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열차에서 연변에서 온 의사 한 분 만나 얘기하다나니
그만 내려얄 정거장을 지나쳐 버렸다. 하는수없이 그분이내릴 종점역까지 가서
그가 세맡은 집에서 자게 되였다.그 분은 왕청 어느 진병원 원장을 하다가 퇴직휴양하고
40대 젊은 의사와 함께 로씨야에 왔다.침구료법으로 풍맞은사람들 병을 보았는데
대뜸 소문이 나서 환자들이 쉴새없이 모여든다고 한다.
당지의 45세되는 고려인 과부가 통역을 해주고 그 집에 와서 식사도 마련해 주는데
한 달에 100달러씩 로임 준단다.
내가 로씨야 마담과 사는 고려인들이 끝까지 살지 못하고
나중에는 갈라지고 만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어서 그녀한테 물었더니 그는 시물시물 웃으면서
<왜 안 그러겠어요.조선 남자들이 늙어서는 맥살을 추지 못하니...>하고 대답했다.
단지 그 때문만이 아닐 것이지만 아무리 환경의 제한을 받는다 쳐도
조선 사람들한테는 다른 민족과 통혼한다는 것이
로씨야에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흔치 않은 일인것 같다.
저녁에 마을의 고려인 몇분이 놀러 와서 술판을 벌렸다.온 밤 잡담으로 지새였다.
의사분말이 함께 온 젊은 의사는 번 돈을 로시야 마담과 놀아대는데 다 써버렸다한다.
그는 아예 그 로씨야 마담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다.
그 마담남편이 외지에서 온다는 바람에 놀라 줄행랑을 놓았다는 것이였다.
사실상 그 남편이 돌아와 자기 마담이 다른 눔하구 놀아났다는걸 안대두 무방하단다.
그러고 보면 젊은 의사는 제풀에 놀란 셈이다.
한 고려인 로인이 의사분 보고 <자네 로씨야 마담들이 문두드리며 들어 오겠다구 발광할때
왜 문 안 열어 줬나?>하니 의사분은 <그늠들 내돈 보구 찾아오지 나 보구 오겠소?>하며 웃었다.
<아니, 꼭 돈 보구 오는것두 아닐세.그늠들 워낙 쎄니까.>
또 우리 보고 로씨야 마담을 데리고 놀아 보았는가고 물었다.
그런 점잖지 못한 노릇을 어떻게 하느냐는 우리 단장의 말에
<여기선 그런 걸 대수로와 하지 않네.로씨야 마담들 맛이 기막히네.입으로 쪽쪽 빠는 것만 같다니.
이제 중국 돌아가서 후회하지 않는가 두구 보라니.>하고 심상스레 말한다.
로씨야에서 사는 우리 동포들은 오랜 세월 로씨야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가운데
로씨야인들의 개방된 성격을 많이 닮은 것 같다.
로씨야에서 사는 조선 사람 치고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특히 젊은 세대가 그러하였다.조선글은 더구나 몰랐다.
울라지워스도크나 나호드까의 고려인 대부분이 교육받은 정도가 낮고 하층에서 사는 사람들이여서
통역으로 내세울 사람을 찾기도 힘들었다.중국의 조선족과는 달리 로씨야에선
고려인들의 문화 차원이 퍽 낮고 사회적 지위도 낮았다.
구 쏘련에서 민족문제를 원만히 해결 못한 까닭으로 각 가맹공화국이 연이어 독립을 선고하고
종국에는 련맹이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그 점에서 볼때 모택동의 민족자치정책은현명한 정책이라 할수있다.
로씨야에서 잘 보내는 고려인들도 더러 볼 수 있었는데
우리가 만나 본 나호드까시 고려인협회 회장이 그러하였다.
승용차도 있고 전화도 있으며 집안 장식도 화려했다.
한국과 일본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고 수입제 쏘파와 가구들로 집안을 꽉 채웠다.
허나 그 역시 한 기업소의 일반 사무원에 지나지 않았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우리가 만나 본 고려인 의사인데 쓰고 사는 집도 훌륭하고
집에 전화도 있고 꽤 높은 교육을 받은것 같은데 자지역 전화 번호를 모르고 있는 것이였다.
그만큼 외부와의 거래가 없고 극히 협소한 범위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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