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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리전투 옛터 |
화룡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20키로메터 상거한 청산촌에는 청산리대첩기념비가 있습니다.
청산리대첩기념비는 산골짜기로부터 160여개 층계를 통과해야 주체부분의 웅위로운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높이가 15메터인 기념비는 거대한 화강암을 가공해 만들었습니다.
지난 세기 20년대초, 연변의 항일무장에 겁을 먹은 일제는 조선과 구 쏘련 경내 일부 부대를 규합해 연변항일무장을 일거에 없애려고 날뛰였습니다. 홍범도, 김좌진 등이 령도하는 연변 여러 항일무장대는 협의를 맺고 3개 련대를 구성해 청산리, 봉밀구 일대에 집결했습니다.
1920년 10월 21일, 일본군은 북로군정서부대를 추격해 청산리 백운평에 들어섰습니다. 백운평 서쪽 가파로운 골짜기 량켠 산중턱에 매복해 있던 항일대원들은 적들이 매복권에 들어오자 불의의 습격을 들이댔습니다. 약 1시간의 격전을 거쳐 일본군 제37려단 제73련대 야마다대좌가 거느린 토벌대는 전부 소멸됐습니다. 26일까지 항일부대는 갑산,장인강,홍기하 등 곳에서 대소 전투 10여차를 조직해 적 1000여명을 소멸했습니다.
화룡시 당사연구실 박순철입니다.
[청산리 대첩은 작은 력량을 가지고 큰 력량을 무찌른 전투이며 조선족 군중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투쟁으로서 일본침략자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고 조선족 인민들의 항일의 적극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
청산리대첩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연변공공관계협회에서는 2000년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청산리대첩 첫 전투지인 백운평전적지와 멀지 않은 곳에 기념비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2001년 8월 31일에 준공했습니다. 2005년 6월, 청산리대첩기념비는 화룡시문화체육국으로 이관됐으며 현재 화룡시문화유물로 보호받고있습니다.
사진/글: 연변방송 리은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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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4)
경제개발시대에 돈만 돈이라고 새일대를 교육하지 않는 어른들이 돈은 가득들여 비석을 쌓은들 몇년을 버티랴???!!!
세세대대의 마음속에 먼저 비석을 세우자!!!
연변에서는 그냥 허가만 내줫을뿐




여기저기 파손 되어 잇던데
지금은 몇년 지낫으니깐 더 형편없이되엇겟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