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거를 시작했다. 향화가 사는 이찌카와에서.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내 20대를 보내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못했다. 내 평범한 생활에도 이제 곧 하나하나의 뜻깊은 사연들이 이어질듯한 느낌이 든다.
줄곧 영어만 했었던 나였기에 유학오기전에 일본어를 자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화는 커녕 보고쓰기도 제대로 안되는 상황이었다. 특히 알바구할려고 여기저기 열심히 뛰여다니기는 해봤건만 다들 머리를 저을뿐 채용해주는 곳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일본생활의 첫시작은 나를 힘들게만 했다.
대학생인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머리를 숙여가며, 일본인들의 눈치를 봐가며 일구해야 하는지, 그릇닦는일도 꺼리지않고 하겠다는데 왜 써주는데라곤 하나도 없는지.
이렇게 거의 한달을 보내다가 나중에는 체력일이라도 해야겠다고 친구한테 부탁해서 구한 알바가 사는곳과 멀리 안떨어진 모토야와타의 공장일이었다. 시급은 800엔,일내용은 식품가루, 즉 입살가루,매밀가루, 팥가루등이 들어있는 25키로정도되는 주머니를 창고에서 날라다 트럭에 싣는일이었다. 하루에 몇십번을 나르고 나면 집에돌아갈때는 10분정도밖에 안타는 전차안에서 자리에 앉기만 하면 졸아서 내리는 역을 지나군 했다.
나는 이렇게 매일 아침 닛보리에 있는 학교까지 40분을 넘게 전차타고 가서 수업이 끝나면 바로 알바하러 갔다. 그리고 신문보고 또 토요일,일요일오전일도 구했다. 라면집주방일이다. 물론 요리도 안되고 일본어도 안되니까 그릇닦는일하고 옆에서 보조일밖에 할수 없었다. 생활이 힘든건 사실이다. 올때는 그나마 체중이 70킬로는 나갔는데 거의 두달도 안되는 사이에 체중이 급하강해 60킬로 좌우밖에 안됐다. 엄마가 알았으면 가슴아픈 나머지 당장 돌아오라고 했을거다.
매달사는건 바쁘고 힘들었지만 중국에서 만져본적도 없는 큰 액수의 돈을 받아쥘때면, 그리고 일본어도 차차 기억하고 일본사람과 조금씩 대화할수있게 됐다는 생각이 들때면, 또한 향화를 매일 보고 지낸다는것은 나한테 있어서 너무나도 큰 위로가 돼주었다.
나랑 향화는 집세6만엔은 내가 내고 나머지 생활비는 그여가 부담하기로 했다. 일본에 오기전에는 내생각이 단순했었는지는 몰라도 향화랑 같이살면 내가 모든 경제비용을 부담하리라고 생각했다. 남자구실을 하고 싶어서? 그게 아니라 향화를 무척 좋아하고 너무 믿어서 였다.
헌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전혀 안든다.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믿지 못해서다. 사실 그뒤로 향화를 전처럼 믿어볼려고 갖은 노력 다 했었지만 그게 쉬운일이 아니였다.
나는 남자로서 그여를 용서한 이상 전일들을 다 잊어버리고 그여에게 기회를 줌과 동시에 나한테도 시간을 들여 다시한번 좋은 시작을 해볼려고 결심했다.비록 처음만났을때 그 순수한 감정만은 다시 찾아볼리가 없겠지만 사랑에는 이유가 없듯이 내 감정도 그 어떠한 조건을 바라지 않았다.
그냥 사랑하기에 같이있고 싶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내 20대를 보내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못했다. 내 평범한 생활에도 이제 곧 하나하나의 뜻깊은 사연들이 이어질듯한 느낌이 든다.
줄곧 영어만 했었던 나였기에 유학오기전에 일본어를 자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화는 커녕 보고쓰기도 제대로 안되는 상황이었다. 특히 알바구할려고 여기저기 열심히 뛰여다니기는 해봤건만 다들 머리를 저을뿐 채용해주는 곳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일본생활의 첫시작은 나를 힘들게만 했다.
대학생인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머리를 숙여가며, 일본인들의 눈치를 봐가며 일구해야 하는지, 그릇닦는일도 꺼리지않고 하겠다는데 왜 써주는데라곤 하나도 없는지.
이렇게 거의 한달을 보내다가 나중에는 체력일이라도 해야겠다고 친구한테 부탁해서 구한 알바가 사는곳과 멀리 안떨어진 모토야와타의 공장일이었다. 시급은 800엔,일내용은 식품가루, 즉 입살가루,매밀가루, 팥가루등이 들어있는 25키로정도되는 주머니를 창고에서 날라다 트럭에 싣는일이었다. 하루에 몇십번을 나르고 나면 집에돌아갈때는 10분정도밖에 안타는 전차안에서 자리에 앉기만 하면 졸아서 내리는 역을 지나군 했다.
나는 이렇게 매일 아침 닛보리에 있는 학교까지 40분을 넘게 전차타고 가서 수업이 끝나면 바로 알바하러 갔다. 그리고 신문보고 또 토요일,일요일오전일도 구했다. 라면집주방일이다. 물론 요리도 안되고 일본어도 안되니까 그릇닦는일하고 옆에서 보조일밖에 할수 없었다. 생활이 힘든건 사실이다. 올때는 그나마 체중이 70킬로는 나갔는데 거의 두달도 안되는 사이에 체중이 급하강해 60킬로 좌우밖에 안됐다. 엄마가 알았으면 가슴아픈 나머지 당장 돌아오라고 했을거다.
매달사는건 바쁘고 힘들었지만 중국에서 만져본적도 없는 큰 액수의 돈을 받아쥘때면, 그리고 일본어도 차차 기억하고 일본사람과 조금씩 대화할수있게 됐다는 생각이 들때면, 또한 향화를 매일 보고 지낸다는것은 나한테 있어서 너무나도 큰 위로가 돼주었다.
나랑 향화는 집세6만엔은 내가 내고 나머지 생활비는 그여가 부담하기로 했다. 일본에 오기전에는 내생각이 단순했었는지는 몰라도 향화랑 같이살면 내가 모든 경제비용을 부담하리라고 생각했다. 남자구실을 하고 싶어서? 그게 아니라 향화를 무척 좋아하고 너무 믿어서 였다.
헌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전혀 안든다.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믿지 못해서다. 사실 그뒤로 향화를 전처럼 믿어볼려고 갖은 노력 다 했었지만 그게 쉬운일이 아니였다.
나는 남자로서 그여를 용서한 이상 전일들을 다 잊어버리고 그여에게 기회를 줌과 동시에 나한테도 시간을 들여 다시한번 좋은 시작을 해볼려고 결심했다.비록 처음만났을때 그 순수한 감정만은 다시 찾아볼리가 없겠지만 사랑에는 이유가 없듯이 내 감정도 그 어떠한 조건을 바라지 않았다.
그냥 사랑하기에 같이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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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8)
오늘도 잘보구 감니다 ㅎㅎㅎ
참 진실한 마음 그대로 쓴것이군요.
우리사랑님이 남길글이 있는가 확인하는것이 매일 일정의 하나로 돼버렸어요...
없으면 좀 서운함...
있으면 설레임....
웃기죠..
ㅎㅎㅎㅎㅎ
ㅋㅋㅋㅋㅋ
없으면 좀 서운함...
있으면 설레임....
웃기죠..
ㅎㅎㅎㅎㅎ
ㅋㅋㅋㅋㅋ
매일매일 쓰면 안되는가 ?
되게 궁금하네 둘이 어떻게 되였는지
갈라지긴 했겠지만 ....
되게 궁금하네 둘이 어떻게 되였는지
갈라지긴 했겠지만 ....
쭈~욱 잘 읽었어요.
꼭 두사람 좋은 결과였으면 좋게다는 마음에서
다음편도 기대할께요.
꼭 두사람 좋은 결과였으면 좋게다는 마음에서
다음편도 기대할께요.
감사합니다 사실 나사랑같은거 밑지안아거든요 이런글도무시햇고
님의글을 보니 나자신을 보는듯해서 만은걸 느겨젖습니다
그사람과 갈라자고나서야 사랑하는사람과잊엇던것이 얼마나행복햇어는지
하지만 그건영원한것이아니라고요 사춘기의장난에불과하다고 더운다나 요줌같은현실적인세상에서는 더욱 이죠
허니 진정한 사랑이잇다하면은 그것은 두사람이 만나서 함게곤난을극복하면서 만들어나가는것이아닌가고 필료한것이라면 상대방의 믿음이겟다고
참다음글을 기대합니다
님의글을 보니 나자신을 보는듯해서 만은걸 느겨젖습니다
그사람과 갈라자고나서야 사랑하는사람과잊엇던것이 얼마나행복햇어는지
하지만 그건영원한것이아니라고요 사춘기의장난에불과하다고 더운다나 요줌같은현실적인세상에서는 더욱 이죠
허니 진정한 사랑이잇다하면은 그것은 두사람이 만나서 함게곤난을극복하면서 만들어나가는것이아닌가고 필료한것이라면 상대방의 믿음이겟다고
참다음글을 기대합니다
정말 솔직한 맘 그대로 썼음다...잘봤음덩..
그냥 <화이팅 !>라는 말 ~!
힘내세요~~~
힘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