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성 진황도시내에서 1시간 거리 상거해있는 곳에 서하남촌이라는 조선족마을이 있다. 무녕현에 속한 서하남촌은 마을 전체가 한족동네에 빙 둘러싸여 뻐스가 지나가는 큰길도 끼고있지 못한 작은 동네지만 우리 민족 풍습과 문화를 지켜가고 우리 민족 학교를 운영하고있는 자랑찬 고장이다.
서하남촌 방문은 우연했다. 개인사정으로 진황도시에 갔다가 조선족마을에 일보러 간다는 한 지인의 말에 저도 모르게 따라나섰다. 하북성에 조선족마을이 있을줄은 생각도 못했던지라 호기심이 부쩍 동했던것이다.
뻐스에서 내려 한족동네를 거쳐 마을입구를 들어가면서 마치도 자그마한 성안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골목 하나를 사이둔 한족동네와 확 다르게 우리 민족 특색이 풍겼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우리 말을 하고있었고 백의민족의 터전답게 마을환경이 정결하고 깨끗했다. 집집의 담장안에는 빨간 고추타래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었고 우리 민족 글로 된 프랑카드도 마을의 골목에서 심심찮게 볼수 있었다. 무엇보다 네댓명의 청년이 동네골목길에서 우리 말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놀랍게 안겨왔다. 요즘 조선족마을에서 젊은이들 구경하기가 가뭄에 콩나듯 보기 드문 실정인터라 “기이한” 풍경이 아닐수 없었다. 그렇게 마을을 한바퀴 돈후 지인의 도움으로 촌의 림종길서기를 만날수 있었다.
서하남촌 동네입구에 세워진 조선족촌 패말
소개에 의하면 1939년 박씨성을 가진 두 조선족형제가 벼종자를 갖고 오면서부터 조선족들이 이 동네에 발을 붙이기 시작했다. 당시 이곳에 온 두 형제는 한 지주로부터 200무의 토지를 구입해 벼농사를 지었는데 풍작을 거두었으며 그뒤 동북3성으로부터 30여호의 친지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후 1952년부터 1959년 사이 동북3성과 내몽골 등지에서 많은 조선족촌민들이 이주해와 현재 마을은 140호에 454명의 촌민 그리고 1110무의 밭이 있다. 하지만 조선족들의 외지나들이붐은 이곳에서도 례외가 아니였다. 현재 마을에 남아있는 촌민은 60여명밖에 되지 않는데 거의 늙은이들이라 밭을 부치고있는 집은 한세대도 없다고 한다. 다행히 북경, 천진 등지와 거리가 가까와 휴가때나 주말이 되면 고향에 내려오는 젊은이들이 많아 그나마 생기가 돈다고 림종길서기가 소개했다. 그러면서 촌에 밭을 다루는 집은 한세대도 없지만 아직까지 밭을 팔았거나 류실한 집은 없으며 호적상으로 한족은 한집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학교는 학생고갈문제로 5년전부터 한족학교와 합작해서 경영하고있지만 여전히 조선족학교라는 간판을 내걸고있으며 교장선생도 조선족이라고 소개했다. 100여명의 학생중 조선족학생이 4명, 학교에서는 한족학생들에게 한국어과를 설치하여 가르친다고 했다.
한적한 마을길
림종길서기는 “현재 마을을 조선족민속휴가촌으로 건설하기 위해 당지정부의 많은 관심과 지지속에서 알찬 준비를 하고있다”고 소개했다. 서하남촌은 하북성의 유일한 조선족촌으로서 관광개방도시인 진황도시의 지리적우세와 정책을 잘 리용하고 조선족의 음식, 문화 등 우량한 전통풍습을 곁들인다면 많은 관광객들의 발목을 잡을수 있을것이라는 야심찬 계획이다. 장차 마을을 주택구, 학교, 음식, 오락 시설을 일체화한 새 터전으로 이전시켜 민족생태휴가촌으로 거듭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는 림종길서기는 “마을은 북으로 경산철도와 경진도로 및 205국도와 린접해있어 기업인들에게 많은 편리를 줄것이다”고 표하면서 “조선족들과 한국을 비롯한 해내외투자업자들이 서하남촌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정봉화
서하남촌 방문은 우연했다. 개인사정으로 진황도시에 갔다가 조선족마을에 일보러 간다는 한 지인의 말에 저도 모르게 따라나섰다. 하북성에 조선족마을이 있을줄은 생각도 못했던지라 호기심이 부쩍 동했던것이다.
뻐스에서 내려 한족동네를 거쳐 마을입구를 들어가면서 마치도 자그마한 성안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골목 하나를 사이둔 한족동네와 확 다르게 우리 민족 특색이 풍겼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우리 말을 하고있었고 백의민족의 터전답게 마을환경이 정결하고 깨끗했다. 집집의 담장안에는 빨간 고추타래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었고 우리 민족 글로 된 프랑카드도 마을의 골목에서 심심찮게 볼수 있었다. 무엇보다 네댓명의 청년이 동네골목길에서 우리 말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놀랍게 안겨왔다. 요즘 조선족마을에서 젊은이들 구경하기가 가뭄에 콩나듯 보기 드문 실정인터라 “기이한” 풍경이 아닐수 없었다. 그렇게 마을을 한바퀴 돈후 지인의 도움으로 촌의 림종길서기를 만날수 있었다.
서하남촌 동네입구에 세워진 조선족촌 패말
소개에 의하면 1939년 박씨성을 가진 두 조선족형제가 벼종자를 갖고 오면서부터 조선족들이 이 동네에 발을 붙이기 시작했다. 당시 이곳에 온 두 형제는 한 지주로부터 200무의 토지를 구입해 벼농사를 지었는데 풍작을 거두었으며 그뒤 동북3성으로부터 30여호의 친지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후 1952년부터 1959년 사이 동북3성과 내몽골 등지에서 많은 조선족촌민들이 이주해와 현재 마을은 140호에 454명의 촌민 그리고 1110무의 밭이 있다. 하지만 조선족들의 외지나들이붐은 이곳에서도 례외가 아니였다. 현재 마을에 남아있는 촌민은 60여명밖에 되지 않는데 거의 늙은이들이라 밭을 부치고있는 집은 한세대도 없다고 한다. 다행히 북경, 천진 등지와 거리가 가까와 휴가때나 주말이 되면 고향에 내려오는 젊은이들이 많아 그나마 생기가 돈다고 림종길서기가 소개했다. 그러면서 촌에 밭을 다루는 집은 한세대도 없지만 아직까지 밭을 팔았거나 류실한 집은 없으며 호적상으로 한족은 한집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학교는 학생고갈문제로 5년전부터 한족학교와 합작해서 경영하고있지만 여전히 조선족학교라는 간판을 내걸고있으며 교장선생도 조선족이라고 소개했다. 100여명의 학생중 조선족학생이 4명, 학교에서는 한족학생들에게 한국어과를 설치하여 가르친다고 했다.
한적한 마을길
림종길서기는 “현재 마을을 조선족민속휴가촌으로 건설하기 위해 당지정부의 많은 관심과 지지속에서 알찬 준비를 하고있다”고 소개했다. 서하남촌은 하북성의 유일한 조선족촌으로서 관광개방도시인 진황도시의 지리적우세와 정책을 잘 리용하고 조선족의 음식, 문화 등 우량한 전통풍습을 곁들인다면 많은 관광객들의 발목을 잡을수 있을것이라는 야심찬 계획이다. 장차 마을을 주택구, 학교, 음식, 오락 시설을 일체화한 새 터전으로 이전시켜 민족생태휴가촌으로 거듭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는 림종길서기는 “마을은 북으로 경산철도와 경진도로 및 205국도와 린접해있어 기업인들에게 많은 편리를 줄것이다”고 표하면서 “조선족들과 한국을 비롯한 해내외투자업자들이 서하남촌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정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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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5)
정말 조선족은 사면팔방에 뿌리내렷네요
사막에 오아시스네....희귀하기두하구....ㅎㅎㅎ
한번 가봤으면......
주소있으면 한번 올려주소이....
한번 가봤으면......
주소있으면 한번 올려주소이....
근데 아이들 얼굴이랑 옷이랑 딱 한족같네
우리글 우리말 지켜가는 일이 쉽지 않지만..
응원합니다..그리고 기도 합니다..
응원합니다..그리고 기도 합니다..


나도 가두 되는지?어떻게 련결방법없는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