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저녁 무렵에 젖어드는 고향 생각

사랑이별 · #15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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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넘에는 박꽃 · 2004-11-01 20:26:11 · 조회 265
                          비 오는 저녁 무렵에 젖어드는 고향 생각

이렇게 식전인 저녁때 땅거미가 내려 앉기 시작한 밖에서는 찬비가 주룩주룩 떨어지고 혼자 저녁밥을 덥혀 먹기 싫은 외톨이 나그네는 주린 배를 안고 창가에 기대서서 교회 꼭대기에 벌겋게 타오르는 십자가를 멍하니 쳐다보며 고향생각에 젖는다.

며칠 전부터 TV에서 비가 내릴 것 이라고 예보하더니만 이번엔 적중했다.

출입문을  열어젖히니 먼 바다 바람에  떠온 듯한 비릿한 비바람 냄새가 얼굴에 확 끼얹어지며 순간 머리를 띵하게 만든다.

허망공중에 떠서 높은 빌딩사이며 주택가 단지 사이를  오염시키며 마구 헤집고 난무하던 미세먼지들이 빗방울 속에 묻혀서 내려앉는 내음이 목젖에 감겨들며 매캐하다.

찬 초겨울비가  낙엽이 쓸쓸히 나뒹구는 골목길위에 후둑후둑 뿌리려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찬비가 흩날리는 저녁 무렵 이면 고향집 어머니는 저녁 때 거리로 아버지께서 제일 즐기시는 별식을 준비하군 했다.

별식이라 해봤자 별난 것도 아니다.

시골에서 깨끗한 공기 빗물을 마시고 유기농으로 재배된 야채들을 나는 오늘 특별히 별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씻지 않고도 먹을수 있는 배추 속갱이며,양배추 하얀 뿌리며...
물이 올라 맨손으로도 껍질이 잘 벗겨지는 처녀의 허벅지 하얀 속살처럼 부드러운 햇 무우를 된장에 듬뿍 찍어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었던가?

아버지께서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고 그득히 장작을 서려놓으면 어머니께서는 터 밭에 나가셔서 서리에 살짝 얼금이 간 시골 무공해 양배추 포기들을 들여다가 맨 밖같 껍데기만 한겹 벗겨내고는 깨끗이 씻어 가마솥 안에 시루를 늘여놓고 얹는다.

뚝배기에는 된장을 걸게 풀고 거기에다 마늘이며, 매운 토종 고추며, ...등등 온갖 양념을 곁들여서 얼큰한 된장 소스를 만드시군 했다.

아버지께는 윗방에 올방자 틀고 앉으셔서 굵다란 엽초 한대를 피워 무시고 김이 문문 피여 오르는 가마솥을 넌지시 내려다보시며 이제나 저제나 저녁밥상을 기다리신다.

그런 아버지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어머니께서는 느긋하게 서두르지도 않고 수걱수걱 저녁 준비를 하시 군 했다.

뜬 김이 자오록하게 서린 창문에는 맺혔던 물방울들이 밥을 태워 쫓겨난 민며느리 볼 턱에 흘러내리던 눈물처럼 곬을 타고 흘러내린다.

따뜻한 온돌방에 온 식구가 둥그런 저녁밥상에 둘러앉아 들큼 쌉쌀한 맛이 일품인 양배추 쌈으로 행복을 감싸 먹군 했다.

여느 때보다 오늘 저녁엔 어머니 손맛이 깃들어 구수하던 된장국이며 고향집 양배추 쌈이 못 견디게 그리워 난다





                                                                                             담넘엔 박꽃 ㅡ잡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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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5)

항상 미소 · 2004-11-01 22:13:25
어릴적 우리집을 방불케해요.
철없던 동년시절이 너무너무 그리워나네요.
아마 그런날은 다시 안돌아오겠죠 .휴~
담넘에는 박꽃 · 2004-11-01 23:20:39
오늘은 찬비가 내리는데다가 별스레 고향생각이 떠올려져서 몇글자 적어봤습니다.
동년의 추억을 떠올려볼수 있는 기회가 되였다면 저 역시 행복으로 생각하겠습니다.

항상 미소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디즈니 · 2004-11-02 00:50:20
오늘따라 고향생각이 더해나네요,

요새는 너무 바삐 돌아다니다 님이 쓴 문장을 읽고 많이 안정되는 감이 나요,,

감사합니다, 늘 좋은 문장 읽을수 있어서!!!
첫눈 · 2004-11-02 01:27:59
고향생각날때면 부모형제들한테 전화한통 하세요...할말이 없어도 그냥 잡담을 하면서

한번이라도 웃으면 많이 나아질건데...
담넘에는 박꽃 · 2004-11-02 11:52:05
디즈니님 , 늘 이렇게 고향생각에 깊히 빠져드는건 나의 잠재의식속에 작용하고 있는 회귀본능때문만은 아닐것입니다.
태를 묻고 뼈를 굳혀오고 살을 키워온 정든 내고향은 나를 만들어온 모체입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읽어주시고 리플까지 감사~~

첫눈님, 님의 건의대로 오늘은 고향집에 전화 한통 넣어야 겠습니다.
어머니의 넉넉한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여유로와집니다.

ㅎㅎ 첫눈님의 닉네임처럼 하얀 눈송이를 흩날리는 첫눈이 보고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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