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의 한 소녀가장 김옥선 대학등록금때문에 고민하고있습니다. 6000여원되는 학비도 아직 구하지 못한 형편, 숙소비 생활비 등 입학후
달마다 들어야 할 1000여원의 비용도 래원이 전무한 상태.
부모없이 혼자서 자취생활하면서 이악스럽게 공부하던 연길시제2고급중학교 김옥선(20세)학생이 일전에 연변대학 의학원의 입학통지서를 받아쥐는 경사를 맞이했다. 그러나 기쁨도 한순간, 김옥선학생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학교에 내야 할 학비며 숙소비, 향후 공부비용때문에 걱정이 태산같다.
옥선이가 9살나던 해, 백혈병으로 8년동안 앓던 어머니가 돌아갔다. 설상가상으로 2003년 과도한 육체적피로로 아버지마저 뇌출혈로 쓰러지자 14살밖에 안되던 나어린 옥선이는 하루아침사이에 《소녀가장》으로 되고말았다. 밥하고 빨래하고 생활능력을 상실한 아버지를 돌보는 힘든 가무일을 맡아하면서 공부까지 해야 하는 옥선이는 너무너무 힘들었다. 가끔씩 친척들이 쥐여주는 얼마 안되는 돈으로 생활을 하다보니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당시 연길시3중에 다니던 옥선이는 교통이 불편하지만 세집값이 싼 백석촌에 세집을 맡을수밖에 없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밥을 지어먹고 15분가량 걸어서 선로뻐스를 타고 학교를 오가느라면 힘에 부쳤지만 옥선이는 병환에 계시는 아버지앞에서 힘든 내색 한번 내지 않았다.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알뜰하게 살림을 영위해나는 소녀가장을 주위에서는 《똑순》이라 불렀다. 거동이 불편하고 심한 언어장애가 온 아버지가 고생하는 딸애를 뻔히 보면서 도와줄수 없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릴 때면 오히려 아픈 아버지를 위안해드리는 착한 딸이기도 했다.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공부할수 있다는것에 감사해 옥선이는 지각 한번 한적이 없었으며 학습성적은 늘 반급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군 했다. 다행히 어린 조카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 고모가 옥선이가 공부할수 있게 학비도 대주고 생활의 구석구석을 보살펴주었다.
그러던 2006년 3월, 불행하게도 고모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아무런 경제원천이 없던 옥선이가정은 생계에 큰 타격을 받았다. 어느날, 쌀독에 쌀이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쏟던 옥선이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할 결심을 내렸다. 눈물 흘리며 담임선생님한테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힘들게 꺼냈을 때 옥선이의 처지를 가슴아프게 생각한 김미숙선생님은 학교지도부에 옥선이의 가정형편을 반영하였으며 학교지도부에서는 옥선학생돕기 모금활동을 벌임과 동시에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과 연길인민방송국 아리랑방송을 찾게 되였다.
2006년 5월 13일, 17살 소녀가장의 가슴아픈 사연이 전파를 타자 사회 각계 고마운 분들의 사랑의 손길이 이 불우한 소녀가장과 그 가정에 전해졌다. 연길시 북산가두 뢰봉반의 김봉숙할머니를 비릇한 한무길, 문태경, 김명휘, 김신생, 현룡선, 김미란 등 많은 고마운 분들과 《아기사진관》의 김정례사장님을 비릇한 박해구사장 등 해외인사들이 이 가정을 찾았다.
연길시신약대약방의 반사장, 중의진료소 박원장은 중풍치료에 효과가 좋은 몇천원어치의 약품과 중약을 무료로 제공해주었으며 옥선이 집을 찾아 침를 놓아드리면서 아버지의 병치료를 해드렸다.
고중입시를 앞두고 옥선이에게 좋은 학습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공원소학교 김미란선생님은 옥선이를 집에 데려다 동갑내기 딸과 함께 공부하도록 살뜰하게 보살펴주었기에 두달후 옥선이는 마침내 524점이란 높은 점수로 연길시제2고급중학교에 입학할수 있게 되였다.
그러나 이같은 기쁨도 잠시, 고마운 분들의 은정에 열심히 공부하는것으로 보답하라고 신신당부하던 아버지가 두달도 채 안돼 세상을 떠나고말았다. 혈혈단신 고아로 된 옥선이가 외로움에 괴로워할 때 그의 곁을 지켜준 《친인》들이 나타났다. 늘 곁에서 옥선이네 가정에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분들이였다. 문태경할아버지는 세상 뜬 아버지의 상사도 깨끗이 마무리해주었을뿐만 아니라 대리아빠로 학부모회의나 운동대회에 참가하여 옥선이에게 아빠사랑을 주었다. 아버지가 세상뜬후 혹 우울증에라도 걸릴라 심리상담을 해주면서 건강한 심리를 갖도록 사랑을 아끼지 않던 박해구 큰아버지와 달마다 소비돈을 쥐여주던 강월자 큰어머니, 행여 맛나는 음식이 생길 때마다 불러다 맛보이던 김봉숙할머니, 현룡선아저씨… 이들 모두는 옥선이에게 있어서 비록 한피줄은 나누지 않았지만 둘도 없는 소중한 가족이였다. 어린 나이에 혼자 세집맡고 생활하다보니 말못할 어려움이 많고 여느 애들처럼 과외보도 한번 받아본적이 없었지만 더는 홀로가 아니라는 위안에 옥선이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악스레 공부에 열중하였다.
올해 대학입시에서 옥선이는 471점의 성적으로 오매불망 그리던 연변대학의학원 약학전업에 입학했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꼭 붙고야 말겠다던 의학원에 입학하는 꿈을 옥선이가 이루어낸것이다. 《이제 훌륭한 의사가 되여 질병의 고통속에서 헤매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여 고마운 이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사회에 보답하고싶다》고 옥선이는 말한다.
대학에 입학한 옥선이지만 아직 그의 앞에는 허다한 경제적 어려움들이 가로막고있다.일차적으로 학교에 내야 하는 근 6000원되는 학비도 아직 구하지 못한 형편이고 숙소비며 생활비 등 학교입학후 달마다 들어가야 할 1000여원의 비용도 래원이 전무한 상태이다. 옥선이는 대학생활에 드는 일상비용은 아껴먹고 아껴쓰는 한편 공부하면서 밤시간을 리용한 아르바이트로 해결할 타산이다.
옥선이가 의사로 되여 사회에 보답하고싶다는 꿈의 실현을 우리 사회는 적극 지지하고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옥선학생에게 도움을 주실분은 길림신문 《연변25시》 편집부와 련락 바란다. 련계전화:0433-2518860)
부모없이 혼자서 자취생활하면서 이악스럽게 공부하던 연길시제2고급중학교 김옥선(20세)학생이 일전에 연변대학 의학원의 입학통지서를 받아쥐는 경사를 맞이했다. 그러나 기쁨도 한순간, 김옥선학생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학교에 내야 할 학비며 숙소비, 향후 공부비용때문에 걱정이 태산같다.
옥선이가 9살나던 해, 백혈병으로 8년동안 앓던 어머니가 돌아갔다. 설상가상으로 2003년 과도한 육체적피로로 아버지마저 뇌출혈로 쓰러지자 14살밖에 안되던 나어린 옥선이는 하루아침사이에 《소녀가장》으로 되고말았다. 밥하고 빨래하고 생활능력을 상실한 아버지를 돌보는 힘든 가무일을 맡아하면서 공부까지 해야 하는 옥선이는 너무너무 힘들었다. 가끔씩 친척들이 쥐여주는 얼마 안되는 돈으로 생활을 하다보니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당시 연길시3중에 다니던 옥선이는 교통이 불편하지만 세집값이 싼 백석촌에 세집을 맡을수밖에 없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밥을 지어먹고 15분가량 걸어서 선로뻐스를 타고 학교를 오가느라면 힘에 부쳤지만 옥선이는 병환에 계시는 아버지앞에서 힘든 내색 한번 내지 않았다.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알뜰하게 살림을 영위해나는 소녀가장을 주위에서는 《똑순》이라 불렀다. 거동이 불편하고 심한 언어장애가 온 아버지가 고생하는 딸애를 뻔히 보면서 도와줄수 없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릴 때면 오히려 아픈 아버지를 위안해드리는 착한 딸이기도 했다.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공부할수 있다는것에 감사해 옥선이는 지각 한번 한적이 없었으며 학습성적은 늘 반급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군 했다. 다행히 어린 조카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 고모가 옥선이가 공부할수 있게 학비도 대주고 생활의 구석구석을 보살펴주었다.
그러던 2006년 3월, 불행하게도 고모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아무런 경제원천이 없던 옥선이가정은 생계에 큰 타격을 받았다. 어느날, 쌀독에 쌀이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쏟던 옥선이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할 결심을 내렸다. 눈물 흘리며 담임선생님한테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힘들게 꺼냈을 때 옥선이의 처지를 가슴아프게 생각한 김미숙선생님은 학교지도부에 옥선이의 가정형편을 반영하였으며 학교지도부에서는 옥선학생돕기 모금활동을 벌임과 동시에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과 연길인민방송국 아리랑방송을 찾게 되였다.
2006년 5월 13일, 17살 소녀가장의 가슴아픈 사연이 전파를 타자 사회 각계 고마운 분들의 사랑의 손길이 이 불우한 소녀가장과 그 가정에 전해졌다. 연길시 북산가두 뢰봉반의 김봉숙할머니를 비릇한 한무길, 문태경, 김명휘, 김신생, 현룡선, 김미란 등 많은 고마운 분들과 《아기사진관》의 김정례사장님을 비릇한 박해구사장 등 해외인사들이 이 가정을 찾았다.
연길시신약대약방의 반사장, 중의진료소 박원장은 중풍치료에 효과가 좋은 몇천원어치의 약품과 중약을 무료로 제공해주었으며 옥선이 집을 찾아 침를 놓아드리면서 아버지의 병치료를 해드렸다.
고중입시를 앞두고 옥선이에게 좋은 학습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공원소학교 김미란선생님은 옥선이를 집에 데려다 동갑내기 딸과 함께 공부하도록 살뜰하게 보살펴주었기에 두달후 옥선이는 마침내 524점이란 높은 점수로 연길시제2고급중학교에 입학할수 있게 되였다.
그러나 이같은 기쁨도 잠시, 고마운 분들의 은정에 열심히 공부하는것으로 보답하라고 신신당부하던 아버지가 두달도 채 안돼 세상을 떠나고말았다. 혈혈단신 고아로 된 옥선이가 외로움에 괴로워할 때 그의 곁을 지켜준 《친인》들이 나타났다. 늘 곁에서 옥선이네 가정에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분들이였다. 문태경할아버지는 세상 뜬 아버지의 상사도 깨끗이 마무리해주었을뿐만 아니라 대리아빠로 학부모회의나 운동대회에 참가하여 옥선이에게 아빠사랑을 주었다. 아버지가 세상뜬후 혹 우울증에라도 걸릴라 심리상담을 해주면서 건강한 심리를 갖도록 사랑을 아끼지 않던 박해구 큰아버지와 달마다 소비돈을 쥐여주던 강월자 큰어머니, 행여 맛나는 음식이 생길 때마다 불러다 맛보이던 김봉숙할머니, 현룡선아저씨… 이들 모두는 옥선이에게 있어서 비록 한피줄은 나누지 않았지만 둘도 없는 소중한 가족이였다. 어린 나이에 혼자 세집맡고 생활하다보니 말못할 어려움이 많고 여느 애들처럼 과외보도 한번 받아본적이 없었지만 더는 홀로가 아니라는 위안에 옥선이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악스레 공부에 열중하였다.
올해 대학입시에서 옥선이는 471점의 성적으로 오매불망 그리던 연변대학의학원 약학전업에 입학했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꼭 붙고야 말겠다던 의학원에 입학하는 꿈을 옥선이가 이루어낸것이다. 《이제 훌륭한 의사가 되여 질병의 고통속에서 헤매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여 고마운 이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사회에 보답하고싶다》고 옥선이는 말한다.
대학에 입학한 옥선이지만 아직 그의 앞에는 허다한 경제적 어려움들이 가로막고있다.일차적으로 학교에 내야 하는 근 6000원되는 학비도 아직 구하지 못한 형편이고 숙소비며 생활비 등 학교입학후 달마다 들어가야 할 1000여원의 비용도 래원이 전무한 상태이다. 옥선이는 대학생활에 드는 일상비용은 아껴먹고 아껴쓰는 한편 공부하면서 밤시간을 리용한 아르바이트로 해결할 타산이다.
옥선이가 의사로 되여 사회에 보답하고싶다는 꿈의 실현을 우리 사회는 적극 지지하고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옥선학생에게 도움을 주실분은 길림신문 《연변25시》 편집부와 련락 바란다. 련계전화:0433-2518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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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16)
눈물나는 사연입니다....
모두들 지원의 손길 보낼수 잇는 시스템으로 바꾸시죠..
전화번호만 딸랑 남기지 마시구...
모두들 지원의 손길 보낼수 잇는 시스템으로 바꾸시죠..
전화번호만 딸랑 남기지 마시구...
악어의 눈물님
의학원 다녔어요? 의학원에 편견 가지지 마십시오..
아무리 못한 학교라두 거기서 열심히 하면 인재가
나올수 있거든요... 학비 6000원은 넘 비싼거
아니죠... 물가가 얼마로 올랐는데요...
그리구 예전하구는 틀리죠.. 제가 알기로는 97년부터
학비를 국가에서 부담하지 않구 자비제도로 바꿨는데..
96년까지는 확실히 일년에 500원엿어요...
지금으로부터 13년전입니다...
연변 의학원 졸업하구 일본에서 활동하는 훌륭한 선배님들
많아요.. 개인적 편견 버립시다...
의학원 다녔어요? 의학원에 편견 가지지 마십시오..
아무리 못한 학교라두 거기서 열심히 하면 인재가
나올수 있거든요... 학비 6000원은 넘 비싼거
아니죠... 물가가 얼마로 올랐는데요...
그리구 예전하구는 틀리죠.. 제가 알기로는 97년부터
학비를 국가에서 부담하지 않구 자비제도로 바꿨는데..
96년까지는 확실히 일년에 500원엿어요...
지금으로부터 13년전입니다...
연변 의학원 졸업하구 일본에서 활동하는 훌륭한 선배님들
많아요.. 개인적 편견 버립시다...
기자 글수평 엉망이구만 ....
참 않된 사연이긴한데 돈을 지원할려면 직접 본인 손에다 쥐여줘야지 누구 좋은 노릇시키자구 ..
참 않된 사연이긴한데 돈을 지원할려면 직접 본인 손에다 쥐여줘야지 누구 좋은 노릇시키자구 ..
너무나도 딱한 사연입니다.
여러가지 의견들이 많으신것같은데 그런건 둘째치구
진짜 사실이라면 도와드립시다,특히 일본에 있는분들...
근데 연변25시라는프로 들어보신분 있으세요?
외국생활을 오래하다보니 못들었던 방송이라 걱정두 없지않아 있네요.
여러가지 의견들이 많으신것같은데 그런건 둘째치구
진짜 사실이라면 도와드립시다,특히 일본에 있는분들...
근데 연변25시라는프로 들어보신분 있으세요?
외국생활을 오래하다보니 못들었던 방송이라 걱정두 없지않아 있네요.
진짜 너무 불쌍한 애구만요.이런 애들은 나라에서도 좀 도와주었으라면.....후
아닌게 아니라 직접 본인손에 돈을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것 같으니 이 학생의 상세한 주소를 올리는게 더 좋을상 싶을듯 하네요.저도 조금이라도 도와주고싶네요. 너무 불쌍해요.
아닌게 아니라 직접 본인손에 돈을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것 같으니 이 학생의 상세한 주소를 올리는게 더 좋을상 싶을듯 하네요.저도 조금이라도 도와주고싶네요. 너무 불쌍해요.
일본 또라이화 된 이런 곳에 글을 올려봣자 마이너스 되는 일밖에 없군요.
볼일없는 사람들은 일이나 열심히 하든가 하지
중국대학하고 일본대학을 비교하는것은 시간랑비 밖에 되나?
볼일없는 사람들은 일이나 열심히 하든가 하지
중국대학하고 일본대학을 비교하는것은 시간랑비 밖에 되나?
의학원은 빈곤학생을 위한 장학금제도가 없는가요?
정부는 무얼하고 맨날 국민들한테 빈곤한 사람을 도와주라 선전을 하는것인지?
자연재해가 일어나도 애국심을 불러일으켜서 개인들의 돈을 긁어모으면서 국가는 부담을 적게 하더군요.
국민의 세금으로 모아진 국가의 돈으로 잘먹구 잘사는 관리들한테 이런 빈곤 어린이를 구해주라고 해보세요.
또한 대학을 나와야만 사회의 유용한 인물이 되나요?
의사가 되여야만 사회에 보답할수 있나요?
경제조건이 허락안되면 대학을 못다니는것이지 억지로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대학을 다녀야 하나요?
나중에 경제조건이 허락되면 얼마든지 자비로 다닐수 있는것이 대학이 아닌가요?
의무교육과정을 걸치고 고등학교를 나왔으면 되였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에게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에서 할수있는 일부터 착수해서 노력 하시길 바란다고 전해주고 싶네요.
자신의 꿈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먼길을 에돌아가면서라도 실현할수 있는것이예요. 강한 의지만 있으면요.
정부는 무얼하고 맨날 국민들한테 빈곤한 사람을 도와주라 선전을 하는것인지?
자연재해가 일어나도 애국심을 불러일으켜서 개인들의 돈을 긁어모으면서 국가는 부담을 적게 하더군요.
국민의 세금으로 모아진 국가의 돈으로 잘먹구 잘사는 관리들한테 이런 빈곤 어린이를 구해주라고 해보세요.
또한 대학을 나와야만 사회의 유용한 인물이 되나요?
의사가 되여야만 사회에 보답할수 있나요?
경제조건이 허락안되면 대학을 못다니는것이지 억지로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대학을 다녀야 하나요?
나중에 경제조건이 허락되면 얼마든지 자비로 다닐수 있는것이 대학이 아닌가요?
의무교육과정을 걸치고 고등학교를 나왔으면 되였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에게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에서 할수있는 일부터 착수해서 노력 하시길 바란다고 전해주고 싶네요.
자신의 꿈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먼길을 에돌아가면서라도 실현할수 있는것이예요. 강한 의지만 있으면요.
너무나도 딱한 사연입니다.
학교가 좋고 나쁘고 관계없이 의학대학은 실험약품에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오후시간은 거의다 실험입니다.때문에 학비도 더 비쌉니다.그리고 집형편에 따라 학비면제제도도 필요한데 아직 그런제도는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다만 학비를 낸다음 일부를 되돌려받는 제도는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장학금제도는 있습니다.다만 필업후 갑아야 합니다.저는 이때까지 공부가 따라못가 학교를 그만두는 사람을 많이 보았지만 돈이 없어서 대학을 포기하는것은 못봤습니다.어떻게 해서라도 학교는 필어하게 되여있습니다.힙내세요.
이런 불우한 내후배도 있구만,,,내가 다닐때도 학비 1800여원이던게,,,어느새 6천ㅠㅠㅠ
사회주의 나라에서 이런 빈곤학생을 도와도 못주기에 이르렀는가???
맘 좋은 이웃들이 있기에 행운이지만 이많은 돈을 어찌,,,ㅉㅉㅉ
근데 내 알기로 빈곤학생은 학비 면제하는 제도있는거 갔던데,,,
내가 다니던해 우리반에 남자애가 전액 면제 받았는데,,,물론 또우왤과 관계도 많아서 애들의 불평 있었지만 ...
학교에 상담 해보시지요...
그만큼 공부 잘하면 매달 생활비는 받겠는데 노력하세요 ㅎㅎㅎ
돈이 없다고 기가 죽지 말았으면 합니다 ㅎㅎㅎ 조만간에 노력이 열매를 맺을걸요 ㅎㅎㅎ
사회주의 나라에서 이런 빈곤학생을 도와도 못주기에 이르렀는가???
맘 좋은 이웃들이 있기에 행운이지만 이많은 돈을 어찌,,,ㅉㅉㅉ
근데 내 알기로 빈곤학생은 학비 면제하는 제도있는거 갔던데,,,
내가 다니던해 우리반에 남자애가 전액 면제 받았는데,,,물론 또우왤과 관계도 많아서 애들의 불평 있었지만 ...
학교에 상담 해보시지요...
그만큼 공부 잘하면 매달 생활비는 받겠는데 노력하세요 ㅎㅎㅎ
돈이 없다고 기가 죽지 말았으면 합니다 ㅎㅎㅎ 조만간에 노력이 열매를 맺을걸요 ㅎㅎㅎ
自己经济不允许的话 还是抛弃大学的有道理 大学毕业后也不一定都能成为人才 在中国 人才是用钱养出来的 现在在日本辛辛苦苦打工的这些人 有几个不是大学毕业的啊 我也后悔念的大学 4年大学生活花了不少钱不说4年打工能赚多少钱啊 等有了钱再学也不迟 自己底子薄还要成人才是在做梦
mp4님 ......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 분들은 확실이 또라이 화 됐다고 봐야죠...그것은 그들이 사회에서 돈을 버는 어려움과 외국에서의 고통이 사람을 바꾼거죠. 하지만 나쁘게 변화한거 아닙니다...당신들이 이해할수 없는 그런 좋은 방면으로 변화한거죠...일종 그로바르화라고 할까...
돈 없어서 학교 못가는 정황 저도 잘 이해 합니다.저도 한때는 학비 내기가 힘겨워서 의학원 포기했죠. 이학생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데...... 역시 직접 학생의 손에 도움이 가도록 하고 싶네요...이러는것도 또라인가?...확실히 세상이 무서우니까요...
돈 없어서 학교 못가는 정황 저도 잘 이해 합니다.저도 한때는 학비 내기가 힘겨워서 의학원 포기했죠. 이학생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데...... 역시 직접 학생의 손에 도움이 가도록 하고 싶네요...이러는것도 또라인가?...확실히 세상이 무서우니까요...
最近、教育部の直轄大学は師範類専門を無料にしているけど、そういう大学に志願を出したほうが良かったかも。
授業料を払わなくてまた補助金も毎月出るので。
でも、お父さんのこともあるので無理か。
연변대학に連絡して、こういう子にはなんとして無料にしてもらったらどうかな?
연변대학はどういう財政状況か知らないけど、何人の貧困生の授業料減免ぐらいはできるだろう。
shimtoに연변대학の学長を知っている人いると、学長にメールでも送って見てください。
わが国は社会主義なので、これぐらいのことも解決できないと~
しかも、今の大学はほとんど儲かっているので、こういう絶望の中でやっと生きていく子に希望でも送ったら、
この子にはまた世界が明るく見えるようになり、戦って行けます。
だれか연변대학の学長か管理者を知っている人、力を貸して下さい!
授業料を払わなくてまた補助金も毎月出るので。
でも、お父さんのこともあるので無理か。
연변대학に連絡して、こういう子にはなんとして無料にしてもらったらどうかな?
연변대학はどういう財政状況か知らないけど、何人の貧困生の授業料減免ぐらいはできるだろう。
shimtoに연변대학の学長を知っている人いると、学長にメールでも送って見てください。
わが国は社会主義なので、これぐらいのことも解決できないと~
しかも、今の大学はほとんど儲かっているので、こういう絶望の中でやっと生きていく子に希望でも送ったら、
この子にはまた世界が明るく見えるようになり、戦って行けます。
だれか연변대학の学長か管理者を知っている人、力を貸して下さい!
.............이게 인생인가........여러가지.........


옥선씨가 의학원 약학계에 입학햇다구 적어셨는데
밑에는 훌륭한 의사가 된다구 쓰셨거든요...
수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