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릴 적, 나는 무척 입이 무거운 소년이었다. 부모가 너무 걱정이 되서 나를 아는 사이의 정신과의사집에 데리고 간적도 있었다.
의사의 집은 바다가 보이는 높은 대위에 있었고, 내가 해볓이 잘 들어오는 응접실 소파에 앉자 품위가 좋은 중년 부인이 시원한 오렌지쥬스와 도나쯔 두개를 내주었다. 나는 무릎에 사탕가루를 떨구지 않기에 주의하면서 도나쯔를 절반 먹고 오렌지쥬스를 전부 마셨다.
“더 마시겠니?” 라고 의사가 묻기에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우리들은 단 둘이서 마주하고 있었다. 정면의 벽에는 모짜르트의 초상화가 담작은 고양이처럼 원망스러운 눈길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옛날에 어떤 곳에 아주 성질이 좋은 산양이 있었단다.”
훌륭한 서두떼기 였다. 나는 눈을 감고 성질 좋은 산양을 상상해보았다.
“산양은 언제나 무거운 금시계를 목에 드리우고 후후 하며 달아다녔다. 그런데 그 시계는 무겁기도 했거니와 망가져 움직이지도 않았었지. 그래서 친구 토끼가 와서 이런말을 했단다. <야 산양아, 왜 너는 가지도 않는 시계를 항상 그렇게 걸고 다니니? 무거울것 같기도 하고 쓸모도 없잖니?> 라고 말이다. <그야 무겁지.>라고 산양이 말했다. <그래도 습관이 되버렸단다. 시계가 무겁다는 것도, 가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 나선 자기의 오렌지쥬스를 마시고 벙글벙글 웃으며 나를 본다. 나는 잠자코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산양의 생일날에 토끼는 고운 리봉이 감겨진 작은 함을 선물했다. 그건 반짝반짝 빛나는 매우 가볍고 또 정확하게 잘가는 새시계였단다. 산양은 매우 기뻐하며 그걸 목에 걸고 모두들에게 돌아가며 보였단다.”
그기에서 이야기는 갑자기 끝났다.
“네가 산양이고 나는 토끼, 그리고 시계는 너의 마음이란다.”
나는 얼리운 듯한 기분이였지만 방법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주에 한번, 일요일의 오후, 나는 전차와 뻐스를 갈아타고 의사집을 다녔고 커피빵이며 사과빵이며 빵케키며 꿀이 발린 크로왔산을 먹으며 치료를 받았다. 일년 정도의 시간이였었는데 그 바람에 나는 치과병원까지 다니는 신세가 되버렸다.
문명이란 곧 전달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만일 무엇인가를 표현할수 없다면 그것은 존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잘들었냐, 제로(零)란다. 만일 네가 배가 고프다고 하자. 너는 “배가 고픕니다.” 라고 한마디 만 하면 되는거다. 나는 너에게 쿳키를 준다. 먹어도 괜찮아. (나는 쿳키를 하나 집었다.) 네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면 쿳키는 없어. (의사는 심술 궂은듯 쿳키 접시를 상밑으로 감췄다.) 제로란다. 알겠냐? 너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배는 고프다. 그래서 너는 말을 하지 않고 그걸 표현하고 싶다. 제스츄야 겜이다. 한번 해보렴.
나는 배를 누르면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해보였다. 의사는 웃었다. 그건 소화불량이야.
소화불량……
다음에 우리들이 한건 잡담이였다.
“고양이에 대해 무엇이든지 좋으니까 한번 예기 해보렴.”
나는 생각하는 척하며 머리를 귀우뚱거렸다.
“생각나는 거면 뭐든지 좋지.”
“네 발 가진 동물입니다.”
“코끼리도 네 발 가졌어.”
“훨씬 작아요.”
“그리고?”
“집에서 키울수 있고, 생각이나면 쥐도 잡아요.”
“뭘 먹지?”
“물고기.”
“소세지는?”
“소세지도요.”
그러한 정도였다.
의사가 한 말은 옳은 말이였다. 문명이란 곧 전달이였다. 표현하고 전달해야 할 일이 없어질때면 문명도 곧 끝이 난다.
찰칵……OFF.
14살이 되던 봄날, 믿을수 없는 일이지만 마치도 담을 무너뜨린듯 나는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했던가 는 전혀 생각이 안나지만 14년간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듯 나는 3개월에 걸쳐 줄곧 입방아를 찧었고 7월중순에 들어 입방아가 그치자 곧 40도의 고열이 나서 3일간 학교를 휴식하였다. 열이 내리고 나자 나는 결국 입이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평범한 소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릴 적, 나는 무척 입이 무거운 소년이었다. 부모가 너무 걱정이 되서 나를 아는 사이의 정신과의사집에 데리고 간적도 있었다.
의사의 집은 바다가 보이는 높은 대위에 있었고, 내가 해볓이 잘 들어오는 응접실 소파에 앉자 품위가 좋은 중년 부인이 시원한 오렌지쥬스와 도나쯔 두개를 내주었다. 나는 무릎에 사탕가루를 떨구지 않기에 주의하면서 도나쯔를 절반 먹고 오렌지쥬스를 전부 마셨다.
“더 마시겠니?” 라고 의사가 묻기에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우리들은 단 둘이서 마주하고 있었다. 정면의 벽에는 모짜르트의 초상화가 담작은 고양이처럼 원망스러운 눈길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옛날에 어떤 곳에 아주 성질이 좋은 산양이 있었단다.”
훌륭한 서두떼기 였다. 나는 눈을 감고 성질 좋은 산양을 상상해보았다.
“산양은 언제나 무거운 금시계를 목에 드리우고 후후 하며 달아다녔다. 그런데 그 시계는 무겁기도 했거니와 망가져 움직이지도 않았었지. 그래서 친구 토끼가 와서 이런말을 했단다. <야 산양아, 왜 너는 가지도 않는 시계를 항상 그렇게 걸고 다니니? 무거울것 같기도 하고 쓸모도 없잖니?> 라고 말이다. <그야 무겁지.>라고 산양이 말했다. <그래도 습관이 되버렸단다. 시계가 무겁다는 것도, 가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 나선 자기의 오렌지쥬스를 마시고 벙글벙글 웃으며 나를 본다. 나는 잠자코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산양의 생일날에 토끼는 고운 리봉이 감겨진 작은 함을 선물했다. 그건 반짝반짝 빛나는 매우 가볍고 또 정확하게 잘가는 새시계였단다. 산양은 매우 기뻐하며 그걸 목에 걸고 모두들에게 돌아가며 보였단다.”
그기에서 이야기는 갑자기 끝났다.
“네가 산양이고 나는 토끼, 그리고 시계는 너의 마음이란다.”
나는 얼리운 듯한 기분이였지만 방법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주에 한번, 일요일의 오후, 나는 전차와 뻐스를 갈아타고 의사집을 다녔고 커피빵이며 사과빵이며 빵케키며 꿀이 발린 크로왔산을 먹으며 치료를 받았다. 일년 정도의 시간이였었는데 그 바람에 나는 치과병원까지 다니는 신세가 되버렸다.
문명이란 곧 전달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만일 무엇인가를 표현할수 없다면 그것은 존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잘들었냐, 제로(零)란다. 만일 네가 배가 고프다고 하자. 너는 “배가 고픕니다.” 라고 한마디 만 하면 되는거다. 나는 너에게 쿳키를 준다. 먹어도 괜찮아. (나는 쿳키를 하나 집었다.) 네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면 쿳키는 없어. (의사는 심술 궂은듯 쿳키 접시를 상밑으로 감췄다.) 제로란다. 알겠냐? 너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배는 고프다. 그래서 너는 말을 하지 않고 그걸 표현하고 싶다. 제스츄야 겜이다. 한번 해보렴.
나는 배를 누르면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해보였다. 의사는 웃었다. 그건 소화불량이야.
소화불량……
다음에 우리들이 한건 잡담이였다.
“고양이에 대해 무엇이든지 좋으니까 한번 예기 해보렴.”
나는 생각하는 척하며 머리를 귀우뚱거렸다.
“생각나는 거면 뭐든지 좋지.”
“네 발 가진 동물입니다.”
“코끼리도 네 발 가졌어.”
“훨씬 작아요.”
“그리고?”
“집에서 키울수 있고, 생각이나면 쥐도 잡아요.”
“뭘 먹지?”
“물고기.”
“소세지는?”
“소세지도요.”
그러한 정도였다.
의사가 한 말은 옳은 말이였다. 문명이란 곧 전달이였다. 표현하고 전달해야 할 일이 없어질때면 문명도 곧 끝이 난다.
찰칵……OFF.
14살이 되던 봄날, 믿을수 없는 일이지만 마치도 담을 무너뜨린듯 나는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했던가 는 전혀 생각이 안나지만 14년간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듯 나는 3개월에 걸쳐 줄곧 입방아를 찧었고 7월중순에 들어 입방아가 그치자 곧 40도의 고열이 나서 3일간 학교를 휴식하였다. 열이 내리고 나자 나는 결국 입이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평범한 소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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