수로 연변에 나타나고 싶었어요. 보다 성숙된 모습으로요.
김경자씨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시 짚이 희망의 불씨
작년에 김경자씨는 우연히 잠간 일본에 들린 김파씨(당년에 라이라크 필때를 부른 가수, 현재 상해 원록음실 음악스튜디오에서 근부)를 만났다, 김파씨는 김경자씨에게 이렇게 주문했다고 한다.
목소리가 아직도 그대로인데 다시 노래를 불러보고 싶지 않으세요?
김경자씨는 처음에는 주저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가슴속깊이 파 묻어두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타올라 한번 시도해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 시작으로 우선 앨범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들을 골라 상해에 있는 원록음실 김영준사장(베이스연주가,제작가)한테 보냈다. 그노래들은 살구나무와 같은 연변노래와 한국노래 일본곡에 스스로 가사를 붙인 노래들이였다. 그러자 김영준사장은 인차 아리랑처녀라는 노래를 편곡해서 보내주었다.스케일이 웅장하고 완전히 김경자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런 음악이라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구나!)
김경자씨에게 힘을 실어준 계기가 된 노래였다.
김경자씨는 금년 5월초와 6월초에 두번 상해에 다녀가면서 앨범에 수록될 사계절거리,망향아리랑,소녀와 꽃 등 11수의 노래의 록음을 전부 마쳤다. 앨범에 실린 평화의 잔치란 노래의 작사자 애미는 김경자씨의 딸이라고 한다.
향수에 젖은 노래앨범
김경자씨는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을 17살 소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불렀다고 한다.앨범의 주제는 고향을 떠난이들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아름다웠던 옛날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가려는 결심이라고 한다. 노래풍격은 한국풍격도 조선풍격도 아닌 순수한 연변풍격이라고 한다. 김영준사장은 록음할 때 기교보다는 진실한 감정을 담아달라고 주문했고 일본 엔까와 같은 기교에 심취해있던 김경자씨는 사유를 바꾸느라고 숱한 애를 먹었다고 한다.
김경자씨는 앨범을 준비하는 기간이 그렇게 설에이고 행복할수 없었다고 말한다. 록음일정이 잡히면 뛸듯이 기뻤고 록음하러 가는 길은 마냥 행복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한다. 록음할때는 음악에 심취해서 춤까지 절로 나오더란다.
한편 김경자씨는 일본에서 올해 6월초에 공영방송사인 NHK에 캐스팅되여 인터뷰를 하고 옛날 부르던 노래인 물소리 새소리와 이번 앨범에 수록되는 소녀와 꽃, 칠갑산을 불러 센세이숀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김영준사장은 아직까지 음악을 버리지 않은 김경자씨를 칭찬해마지 않는다.김경자씨는 김경자씨대로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김영준사장과 파트너가 되면서 음악을 들을수 있는 귀와 마음이 더 열린것 같다고 감회를 밝힌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 다 록음한 노래들에 만족하고 있다.
가수꿈은 영원히 간직할터
김경자씨는 일본에서 살면서 고향이 그립고 친척들, 동학들과 옛날 음악을 함께 하던 친구들이 무척 그리웠다고 말한다. 일본에 간지 3년만에 돌아왔을 때까지만해도 친구들을 만날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 뿔뿔이 흩어져있어 쓸쓸하다고 말한다. 연변에서 가수생활을 할때 사이 좋게 지낸 현철,허순금,박춘우,진영희,김홍옥, 등 등 익숙한 이름을 불러본다.
김경자씨는 또 음악을 포기한 친구들도 아주 많지만 자신은 절대로 가수꿈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올해는 자신에게 있어서 이제 겨우 첫시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김경자씨는 이번 앨범제작을 기점으로 장차 자주 고향과 련계를 가지고 음악활동을 하련다는 소망도 펴보였다
고향사람들에게 좋은 노래를 불러주는게 자신이 할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고 고향사람들에게 드리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김경자씨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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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을 구입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서 일단 일본에서의 앨범구입처를 남깁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직접 전화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03-4570-6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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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8)
나이가 들어도 깜찍한 동장,귀여운 목소린 여전하네요.
김경자씨의 변함없는 달콤한 노래소리를 들으니
너무 감격스러워서 가슴이 뭉클해납니다.
세월은 지났지만 달콤한 목소리는 그대로 남아있군요.
그리고 라이라크를 부르시던 김파씨,지금도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나쯔까시이~
좋은 기사 고맙습니다. NHK영상 볼수 없을까요? 이미 상영되였나요?간절히 부탁합니다.일본방송에서 이름은 똑같나요?
꼭 보고 싶은데요, 잘 부탁드립니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가슴이 뭉클해납니다.
세월은 지났지만 달콤한 목소리는 그대로 남아있군요.
그리고 라이라크를 부르시던 김파씨,지금도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나쯔까시이~
좋은 기사 고맙습니다. NHK영상 볼수 없을까요? 이미 상영되였나요?간절히 부탁합니다.일본방송에서 이름은 똑같나요?
꼭 보고 싶은데요, 잘 부탁드립니다.
가수하던분이 먼가 다르긴하나봅니다, 목소리는 정말 변함없네요,
남편분이 티비뉴스에 나오시던 변선생님이시나봐요.
남편분이 티비뉴스에 나오시던 변선생님이시나봐요.
에..? 소오데쓰까???
그 북조선 형세에 아주 상세하다는 매번 북조선에 관한 사건이 발생하면 인터뷰밭던 변진일선생?
코리안레포트 잡지사 편집이라는분???
그 북조선 형세에 아주 상세하다는 매번 북조선에 관한 사건이 발생하면 인터뷰밭던 변진일선생?
코리안레포트 잡지사 편집이라는분???
에?..
우에 인터뷰기사에서는 남편분이 모대학 교수님이시라는데..
잡지사 편집은 아닌거 아님???...
우에 인터뷰기사에서는 남편분이 모대학 교수님이시라는데..
잡지사 편집은 아닌거 아님???...
에...소오다또오모우게도...변영浩교수님?아닌가요?
미용원 잘 댕겼는머이지,,
피부가 아주===
피부가 아주===




그냥 노력해서 많은 우수한 작품 내놓길 바랍니다.
김경자씨의 딸 사진도 좀 보여줄수 없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