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수필>

사랑이별 · #14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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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심애 · 2004-02-11 10:33:59 · 조회 480

  기차 앞머리에서 요란스러운 출발신호를 전하자 매 열차원마다 숙련된 솜씨로 차문을 급히 닫았다. 기적소리는 마치 우리의 이별을 표하는것 같았으나 결국엔 한시도 지체하진 않았다. 기차는 긴 몸체를 뱀처럼 꿈틀하는듯 하더니 처음에는 천천히, 차츰 더 빠른 속력으로 \"칙칙\" 소리까지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나와 그녀는 기차안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때 나는 장춘에 한국인과 함께 문구사장을 조사하고 돌아오는 길이 였고 그녀는 심양에서 열린 AVON(雅芳)화장품회의에 참가하고 돌아오던 참이 였다. 숙여인양 밝은 예절을 지키면서도 어린양마냥 온순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 였다. 하지만 눈아래 언저리가 약간 검은색을 띈것으로 보아 아주 피로한 상태라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사실 나도 몹시 지쳐있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인한 나의 여러가지 질문에 그녀가 귀찮은 표정을 할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기분좋게 응답해주었고 우리의 대화도 길게 이어질수가 있었다.
  때론 기차바퀴가 례루위를 달리면서 부딪치는 소리와 차안의 잡음으로 인하여 서로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수가 없었다.--솔직히 나는 중국어로 의사를 표달하는데 능란하지 못했다.--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이에 별 지장없이, 나중엔 아예 필로 종이에 적으면서 처음엔 각자 이번 로정에 관하여, 고향은 어디며 현재 상황발전과 이후의 타산에 관하여,이것저것 가지가지 의견이나 주장을 표하고 요해하며 분석하는 동안 우리는 아주 오랜 친구처럼 친근해질수 있었다. 사실 난 예전이나 지금이나 화장품에 관하여 아는 것이 극히 적었으나 그녀가 하는 얘기는 재치 있고 설복력이 있어 알아들을만 했다.
  후에 우리는 전화하거나 편지연락을 각자 생활속의 유일한 취미로 간주했고 하루가 멀다할 정도로 소식을 주고 받으며 서로서로의 목소리가 들리거나 사서함에 편지가 들어있는 것만 보아도 너무나 기쁘고 행복감으로 마음이 들떴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관계를 두고 청춘남여 라고들 했었다.
  물론 유치하다고 비웃거나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면서 귀띔하는 사람들, 우리의 래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였다. 아마 우리곁에 지지해주는 사람도, 지지해줄 사람도 없었다는 표현이 적합하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의 생활은 그녀한테 약간의 숨김도, 과장도 없었고 그녀 또한 같은 입장이 고 서로서로의 현상태에 대하여 불보듯 뻔히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사이는 금이 갈래야 갈수가 없었다.
  주로 나는 그녀를 많이 관심해주는 편이 였고 그녀 역시 나를 많이 다라주었고 이해해주는 편이 였기에 마치 두개의 자석이 남북극이 서로 끌어당기는것처럼 순식간은 아니였지만 하루하루가 다르게 감정이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먼저 사랑고백을 해왔고 나 역시 조금은 혼란스러웠지만 기다린 듯이 응했다.며칠후 그녀한테서 편지가 왔다.  
***:
  안녕!편지 보는것이 얼굴 보는것과 다름없다.
  난 한가지 이해할수 없는게 있어.왜 나의 고백이 너를 그토록 혼란케 했는지?넌 아무런 준비없이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것 같아.내 느낌이 그래.나 자신도 내 맘 잘 모르는데 네가 어떻게 알수가 있겠니?모르겠어.요사이 모든 것이 엉망이야.기분도 그렇고.
  그럼 오늘 이만.
  안녕히!

                                                           --**
                                                           2001.11.

편지를 첨부터 끝까지 눈박아 읽어본 나는 가슴을 무언가로 내리누르는듯한 답답함을 느꼈고\"왜서\"라는 물음펴가 머리속에 수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한참동안이나 지난후 마음을 조용히 눅잦히고 이렇게 회답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
  안녕!너는 나의 마음속 위로이자 거울이다.
  널 보고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만나지 못하는게 너무나 한스럽구나.오늘 기다리던 너의 편지를 받아보고 매우 큰 충격이 였다.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마치 바람불때 파도가 출렁이다가도 바람만 멎으면 곧 평온을 찾듯이 머리속이 아주 맑다.너의 편지를 받았을때 그 기쁨과 읽고난 후의 착잡한 심정을 어떻게 표달해야 할지?\"미안하단\"이 말한마디가 얼마만큼의 관용과 죄송함을 뜻하는건지?너의 진심에 당황하게 생각했던 내가 너를 괴롭히고 있다는 느낌이 앞서서 가슴이 모질게 아프구나.이젠 이전보다 훨씬 편할줄 알았는데 말이다.오래전부터 너한테 사랑한단 말 백번,천번이라도 해주고 싶었고 너만이 나의 전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실제행동으로 표현하려고 굳은 맘 먹었지.난 널 진심으로 사랑한다.누구보다 더.
  난 지금 자신이 막 원망스러워.내가 널 사랑하는 맘을 먼저 고백했으면 넌 아무런 상처도 괴로움도 당하지 않을텐데. 더우기 이런 오해가 없었을텐데. 내가 속이 너무 좁았다. 혹시나 어렵게 키워온 우리의 따뜻한 우정마저 깨칠까봐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애써 사랑의 불씨를 감추려고 했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미안해, 너를 힘들게 해서. 그리고 고마워, 널 만나 사랑할수 있는 연분이여서.    

                                                            --***
                                                            2001.11.

  그후 한동안 우리 사랑은 많이 힘든쪽으로 기울여졌지만 언제까지 서로 잘 단결 되였다. 마치 산골짜기에서 울퉁불퉁한 주먹돌이 내가로 밀려 내려오는 동안, 반들반들한 조약돌이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하듯이.
  나는 한국인하고 사업상으로 갈라지고 형부가 차린 인쇄공장에서 일하게 되였다. 물론 아무것도 배운적이 없고 어릴적부터 고생이라곤 못해보고 자란 나에겐 모든것이 생소한 일들이 였고 말로 형용하기가 어려운 정도로 힘들었으나 형부와 누님의 따뜻한 배려와 보살핌속에서 막로동부터 익혀갔다. 일을 함에 있어서도 선후가 있는 법이 아닌가? 하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한시도 나의 머리속을 떠난적이 없었다. 난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나를 지극히 사랑했다.
  인쇄공장에 온지 며칠 지나서 나는 시간을 내여  그녀한테 편지한장을 날려 보냈다.
**:
  안녕!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신체는 건강하니? 식사는 제때제때에 하고 있는지? 너한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너무 바빴다. 미안해, 이제야 필을 들어 너한테 문안해서.
  나에겐 예전보다 편지 쓸 짬도, 전화하기에 적합한 여유도 적어졌다. 하지만 약간의 고생으로 너를 잠시라도 잊어본적은 없다. 지금은 깊은 밤, 모두들 잠을 자고 있기에 전등을 켤수도 없고 해서 건너편 가로등의 불빛에 달빛을 빌어 너한테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달이 예전보다 유난히 밝고 빛도 많이 유연해진것같은 느낌이다. 넌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아마 잠을 잘 설친다던 네가 지금쯤 나처럼 글을 쓰고 있진 않는지? 아니면 꿈나라에서 나를 만나 얘기 나누는지?
  요즘에 들어서부터 인쇄공자에 일거리가 부적 늘어나는 시기란단다. 할일이 수없이 많아 힘들어 죽겠지만 우리사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귀찮은 충고때문에 더우기 머리가 터질것만 같구나. 그래도 난 괜찮다. 너만 믿고 따라준다면. 이후에 더 많이 힘들지라도 우리의 사랑으로 이겨나가자.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사랑해!

                                                            --***
                                                            2001.12

  멀지 않아 그녀의 회답편지를 우편원이 가져다 주었다. 봉투 맨 아래쪽에 \"** + *** = 사랑\" 라고 적혀 있었다.

***:
  안녕! 글을 보는것은 얼굴을 보는것과 다름없다.
  오늘 너의 편지를 반갑게 받아보고 너의 현재정황을 알게 되였어. 많이 힘들다면서. 죄송해, 너한테 아무런 도움이 돼주지 못해서. 그러나 \"넘어져도 모래한줌 쥐고 일어서는 성장도 일종의 성취이다. \" 라는 명언이 있듯이 열심히 탐구하고 배우고 고심히 인내하고 견디느라면 꼭 성공할 날이 있을것이야. 비록 넌 나보다 3살아래이고 조선족이고 난 너보다 3살이나 위이고 한족이지만 넌 나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고 세심하니까 잘 해낼수 있을거라고 난 믿어. 그러니 시간내서 편지나 전화에 신경쓰기 우선 충분히 휴식을 취하길 바래. 난 네가 나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는것 만으로도 행복해. 그리고 못다한 우리사랑 잠시나마 접어두자. 언제까지 서로 사랑하는 우리니까. 맞지? 사랑해!

                                                             --**
                                                             2001.12

  비록 힘들긴 했으나 우리는 서로서로의 위안이 되였고 삶에 생기와 열망을 불어 넣어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유유한 노래소리가 나의 회억을 중단시켰다. 그제야 나는 벌써 기차에 몸을 실었고 안타까움으로 울상이 되여 나한테서 눈을 떼지 않고 창문을 통해 들여다 보던 그녀가 보이지 않았고 밖에는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려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는것을 새삼스럽게 의식했다.
  \"더이상 나를 위해 울지마, 이런 나도 힘이 들어~ 너를 남겨두고 나만 혼자 가야 하는데 어쩔수가 없잖아, 이게 현실인 것을 ... ... 내가 태여나서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 영원히 내 가슴속에 안녕~ \" 안재욱이 부른 \"이별\" 이란 노래였다.
  처량하게 들려오는 노래소리를 듣노라니 어느샌가 진정되였던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속시원히 울어버려 이별의 아픔속에서 막 탈출하고 싶었다. 이별이란 슬픈것이 였다. 멀지 않은 후날에 다시 뜻깊게 상봉하여 그녀와 함께 여원히 있을 수만 있다면, 그러기 위한 이별이 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래서인지 워낙 감정에 찐하던 나였지만 눈에서 눈물 단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에서는 벌써 \"보슬비\" 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여린 사랑의 새싹을 흠뻑 젖히려고.
  기차는 앞으로 달리고 있다. 아주 빠른 속력으로. 창가너머로 언들언들 지나가는 사물들이 불빛에 그림자가 비끼는듯 했다. 나와 그녀 역시 서로서로의 \"그림자\" 가 아니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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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1)

킬러 · 2004-02-15 03:25:00
뭐라고 말해야 하지?그냥 눈물을 참아가며 읽었어요...
접으세요...라고 해도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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