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커플 1

사랑이별 · #233943

← 사랑이별

아기자기 · 2006-10-28 10:08:54 · 조회 233




꼭 나가야만 하나 ? 어제 그녀의 기습적인 전화를 받고 얼마나 고민해왔던가. 반가움과 괴
로움, 그리움과 고통스러움이 수없이 반복됐고 나가야한다 말아야 한다가 수없이 교차되고
있었다.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고 와이프의 눈치도 무서워 차마 같은 침대를 쓸 수 없어
서재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다시피 했다. 수많은 번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없었다. 모르겠
다. 나가든 만남을 연기하든 아직은 모르겠다. 그렇게 체념하는 기분으로 눈을 붙였지만 일
너나 보니 만남을 연기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마음 약한 그녀는 필경 거절의 뜻으로
받아들일 터이고 또 하나의 상처를 안기고 말리라.

핸드폰 버튼을 노려보며 몇번이나 만남을 연기하자는 말을 꺼낼까도 싶었지만 결국 포기하
고 일단 나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은 약속 시간 2시간 전이었나 보다. 그리고 또 고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그녀에게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으며 어떤 태도로 대할 수 있을
지. 운전을 하면서도 내 마음의 긴장과 초조는 가시지 않았다.

신촌, 오후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일산을 출발할 때부터 잠재되어 있었지만 낙엽지는 늦
가을의 스잔함이 그녀와의 마지막 밤을 더욱 더 떠올리게 하였다. 그 얼마나 수많은 밤을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던 날의 풍경이었던가. 그립고도 괴로웠던 신촌의 그 늦가을날의 아픔
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서 그날을 떠올리며 걸었다.

그날 우리는 그 얼마나 말없는 쓸쓸한 산책을 지속했던가. 거니는 수많은 길들에 우리들의
사랑의 추억이 있었고 캠퍼스 그 곳에서도 우린 뜨거웠던 열정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럼에
도 나는 끝내 그녀의 바람을 따를 수 없었던 아픔.

우린 또 얼마나 술에 취해갔던가. 그날이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우린 알았기에 모든 미련을
버리고 마지막을 정리할 각오였으리라. 맘 약한 그녀는 그날따라 많은 눈물을 흘려 내 마음
을 찢어놓고 있었다. 그날의 아픔과 고통들이 그녀를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라 믿게 했으리
라.

마지막 밤, 모텔에서 그녀는 뜨겁고도 슬펐다. 내 마음도 서러움이 가득찬 채 안타까운 그녀
의 몸을 안았다. 수많은 죄책감과 고통 속에서도 슬픈 그녀가 또 서럽게도 사랑스러운 것이
고통의 희열이기도 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연인들의 마지막 날, 그 밤은 참으로 길고도
고통스러웠나 보다. 서로운 육체와 육체는 마음을 아는지 서로운 그리움을 모두 불태우려는
듯 뜨겁게 뜨겁게 타올랐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이는 걸 느끼며 인적없는 골목길을 찾아 담배 한 대를 피웠다. 고
통은 조금 달랠 수 있었으나 착잡한 가슴을 달랠 길이 없었다.

자존심 강한 그녀가 어떤 심정으로 그를 먼저 찾았을지 다시금 궁금해지고 있었다. 6개월
전 그녀가 독립해서 출판사를 경영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녀의 회사는 순항중이었다고 믿었기에 더더욱 뜻밖의 심정.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핸드폰으로 확인한 시간은 6시 20분. 아직 10분의 여유는 있지만 이젠 약속했던 카페로 들
어가야할 시간. 23분에 도착했다. 다행히 그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창가로 바라보이는 여대생들은 늦가을인데도 여진히 발랄하다. 스잔한 날씨는 아직도 미니
스커들을 제압하기엔 차가움이 부족했나보다. 아름다운 연인들이 부러운 심정. 나도 저런 청
춘이 있었는데...

그녀답지 않게 10분이나 늦은 40분경에야 도착했다. 아, 몇 년만인가. 정확히 3년만의 해후
였다. 조금은 야윈 느낌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녀는 잠시 경직된 느낌이더니 다시금 편안
한 걸음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여전히 크고 맑은 눈길이 그녀라는 실감을 안기고 있었다. 가
슴에 어떤 반가움의 희열이 스며들고 있었다.

우린 말없이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언어와 감성들이 스치고 있었으리라. 마티니를
시키는 그녀. 단 것을 좋아했던 그녀답지 않다. 같은 걸로 시켰다. 그러고도 우린 쉽게 말문
을 열 수 없었다. 이번엔 내 인내심이 부족했다.

" 많이 바쁜 모습이에요. 회사는 잘 되죠 ? "
난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응... 이쪽이야 언제나 바쁘지. 돈이 안 벌려서 탈이지만 말야. "
그녀도 역시 미소를 지으려 노력하는 듯 했다. 그 노력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렇게 빨리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진 못했어요. "

쓸쓸한 미소가 그녀를 스치고 있었다. 말없이 담배를 꺼내 드는 그녀. 창가로 시선을 돌리며
한동안 복잡한 마음을 달래는 듯했다.

" 시간이 참 빠르지 ? 하루하루 힘들며 긴 듯한 시간인데, 돌아보면 금방이더라구. "
카페를 둘러보며 입을 여는 그녀에겐 아직도 복잡한 심정이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네. " 나도 어떤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기 어려웠나보다.
"세상은 참 빠르게 바뀌는데 여긴 그래도 여전하네요. "

"응. 나도 올 때마다 그런 걸 느껴. 추억만들기라. 여전히 재밌는 이름이랄까 ? "

내 가슴에 추억이라는 단어가 박힌다. 우리들의 추억도 이 곳에서 얼마나 많이 만들어 졌던
가. 이틀이 멀다하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쌓인 이 곳....  그리움과 서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난 한동안 이 가게를 찾지 않았는데, 예전에 알던 사람들은 꼭 이 가게 이름을 대곤 하더
라구. "
뭐가 재밌을까 ? 아이러니한 아픔의 웃음이었을까. 내 가슴도 어떤 쓸쓸함이 스친다.

우린 맥주와 함께 샌드위치를 시켜먹었다. 그녀의 담배는 많이 늘었나보다. 10분 간격으로
자주 꺼내들고 있었다. 꺼낸 담배를 자제하려 노력하며 다시 넣곤하지만 다시금 꺼내드는
그녀. 나도 작년부터 담배가 늘었는데 그녀는 나보다 많이 심하다. 뭐라 자제를 부탁하고싶
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스스로 노력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녀를 알고, 그런 애연가
의 심정을 이젠 알게 되었으니. 그녀의 맥주량이 많이 늘었음을 알게된 것도 슬픔이다.

"나 말야, 여기 오면 명랑한 모습 보여줄 생각이었거든. "
그녀의 맑은 눈동자는 조금 풀리고 릴렉스해진 모습이다. 그녀가 좀더 솔직해지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This case~ 이경우씨 오랜만이야~~ 하며 인사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게 참 마음대로 안되
네. 많이 대비해왔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야. "

나의 답답함도 좀체로 풀리지 않고 있었기에 맥주와 담배가 늘고 있었다.

"넌 요즘 어떻게 지내니 ? 글은 잘 되어가는 거야 ? "

정곡을 찔린 듯 마음이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2년생 징크스도 없이 잘 나간다 싶더니, 올핸 좀 처지는 기분이던데..."

내 얼굴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표정관리에 신경이 쓰였다.

"밑천이 다해가는 거야 ? "

오늘 여기 나오는데 그 문제도 신경이 쓰였다. 내가 여전히 잘나가는 작가라면 좀 더 편할
수 있었을 텐데.

" 너무 조바심 갖지 마. 작가들 슬럼프 잘 알잖아. 계속 노력하고 재충전해야 다시금 한단계
올라갈 수 있다는 것도. "

그걸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슬럼프가 너무 길었다. 올 여름 발표한 것도 실은 습작시절에
쓴 것을 적당히 손을 본 정도이지 올해의 성과물이 아니라는 것도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
을 것이다.

" 작가로서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그렇게 믿는 거 아니니 ? "

다시금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3년을 같이 산 와이프보다도 그녀가 날 잘 알고 있다는 데에
어떤 전율감도 스친다. 그래, 우린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부부와도 같았으니까. 그녀는 나의
첫 와이프나 같았으니까. 복잡한 죄책감과 그리움이 스치고 있었다.

"아...드라이브하고 싶다. "

그녀는 항상 술을 마시곤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 그녀의 마음이 울적한
날은 그가 술을 먹지 않고 드라이브가 끝난 후 마셨으며, 반대의 경우는 그녀가 기사역할을
맡곤 했다. 오늘같이 둘 모두 힘들 때엔 어쩔 수 없어 포기할 때도 있었고 그의 친구 명수
나 그녀의 친구 아영씨를 부르곤 했었다. 하나, 이젠 그들도 이곳엔 없다. 있다할지라도 유
부남인 그가 부를 수는 없는 일이고.

"나, 대학시절엔 바람 쏘이고 싶으면 그냥 신촌역으로 달려가곤 했었는데. 그때 일산은 산골
다운 모습이 남아있었는데. 그때가 참 좋았는데... "
그녀의 풀린 눈길이 세월을 멀리 거스르고 있었다. 나에게도 청춘이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청춘을 잃어버리고 말았던가. 결혼한 자의 숙명이란 말인가. 그녀와 같이 살던 때에도 청춘
을 느끼고 있었건만.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3년, 겨우 3년이 흘렀는데, 난 참 많이 늙어버린 느낌이야. "

아닌게 아니라 그랬다. 그녀도 이젠 그 맑고 깨끗한 그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우린 모두 3년 동안 많은 것을 잃어버린 그 무엇이 있었나 보다.

" 결혼, 결혼이 뭔지. 난 몇번이나 해버릴까 싶었지만 차마 못하고 말았다. 넌 어떠니 ? 지
금 행복하니 ? "

내 가슴이 갑자기 더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이 카페가 답답해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누나, 우리 나가죠. 나 갑갑해서 바람 좀 쏘여야겠어요. "

"어흥~ 그래....우리 나가자. 나도 바람 좀 쏘이고 싶어. "

그녀는 다리까지 조금 풀린 느낌이었기에 부축하려 하였지만 그녀의 자존심이 거부하였다.

시원한 바람- ! 스산한 바람이어도 좋다. 지금은 이 시원함이 너무나 통쾌하다 !
우린 조금 힘든 걸음으로 이대캠퍼스로 들어갔다. 이대를 거쳐 연대 동문으로 그리고 청송
대와 캠퍼스를 거쳐 연희동쪽 서문으로 빠져나오는 것이 우리 데이트 코스이자 귀가길이곤
했었다. 우리를 알아볼 수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우리 심신은 멀리가지 못했다. 적당한 벤치를 찾아 무기력한 다리를 달랜다.

"내가 왜 널 불렀는지 알고 있니 ? "
그녀가 잠시 후 의표를 찌르듯 물었다.
정말 궁금한 부분이었다. 난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2004 5 22 토 아침
산책시간


오늘따라 결혼이 무엇인지 다시금 묻고 싶은 기분이 일었다. 과연 결혼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왜 우리는 꼭 결혼을 해야만 한다고 믿으며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할까. 생활의
여유와 안정을 얻으면서도 낭만과 자유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난 그
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고 싶어 이 글을 시도하게 되었다.







쉼터에 새로운 글 쓰기는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소중한 기록 중에 꼭 다른 분들에게도 읽었으면 하는 좋은 글들은 「추천하기」를 눌러주세요.

일부 글들은 악성광고나 의미없는 스팸들일 수 있습니다. 읽는 분들에게 피해가 되거나 삭제를 희망하는 글에는 신고를 클릭해주세요. 로봇을 통하여 정기적으로 확인 및 정리를 합니다.

코멘트 (3)

Uranus-Theodore · 2006-10-28 10:14:22
펌글이면 출처정도는 밝히셔야....ㅡㅡ
믿음 · 2006-10-28 10:15:02
--;;; 이건 무슨 단편소설에 한장면 같은 기분인데요..
해답은 모르겠고 -,.-
원점 · 2006-10-28 11:35:28
???/????????????????????

사랑이별 · 리스트 (25,907 건)

제목투고자날짜조회코멘트
hello! welcome to here.Friend2006-10-28 23:032371
내가 너무 한가요 !은진 김씨2006-10-28 21:5326011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바보온달』2006-10-28 21:202403
술 마시고 쓸쓸한 오늘같은 날은..................핑크도마도2006-10-28 20:582328
니가 좋아...........ㄱr 오ㄹ i2006-10-28 20:292403
여자 친구있으면 ,,,GOGO2006-10-28 19:502384
.. 남자......부가킹즈2006-10-28 18:072374
이런것도 사랑일까?애기별2006-10-28 15:5023212
혈액형으로 보는 성격큐티2006-10-28 14:5842614
꾸이죠치 낸 수수께끼,,,앵~앵~앵~모기눈알볶음채2006-10-28 13:162364
힘들어가는 맘마루쨩2006-10-28 13:032345
사랑하고 싶습니다..늑대2006-10-28 11:332676
나도 미안한짓했다...ㅠㅠ참이슬여자2006-10-28 11:0737817
남자들은 자기의 첫사랑을 못잊는다는데요..너만사랑할거야2006-10-28 10:4425313
진지한 사랑 요구함다yuguang11192006-10-28 10:122326
▶ 계약커플 1아기자기2006-10-28 10:082332
남자들이 날리는 작업멘트 VS 러브멘트아기자기2006-10-28 10:012332
마음이 아파서전기불2006-10-28 08:032324
그녀가 바로 당신입니다.오징어외계인2006-10-28 02:572325
사랑에 관한 좋은글 하나.오징어외계인2006-10-28 02:552330
사랑이야기,,CAMEL2006-10-28 01:442632
제일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한테서여의2006-10-28 01:392336
리혼한 애기 엄마들 계시나요?강새2006-10-28 01:142332
저는 고민이 있습니다막 살기에는 인생이 2006-10-27 22:332365
참 좋은사람김병철2006-10-27 20:112353
구경 어느것이?심술쟁이2006-10-27 15:1423316
有种液体叫做泪!ヨナ2006-10-27 15:0423923
바보야…잘가…애쿼머린2006-10-27 14:452367
이젠 그녀를 보낸다…김승남2006-10-27 14:2523712
이별편지…김승남2006-10-27 14:112345
← 이전491 / 864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