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일본에 가는걸 그렇게 반대를 하셨건만 나중에는 아버지, 그리고 손자중에서 나를 제일 귀여워 하시던 외할아버지,할머니까지 다 설득시키셨다.
그리고 일본에 가면 향화도 있고 생활습관도 별로 차이가 없기에 짐이 많이 필요없다고 했는데도 부모심정 다 그런지라, 엄마는 일본쪽에서 통과됐다는 소식도 오기전에 먹을거요,입을거요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엄마 그 마음을 하나님도 알아 주셨는지 일본수속이 생각보다 많이 순조로웠다.
일본에 간다고 할때가 벌써 일년이 지나 어느덧 나도 대학을 졸업하게 되였다. 헌데 일본에 가게된다는 기쁨보다는 불안함이 앞선다. 요즘에 와서 향화가 전화를 자주 안준다. 내가 전화를 하면 바쁘다고 그런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좀 힘들어서 그러겠지했는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도 뭔가 느끼는게 있다. 혹시 다른 남자생긴건 아닐가, 사랑이 식어버린건 아닐가. 그러면서도 일본에 가서 그여를 만난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든게 다 잘될것같다는 느낌도 든다.
향화를 만났던 그계절,9월이다.
< 향화야, 나 모레 간다. 너 뭐 필요한거 없어?>
< 응, 없어. 그냥 와, 내가 너한테 전화를 먼저 했어야 하는데 요즘 좀… 미안해.>
< 아니야, 니가 바쁜거 알어. 그럼 모레 보자. 널 진짜 많이 보고싶다. 만나면 꼭 안아줄게.>
< … 그래. 그럼 끊어.>
< 사랑한다. 향화야.>
뚜뚜뚜...
나랑 향화의 마지막 국제전화는 이렇게 끝났다. 그여는 내가 일본가는 시간, 내리는 공항등 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듯했다. 마치 오고 싶으면 와라 이런식으로 말이다. 나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여의 태도에서 보이는게 있었다. 그여는 변했다.
2005년 9월 25일 , 집사람들이 대련까지 바래다준다고 그러는것도 마다하고 나는 혼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향화를 줄려고 오랫동안 준비해뒀던 반지, 사이즈도 알지를 못하면서 그여한테 끼워주면 얼마나 기뻐할가하면서 장춘에서 학교다닐때 생활비모아 산 반지다. 그 반지를 가방다른곳에 넣어놓면 그여를 만나 인츰 끼워주지를 못할가봐 옷호주머니에 넣고 줄곳 손으로 꼭 잡고 일본으로 향했다.
항상 나를 묵묵히 지켜만 봐주시던 아버지, 여태껏 도마웠어요, 일본가서 꼭 잘할게요.
그 무슨일이 있던지간에 언제나 나를 받들어 주신 엄마, 진짜 많은 근심걱정하게 했던거 미안해요, 일본가면 꼭 그 근심 덜어드릴게요.
일본으로 가는게 마치 그 어디 시집이라도 가는 아낙네처럼 부모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목이 메여온다.
그 얼마나 부족한 아들이 였든가. 나이가 20대다지난 사내로서, 이제는 부모님을 호강시켜드려야할 나이인 자식으로서 대학나오고 장래타산없이 또 일본으로 간다고 떠들어댔으니 부모님 그 심정 얼마나 쓰렸으랴,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세상일 많은걸 몰랐었던것같다.
일본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10월유학인지라 학생으로 보이는 승객은 적었다.
일본땅을 밟는 순간, 그다지 외국이라는 느낌이 안들었다. 공항분위기는 중국발전한 성시하고는 별로 차이가 없었다.
좀 다른게 있다면 그때가 꿈에도 그리던 향화를 만나기 몇분전이라는 거다.
거의 두주일도 안되게 사귀다가 먼거리연애, 전화통화만 하다가 1년 반을 두고 다시 찾게 되는 내 사랑,
내 사랑은 더 깊어지기만 하는데 그여는 과연 우리사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런지.
그 사랑 안변했었으리라 기도한다.
그리고 일본에 가면 향화도 있고 생활습관도 별로 차이가 없기에 짐이 많이 필요없다고 했는데도 부모심정 다 그런지라, 엄마는 일본쪽에서 통과됐다는 소식도 오기전에 먹을거요,입을거요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엄마 그 마음을 하나님도 알아 주셨는지 일본수속이 생각보다 많이 순조로웠다.
일본에 간다고 할때가 벌써 일년이 지나 어느덧 나도 대학을 졸업하게 되였다. 헌데 일본에 가게된다는 기쁨보다는 불안함이 앞선다. 요즘에 와서 향화가 전화를 자주 안준다. 내가 전화를 하면 바쁘다고 그런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좀 힘들어서 그러겠지했는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도 뭔가 느끼는게 있다. 혹시 다른 남자생긴건 아닐가, 사랑이 식어버린건 아닐가. 그러면서도 일본에 가서 그여를 만난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든게 다 잘될것같다는 느낌도 든다.
향화를 만났던 그계절,9월이다.
< 향화야, 나 모레 간다. 너 뭐 필요한거 없어?>
< 응, 없어. 그냥 와, 내가 너한테 전화를 먼저 했어야 하는데 요즘 좀… 미안해.>
< 아니야, 니가 바쁜거 알어. 그럼 모레 보자. 널 진짜 많이 보고싶다. 만나면 꼭 안아줄게.>
< … 그래. 그럼 끊어.>
< 사랑한다. 향화야.>
뚜뚜뚜...
나랑 향화의 마지막 국제전화는 이렇게 끝났다. 그여는 내가 일본가는 시간, 내리는 공항등 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듯했다. 마치 오고 싶으면 와라 이런식으로 말이다. 나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여의 태도에서 보이는게 있었다. 그여는 변했다.
2005년 9월 25일 , 집사람들이 대련까지 바래다준다고 그러는것도 마다하고 나는 혼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향화를 줄려고 오랫동안 준비해뒀던 반지, 사이즈도 알지를 못하면서 그여한테 끼워주면 얼마나 기뻐할가하면서 장춘에서 학교다닐때 생활비모아 산 반지다. 그 반지를 가방다른곳에 넣어놓면 그여를 만나 인츰 끼워주지를 못할가봐 옷호주머니에 넣고 줄곳 손으로 꼭 잡고 일본으로 향했다.
항상 나를 묵묵히 지켜만 봐주시던 아버지, 여태껏 도마웠어요, 일본가서 꼭 잘할게요.
그 무슨일이 있던지간에 언제나 나를 받들어 주신 엄마, 진짜 많은 근심걱정하게 했던거 미안해요, 일본가면 꼭 그 근심 덜어드릴게요.
일본으로 가는게 마치 그 어디 시집이라도 가는 아낙네처럼 부모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목이 메여온다.
그 얼마나 부족한 아들이 였든가. 나이가 20대다지난 사내로서, 이제는 부모님을 호강시켜드려야할 나이인 자식으로서 대학나오고 장래타산없이 또 일본으로 간다고 떠들어댔으니 부모님 그 심정 얼마나 쓰렸으랴,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세상일 많은걸 몰랐었던것같다.
일본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10월유학인지라 학생으로 보이는 승객은 적었다.
일본땅을 밟는 순간, 그다지 외국이라는 느낌이 안들었다. 공항분위기는 중국발전한 성시하고는 별로 차이가 없었다.
좀 다른게 있다면 그때가 꿈에도 그리던 향화를 만나기 몇분전이라는 거다.
거의 두주일도 안되게 사귀다가 먼거리연애, 전화통화만 하다가 1년 반을 두고 다시 찾게 되는 내 사랑,
내 사랑은 더 깊어지기만 하는데 그여는 과연 우리사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런지.
그 사랑 안변했었으리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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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3)
늦은밤에 잘보구 감니다 **
오.드디여 만나게 됐네요. 다음집이 기대됨다.

次も期待して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