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길지만...ㅡㅡ;혼자보기 아까워서 이렇게 올려요..
남편에게 바치는 글
안녕하세요?
저는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서른아홉 살 주부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저의 다리가 되어주는 고마운 남편에게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한 살 때 열병으로 소아마비를 앓은 후
장애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에
멋진 글귀로 글을 쓰지는 못합니다.
제가 남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방송을 통해서입니다.
지난 1983년 우연히 라디오의
장애인 프로그램을 통해
문 밖 출입을 못하며 살고 있는
저의 사연이 나갔습니다.
그 당시 제주도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던
지금의 남편이 제 이야기를 듣다가
들고 있던 펜으로 무심코
저의 주소를 적었답니다.
남편은 그 다음날 바로
저에게 편지를 했지만
저는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글을 잘 몰랐던 탓도 있었지만
남자를 사귄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남편은 답장도 없는 편지를
1년 가까이 1주일에 한 번씩 계속 보내왔고
저는 여전히 답장 한통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주 소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그 먼 곳에서 서울 금호동의
저희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제 사정상 반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먼 곳에서 저를 찾아온 사람이기에
손수 정성껏 식사대접을 했습니다.
그렇게 저를 만나고 제주도로 돌아간 남편은
그날부터 1주일에 한통씩 보내던 편지를
거의 매일 일기처럼 적어 보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포가 하나 왔는데
종이학 1,000마리를 접어 걷지도 못하는
저에게 1,000개의 날개를 달아
이 세상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게
해주고 싶다며 보내온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남편의 청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결국 직장을 포기하면서
저를 보기 위해 서울로 이사를 왔고
3년에 걸친 청혼 끝에 저는 남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85년 7월17일.
저희는 마침내 부부가 되었습니다.
내 삶의 날개가 되어주는 당신께
여보,
지금 시각이 새벽 5시30분이네요.
이 시간이면 깨어있는 사람보다
아직 따뜻한 이불 속에서
단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더욱 많을 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이미 집을 나서
살얼음 같은 차가운 새벽 공기에
몸을 맡기고 있겠지요.
그리고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당신.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도
늘 힘겹기만 한 우리 생활이
당신을 많이 지치게 하고 있네요.
내가 여느 아내들처럼 건장한 여자였다면
당신의 그 힘겨운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질 수 있으련만...
평생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는
그럴 수가 없기에 너무나 안타까워
자꾸 서러워집니다.
자동차에다 건어물을 싣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당신.
그런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 한 방울, 전기 한 등, 10원이라도
아껴 쓰는 것이 전부라는 현실이
너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불편한 나의 다리가 되어주고
두 아이들에게는 나의 몫인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 하고...
16년 동안이나 당뇨로 병석에 누워계신
친정어머니까지 모셔야 하는 당신.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어머니께
딸인 나보다 더 잘하는 당신이지요.
이런 당신께 자꾸 어리광이 늘어 가시는
어머니를 보면 높은 연세 탓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속이 상하고
당신에게 너무 미안해 남모르게 가슴으로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답니다.
여보!
나는 가끔 깊은 밤잠에서 깨어
지친 모습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생각합니다.
“가엾은 사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한평생 걷지 못하는 아내와
힘겹게 살아야 할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북받치지만 자고 있는
당신에게 혹 들킬까봐,
꾸역꾸역 목구멍이 아프도록
서러움을 삼키곤 합니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가끔 당신을 따라나섰지요.
하루 종일 빗속을 돌아다닐 수 있어
힘든 줄도 모르지요.
그런데 며칠 전 겨울비가 제법
많이 내리던 날, 거리에서 마침
그곳을 지나던 우리 부부 나이 정도의
남녀가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서로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게 하려고 우산을 자꾸
밀어내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당신이 비를 몽땅 맞으며 물건 파는
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 내가 느꼈던 아픔과 슬픔은
어떤 글귀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의 가슴을 아리게 했어요.
그때 나는 다시는 비 내리는 날
당신을 따라나서지 않겠노라
나 자신에게 다짐을 했답니다.
그리고 여보!
지난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당신은
결혼 때 패물 한 가지도 못해줬다며
당신이 오래도록 잡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나에게 조그마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었지요.
그때 내가 너무도 기뻐했는데...
그 반지를 얼마 못 가 생활이 너무 힘들어
다시 팔아야 했을 때...
처음으로 당신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너무도 가슴이 아팠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신은 그때 일을
마음 아파하는데 그러지 말아요.
그까짓 반지 없으면 어때요.
이미 그 반지는 내 가슴 속에
영원히 퇴색되지 않게 새겨놓았으니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해요.
3년 전 당신은 여덟 시간에 걸쳐
신경수술을 받아야 했었지요.
그때 마취에서 깨어나는 당신에게
간호사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나를 가리키며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요.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사랑할 사람인데 요”라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에게
나는 바보처럼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한없이 눈물만 떨어뜨렸어요.
그때 간호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 세요.”
그래요, 여보.
나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예요.
건강하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늘 내 곁에 있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어린 시절 가난과 장애로 학교에 다니지 못해
나는 지금 이 나이에 늘 소원했던
공부를 시작했지요.
적지 않은 나이에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야학까지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어머니 저녁까지 챙겨주고
집안청소까지 깨끗이 해 놓고...
또다시 학교가 끝날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와 주는 당신.
난 그런 당신에 대한 고마움의 보답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할 겁니다.
어린 시절 여느 아이들이 다 가는 학교가
너무 가고싶어 남몰래 수없이 눈물 흘렸는데
이제서야 그 꿈을 이루었어요.
바로 당신이 나의 꿈을 이루어주었지요.
여보!
나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늘 누군가의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예요.
여보!
한평생 휠체어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나의 삶이지만 당신이 있기에
정말 행복합니다.
당신은 내 삶의
바로 그 천사입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늘 감사의 두 손을 모으며 살 겁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 취재수첩.
“다시 태어나면 제가 당신을 도울 게요”
17년째 자신의 발이 되어준 남편에게
\'사부 곡’(思 夫 曲)을 보내온 임 영자 씨(39)는
서울 금호동의 조그만 주택에서
남편 김석진씨(45)와 중3인 딸 한나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 호세나 와 함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집안 거실로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싱크대입니다.
소아마비로 항상 앉아있거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임씨가
설거지를 할 수 있도록
싱크대의 다리를 없애고
바닥에 붙박이로 만든 것입니다.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병든 어머니와
남편,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는
주부로서의 알뜰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해진 사연만으로
알게 된 임씨에게 어떻게 3년에 걸쳐
변함없이 구애를 펼 수 있었는지
참으로 남편의 천사 같은 마음씨가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김씨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고
오히려 이를 묻는 기자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였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과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까?
육체적으로 불편하다고
그게 장애인은 아닙니다.
장애인 역시 따뜻한 마음이 있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어요.
저는 아내에게 처음 편지를 쓰고
또 만났을 때도 아내가 장애인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아내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내가 있어 더 행복합니다.”
현재 임씨는 매주 3일 정립회관에서 운영하는
노들 장애인 야학’에 나가 하루 4시간씩
공부를 합니다.
30년이 지난 이제 서야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초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내친 김에 대학까지 진학하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임씨와 결혼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제주에서 아내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
12년째 봉고차를 몰며 행상을 하고 있는 김씨.
바쁜 와중에도 남편은 뒤늦게 ‘초등학생’이 된
아내가 안쓰러워 늘 아내의 발이 되어준답니다.
정말 이런 남편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그런 남편을 위해 아내는 늘 사랑을 받고만 있는
자신이 미안하다며 울먹입니다.
\"여보,
나의 소원이 무엇인지 모르지요?
내 소원은 높은 구두 신고
당신 팔짱을 끼고 걸어보는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이 많지 않아 힘겹게 살고는 있지만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랍니다.
다만,
한 가지 유일한 소망은 우리 부부가
이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 나는 건강한 사람...
당신은 조금 불편한 장애인으로 만나
다시 부부가 되는 거예요.
그때는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 예요”
지난 연말 경향신문사로 우송돼온
임씨의 사부 곡을 소개하게 된 것은
조그마한 갈등과 불화를 극복하지 못해
갈라섰거나 갈라서려는 많은 부부들에게
이들의 변함없는 러브스토리를 통해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바치는 글
안녕하세요?
저는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서른아홉 살 주부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저의 다리가 되어주는 고마운 남편에게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한 살 때 열병으로 소아마비를 앓은 후
장애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에
멋진 글귀로 글을 쓰지는 못합니다.
제가 남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방송을 통해서입니다.
지난 1983년 우연히 라디오의
장애인 프로그램을 통해
문 밖 출입을 못하며 살고 있는
저의 사연이 나갔습니다.
그 당시 제주도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던
지금의 남편이 제 이야기를 듣다가
들고 있던 펜으로 무심코
저의 주소를 적었답니다.
남편은 그 다음날 바로
저에게 편지를 했지만
저는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글을 잘 몰랐던 탓도 있었지만
남자를 사귄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남편은 답장도 없는 편지를
1년 가까이 1주일에 한 번씩 계속 보내왔고
저는 여전히 답장 한통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주 소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그 먼 곳에서 서울 금호동의
저희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제 사정상 반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먼 곳에서 저를 찾아온 사람이기에
손수 정성껏 식사대접을 했습니다.
그렇게 저를 만나고 제주도로 돌아간 남편은
그날부터 1주일에 한통씩 보내던 편지를
거의 매일 일기처럼 적어 보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포가 하나 왔는데
종이학 1,000마리를 접어 걷지도 못하는
저에게 1,000개의 날개를 달아
이 세상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게
해주고 싶다며 보내온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남편의 청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결국 직장을 포기하면서
저를 보기 위해 서울로 이사를 왔고
3년에 걸친 청혼 끝에 저는 남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85년 7월17일.
저희는 마침내 부부가 되었습니다.
내 삶의 날개가 되어주는 당신께
여보,
지금 시각이 새벽 5시30분이네요.
이 시간이면 깨어있는 사람보다
아직 따뜻한 이불 속에서
단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더욱 많을 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이미 집을 나서
살얼음 같은 차가운 새벽 공기에
몸을 맡기고 있겠지요.
그리고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당신.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도
늘 힘겹기만 한 우리 생활이
당신을 많이 지치게 하고 있네요.
내가 여느 아내들처럼 건장한 여자였다면
당신의 그 힘겨운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질 수 있으련만...
평생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는
그럴 수가 없기에 너무나 안타까워
자꾸 서러워집니다.
자동차에다 건어물을 싣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당신.
그런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 한 방울, 전기 한 등, 10원이라도
아껴 쓰는 것이 전부라는 현실이
너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불편한 나의 다리가 되어주고
두 아이들에게는 나의 몫인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 하고...
16년 동안이나 당뇨로 병석에 누워계신
친정어머니까지 모셔야 하는 당신.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어머니께
딸인 나보다 더 잘하는 당신이지요.
이런 당신께 자꾸 어리광이 늘어 가시는
어머니를 보면 높은 연세 탓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속이 상하고
당신에게 너무 미안해 남모르게 가슴으로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답니다.
여보!
나는 가끔 깊은 밤잠에서 깨어
지친 모습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생각합니다.
“가엾은 사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한평생 걷지 못하는 아내와
힘겹게 살아야 할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북받치지만 자고 있는
당신에게 혹 들킬까봐,
꾸역꾸역 목구멍이 아프도록
서러움을 삼키곤 합니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가끔 당신을 따라나섰지요.
하루 종일 빗속을 돌아다닐 수 있어
힘든 줄도 모르지요.
그런데 며칠 전 겨울비가 제법
많이 내리던 날, 거리에서 마침
그곳을 지나던 우리 부부 나이 정도의
남녀가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서로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게 하려고 우산을 자꾸
밀어내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당신이 비를 몽땅 맞으며 물건 파는
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 내가 느꼈던 아픔과 슬픔은
어떤 글귀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의 가슴을 아리게 했어요.
그때 나는 다시는 비 내리는 날
당신을 따라나서지 않겠노라
나 자신에게 다짐을 했답니다.
그리고 여보!
지난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당신은
결혼 때 패물 한 가지도 못해줬다며
당신이 오래도록 잡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나에게 조그마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었지요.
그때 내가 너무도 기뻐했는데...
그 반지를 얼마 못 가 생활이 너무 힘들어
다시 팔아야 했을 때...
처음으로 당신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너무도 가슴이 아팠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신은 그때 일을
마음 아파하는데 그러지 말아요.
그까짓 반지 없으면 어때요.
이미 그 반지는 내 가슴 속에
영원히 퇴색되지 않게 새겨놓았으니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해요.
3년 전 당신은 여덟 시간에 걸쳐
신경수술을 받아야 했었지요.
그때 마취에서 깨어나는 당신에게
간호사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나를 가리키며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요.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사랑할 사람인데 요”라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에게
나는 바보처럼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한없이 눈물만 떨어뜨렸어요.
그때 간호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 세요.”
그래요, 여보.
나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예요.
건강하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늘 내 곁에 있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어린 시절 가난과 장애로 학교에 다니지 못해
나는 지금 이 나이에 늘 소원했던
공부를 시작했지요.
적지 않은 나이에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야학까지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어머니 저녁까지 챙겨주고
집안청소까지 깨끗이 해 놓고...
또다시 학교가 끝날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와 주는 당신.
난 그런 당신에 대한 고마움의 보답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할 겁니다.
어린 시절 여느 아이들이 다 가는 학교가
너무 가고싶어 남몰래 수없이 눈물 흘렸는데
이제서야 그 꿈을 이루었어요.
바로 당신이 나의 꿈을 이루어주었지요.
여보!
나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늘 누군가의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예요.
여보!
한평생 휠체어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나의 삶이지만 당신이 있기에
정말 행복합니다.
당신은 내 삶의
바로 그 천사입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늘 감사의 두 손을 모으며 살 겁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 취재수첩.
“다시 태어나면 제가 당신을 도울 게요”
17년째 자신의 발이 되어준 남편에게
\'사부 곡’(思 夫 曲)을 보내온 임 영자 씨(39)는
서울 금호동의 조그만 주택에서
남편 김석진씨(45)와 중3인 딸 한나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 호세나 와 함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집안 거실로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싱크대입니다.
소아마비로 항상 앉아있거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임씨가
설거지를 할 수 있도록
싱크대의 다리를 없애고
바닥에 붙박이로 만든 것입니다.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병든 어머니와
남편,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는
주부로서의 알뜰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해진 사연만으로
알게 된 임씨에게 어떻게 3년에 걸쳐
변함없이 구애를 펼 수 있었는지
참으로 남편의 천사 같은 마음씨가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김씨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고
오히려 이를 묻는 기자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였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과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까?
육체적으로 불편하다고
그게 장애인은 아닙니다.
장애인 역시 따뜻한 마음이 있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어요.
저는 아내에게 처음 편지를 쓰고
또 만났을 때도 아내가 장애인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아내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내가 있어 더 행복합니다.”
현재 임씨는 매주 3일 정립회관에서 운영하는
노들 장애인 야학’에 나가 하루 4시간씩
공부를 합니다.
30년이 지난 이제 서야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초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내친 김에 대학까지 진학하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임씨와 결혼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제주에서 아내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
12년째 봉고차를 몰며 행상을 하고 있는 김씨.
바쁜 와중에도 남편은 뒤늦게 ‘초등학생’이 된
아내가 안쓰러워 늘 아내의 발이 되어준답니다.
정말 이런 남편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그런 남편을 위해 아내는 늘 사랑을 받고만 있는
자신이 미안하다며 울먹입니다.
\"여보,
나의 소원이 무엇인지 모르지요?
내 소원은 높은 구두 신고
당신 팔짱을 끼고 걸어보는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이 많지 않아 힘겹게 살고는 있지만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랍니다.
다만,
한 가지 유일한 소망은 우리 부부가
이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 나는 건강한 사람...
당신은 조금 불편한 장애인으로 만나
다시 부부가 되는 거예요.
그때는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 예요”
지난 연말 경향신문사로 우송돼온
임씨의 사부 곡을 소개하게 된 것은
조그마한 갈등과 불화를 극복하지 못해
갈라섰거나 갈라서려는 많은 부부들에게
이들의 변함없는 러브스토리를 통해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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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16)
?_? 무슨 말이세요??
이쁜이 이글 넘 길어서 못봤습다...
세상이 매개인에 공평하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
좋은글 감사합니다
반은 울면서 봤어요
우는거 봐주지도 못하는 저라지만 감정이 풍부해서인지 이런글은 그래도 좋네요
이세상에 돈두 없는 <<장애인>>인두 이케 행복한 삶을 사는데
돈 많구 장애인두 아닌 사람들 중에서 이케 행복하게 살수 있는 사람 얼마 될까요?
반은 울면서 봤어요
우는거 봐주지도 못하는 저라지만 감정이 풍부해서인지 이런글은 그래도 좋네요
이세상에 돈두 없는 <<장애인>>인두 이케 행복한 삶을 사는데
돈 많구 장애인두 아닌 사람들 중에서 이케 행복하게 살수 있는 사람 얼마 될까요?
이런데서 감동이라는게 생기구 진정이라는거 느끼게 되는거죠.
좋은 글 잘 보구 갑니다.
좋은 글 잘 보구 갑니다.
무척 감동받았어요...
조금만 힘들면 신세타령하는 자신이 넘 작아 보여요.
저두 노력해야겠어요..
좋은글 정말로 감사합니다..
행복해지겠습니당.
조금만 힘들면 신세타령하는 자신이 넘 작아 보여요.
저두 노력해야겠어요..
좋은글 정말로 감사합니다..
행복해지겠습니당.
글을 읽는 도중에 저도 같이 눈물을 흘렸어요~~
넘 감동되고요 ~~넘 훌륭한 남편과 착한 안해인가봐요~~
저세상 갈때까지 행복하시길 바람니다.
넘 감동되고요 ~~넘 훌륭한 남편과 착한 안해인가봐요~~
저세상 갈때까지 행복하시길 바람니다.
추천하는걸 잊어서 또 왔다~~~ㅎㅎㅎ
딸기우유 감사해~~^
돈밖에 모르는 요즘에 넘 좋은 글인가봐요~~
딸기우유 감사해~~^
돈밖에 모르는 요즘에 넘 좋은 글인가봐요~~
휴~~~~~~~~~~~
뭐라고 말할지..............
뭐라고 말할지..............
오래만에 좋은 글을 읽었어요
가슴이 찡해나네요
가슴이 찡해나네요
진짜 눈물나는 글이네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결합이란거 진짜 쉽지않다구 생각햇거든요 ...근데 이 부부는 아주 잘 소화해내구 잇더군요 ...ㅋㅋㅋ이글 읽으면서 조금 가슴아프다는 느낌이 들엇지만 ....부러운 마음이 더 많은거 같네요 ...나 역시 장애인이더라도 이러한 한 남자가 곁에 잇다면 ....후회는 없을껏 같은데 ....두분이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앗으면 조켓네요 ~ㅋㅋㅋ
인생이란 희망과 감동을 갖고 살아가면 다 잘될겨에요!!!~화이~띠~잉~~`
너무 감동적인 글이네요.
사랑과 희망이 있는한 행복은 언제나 우리 곁을 지켜줄거예요.
글의 주인공도, 세상 모든 커플도 이쁜사랑 하시고 영원히 행복하세요...
추천한빵하고 갑니다...ㅎㅎㅎ
사랑과 희망이 있는한 행복은 언제나 우리 곁을 지켜줄거예요.
글의 주인공도, 세상 모든 커플도 이쁜사랑 하시고 영원히 행복하세요...
추천한빵하고 갑니다...ㅎㅎㅎ
좋은 글 입니다 사랑을 좀금 더 안것 같은데 아무튼 잘보고 갑니다
너무 감동적인 글이네요.... 저두 추천 합니다..^^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