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 1학년때 사귀던 남친이 있었다.
그는 4학년 졸업을 앞둔 한족 남자였다.
우리는 같이 학교에서 지낸 시간은 가엾게 두달밖에 안되었다.
졸업후 그는 취직해서 다른 도시로 갔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는 한주일에 꼭꼭 편지 두통을 보내주고 있었고 난 한주일에 한통의 편지를 했다.
그리고 한 주일에 한번씩 꼭 전화를 해주었다.
그 때는 정말 달콤한 시절이였지..
한번은 금요일 오후 수업이 끝나 반급애들과 같이 숙사로 가는데 눈 앞에 익숙한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그였다 .먼 곳에서부터 나를 발견하고 손을 젓고 있는것이다.
너무 뜻밖이였다.
너무 놀래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옆에 있던 애들도 놀라서 손만 젓고 할말을 잃었다.
아무예고도 없이 나를 보러 온 그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안 그래도 주말이 되면 쓸쓸해지는 마음 달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던 나였는데..
그 뒤에도 두달이 멀다하게 나를 보러 학교로 찾아왔었다.
그가 있는 도시에서 우리 학교까지 오려면 기차를 8시간 타야만 한다.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그는 언제나 금요일 저녁차로 떠나 이튿날 아침에 도착해서
일요일 밤차로 돌아간다..
정말 한번 왔다가는 것은 헐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내가 보고싶다며 그리고 내가 보고싶어할거라며 잘 찾아주었다.
편지도 끊어지지 않았다.
난 너무 같은 내용 쓰고 또 쓰는 것이 싫어지고 전화도 있고 가끔씩 만나고 하니까
어떤때는 게으름을 피우고 쓰지 않는다.
그러면 언제나 불공평하다며 어떻게 하든 나더러 꼭 편지를 쓰게 한다.
우리가 사귀여서 10달이 된 어느날 내가 이젠 갈라지자고 말을 꺼냈다.
그때 마침 3월달 방학이 끝나고 개학한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그가 나를 찾아 학교에 왔던것이다.
내가 그만사귀다고 말했을때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왜서?>라고 묻는것이 겨우였다.
<처음에 사귈때도 말했지만 우리가 꼭 결과를 볼수 있다는 장담은 할수 없다고 한것처럼 이젠 너무 힘들어>라고 솔직히 말했다.
처음에 그와 사귀기로 마음 먹을때 많이 고민했었다.
원인은 한족이라는데서였다.
내가 한족을 꺼리는 것도 있었겠지만 더욱 중요한것은 우리 부모가 접수해주지 않는것이다.
우린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
방학에 우리집에서는 자그마한 일이 생겼었다.
언니가 한족과 사귀여 꼭 결혼하겠다고 한다.
그 남자는 정말로 한족이라는것 빼놓고 어디 하나 나무랄데 없는 남자였다.(지금은 둘이 잘 살고 있고 우리 아버지 역시 접수하고 있다,하지만 섭섭한 마음은 여전하다)
그 때문에 아버지가 너무 속이 상해 내 앞에서 <너 만은 한족 찾지 말아줘.부탁이다.너까지 그러면 아버지 미칠거다>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런 아버지를 보는 나의 마음은 몹시 아팠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 처음 본다.
그렇게 무력하고 어쩌지 못하는 모습..
안타까운 마음 달래지 못하고 딸 앞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 ...
오죽했으면 ...
내까지 아버지 마음을 찢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하고 그 때 마음먹었다.
나는 나의 사랑을 아버지를 위해 희생해야만 한다고...
그래서 개학후 그가 날 보러 온 계기로 내가 끝내 말을 꺼낸것이였다.
처음부터 그는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서로 사랑하는데 왜서 이렇게 갈라져야만 하는가고...
민족이 그렇게도 중요한것인가고...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 민족이냐구...
... ...
그에게 놓고 말하면 리해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내 자신도 해석하지 못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가 떠난 뒤 나는 혼이 빠져 나간사람처럼 되어버렸다..
그 남자는 일주일후에 휴가 맡고 또 찾아왔다.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유가 아버지라는 이유뿐인가고..
하지만 나에겐 아버지가 전부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하고 알아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한번 안된다고 한 말은 절대로 거두지 못한다고 그에게 찝어 말하고는
먼 길에서 찾아와도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한 숙사 애들은 내가 너무 하다며 자꾸 그런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굳어져있었다.
그런 나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난들 그렇게 하고싶어서 그렇겠냐구 그 애들한테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글쎄 그 애들도 한족이니 나의 민족심을 알아줄리가 만무했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 알아줄리 만무했다.
나는 그때 정말 독한 짓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 당시 어쩌면 그렇게 독했을가 한다.
자신으로도 믿지 못할 정도로..
말 그대로 <악녀>였다.
어느 비오는 날 나는 그 한테서 온 편지를 몽땅 태워버렸다.
함께 찍은 사진도 한장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의 독사진,그에게서 선물받은 물건은 소포로 해서 부쳤다.
그 소포를 받은 그의 마음 얼마나 찢어지고 아팠으랴..
알면서도 그렇게 할수없는 나였다.
나를 잊게 하기위해서...
미워하게 하기 위해서...
난 진짜 독한 여자다.
스스로도 알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그의 나에게 대한 미련을 없애기 위한데서 였다..
변명으로 들릴지는 몰라도...
그 뒤로 나는 변했다.
하지만 주위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낮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웃으며 떠들며 장난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기때문이다.
하지만 저녁이면 몰려오는 슬픔이 나를 더 이상 교실에 앉아있지 못하게 한다.
숙사에 혼자서 이불속에 들어밖혀 눈물을 흘린다.
힘들어 더 이상 울 기운이 없어질때까지 운다.
그리고 남들이 잠에 떨어져있을때면 혼자서 멍하니 침대에 앉아서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한다.
한달이 넘도록 숙사애들 내놓고 우리 반애들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매일 편지 배달하는 여자애가 가끔 요즘에는 왜 편지가 없냐고 물으며 이상해서 했는데 적당히 얼버무리면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실은 한달동안 내색 안내느라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길던 머리 자르고
짧아진 머리보며 슬퍼서 또 울고
보기 흉하다면 지지고
지지니까 한바구니 되여버린 머리가 또 귀찮아서 펴고...
하여튼 별짓 다 해보았다..
..... .....
시간은 흘러 몇년이 지났다.
그뒤로는 연계도 끊어졌다...
아직도 그에겐 미안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이만 저의 옛날 사랑얘기였어요..아마 님들도 저를 독한 여자라고 생각하겠죠..
세상에 가장 독한것이 여자마음이라더니 저를 두고 그런가봐요.
그는 4학년 졸업을 앞둔 한족 남자였다.
우리는 같이 학교에서 지낸 시간은 가엾게 두달밖에 안되었다.
졸업후 그는 취직해서 다른 도시로 갔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는 한주일에 꼭꼭 편지 두통을 보내주고 있었고 난 한주일에 한통의 편지를 했다.
그리고 한 주일에 한번씩 꼭 전화를 해주었다.
그 때는 정말 달콤한 시절이였지..
한번은 금요일 오후 수업이 끝나 반급애들과 같이 숙사로 가는데 눈 앞에 익숙한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그였다 .먼 곳에서부터 나를 발견하고 손을 젓고 있는것이다.
너무 뜻밖이였다.
너무 놀래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옆에 있던 애들도 놀라서 손만 젓고 할말을 잃었다.
아무예고도 없이 나를 보러 온 그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안 그래도 주말이 되면 쓸쓸해지는 마음 달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던 나였는데..
그 뒤에도 두달이 멀다하게 나를 보러 학교로 찾아왔었다.
그가 있는 도시에서 우리 학교까지 오려면 기차를 8시간 타야만 한다.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그는 언제나 금요일 저녁차로 떠나 이튿날 아침에 도착해서
일요일 밤차로 돌아간다..
정말 한번 왔다가는 것은 헐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내가 보고싶다며 그리고 내가 보고싶어할거라며 잘 찾아주었다.
편지도 끊어지지 않았다.
난 너무 같은 내용 쓰고 또 쓰는 것이 싫어지고 전화도 있고 가끔씩 만나고 하니까
어떤때는 게으름을 피우고 쓰지 않는다.
그러면 언제나 불공평하다며 어떻게 하든 나더러 꼭 편지를 쓰게 한다.
우리가 사귀여서 10달이 된 어느날 내가 이젠 갈라지자고 말을 꺼냈다.
그때 마침 3월달 방학이 끝나고 개학한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그가 나를 찾아 학교에 왔던것이다.
내가 그만사귀다고 말했을때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왜서?>라고 묻는것이 겨우였다.
<처음에 사귈때도 말했지만 우리가 꼭 결과를 볼수 있다는 장담은 할수 없다고 한것처럼 이젠 너무 힘들어>라고 솔직히 말했다.
처음에 그와 사귀기로 마음 먹을때 많이 고민했었다.
원인은 한족이라는데서였다.
내가 한족을 꺼리는 것도 있었겠지만 더욱 중요한것은 우리 부모가 접수해주지 않는것이다.
우린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
방학에 우리집에서는 자그마한 일이 생겼었다.
언니가 한족과 사귀여 꼭 결혼하겠다고 한다.
그 남자는 정말로 한족이라는것 빼놓고 어디 하나 나무랄데 없는 남자였다.(지금은 둘이 잘 살고 있고 우리 아버지 역시 접수하고 있다,하지만 섭섭한 마음은 여전하다)
그 때문에 아버지가 너무 속이 상해 내 앞에서 <너 만은 한족 찾지 말아줘.부탁이다.너까지 그러면 아버지 미칠거다>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런 아버지를 보는 나의 마음은 몹시 아팠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 처음 본다.
그렇게 무력하고 어쩌지 못하는 모습..
안타까운 마음 달래지 못하고 딸 앞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 ...
오죽했으면 ...
내까지 아버지 마음을 찢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하고 그 때 마음먹었다.
나는 나의 사랑을 아버지를 위해 희생해야만 한다고...
그래서 개학후 그가 날 보러 온 계기로 내가 끝내 말을 꺼낸것이였다.
처음부터 그는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서로 사랑하는데 왜서 이렇게 갈라져야만 하는가고...
민족이 그렇게도 중요한것인가고...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 민족이냐구...
... ...
그에게 놓고 말하면 리해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내 자신도 해석하지 못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가 떠난 뒤 나는 혼이 빠져 나간사람처럼 되어버렸다..
그 남자는 일주일후에 휴가 맡고 또 찾아왔다.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유가 아버지라는 이유뿐인가고..
하지만 나에겐 아버지가 전부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하고 알아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한번 안된다고 한 말은 절대로 거두지 못한다고 그에게 찝어 말하고는
먼 길에서 찾아와도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한 숙사 애들은 내가 너무 하다며 자꾸 그런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굳어져있었다.
그런 나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난들 그렇게 하고싶어서 그렇겠냐구 그 애들한테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글쎄 그 애들도 한족이니 나의 민족심을 알아줄리가 만무했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 알아줄리 만무했다.
나는 그때 정말 독한 짓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 당시 어쩌면 그렇게 독했을가 한다.
자신으로도 믿지 못할 정도로..
말 그대로 <악녀>였다.
어느 비오는 날 나는 그 한테서 온 편지를 몽땅 태워버렸다.
함께 찍은 사진도 한장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의 독사진,그에게서 선물받은 물건은 소포로 해서 부쳤다.
그 소포를 받은 그의 마음 얼마나 찢어지고 아팠으랴..
알면서도 그렇게 할수없는 나였다.
나를 잊게 하기위해서...
미워하게 하기 위해서...
난 진짜 독한 여자다.
스스로도 알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그의 나에게 대한 미련을 없애기 위한데서 였다..
변명으로 들릴지는 몰라도...
그 뒤로 나는 변했다.
하지만 주위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낮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웃으며 떠들며 장난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기때문이다.
하지만 저녁이면 몰려오는 슬픔이 나를 더 이상 교실에 앉아있지 못하게 한다.
숙사에 혼자서 이불속에 들어밖혀 눈물을 흘린다.
힘들어 더 이상 울 기운이 없어질때까지 운다.
그리고 남들이 잠에 떨어져있을때면 혼자서 멍하니 침대에 앉아서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한다.
한달이 넘도록 숙사애들 내놓고 우리 반애들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매일 편지 배달하는 여자애가 가끔 요즘에는 왜 편지가 없냐고 물으며 이상해서 했는데 적당히 얼버무리면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실은 한달동안 내색 안내느라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길던 머리 자르고
짧아진 머리보며 슬퍼서 또 울고
보기 흉하다면 지지고
지지니까 한바구니 되여버린 머리가 또 귀찮아서 펴고...
하여튼 별짓 다 해보았다..
..... .....
시간은 흘러 몇년이 지났다.
그뒤로는 연계도 끊어졌다...
아직도 그에겐 미안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이만 저의 옛날 사랑얘기였어요..아마 님들도 저를 독한 여자라고 생각하겠죠..
세상에 가장 독한것이 여자마음이라더니 저를 두고 그런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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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20)
지금까지 리플 단 사람 없으면 지우려 했었는데...
한발 늦었네요.. ㅎㅎㅎ
너무나 사실대로 이렇게 자신의 과거를 글로 적어서 내놓으니까 감각이 이상하네요...
계속하기님-- 님도 이런 사랑 해봤다니 정말... ... -.-
우리가 불쌍하다고 해야할지 행운하다고 해야할지 ...
한발 늦었네요.. ㅎㅎㅎ
너무나 사실대로 이렇게 자신의 과거를 글로 적어서 내놓으니까 감각이 이상하네요...
계속하기님-- 님도 이런 사랑 해봤다니 정말... ... -.-
우리가 불쌍하다고 해야할지 행운하다고 해야할지 ...
ㅎㅎㅎ
처지가 다 같은 사람들끼리 이해하며 삽시다 ㅋㅋ
처지가 다 같은 사람들끼리 이해하며 삽시다 ㅋㅋ
也许这样的民族心可能就是民族的狭隘心,排他性。很多人都不能摆脱,包括我。。。。。。。。。。。
독하다곤 말못하죠,잔인할수밖에 없었든게 그때 님의 입장이잖아요?
효도가 없으면 또한 사랑이 어디 있겠어요?연분이면 언젠가는 꼭 다시만나게 될거예요.그때면 아버님두 허락하게 되여있을거예요.
추억에만 얽매여 있지마세요. 앞을보며 힘내세요.
효도가 없으면 또한 사랑이 어디 있겠어요?연분이면 언젠가는 꼭 다시만나게 될거예요.그때면 아버님두 허락하게 되여있을거예요.
추억에만 얽매여 있지마세요. 앞을보며 힘내세요.
뭐가 독해요.위대하지....부모르 위해서....자신을 배신하는 그맘.....
이제 후에 꼭 미꽃님을 사랑하구 미꽃님두 사랑하는 사람 찾을 쑤 있을께요.
열씨미 사세용
이제 후에 꼭 미꽃님을 사랑하구 미꽃님두 사랑하는 사람 찾을 쑤 있을께요.
열씨미 사세용
그 때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 다 그렇게 날 원망하더라구요...
정말이지,님들도 그 때 그사람 봤으면 그 쪽을 더 동정할지도 몰라요...
그 사람은 아픈것을 모두 밖에 내놓는 사람이였으니깐요..
비하여 나는 마음속에 가두어놓고 잇었으니 주위 사람들은 나의 아픔을 몰라주었죠...
근데 여러분이 이렇게 따뜻이 말해주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네요...
계속 그 때 내가 너무한것 같애서 마음이 무거워있었거든요... ...
감사합니다..
힘 낼게요 ㅎㅎ
정말이지,님들도 그 때 그사람 봤으면 그 쪽을 더 동정할지도 몰라요...
그 사람은 아픈것을 모두 밖에 내놓는 사람이였으니깐요..
비하여 나는 마음속에 가두어놓고 잇었으니 주위 사람들은 나의 아픔을 몰라주었죠...
근데 여러분이 이렇게 따뜻이 말해주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네요...
계속 그 때 내가 너무한것 같애서 마음이 무거워있었거든요... ...
감사합니다..
힘 낼게요 ㅎㅎ
rabbit 님 ; 우린 이젠 그런 문제는 토론않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하는것이 제일 중요해요.
호~호님-- 고마워요 ㅎㅎㅎ
ㅎㅎ 글으 잘바쓰꾸마 근데 (할미꽃이므 내보다 나이 많은가???)아직 결혼 않했음두?
그래두 ... 우리민족아니라면 난좀....
습관두그렇구........성질두그렇구.... 그때당시는그래도...잘되여갈가?
난그래두 조선족선택하는 아버지 감사하구만....우리조선족남자들에게
하나의기회가더생기게하였으니....ㅎㅎㅎ
지난일은지난일이고...앞으로 그보다더 행복하게해줄사람찾으세요...
습관두그렇구........성질두그렇구.... 그때당시는그래도...잘되여갈가?
난그래두 조선족선택하는 아버지 감사하구만....우리조선족남자들에게
하나의기회가더생기게하였으니....ㅎㅎㅎ
지난일은지난일이고...앞으로 그보다더 행복하게해줄사람찾으세요...
민족간 교제라 갈래가 복잡한 일이지요.글쎄 저희들끼리 좋다면 된다하지만 ..흘러간 일이라 두고두고 생각 하지말구여 오늘을 행복하게 보내세요.화이팅.
그 마음 이해할만해요,저도 그랫어요, 비록 저는 남자이지만. 그래도 지내고 보면 우리 민족이 제일이예요, 계속 우리 민족여자애들하구 비기게 되다나니깐 서로간에도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되고 정도 식어가든데.
글쎄요. 조선족...참 특수한 민족이예요.
중국(한족)사람들은 우리들보고 조선사람이라하구요.
조선반도에 사는사람들은 우리보고 중국사람이라하잖아요.
도대체 우리는????...하면서 의심과 방황을 가질때가 많지요.
그런데 왜 전혀다른 문화배경을 갖고있는 한국인과의 결혼은 쾌히 승낙주시면서
한족과의 결혼은 그렇게도 힘든지요?
한족들도 좋은사람 많다던데요....
중국(한족)사람들은 우리들보고 조선사람이라하구요.
조선반도에 사는사람들은 우리보고 중국사람이라하잖아요.
도대체 우리는????...하면서 의심과 방황을 가질때가 많지요.
그런데 왜 전혀다른 문화배경을 갖고있는 한국인과의 결혼은 쾌히 승낙주시면서
한족과의 결혼은 그렇게도 힘든지요?
한족들도 좋은사람 많다던데요....
우리 아버지는 한국사람 더 질색이예요 ㅎㅎㅎ
여자들의 지위가 너무 낮다나요 ??ㅎㅎㅎ
남이 뭐래든 저는 조선족이 좋아요 ~~
언제까지난 자호감을 가지고 떳떳이 저는 중국조선족이예요 라고 말하고 있어요 ㅎㅎㅎ
까불대기님-- 저의 결혼문제가 궁금하세요??ㅎㅎㅎ
여자들의 지위가 너무 낮다나요 ??ㅎㅎㅎ
남이 뭐래든 저는 조선족이 좋아요 ~~
언제까지난 자호감을 가지고 떳떳이 저는 중국조선족이예요 라고 말하고 있어요 ㅎㅎㅎ
까불대기님-- 저의 결혼문제가 궁금하세요??ㅎㅎㅎ
결혼문제가 궁굼한거 아니구요.지금은 행복하냐 않하냐 는게 더 궁굼합네당ㅋㅋ
저의 집두 조선족여자 데려오라해요.
근데 조선족애인은 생기지 않구...
근데 조선족애인은 생기지 않구...
할미꽃님.당신같은 생각을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지켜왔기에 아직도 56개 민족가운데서도 당당히 서있는것입니다.
지금 다른 민족자치구들은 한족들에게 거의다 동화돼서 유명무실한 상태입니다.
우리 집에서도 장자인 제가 한족과 결혼하는건 절대 반대입니다.
그리고 저 본인도 다른 민족과의 결혼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원래 이민족간의 결혼은 문화가 원체 달라서 결혼후 문제가 많습니다.
제 주위의 가정들을 훌터봐도 많은경우가 그렇습데다.
너무 슬퍼하지 말구 새롭게 마음을 바꾸세요!
힘내세요!
지금 다른 민족자치구들은 한족들에게 거의다 동화돼서 유명무실한 상태입니다.
우리 집에서도 장자인 제가 한족과 결혼하는건 절대 반대입니다.
그리고 저 본인도 다른 민족과의 결혼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원래 이민족간의 결혼은 문화가 원체 달라서 결혼후 문제가 많습니다.
제 주위의 가정들을 훌터봐도 많은경우가 그렇습데다.
너무 슬퍼하지 말구 새롭게 마음을 바꾸세요!
힘내세요!
뒤늦게야 미꽃님 글 감명깊게 잘 읽었어요.
정말 다 읽고나니 슬퍼지네요.
미꽃님이 항상 행복하길 기도할게요^&^
정말 다 읽고나니 슬퍼지네요.
미꽃님이 항상 행복하길 기도할게요^&^

우리 아버지도 한심한 민족주의구 그 밑에서 자란 딸도 아버지못지않아요.
우리 아버지 입버릇이 세상 어느민족이나 다 돼두 한족만은 안된다 그거예요.
아마 우리 중국에서 너무 불공평한 대우 받아 그런것같아요. 연변조선족자치주도 이름뿐!
저두 그렇게 끝났어요. 물론 가슴아팠죠 ! (모순뿐인 사랑……)
하지만 저두 아버지가 용납못하는 결혼못해요.
전 아버지딸이고 울 아버지가 제일 가슴아파하는 일 절대로 안 하기로 결심했어요.
극단적인 민족주의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그런 사람없었더라면 우린 중국땅에서 동화된지 옛날이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