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얘기는 평범한 얘기이다. 누구나 사춘기시절에 한번쯤은 겪었을 법도 한 그런 얘기... 하지만 또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는건 내 얘기라서 그럴까? 아니면 그 일들이 지금까지 내 삶에 영향을 주어서일까? 내가 굳이 15년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글이 끝나는 나중에 쓸려구 한다. 먼저 알면 재미가 없으니까.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15년전으로 돌아가 볼려구 한다.
1989년 9월
드디여 내가 중학생이 되였다. 소학생과 중학생의 구별은 엄연히 존재한다. 적어도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난 다른 애들보다 조숙한 편이였다. 키도 컸고 말하는것 행동하는것도 조숙해서 사람들은 날 집에서 맏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난 무남독녀 외동딸이였는데. 난 남들앞에서는 활달하고 쾌활하고 항상 히히호호 웃고 다니는, 리더쉽도 조금 있는 그런 애였다. 사실 그건 겉에 드러나는 부분이였고 내가 그렇게 하고 다닌건.... 울 아빠 엄마 이혼해서 나랑 아빠가 사는걸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혹 사람들이 알더라도 \"쟤는 엄마 없이 자라서 저렇단다\" 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 마음속 깊이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외로움과 고독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는 울 반 남자애들이 철부지였고 어린 동생들 같은 존재였다. 한 사람만 빼고. 그 애는 아주 특별한 애였다. 아니 특별하기보다 처음 나한테 준 인상은 쌀쌀맞고 말수 적고 어딘가 외로워보이는 그래서 조금 거만해(?) 보였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주윤발을 닮았다. 애들은 그때 xiao hu dui나 lin zhi ying같은 미소년 탤런트에 반했을 때인데 나만 내 나이에 맞지 않게 주윤발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난 그때 울 반 부반장이였고 그는 노동위원이였다. 노동위원은 청소점검, 대청소때 총지휘 등 일을 책임진 총책임자다. 그렇게 깔끔떨고 쌀쌀하고 거만한 짜식이 노동위원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했다.
잠시 딴 얘기를 하자면 중학교에 와서 난 내 평생의 친한 친구들을 만났다. 항상 생글생글 웃고 핑크를 유난히 좋아하고 귀가 널러서 항상 남한테 당하는 P, 얼굴이 동글동글해서 만두라는 별명을 가진 L, 항상 스포츠머리를 하고 다니고 운동을 좋아하는 공장장집 딸 Y, 그래서 그 애 별명은 Y창장이였다.(창장은 공장장의 중국어 발음이다.) 그리고 2학년 때 전학온 H, 이렇게 우리 다섯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정말 친해졌다. 물론 지금까지도 제일 친한 친구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편지와 쪽지를 수도 없이 썼다. 매일 같은 반에서 공부하면서 그렇게 붙어다니면서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우리는 정말 많은 쪽지와 편지를 썼다. 아마 그래서 우리 다섯은 작문실력이 다 괜찮았던거 같았다. 그 덕분에.ㅋㅋㅋ
다시 얘기로 돌아가서 그 만두라는 별명을 가진 L은 그때 위생위원이였다. 위생위원과 노동위원은 사업상(?) 토론할 일도 많고 같이 해야 할 일도 많은 법이다. L은 우리한테 그 애에 대하여 얘기해주었고 우리는 점차 그애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그랑 친하게 되였다. 우리 다섯은 천성이 놀기 좋아하는지라 맨날 구실을 못찾아 못놀았다. 반주임선생님한테 무리쳐 다니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맨날 무리쳐 놀라다녔다. 마음이 맞는 친구 10 여명이서......
1990년 5월
봄이다. 꽃피는 봄은 소년소녀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이렇게 따사로운 햇볕과 봄바람을 우리가 그냥 가게 내버려둘수는 없지... 난 우리반 순진한 반장을 꼬셔서(앞으로 반주임한테 들킬 경우 책임부담을 하기 위해) 산보 가기로 했다. 참 우리는 MT를 산보라고 했다. 15명 정도가 도시락을 싸들고 눌루랄라 노래하며 혁명열사 기념비 뒷동산으로 갔다. 거기는 과수원이 있어서 봄이면 사과배향기가 코를 찔렀다. 대담한 남자애들은 맥주도 몇병 챙겼다. 난 눈감아주기로 했다. 어쩌다 가는 산보가 아닌가? 그리고 맥주 몇병 마셨다 해서 무슨 일 생기는것도 아니고. 우리는 손수건 돌리기도 하고 맛있는 밥도 먹고 처음으로 술도 마셨다. 맹세코 맥주만 마셨는데 난 두잔 마시고 나서 땅이 빙글빙글 돌고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알딸딸한 기분에 재미있게 놀고나니 집으로 갈 일이 걱정되였다. 머리도 넘 아프고. 그 애는 자기집이 가깝다고 했다. 난 그 애 자전거 뒤에 앉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를 살짝 쥐였다. 아~ 봄바람이 넘 좋다.... 갑자기 난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내가 이 애랑 뭔가가 일어날거 같은 예감.... 그 애 집에 도착해서 그 애가 주는 정통편 한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1989년 9월
드디여 내가 중학생이 되였다. 소학생과 중학생의 구별은 엄연히 존재한다. 적어도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난 다른 애들보다 조숙한 편이였다. 키도 컸고 말하는것 행동하는것도 조숙해서 사람들은 날 집에서 맏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난 무남독녀 외동딸이였는데. 난 남들앞에서는 활달하고 쾌활하고 항상 히히호호 웃고 다니는, 리더쉽도 조금 있는 그런 애였다. 사실 그건 겉에 드러나는 부분이였고 내가 그렇게 하고 다닌건.... 울 아빠 엄마 이혼해서 나랑 아빠가 사는걸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혹 사람들이 알더라도 \"쟤는 엄마 없이 자라서 저렇단다\" 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 마음속 깊이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외로움과 고독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는 울 반 남자애들이 철부지였고 어린 동생들 같은 존재였다. 한 사람만 빼고. 그 애는 아주 특별한 애였다. 아니 특별하기보다 처음 나한테 준 인상은 쌀쌀맞고 말수 적고 어딘가 외로워보이는 그래서 조금 거만해(?) 보였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주윤발을 닮았다. 애들은 그때 xiao hu dui나 lin zhi ying같은 미소년 탤런트에 반했을 때인데 나만 내 나이에 맞지 않게 주윤발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난 그때 울 반 부반장이였고 그는 노동위원이였다. 노동위원은 청소점검, 대청소때 총지휘 등 일을 책임진 총책임자다. 그렇게 깔끔떨고 쌀쌀하고 거만한 짜식이 노동위원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했다.
잠시 딴 얘기를 하자면 중학교에 와서 난 내 평생의 친한 친구들을 만났다. 항상 생글생글 웃고 핑크를 유난히 좋아하고 귀가 널러서 항상 남한테 당하는 P, 얼굴이 동글동글해서 만두라는 별명을 가진 L, 항상 스포츠머리를 하고 다니고 운동을 좋아하는 공장장집 딸 Y, 그래서 그 애 별명은 Y창장이였다.(창장은 공장장의 중국어 발음이다.) 그리고 2학년 때 전학온 H, 이렇게 우리 다섯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정말 친해졌다. 물론 지금까지도 제일 친한 친구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편지와 쪽지를 수도 없이 썼다. 매일 같은 반에서 공부하면서 그렇게 붙어다니면서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우리는 정말 많은 쪽지와 편지를 썼다. 아마 그래서 우리 다섯은 작문실력이 다 괜찮았던거 같았다. 그 덕분에.ㅋㅋㅋ
다시 얘기로 돌아가서 그 만두라는 별명을 가진 L은 그때 위생위원이였다. 위생위원과 노동위원은 사업상(?) 토론할 일도 많고 같이 해야 할 일도 많은 법이다. L은 우리한테 그 애에 대하여 얘기해주었고 우리는 점차 그애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그랑 친하게 되였다. 우리 다섯은 천성이 놀기 좋아하는지라 맨날 구실을 못찾아 못놀았다. 반주임선생님한테 무리쳐 다니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맨날 무리쳐 놀라다녔다. 마음이 맞는 친구 10 여명이서......
1990년 5월
봄이다. 꽃피는 봄은 소년소녀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이렇게 따사로운 햇볕과 봄바람을 우리가 그냥 가게 내버려둘수는 없지... 난 우리반 순진한 반장을 꼬셔서(앞으로 반주임한테 들킬 경우 책임부담을 하기 위해) 산보 가기로 했다. 참 우리는 MT를 산보라고 했다. 15명 정도가 도시락을 싸들고 눌루랄라 노래하며 혁명열사 기념비 뒷동산으로 갔다. 거기는 과수원이 있어서 봄이면 사과배향기가 코를 찔렀다. 대담한 남자애들은 맥주도 몇병 챙겼다. 난 눈감아주기로 했다. 어쩌다 가는 산보가 아닌가? 그리고 맥주 몇병 마셨다 해서 무슨 일 생기는것도 아니고. 우리는 손수건 돌리기도 하고 맛있는 밥도 먹고 처음으로 술도 마셨다. 맹세코 맥주만 마셨는데 난 두잔 마시고 나서 땅이 빙글빙글 돌고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알딸딸한 기분에 재미있게 놀고나니 집으로 갈 일이 걱정되였다. 머리도 넘 아프고. 그 애는 자기집이 가깝다고 했다. 난 그 애 자전거 뒤에 앉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를 살짝 쥐였다. 아~ 봄바람이 넘 좋다.... 갑자기 난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내가 이 애랑 뭔가가 일어날거 같은 예감.... 그 애 집에 도착해서 그 애가 주는 정통편 한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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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2)
이글 보니 옛생각이 나는구나...
이글 보면서 혼자 웃었다 ㅎㅎㅎ
우리 그때 산보가서 찍은 사진보면서...
이글 보면서 혼자 웃었다 ㅎㅎㅎ
우리 그때 산보가서 찍은 사진보면서...

그러면 노처녀가 된다오.
혹시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