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년전의 연애시를 상상할수 있는가, 아니, 그때도 시가 있었고 사랑이 있었는가. 4,000년이 무엇인가. 그것은 제아무리 거리의 한계가 없는 상상의 공간이라 해도
잘 믿어지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때도 연애가 있었고 시가 존재했다.
연애, 시는 언제나 가슴이 뭉클하다.
"내게 소중한 그대여/ 그대의 달콤함에/ 빠져버렸다오/ 그대앞에 떨고있는 날/
침실로 데려가주오"
5행으로 된 이 짧은 연애시는 무려 4000년전에 쓰인것으로 밝혀졌으며 이 시가
발견된것은 1880년, 지금은 이라크 지역인 니푸르에서 손바닥만한 비석에 새겨진
채 발굴되여 세상에 알려졌다. 아마도 인류최초의 연애시가 아닐까 싶다.
4,000년전에도 사랑은 뜨거웠고 견딜수 없는 폭풍같은것이였고 입에 단내가 나도록
달콤한 것이였고 그 열기로 온몸이 벌벌 떨리는것이였고 몸이 달아올라 잠시도
참을수 없어 빨리 침실로 데려가라고 속삭이는 애원조의 노래였다. 21세기보다 더
대담한 애정 표현은 4,000년 전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물줄기를 잠시 잊게 한다. 사랑의 탄생에서 오늘날까지 불변의 법칙은 사랑의 힘이라는것이 아닌가.
이 시는 여성사제가 왕에게 사랑을 고백한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시의 지은이는 여성사제이며 여성사제는 사랑과 다산(多产)의 여신 아난나를 부르는 존재이며 왕은 목자의
신인 도무지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랑의 시로 추정된다고 언젠가 뉴욕타임스는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터키의 역사학자 무아제즈 할미예시그(94세)의 말을 인용하여 여성사제와 왕의 사랑은 농경사회였던 수메르에서는 다산과 풍작을 보장하는 길로 인식되었다고 풀이했다. 말하자면 연애시는 풍족한 생활을 기원하는 부적같은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생각나는가. 우리 선조도 농경사회를 건너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활속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다산과 풍요였다. 선조들의 삶 구석구석에서 발견되는것중에 가장 흔히 볼수 있는것도 부귀다남이라는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숟가락에, 베갯잇에. 이불에, 손수건에, 벽에 붙어있는 글귀의 소원들도 모두 그 두가지로 압축된다. 여사제와 왕의 사랑이 모든 사람의 다산과 풍요를 비는 제사였다면 우리조상의 사랑역시 이와 같은 기원의 몸짓이었다는 것은 거부할수 없는 사실이다.
아이 출산을 장려하는 사회로 탈바꿈한 요즘 현실에서 부귀다남을 바라는 마음은 4,000년전이나 오늘이나 달라진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삶의 형식이란 매양 같아서, 목숨이 건재하고 사랑할수 있고 후손을 낳아 풍성한 가족을 가꾸는 일이 인간의 길이라는 평범함이 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 결혼을 거부하는 독립적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것은 사랑만 있고 책임은 없다는 이론을 생활화하고 싶은것인가. 아니면 왕같이 매력적이고 몸을 달구며 발발 떨게 하고 1초라도 빨리 침실로 가고싶어하는 남자가 없는것인지. 만약 있다해도 결혼이란 시들어버리는 꽃이라고 미리 단정하는것인지 알수 없다. 너무 현명해서 먼저 산 사람들의 비극을 보고 아예 처음부터 발을 들여놓지 않곘다는 영리한 선택인지. 아니면 아무리 찾아도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지 알수 없다.
부귀다남이라는 생활용품에 새기고 바라보면서 살아온 것은 그 소망을 믿는것이며, 그 길로 가기 위해 숱한 고충을 인내하며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사람의 길이라는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그렇게 일상적인 상식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4,000년전의 연애시를 보면서 가슴이 더워진다.
여제사와 왕의 사랑은 웬지 사랑의 극치에 도달했을것 같고, 그들의 대담한 사랑은 충분히 다산과 풍요를 가져올것만 같다. 모든것을 바치는 힘있는 사랑, 가슴이 타오르는 순수한 격정의 사랑이 4,000년을 죽지않고 살아온 비결이 아니겠는가.
햇살이 따뜻해지는 늦가을의 어느날, 문득 그런 사랑이 부럽다.
아니, 그런 솔직한 행동이 아름답다.
잘 믿어지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때도 연애가 있었고 시가 존재했다.
연애, 시는 언제나 가슴이 뭉클하다.
"내게 소중한 그대여/ 그대의 달콤함에/ 빠져버렸다오/ 그대앞에 떨고있는 날/
침실로 데려가주오"
5행으로 된 이 짧은 연애시는 무려 4000년전에 쓰인것으로 밝혀졌으며 이 시가
발견된것은 1880년, 지금은 이라크 지역인 니푸르에서 손바닥만한 비석에 새겨진
채 발굴되여 세상에 알려졌다. 아마도 인류최초의 연애시가 아닐까 싶다.
4,000년전에도 사랑은 뜨거웠고 견딜수 없는 폭풍같은것이였고 입에 단내가 나도록
달콤한 것이였고 그 열기로 온몸이 벌벌 떨리는것이였고 몸이 달아올라 잠시도
참을수 없어 빨리 침실로 데려가라고 속삭이는 애원조의 노래였다. 21세기보다 더
대담한 애정 표현은 4,000년 전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물줄기를 잠시 잊게 한다. 사랑의 탄생에서 오늘날까지 불변의 법칙은 사랑의 힘이라는것이 아닌가.
이 시는 여성사제가 왕에게 사랑을 고백한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시의 지은이는 여성사제이며 여성사제는 사랑과 다산(多产)의 여신 아난나를 부르는 존재이며 왕은 목자의
신인 도무지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랑의 시로 추정된다고 언젠가 뉴욕타임스는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터키의 역사학자 무아제즈 할미예시그(94세)의 말을 인용하여 여성사제와 왕의 사랑은 농경사회였던 수메르에서는 다산과 풍작을 보장하는 길로 인식되었다고 풀이했다. 말하자면 연애시는 풍족한 생활을 기원하는 부적같은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생각나는가. 우리 선조도 농경사회를 건너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활속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다산과 풍요였다. 선조들의 삶 구석구석에서 발견되는것중에 가장 흔히 볼수 있는것도 부귀다남이라는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숟가락에, 베갯잇에. 이불에, 손수건에, 벽에 붙어있는 글귀의 소원들도 모두 그 두가지로 압축된다. 여사제와 왕의 사랑이 모든 사람의 다산과 풍요를 비는 제사였다면 우리조상의 사랑역시 이와 같은 기원의 몸짓이었다는 것은 거부할수 없는 사실이다.
아이 출산을 장려하는 사회로 탈바꿈한 요즘 현실에서 부귀다남을 바라는 마음은 4,000년전이나 오늘이나 달라진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삶의 형식이란 매양 같아서, 목숨이 건재하고 사랑할수 있고 후손을 낳아 풍성한 가족을 가꾸는 일이 인간의 길이라는 평범함이 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 결혼을 거부하는 독립적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것은 사랑만 있고 책임은 없다는 이론을 생활화하고 싶은것인가. 아니면 왕같이 매력적이고 몸을 달구며 발발 떨게 하고 1초라도 빨리 침실로 가고싶어하는 남자가 없는것인지. 만약 있다해도 결혼이란 시들어버리는 꽃이라고 미리 단정하는것인지 알수 없다. 너무 현명해서 먼저 산 사람들의 비극을 보고 아예 처음부터 발을 들여놓지 않곘다는 영리한 선택인지. 아니면 아무리 찾아도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지 알수 없다.
부귀다남이라는 생활용품에 새기고 바라보면서 살아온 것은 그 소망을 믿는것이며, 그 길로 가기 위해 숱한 고충을 인내하며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사람의 길이라는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그렇게 일상적인 상식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4,000년전의 연애시를 보면서 가슴이 더워진다.
여제사와 왕의 사랑은 웬지 사랑의 극치에 도달했을것 같고, 그들의 대담한 사랑은 충분히 다산과 풍요를 가져올것만 같다. 모든것을 바치는 힘있는 사랑, 가슴이 타오르는 순수한 격정의 사랑이 4,000년을 죽지않고 살아온 비결이 아니겠는가.
햇살이 따뜻해지는 늦가을의 어느날, 문득 그런 사랑이 부럽다.
아니, 그런 솔직한 행동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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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탄 냄새 남더...ㅋㅋ
넘 불타 올랐눈매....쩝...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