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4월
고중에 입학한지도 어느덧 한학기가 지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였다. 그날은 내 생일이였다. 그렇지만 그날 난 별로 기쁘지가 않았다.
W와 난 또 같은 반에서 공부하게 되였다. 그 애는 지난학기 1달 넘어 지나서 自费로 내가 다니는 고중에 입학했다. 처음부터 우리가 한반이였던건 아니였다. 그 애는 내 친구 Y와 한반이였다. 1학년 후학기가 시작되면서 문과와 이과반을 나누게 되였는데 난 영어를 좋아하는 그 애가 당연히 문과반으로 갈줄 알았다. 그래서 고민하던 끝에 이과반을 선택했다. 문과반은 하나였고 이과반은 두개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애도 이과반을 선택했고 우리는 공교롭게도 한반이 된것이다. 개학하기 며칠전 우리반 명단에서 그 애 이름을 발견하고 난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고.... 분명한건 가슴이 쿵쾅거렸다는 것이다. 개학 첫날 그 애도 나랑 한반이 된게 놀랐던거 같았다. 그리고 우린 서로 모르는 남남처럼 한반에서 말도 안하고 지냈다. 하지만 내 눈빛은 여전히 그를 향해 쫓아다녔고 그 애 뒷모습을 따라 다녔다.
생일날, 난 3년전 내 생일날 그 애가 준 목걸이를 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비록 옷 속에 감추고 학교 갔지만. 그리고 친구들 성화에 못이겨 사탕을 사다가 전반 애들한테 나누어주었다. 그 애만 빼놓을 수 없어서 그 애도 줬는데 그 애는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분명 내 생일인걸 알텐데 독한것. 생일축하한다고 한마다 하면 어디가 덧나나? 친구들의 축하와 선물은 그 애 생일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보다 나를 기쁘게 못해주었다. 참으로 쓸쓸한 생일이였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 애는 나의 이런 마음을 알까?
1994년 7월
시간이 참 빠르다. 벌써 방학만 끝나면 고중 3학년이 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고3.
작년 6월 비오는 날, 난 3일째 학교 안 나오는 그가 걱정이 되여 넌짓이 반주임께 물어봤다. 왜 그가 안나오는지. 반주임은 그가 자퇴하고 군대에 갔다고 했다. 그 충격이란. 내가 그애한테 그렇게 부담되였나? 아님 뭣때문에.... 짜식 내가 미워도 공부 마치지... 고중도 안 졸업하고 뭐가 될려구... 어린게 참군이야?
그리고 시간이 일년 넘어 흐른것이다. 나절로도 不可思议한건 난 그 애가 연길에 있음 그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그 애는 거의 일년에 두번이상 집에 오군 했는데 난 그때마다 \" 아~ 그 애가 연길에 왔구나\"하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어떻게 다 헤여진 사람들이 그런 텔레파시가 통하는지 난 지금도 이해가 안간다. 나의 느낌은 언제나 정확했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내 귀에는 그가 왔다는 소식이 들리군 했다. 그는 한번 오면 10일정도 있다가 부대로 가군 했다. 그날도 그랬다. 난 친구한테 그 애가 온거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애가 내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자기 집에 놀러오라구. 난 가야 되나 가지 말아야 되나 고민하다가 가기로 했다. 옷장을 뒤져서 나한테 있는 제일 비싸고 예쁜 옷으로 차려입고 내 친구들이랑 같이 그 애집에 갔더니, 그 애 여자친구도 왔었다. 그때 나랑 헤여지고 여자친구 사귄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니 질투나고 짜증나고 화났다. 그래도 억지로 참고 그 애 어머니 도와서 반찬도 만들고 만두도 빚어서 먹구 얘기도 하고 그랬다. 난 만두 두개밖에 먹지 않았는데 그것마저 다 토해버렸다. 괜히 갔다 싶었다.
그래두 며칠후 그 애가 떠나는 날 난 바보같이 역전에 나갔다. 친구로서 送站한다고 나갔지만 사실은 그 애를 보고싶어서 나갔던거 같았다. 그 여자애도 나와있었다. 그 여자애는 날 언니라 불렀다. 우리 일을 다 알고 있다는걸 내가 아는데도 천연덕스럽게 언니라 부르며 내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난 부모님이랑 친척들이랑 인사하고 있는 그를 뚤어져라 쳐다보았고 그는 마지막까지 나랑 말 안할 속셈이던지 그냥 딴청을 부렸다. 그러다가 기차가 떠날 무렵 \"잘 있어. 친구들한테 내 안부 전해주고\"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모님들한테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기차는 떠났다......
그날 집에 와서 난 여전히 그 애를 좋아하고 있다는걸 알았다. 헤여진지 2년이 넘지만 난 여전히 无可救药하게 그애를 사랑하고 있다는걸 알았다. 아~ 어쩌면 좋아~ 난 어떡해야 되지? 괜히 만났다. 안 만났더라면 좋았을걸. 그 애를 다시 만남으로 내 마음속에 꽁꽁 다져두었던 추억들과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버렸다......
1994년 12월
아~ 그 애가 돌아왔구나. 난 직감적으로 그 애가 또 집에 왔음을 느꼈다. 그리고는 바보같이 그 애집으로 갔었다. 마침 그날은 그 애 친척들이 다 모이는 날이였고 그 친척들은 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럴줄 알았더면 더 예쁘게 하고 올걸.... 난 저녁도 먹는둥 마는둥 작은 방에 들어가서 그 애 조카를 데리고 놀았다. 애 하나는 내가 기막히게 잘 보는지라 그 애 조카는 계속 까르륵 까르륵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그리고 저녁에 그 애가 날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난 잠시 할말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옛날에 늘 함께 가던 고수부지로 갔다. 난 정말로 바보같이 말도 하기전에 울어버렸다. 그리고는 내가 널 5년 기다리겠다고 했다. 너가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기다르는건 내 자유라고 말하면서.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여 내가 우는게 안쓰러웠던지 그 애는 아무말도 못하고 호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마 휴지나 손수건을 주려는 것이였을 것이다. 난 내꺼 있다면서 손수건을 꺼냈는데 하필이면 그게 3년전에 그 애가 줬던 손수건이였다. 그 애는 그걸 아직도 보관하고 있었냐면서 날 바보같다고 했다. 바보라 해도 좋았다. 난 나만큼 세상에 널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거라고, 놓치면 네가 손해라고 말했다. ㅠㅠㅠ 정말 지금 내가 생각해도 바보같았는데 그때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애가 다시 부대로 돌아가던 날 난 또 역전에 나갔다. 그리고는 편지를 주었다. 아무말도 없이 노래가사 두 개를 적은것이였다.\"你怎么舍得我难过”“分手”
最爱你的人是我 你怎么舍得我难过。。。。。。。。
그리고 정확히 10일뒤 그 애한테서 편지가 왔다. 난 뛸듯이 기뻤다. 그 애한테서 편지가 오다니... 가끔 내 친구한테 편지가 오긴 하지만 나한테 편지가 온건 3년만에 처음이 아닌가? 근데 그 편지를 보고나서 난 울었다. 초상난 사람도 그처럼은 슬프게 울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그날 난 처음으로 逃课했다. 달랑 반장뿐인 편지는 한마다로 죽었다 깨여나도 우린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였다. 짜식~ 내가 자길 얼마나 좋아하는데...이렇게 매정한 편지를 보내다니... 얼마나 밉고 야속하던지 난 온갖 저주를 그 애한테 퍼부었다. 그것때문에 내가 5년뒤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난 공부를 포기했다. 공부하기 싫어졌다. 모든게 재미없고 암울했다. 친구들도 그 애를 욕했다. 너무하다고. 대학시험이나 치고 편지를 하던가.... 넘 绝情하다고 원망했었다.
난 성적이 굴러굴러 3등에서 25등까지 내려갔다. 내가 원하던 동북사대 가기는 다 글렀다. 누구 정신에 치렀는지도 모르게 대학시험을 보고 나서 난 재수를 결심했다. 그러다가 어떤 大专을 갔고 거기서 난 대학본과를 편입하고 마치게 되였다...... 그리고 신앙도 갖게 되였다.
고중에 입학한지도 어느덧 한학기가 지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였다. 그날은 내 생일이였다. 그렇지만 그날 난 별로 기쁘지가 않았다.
W와 난 또 같은 반에서 공부하게 되였다. 그 애는 지난학기 1달 넘어 지나서 自费로 내가 다니는 고중에 입학했다. 처음부터 우리가 한반이였던건 아니였다. 그 애는 내 친구 Y와 한반이였다. 1학년 후학기가 시작되면서 문과와 이과반을 나누게 되였는데 난 영어를 좋아하는 그 애가 당연히 문과반으로 갈줄 알았다. 그래서 고민하던 끝에 이과반을 선택했다. 문과반은 하나였고 이과반은 두개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애도 이과반을 선택했고 우리는 공교롭게도 한반이 된것이다. 개학하기 며칠전 우리반 명단에서 그 애 이름을 발견하고 난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고.... 분명한건 가슴이 쿵쾅거렸다는 것이다. 개학 첫날 그 애도 나랑 한반이 된게 놀랐던거 같았다. 그리고 우린 서로 모르는 남남처럼 한반에서 말도 안하고 지냈다. 하지만 내 눈빛은 여전히 그를 향해 쫓아다녔고 그 애 뒷모습을 따라 다녔다.
생일날, 난 3년전 내 생일날 그 애가 준 목걸이를 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비록 옷 속에 감추고 학교 갔지만. 그리고 친구들 성화에 못이겨 사탕을 사다가 전반 애들한테 나누어주었다. 그 애만 빼놓을 수 없어서 그 애도 줬는데 그 애는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분명 내 생일인걸 알텐데 독한것. 생일축하한다고 한마다 하면 어디가 덧나나? 친구들의 축하와 선물은 그 애 생일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보다 나를 기쁘게 못해주었다. 참으로 쓸쓸한 생일이였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 애는 나의 이런 마음을 알까?
1994년 7월
시간이 참 빠르다. 벌써 방학만 끝나면 고중 3학년이 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고3.
작년 6월 비오는 날, 난 3일째 학교 안 나오는 그가 걱정이 되여 넌짓이 반주임께 물어봤다. 왜 그가 안나오는지. 반주임은 그가 자퇴하고 군대에 갔다고 했다. 그 충격이란. 내가 그애한테 그렇게 부담되였나? 아님 뭣때문에.... 짜식 내가 미워도 공부 마치지... 고중도 안 졸업하고 뭐가 될려구... 어린게 참군이야?
그리고 시간이 일년 넘어 흐른것이다. 나절로도 不可思议한건 난 그 애가 연길에 있음 그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그 애는 거의 일년에 두번이상 집에 오군 했는데 난 그때마다 \" 아~ 그 애가 연길에 왔구나\"하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어떻게 다 헤여진 사람들이 그런 텔레파시가 통하는지 난 지금도 이해가 안간다. 나의 느낌은 언제나 정확했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내 귀에는 그가 왔다는 소식이 들리군 했다. 그는 한번 오면 10일정도 있다가 부대로 가군 했다. 그날도 그랬다. 난 친구한테 그 애가 온거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애가 내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자기 집에 놀러오라구. 난 가야 되나 가지 말아야 되나 고민하다가 가기로 했다. 옷장을 뒤져서 나한테 있는 제일 비싸고 예쁜 옷으로 차려입고 내 친구들이랑 같이 그 애집에 갔더니, 그 애 여자친구도 왔었다. 그때 나랑 헤여지고 여자친구 사귄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니 질투나고 짜증나고 화났다. 그래도 억지로 참고 그 애 어머니 도와서 반찬도 만들고 만두도 빚어서 먹구 얘기도 하고 그랬다. 난 만두 두개밖에 먹지 않았는데 그것마저 다 토해버렸다. 괜히 갔다 싶었다.
그래두 며칠후 그 애가 떠나는 날 난 바보같이 역전에 나갔다. 친구로서 送站한다고 나갔지만 사실은 그 애를 보고싶어서 나갔던거 같았다. 그 여자애도 나와있었다. 그 여자애는 날 언니라 불렀다. 우리 일을 다 알고 있다는걸 내가 아는데도 천연덕스럽게 언니라 부르며 내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난 부모님이랑 친척들이랑 인사하고 있는 그를 뚤어져라 쳐다보았고 그는 마지막까지 나랑 말 안할 속셈이던지 그냥 딴청을 부렸다. 그러다가 기차가 떠날 무렵 \"잘 있어. 친구들한테 내 안부 전해주고\"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모님들한테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기차는 떠났다......
그날 집에 와서 난 여전히 그 애를 좋아하고 있다는걸 알았다. 헤여진지 2년이 넘지만 난 여전히 无可救药하게 그애를 사랑하고 있다는걸 알았다. 아~ 어쩌면 좋아~ 난 어떡해야 되지? 괜히 만났다. 안 만났더라면 좋았을걸. 그 애를 다시 만남으로 내 마음속에 꽁꽁 다져두었던 추억들과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버렸다......
1994년 12월
아~ 그 애가 돌아왔구나. 난 직감적으로 그 애가 또 집에 왔음을 느꼈다. 그리고는 바보같이 그 애집으로 갔었다. 마침 그날은 그 애 친척들이 다 모이는 날이였고 그 친척들은 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럴줄 알았더면 더 예쁘게 하고 올걸.... 난 저녁도 먹는둥 마는둥 작은 방에 들어가서 그 애 조카를 데리고 놀았다. 애 하나는 내가 기막히게 잘 보는지라 그 애 조카는 계속 까르륵 까르륵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그리고 저녁에 그 애가 날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난 잠시 할말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옛날에 늘 함께 가던 고수부지로 갔다. 난 정말로 바보같이 말도 하기전에 울어버렸다. 그리고는 내가 널 5년 기다리겠다고 했다. 너가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기다르는건 내 자유라고 말하면서.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여 내가 우는게 안쓰러웠던지 그 애는 아무말도 못하고 호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마 휴지나 손수건을 주려는 것이였을 것이다. 난 내꺼 있다면서 손수건을 꺼냈는데 하필이면 그게 3년전에 그 애가 줬던 손수건이였다. 그 애는 그걸 아직도 보관하고 있었냐면서 날 바보같다고 했다. 바보라 해도 좋았다. 난 나만큼 세상에 널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거라고, 놓치면 네가 손해라고 말했다. ㅠㅠㅠ 정말 지금 내가 생각해도 바보같았는데 그때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애가 다시 부대로 돌아가던 날 난 또 역전에 나갔다. 그리고는 편지를 주었다. 아무말도 없이 노래가사 두 개를 적은것이였다.\"你怎么舍得我难过”“分手”
最爱你的人是我 你怎么舍得我难过。。。。。。。。
그리고 정확히 10일뒤 그 애한테서 편지가 왔다. 난 뛸듯이 기뻤다. 그 애한테서 편지가 오다니... 가끔 내 친구한테 편지가 오긴 하지만 나한테 편지가 온건 3년만에 처음이 아닌가? 근데 그 편지를 보고나서 난 울었다. 초상난 사람도 그처럼은 슬프게 울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그날 난 처음으로 逃课했다. 달랑 반장뿐인 편지는 한마다로 죽었다 깨여나도 우린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였다. 짜식~ 내가 자길 얼마나 좋아하는데...이렇게 매정한 편지를 보내다니... 얼마나 밉고 야속하던지 난 온갖 저주를 그 애한테 퍼부었다. 그것때문에 내가 5년뒤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난 공부를 포기했다. 공부하기 싫어졌다. 모든게 재미없고 암울했다. 친구들도 그 애를 욕했다. 너무하다고. 대학시험이나 치고 편지를 하던가.... 넘 绝情하다고 원망했었다.
난 성적이 굴러굴러 3등에서 25등까지 내려갔다. 내가 원하던 동북사대 가기는 다 글렀다. 누구 정신에 치렀는지도 모르게 대학시험을 보고 나서 난 재수를 결심했다. 그러다가 어떤 大专을 갔고 거기서 난 대학본과를 편입하고 마치게 되였다...... 그리고 신앙도 갖게 되였다.
쉼터에 새로운 글 쓰기는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소중한 기록 중에 꼭 다른 분들에게도 읽었으면 하는 좋은 글들은 「추천하기」를 눌러주세요.
일부 글들은 악성광고나 의미없는 스팸들일 수 있습니다. 읽는 분들에게 피해가 되거나 삭제를 희망하는 글에는 신고를 클릭해주세요. 로봇을 통하여 정기적으로 확인 및 정리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