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스카미군기지 부근의 하늘은 언제나 조용한 날이 없다.
<쐐액>.... 구름속을 헤가르는 제트기편대
<타타타타타….>착륙하는 공격헬기의 프로펠라소리…
기지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는 미국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빠가 있다. 나는 그곳에서 프리지아(가명)를 알게 되었다. 그때는 재작년 겨울인데…당시 그녀는 보급장교로 근무하고있었다.
이름은 이쁘지만 사실 생긴걸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어지간히 이쁘긴 하지만 ….한마디로 사납게 생겼다. 남자들의 세상에서 8.9년을 견뎌냈다 하니 어지간한 남자는 뺨도 칠만하겠지만…언제나 얼룩덜룩한 전투복에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군화로 땅바닥을 탕탕 구르며 다니는 그녀에게서 여자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필라델피아출신의 한국인이민 3세, 아버지는 그녀가 3살적에 흑인의 총에 맞아 돌아갔다 한다. 한국전쟁의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한테서 자랐고, 덕분에 저녁마다 할아버지한테서 전쟁이야기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란 덕에 그녀는 성감적이고 화려한 옷이나 화장품들을 멀리한채 오늘의 프리지아로 되었던것이다.
그녀와는 거의 매주 주말이면 빠에서 만났다. 미군부대에 대한 나의 호기심과 다른 세계와도 같은 차이나라는 먼 나라에서 온 나에 대한 그녀의 호기심으로 하여, 우리사이에는 적어도 따분한적은 없었던것 같다. 아니, 따분하기보다 그녀는 럼주 둬잔이 들어가면 곧 흥분해서 수다를 떨어댔다. 그럴때는 전혀 사관급 장교답지 않고 애기 셋을 낳아기른 아줌마같기도 하였다. (미안하다. 프리지아)
그녀의 소개로 나는 그의 전우들을 하나둘씩 알게 되었고 가끔 장교가속들만 사는 울타리안의 잔디밭에서 바베큐도 즐길때가 있었다. 그럴때면 그녀는 언제나 나의 팔을 끼고 다니군 하였다. 전투복차림의 여자가 사복의 남자팔을 끼고 가슴을 쑥 내밀고 다닌다고 상상해보라. 그녀로서는 그 자체를 못내 즐기는지 몰라도 나로서는 마치 포로되어 압송당하는 기분이였다. 다만 숫기가 없는 성격때문에 싫다는 말을 못했을뿐이다.
그러다가 작년 4월 프리지아는 이라크에 파견되게 되었다. 당시로는 미군이 바그다드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게릴라들의 테로습격을 날에 날마다 받던 때였다. 떠나기 사흘전 우리는 마지막으로 만났다.
위험한곳에 가는 친구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이상하게도 그 시각 나는 그런 쓸데없는 것들때문에 신경을 쓰고있었다. 프리지아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는 뚜벅뚜벅 걸어와서 내 어깨를 툭 치고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주인을 향해 럼주를 주문하고는 그제야 맞은편 걸상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 콘, 나 끝내 끌려가게 됐어. 흐흐흐> 하고 웃었다. 좋다는건지 나쁘다는건지 분간할수 없었다……
마지막의 만남은 길지 않았다. 말도 별로 없었고….나는 그에게 선물을 주었다. 나의 사진을 인쇄한 얇고 자그마한 알루미늄판이였다. 그걸 군번호패와 함께 목에 걸고 다니라고 부탁했다. 나는 운세가 강한 사람이니까….나의 사진을 지니고 위험을 피해다닐수 있기를 바랐다. 지아는 어지간히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고 , 그러고 좀 더 앉아있다가 우리는 갈라졌다……….
지아가 이라크로 떠난 두달후 그녀에게서 전화가 한번 온적이 있다. 군용전화기로 하는지 잡음이 심해서 뭐라고 소리치는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간신히 넉달 후 돌아갈것이며 돌아가면 중요한 결정을 나에게 알려줄것이라는 말을 알아들었다. 그리고 넉달이 아니라 7달후 나는 미국에서 온 편지를 한통 받게 되었다.
편지는 지아의 할아버지가 보낸것이였다. 이동하는 도중 게릴라의 습격을 받아 지아가 탔던 자동차가 불에 탔고, 지아는 온몸에 화상을 입은채 입은채 미국에 송환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얼마전에 끝내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는…..그런 소식이였다. 지아가 보낸 편지도 함께 동봉되어있었다.
< (생략)……………콘, 너를 알게 된 시간이 너무 짧아서 유감이야. 좀 더 길었더라면 널 잡을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나 아마 죽을것 같구나. 너의 사진 불에 타버렸어. 그 사진 남았으면 죽을때 가지고 갈수 있을건데….그래서 유감이다….(생략)>
지아는 역시 여자였었다. 편지를 받고 비감의 눈물을 삼키며 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였었다.
지아가 이라크에 떠나기 얼마전 나는 이미 여자친구를 두고있었다. 먼곳이여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그리고 그녀를 아주 사랑하고있었다. 나로서는 지아에게 이성의 감정을 품었던 기억이 없었다. 그를 여자로서 생각한적이 별로 없었다. 다만 친하고 잘 통하는 가까운 친구였을뿐이다. 나는 친구로서 지아를 아주 좋아하였었다. 적어도 나는 이렇게 생각해왔다.
그런데….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지아에게 뭔가 미안한듯한 감정이 떠나가지 않는것은 웬 영문일가….흐릿한 2005년 구정의 날, 그녀는 다시 나의 뇌리속에 들어와서 마음을 무겁게 한다.
<쐐액>.... 구름속을 헤가르는 제트기편대
<타타타타타….>착륙하는 공격헬기의 프로펠라소리…
기지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는 미국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빠가 있다. 나는 그곳에서 프리지아(가명)를 알게 되었다. 그때는 재작년 겨울인데…당시 그녀는 보급장교로 근무하고있었다.
이름은 이쁘지만 사실 생긴걸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어지간히 이쁘긴 하지만 ….한마디로 사납게 생겼다. 남자들의 세상에서 8.9년을 견뎌냈다 하니 어지간한 남자는 뺨도 칠만하겠지만…언제나 얼룩덜룩한 전투복에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군화로 땅바닥을 탕탕 구르며 다니는 그녀에게서 여자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필라델피아출신의 한국인이민 3세, 아버지는 그녀가 3살적에 흑인의 총에 맞아 돌아갔다 한다. 한국전쟁의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한테서 자랐고, 덕분에 저녁마다 할아버지한테서 전쟁이야기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란 덕에 그녀는 성감적이고 화려한 옷이나 화장품들을 멀리한채 오늘의 프리지아로 되었던것이다.
그녀와는 거의 매주 주말이면 빠에서 만났다. 미군부대에 대한 나의 호기심과 다른 세계와도 같은 차이나라는 먼 나라에서 온 나에 대한 그녀의 호기심으로 하여, 우리사이에는 적어도 따분한적은 없었던것 같다. 아니, 따분하기보다 그녀는 럼주 둬잔이 들어가면 곧 흥분해서 수다를 떨어댔다. 그럴때는 전혀 사관급 장교답지 않고 애기 셋을 낳아기른 아줌마같기도 하였다. (미안하다. 프리지아)
그녀의 소개로 나는 그의 전우들을 하나둘씩 알게 되었고 가끔 장교가속들만 사는 울타리안의 잔디밭에서 바베큐도 즐길때가 있었다. 그럴때면 그녀는 언제나 나의 팔을 끼고 다니군 하였다. 전투복차림의 여자가 사복의 남자팔을 끼고 가슴을 쑥 내밀고 다닌다고 상상해보라. 그녀로서는 그 자체를 못내 즐기는지 몰라도 나로서는 마치 포로되어 압송당하는 기분이였다. 다만 숫기가 없는 성격때문에 싫다는 말을 못했을뿐이다.
그러다가 작년 4월 프리지아는 이라크에 파견되게 되었다. 당시로는 미군이 바그다드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게릴라들의 테로습격을 날에 날마다 받던 때였다. 떠나기 사흘전 우리는 마지막으로 만났다.
위험한곳에 가는 친구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이상하게도 그 시각 나는 그런 쓸데없는 것들때문에 신경을 쓰고있었다. 프리지아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는 뚜벅뚜벅 걸어와서 내 어깨를 툭 치고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주인을 향해 럼주를 주문하고는 그제야 맞은편 걸상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 콘, 나 끝내 끌려가게 됐어. 흐흐흐> 하고 웃었다. 좋다는건지 나쁘다는건지 분간할수 없었다……
마지막의 만남은 길지 않았다. 말도 별로 없었고….나는 그에게 선물을 주었다. 나의 사진을 인쇄한 얇고 자그마한 알루미늄판이였다. 그걸 군번호패와 함께 목에 걸고 다니라고 부탁했다. 나는 운세가 강한 사람이니까….나의 사진을 지니고 위험을 피해다닐수 있기를 바랐다. 지아는 어지간히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고 , 그러고 좀 더 앉아있다가 우리는 갈라졌다……….
지아가 이라크로 떠난 두달후 그녀에게서 전화가 한번 온적이 있다. 군용전화기로 하는지 잡음이 심해서 뭐라고 소리치는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간신히 넉달 후 돌아갈것이며 돌아가면 중요한 결정을 나에게 알려줄것이라는 말을 알아들었다. 그리고 넉달이 아니라 7달후 나는 미국에서 온 편지를 한통 받게 되었다.
편지는 지아의 할아버지가 보낸것이였다. 이동하는 도중 게릴라의 습격을 받아 지아가 탔던 자동차가 불에 탔고, 지아는 온몸에 화상을 입은채 입은채 미국에 송환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얼마전에 끝내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는…..그런 소식이였다. 지아가 보낸 편지도 함께 동봉되어있었다.
< (생략)……………콘, 너를 알게 된 시간이 너무 짧아서 유감이야. 좀 더 길었더라면 널 잡을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나 아마 죽을것 같구나. 너의 사진 불에 타버렸어. 그 사진 남았으면 죽을때 가지고 갈수 있을건데….그래서 유감이다….(생략)>
지아는 역시 여자였었다. 편지를 받고 비감의 눈물을 삼키며 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였었다.
지아가 이라크에 떠나기 얼마전 나는 이미 여자친구를 두고있었다. 먼곳이여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그리고 그녀를 아주 사랑하고있었다. 나로서는 지아에게 이성의 감정을 품었던 기억이 없었다. 그를 여자로서 생각한적이 별로 없었다. 다만 친하고 잘 통하는 가까운 친구였을뿐이다. 나는 친구로서 지아를 아주 좋아하였었다. 적어도 나는 이렇게 생각해왔다.
그런데….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지아에게 뭔가 미안한듯한 감정이 떠나가지 않는것은 웬 영문일가….흐릿한 2005년 구정의 날, 그녀는 다시 나의 뇌리속에 들어와서 마음을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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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5)
아리정님이 어떤 남자이던, 또 그녀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던, 아리정님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그녀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아주 행복했을겁니다.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좀 무거울가 하든 맘이 아리정님의 글을 보니깐 더 무거워지네요...
떠날때 아리정님한테 편지를 남길수 있다는것만으로도 지아는 행복했을겁니다...
떠난 고인에게 명복을 빕니다...
떠날때 아리정님한테 편지를 남길수 있다는것만으로도 지아는 행복했을겁니다...
떠난 고인에게 명복을 빕니다...
생략...
긴글이니 맘이 무거워져요
리플보고 리플답니다.
다른세상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님과 같은 좋은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하겟어요?
힘내세요. 힘들어도....
리플보고 리플답니다.
다른세상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님과 같은 좋은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하겟어요?
힘내세요. 힘들어도....

이렇게 유언 한마디 못남기고 소리 한번 못쳐본채 전쟁이란 악마의 혀에 할키운 사람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리정님 같은 친구가 있어서 그녀도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