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하늘땅이 맞붙는듯한 아픔을 견디면서 나를 낳으셨다고 한다.한돐에 친어머니를 잃고 계모손에서 자란 어머니는 자신이 겪은 슬픔을 잘 알기에 자식사랑에 특별했다.
유치원에 다닐적에 어머니가 성장과정으로 1년에 한번씩 찍어둔 나와 동생의 사진들은 지금도 우리집의 앨범에 그대로 끼워져있다.동생과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성격이 많이 달랐다.어머니가 사오신 과자며 맛있는 간식들을 나와 동생은 똑같게 나눠가졌지만 나는 항상 금방 먹어버리고는 동생한테 더 달라고 졸라댔었다.그때마다 동생은 어디선가 숨겨두었던 간식들을 나에게 하나씩 꺼내주고는 했었다.어머니,아버지가 출근하고 동생이랑 둘이 같이 있으면 나와 동생은 곧잘 노는 편이였다.언, 한번은 내가 어머니 옷견지들을 정리했다고 동생이 어머니한테 누나가 참 잘했다고 회보했던 기억도 난다.
소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잘했던 내가 어머니한테는 너무킅 기쁨이렸다고 하신다.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을세라 승벽심이 강했던 나한테 어머니는 내가 참가하고싶은 과외써클에 다 참가하게 했을뿐만아니라 비싼 손풍금까지 사주셨다.학교에서 모임이 있을때면 어머니가 사준 손풍금을 메고 참가했던 기억도 난다.또 어느 한 겨울에 여느애들은 구경하지도 못한 비싼 털코트를 사주신 어머니,그 코트를 입고 학교 겨울달리기시간에 달렸었던 기억도 난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나는 사춘기를 잘 넘기지 못했다.좋았던 학습성적이 막 하강하기 시작하면서 공부에 대한 흥취를 잃어갔다.하라는 공부틑 하지 않고 매일이다싶이 로라장에 들락거렸던 나한테 어머니는 갖은 교육방법을 다 들이댔지만 어머니가 태웠던 속을 모른채 비뚤어지기만 했었다.갈팡질팡 사춘기에서 방황하는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싶은 어머니의 속은 다 타서 재가 될 지경이셨다.그때 어머니는 너무도 안타까워서 처음 나때문에 눈물을 흘리겼다고 한다.
......
일본 류학비자가 떨어져서 일본에 오게 된 전날밤, 어머니는 어린 아이를 강가에 내보낸 사람처럼 근심이 쌓인 얼굴로 내 짐들을 정리해주셧다.연길-대련행기차에서 내리고 이튿날 대련공항에서 아버지와 함께 나를 일본으로 떠나보낼때어머니의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고였다.잠이 많은 우리딸이 유학공부와 아르바이트를 어떻게 견지하겟냐면서 어머니의 고였던 눈물이 맑은 샘이 되어서 흘러내렸다.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하다.020살 꽃나이에 일본땅에 간지도 어제같은데 어언간 오랜 시간이 흘러서 ......일본에서도 공부에 전념하지 않은 탓에 유학비자 연장이 불가능하게 되는바람에 나ㅡㄴㄴ 결혼이라는 소중한 무덤을 파고 한 일본인과 호적을 올리게 되였다.초총비자로 일본에 왔던 어머니가 불법체류자로 일본에 체류해있다가 10개월만에 잡혀서 돌아가고,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하고 아버지는 혼자 살아오신 1년사이에 몰라보개 늙으셨고,어릴적부터 내손잡고 유치원에 데려가고 데려오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더 안타까운 일은 내가 몹쓸병에 걸려입원을 거듭했고......
일본에 있을때어머니ㅡㄴㄴ 그 강한 자존심마저도 다 버리고 6개월동안 한국식당의 주방에서 매일이다싶이 스트레스와 설음을 참아내면서 일하셨다.그때도 몸이 많이 아팠던 나때문에 어머니는 밤잠을 설치면서 누물을 흘리셨다.
하지만 힘들고 고퉁스러운 날이 전부만은 아니다.어느덧 내가 오래동안 섬겨준 동생이 대학공부까지 우너만하게 마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서 고향 훈춘에서 취직하였고 앞으로 유망한 사람이 되려는 큰 꿈을 안고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는중이다.
그렇다 .나한테는 소중한 가족이 있다.항상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기다려주는 가족.
이제는 스스로 용기와 희망을 가지련다.소중한 생명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면서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많은 이자돈을 꿔서 이국땅까지 보내준 노고에 감사하면서 생을 아끼고 열심히 살아가련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살면서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보귀한 시간들을 아끼련다.
파라만장한 50고개 인생을 넘어오면서 가정과 자식에게 모든 심혈을 기울이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생을 살아오신 나의 어머니처럼,앞으로는 더 많은 배려심을 가지고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고싶다.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상처입는 사람이 있고.좋은 말 한마디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듯이 사람들한테 항상 따스한 마음만을 전하는 인간성을 키우고,옷깃을 스쳐지나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만남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
내가 많이 아팠을때 머머니가 울어 지쳐서 뜬눈으로 지샌 밤의 고톧도,의미도 아마 나는 잘 모를거다.친어머니를 잃고 계모손에서 자라 26살에 가정을 이루고 지금까지 남편한테서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이겨내고 오로지 자식만을 위해 최선다해 살아오신 나의 어머니,남편복 없으면 자식복이 있다는 말도 있는데 지금까지 나같은 철업고 부족한 자식때문에 지치고 또 지치신 나의 어머니,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응원주시고 감사합니다!
지금도 한창 한국에서 두아이의 보모로 열심히 일하고계실 나의 어머니,지금까지 어머니가 주신 소중한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죽고싶다는 말 함부로 했던 못난 자식을 용서하세요!
어머니,나를 처음 낳으셨을때 그 아픔과 고통의 의미를 늦게나마 처음으로 생각해봅니다!어머니,한없이 사랑한답니다!
유치원에 다닐적에 어머니가 성장과정으로 1년에 한번씩 찍어둔 나와 동생의 사진들은 지금도 우리집의 앨범에 그대로 끼워져있다.동생과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성격이 많이 달랐다.어머니가 사오신 과자며 맛있는 간식들을 나와 동생은 똑같게 나눠가졌지만 나는 항상 금방 먹어버리고는 동생한테 더 달라고 졸라댔었다.그때마다 동생은 어디선가 숨겨두었던 간식들을 나에게 하나씩 꺼내주고는 했었다.어머니,아버지가 출근하고 동생이랑 둘이 같이 있으면 나와 동생은 곧잘 노는 편이였다.언, 한번은 내가 어머니 옷견지들을 정리했다고 동생이 어머니한테 누나가 참 잘했다고 회보했던 기억도 난다.
소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잘했던 내가 어머니한테는 너무킅 기쁨이렸다고 하신다.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을세라 승벽심이 강했던 나한테 어머니는 내가 참가하고싶은 과외써클에 다 참가하게 했을뿐만아니라 비싼 손풍금까지 사주셨다.학교에서 모임이 있을때면 어머니가 사준 손풍금을 메고 참가했던 기억도 난다.또 어느 한 겨울에 여느애들은 구경하지도 못한 비싼 털코트를 사주신 어머니,그 코트를 입고 학교 겨울달리기시간에 달렸었던 기억도 난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나는 사춘기를 잘 넘기지 못했다.좋았던 학습성적이 막 하강하기 시작하면서 공부에 대한 흥취를 잃어갔다.하라는 공부틑 하지 않고 매일이다싶이 로라장에 들락거렸던 나한테 어머니는 갖은 교육방법을 다 들이댔지만 어머니가 태웠던 속을 모른채 비뚤어지기만 했었다.갈팡질팡 사춘기에서 방황하는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싶은 어머니의 속은 다 타서 재가 될 지경이셨다.그때 어머니는 너무도 안타까워서 처음 나때문에 눈물을 흘리겼다고 한다.
......
일본 류학비자가 떨어져서 일본에 오게 된 전날밤, 어머니는 어린 아이를 강가에 내보낸 사람처럼 근심이 쌓인 얼굴로 내 짐들을 정리해주셧다.연길-대련행기차에서 내리고 이튿날 대련공항에서 아버지와 함께 나를 일본으로 떠나보낼때어머니의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고였다.잠이 많은 우리딸이 유학공부와 아르바이트를 어떻게 견지하겟냐면서 어머니의 고였던 눈물이 맑은 샘이 되어서 흘러내렸다.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하다.020살 꽃나이에 일본땅에 간지도 어제같은데 어언간 오랜 시간이 흘러서 ......일본에서도 공부에 전념하지 않은 탓에 유학비자 연장이 불가능하게 되는바람에 나ㅡㄴㄴ 결혼이라는 소중한 무덤을 파고 한 일본인과 호적을 올리게 되였다.초총비자로 일본에 왔던 어머니가 불법체류자로 일본에 체류해있다가 10개월만에 잡혀서 돌아가고,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하고 아버지는 혼자 살아오신 1년사이에 몰라보개 늙으셨고,어릴적부터 내손잡고 유치원에 데려가고 데려오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더 안타까운 일은 내가 몹쓸병에 걸려입원을 거듭했고......
일본에 있을때어머니ㅡㄴㄴ 그 강한 자존심마저도 다 버리고 6개월동안 한국식당의 주방에서 매일이다싶이 스트레스와 설음을 참아내면서 일하셨다.그때도 몸이 많이 아팠던 나때문에 어머니는 밤잠을 설치면서 누물을 흘리셨다.
하지만 힘들고 고퉁스러운 날이 전부만은 아니다.어느덧 내가 오래동안 섬겨준 동생이 대학공부까지 우너만하게 마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서 고향 훈춘에서 취직하였고 앞으로 유망한 사람이 되려는 큰 꿈을 안고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는중이다.
그렇다 .나한테는 소중한 가족이 있다.항상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기다려주는 가족.
이제는 스스로 용기와 희망을 가지련다.소중한 생명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면서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많은 이자돈을 꿔서 이국땅까지 보내준 노고에 감사하면서 생을 아끼고 열심히 살아가련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살면서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보귀한 시간들을 아끼련다.
파라만장한 50고개 인생을 넘어오면서 가정과 자식에게 모든 심혈을 기울이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생을 살아오신 나의 어머니처럼,앞으로는 더 많은 배려심을 가지고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고싶다.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상처입는 사람이 있고.좋은 말 한마디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듯이 사람들한테 항상 따스한 마음만을 전하는 인간성을 키우고,옷깃을 스쳐지나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만남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
내가 많이 아팠을때 머머니가 울어 지쳐서 뜬눈으로 지샌 밤의 고톧도,의미도 아마 나는 잘 모를거다.친어머니를 잃고 계모손에서 자라 26살에 가정을 이루고 지금까지 남편한테서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이겨내고 오로지 자식만을 위해 최선다해 살아오신 나의 어머니,남편복 없으면 자식복이 있다는 말도 있는데 지금까지 나같은 철업고 부족한 자식때문에 지치고 또 지치신 나의 어머니,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응원주시고 감사합니다!
지금도 한창 한국에서 두아이의 보모로 열심히 일하고계실 나의 어머니,지금까지 어머니가 주신 소중한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죽고싶다는 말 함부로 했던 못난 자식을 용서하세요!
어머니,나를 처음 낳으셨을때 그 아픔과 고통의 의미를 늦게나마 처음으로 생각해봅니다!어머니,한없이 사랑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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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3)
힘든만큼 ..꼬옥 해뜰날이 올거니깐 ..
쥔장도 ..쥔장 어머님도 .. 항상 건강하시길바림미다 ..
홧팅 !!
쥔장도 ..쥔장 어머님도 .. 항상 건강하시길바림미다 ..
홧팅 !!
억만겁 맺은 인연
피땀으로 돌보시고
사바세계 고통모두
제몫인가 하시누나
내세를 돌고돌아
내당신 엄마되면
당신뜻 당신마음
알수나 있을련지
어머니....
피땀으로 돌보시고
사바세계 고통모두
제몫인가 하시누나
내세를 돌고돌아
내당신 엄마되면
당신뜻 당신마음
알수나 있을련지
어머니....

그날을 그려보면서 화이팅 !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