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죄송하다는 말을 쉼터 조선족 맘들한테 하구요,
아들을 키워서 나중에 저렇게 된다고 생각할꺼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저의 사황을 간단하게 적어 보겠습니다. 왜 내가 저런 행동을 했었는지요.
우리 엄마는 자존심이 아주 강하고 사업심이 강한 조선족 여자중의 한명입니다. 어릴때부터 아버지는 놀기 좋아하고
엄마는 사업을 많이 시작하고 , 어린 나를 친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맞겨놓고, 사업하고, 외국나서 돈벌고 했습니다.
나는 2살 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20살까지 자랐습니다. 20살 되는해에 나는 외국으로 유학나와서 지금까지
중국에는 4-5번 잠간 할머니 보러 연길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94년도에 돌아가셧구요 )
그동안 난 엄마란 존재도 잘 몰랐고, 어렸을때 소학교, 중학교 다니면서 다른 엄마, 아빠들 보면 마음이 아프고
자존심도 많이 죽어서 땅을 보면서 다녔습니다. 근데, 부모가 없었지만, 공부는 항상 5위 좌우였습니다. 어머니는
어릴때는 돈을 버느라고 나를 연락을 잘않하고, 중학교 부터 내가 좀 크니까, 연락을 많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외할머니한테 보내줘서 난 그돈으로 학교 다니고, 시 2중 졸업하고,엄마의 지지로 외국 유학 나왔습니다.
나는 엄마를 하늘처럼 믿고 존중했습니다, 비록 같이 있어는 보지 못했지만, 엄마란 사람이 나한테는 의지감이가고
너무 큰 존재였습니다. 내가 여직껏 이해가 않가는것이 있어서 엄마하고 물어봤습니다.
엄마, 왜 나는 학교에서 3호 학생했다고 엄마하고 얘기하거나, 장거리 달리기 전교 2등 했다고 얘기를 하면 엄마는
잘했다거나, 칭찬을 않해줍니까?
엄마의 대답은 이랳다: 너를 칭찬해주면 니가 우쭐렁 거리고, 그것에 만족해서 그자리에 있을까봐 난 칭찬을 않한다.
사실 어린 나로서는 이해가 않갔습니다. 친구들 부모는 그깟 10등안에 든것도, 막 잘했다고 난시인데, 난 뭐냐구....
근데 후에 내가 발견한건, 엄마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그렇게 많이 칭찬한다는것입니다. 좋은 아들뒀다면서
내 앞에서는 한번도 칭찬을 않하든 엄마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말끝마다 아들이 였답니다.... .
뉴질랜드에서 4년 반을 유학 생활을 지내왔든 나는, 뉴질랜드의 여자친구( 지금 마누라) 를 데리고 2006년 10월에
호주로 이민 왔습니다. 이민온 이유는 엄마, 이모가 이모부가 다 호주에 정착하고 이젠 헤여지지 말고 같이 살자였습니다.
비자의 원인으로 나는 호주를 먼저 들어가게 되고, 여자친구는 중국에서 비자를 기다렸습니다. 엄마를 만난 나는
정말 기뻣고, 엄마는 나를 보고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같이 몇달간 살게 되였는데, 혼자 오래 살아오신 어머니라서
너무 강한 성격과, 생활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떄 당시 내가 접수 못할것들을 적어 보겠습니다.
1. 힘들든 않힘들던, 아르바이트를 몇시간 했든, 집에 들어오면, 집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자라.
2. 아침만 일어나면, 첫마디가, 왜 그렇게 게을러 아직도 자? 이말이 였습니다. 사실 5시간 밖에 않잤는데두요.
남자는 잠이 많으면 않돼, 부지런해야 살아나간다. 그래서 나는 잠을 자는것도 눈치 보여서 , 항상 밖에서 일하고
시간 나면 공부만 했습니다.
3. 내가 여직껏 벌어 논 학비를 빠른 시일내에 벌어서 나한테 돌려달라 .. 부모한테 효도해라.
나는 대학교 3학년이라 공부가 아주 바빳습니다. 뉴질랜드에서 기초를 잘 닦아나서 본과 공부는 나한테는 아주
쉬웠습니다. 난 학교를 저레 다니지 않고, 한주일에 100시간 씩 일해서 모든 학비 생활비에 엄마한테 소비돈을 줬습니다.
기초가 좋은 나라서,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학과는 다 넘고 대학 B 의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 회계과)
다른건 많은데 상세하게 적지 않겠습니다. 한마디로 엄마는 나를 강자로 키우기 위해서 압력을 많이 줬고
칭찬을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않좋은 면만 말하고, 지지를 않해줬습니다, 남자는 코피 터지면 씃고 일어나라..
음..... 우리 친엄마 맞나?? 의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런 마음을 감추느라 얼마 마음이 아팟겠습니까.
여자친구가 중국에서 와서 같이 한집에서 살게 되였습니다.
나는 더 열심히 일했고, 여자친구는 대학을 다녔습니다. 처음 우리집에 들어온 여친은 잘해보겠다고, 우리 엄마한테
선물도 사주고, 저녁이면 마사지도 해주고, 우리둘은 해물을 사다가 엄마한테 접대 했습니다.
엄마는 다 드시고 나서, 맛이 없다고 하더군요.
일 나가신 엄마는 집에 들어오면, 밥가마에 밥이 없거나 채가 없으면, 미친년이 밥도 않해놓니 하면서 하면서
밥가마를 메친적도 아주 많습니다. 밥을 먹을때는 항상 내밥만 퍼다 주면서 많이 먹어 합니다, 여자친구는 우리집에서
많은 시다림과, 고통을 받으면서 나를 사랑해서 꾹참고 있었습니다. 저녁에 논물을 쓰다가도 문소리만 들리면
이불쏙으로 들어갑니다 무서워서, 우리 엄마는 아무때나 노크도 없이 우리 방에 들어오거든요.
내가 나중에 너무 한심한 이들을 많이 하시니까, 엄마 왜 여자친구 한테 그럽니까 하구 엿줘봣는데 . 대답은.
내 가를 떠보려구 그런다 . 너를 진짜 사랑하는지, 시어머니 이렇게 해도 나를 잘해주는지.. 갈가야지 여자란건 하면서.
그리구 난 왠지 모르겠다, 한족이 대서 그런지 난 무조건 밉다. 조선족 여자면 얼마 좋겠니,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따라 다니고, 조선말도 통하고. 니 헤여지면 내 뽀우마 차 사줄께. ㅡ.ㅡ;
그후로는 나는 한심해서 얘기도 않했고 그냥 머라고 하든 참았습니다. . 저녁에 영화 보러 나가도 , 저녁 아주 늦게
가망가망 나가고, 어딜 머 먹으러 나가도 가망가망 문을 살짝 닫구 나가서 먹습니다. 그러면 전화 와서
어디야? 네, 영화관임다 하면, ... 미친것들이 ㅈ ㅣ 랄하네,>ㅉㅉㅉ 합니다. 사실이 질투입니다.
나도 알구요, 여자친구 한테 아들을 뺴앗긴 느낌이겠죠. 우리는 이렇게 같이 살면서 연애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어느날 여자친구가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무릅꿇고, 어머니 제발 아들과 나를 이집에서 나가게 해주십시오 .
제발 빕니다. 우리 나가서 꼭 잘 살겠습니다. 실망 않시키고 잘살겠습니다 , 꼭 어머니한테 자주오고 잘 모시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한집에서는 더이상 살지 못하겠습니다, 아니면 헤여질꺼 같습니다만 난 정말 아들을 사랑합니다...
엄마는: 미친년이 ㅈ랄하구 있네 하든게, 한족말루, 꿘~ ,, 내아들이랑 결혼할려 생각두 말구, 당장 꺼져라 하면서
생쑈를 하구 있네 하든게 , 듣기 싫다 했습니다. 난 듣다가 말두 않나가서 나왔습니다 둘이 알아서 해라고
엄마는 이길 힘이 없고, 마누라는 불쌍하기만 했을 뿐이 였습니다.
그러다가 나 결심하고, 내가 터져버렸습니다. 엄마랑 크게 한번 싸우고, 나 짐 몽땅 가지고 여자친구 데리고 나왔습니다.
엄마는 니 나가서 어떻게 잘사는가 보자, 하든게 2008년에 한말입니다. 내가 꼭 후회 한다면서 하더군요....
그후부터는 엄마랑 같이 않살다 보니까, 자주 방문을 갔읍니다. 나는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견지해왔고
끝내 2012년 1월 12일에 지금 마누라랑 결혼을 했습니다. 2008년에는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든 엄마가 아들이 커서
이젠 집도 자기 돈으로 사고, 결혼도 자기돈으로 하고, 모든걸 척척 잘해나가니까, 인정을 하고 아무리 한족이라고해도
나라면, 무조건 지지하고 따라다니는 나의 마누라를 정식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사실 2011년부터 정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은 마누라가 애기 낳고, 엄마는 더 더욱 인정을 하고 애기를 고와합니다. 늙어가시는 엄마를 볼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만, 아들로서 해줄수 있는것이란 현재로서 같이 있을수가 없으니, 돈하고, 관심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이사를 나와서도 전화나 대화가 힘들게 진행될까봐, 볼펜을 들어서 10 분 거리에서 살지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지금은 축복을 하면서 내가 사논 집에서 우리 엄마가 살고 있습니다..
여직껏 아버지 말을 않한것 같은데, 아버지가 사고로 재작년에 돌아가셨고, 아빠 엄마는 내가 6살때 이혼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새엄마를 찾아서 살았구요.
내가 엄마랑 2008년에 싸웠든 내용들을 믿에다가 적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서운하다고 생각할꺼 같아서 상세하게
해석을 하려고, 쉼터 맘들이 서운하지 말라고 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싸가지 없이 부모한테 대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죄송합니다.
아들을 키워서 나중에 저렇게 된다고 생각할꺼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저의 사황을 간단하게 적어 보겠습니다. 왜 내가 저런 행동을 했었는지요.
우리 엄마는 자존심이 아주 강하고 사업심이 강한 조선족 여자중의 한명입니다. 어릴때부터 아버지는 놀기 좋아하고
엄마는 사업을 많이 시작하고 , 어린 나를 친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맞겨놓고, 사업하고, 외국나서 돈벌고 했습니다.
나는 2살 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20살까지 자랐습니다. 20살 되는해에 나는 외국으로 유학나와서 지금까지
중국에는 4-5번 잠간 할머니 보러 연길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94년도에 돌아가셧구요 )
그동안 난 엄마란 존재도 잘 몰랐고, 어렸을때 소학교, 중학교 다니면서 다른 엄마, 아빠들 보면 마음이 아프고
자존심도 많이 죽어서 땅을 보면서 다녔습니다. 근데, 부모가 없었지만, 공부는 항상 5위 좌우였습니다. 어머니는
어릴때는 돈을 버느라고 나를 연락을 잘않하고, 중학교 부터 내가 좀 크니까, 연락을 많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외할머니한테 보내줘서 난 그돈으로 학교 다니고, 시 2중 졸업하고,엄마의 지지로 외국 유학 나왔습니다.
나는 엄마를 하늘처럼 믿고 존중했습니다, 비록 같이 있어는 보지 못했지만, 엄마란 사람이 나한테는 의지감이가고
너무 큰 존재였습니다. 내가 여직껏 이해가 않가는것이 있어서 엄마하고 물어봤습니다.
엄마, 왜 나는 학교에서 3호 학생했다고 엄마하고 얘기하거나, 장거리 달리기 전교 2등 했다고 얘기를 하면 엄마는
잘했다거나, 칭찬을 않해줍니까?
엄마의 대답은 이랳다: 너를 칭찬해주면 니가 우쭐렁 거리고, 그것에 만족해서 그자리에 있을까봐 난 칭찬을 않한다.
사실 어린 나로서는 이해가 않갔습니다. 친구들 부모는 그깟 10등안에 든것도, 막 잘했다고 난시인데, 난 뭐냐구....
근데 후에 내가 발견한건, 엄마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그렇게 많이 칭찬한다는것입니다. 좋은 아들뒀다면서
내 앞에서는 한번도 칭찬을 않하든 엄마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말끝마다 아들이 였답니다.... .
뉴질랜드에서 4년 반을 유학 생활을 지내왔든 나는, 뉴질랜드의 여자친구( 지금 마누라) 를 데리고 2006년 10월에
호주로 이민 왔습니다. 이민온 이유는 엄마, 이모가 이모부가 다 호주에 정착하고 이젠 헤여지지 말고 같이 살자였습니다.
비자의 원인으로 나는 호주를 먼저 들어가게 되고, 여자친구는 중국에서 비자를 기다렸습니다. 엄마를 만난 나는
정말 기뻣고, 엄마는 나를 보고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같이 몇달간 살게 되였는데, 혼자 오래 살아오신 어머니라서
너무 강한 성격과, 생활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떄 당시 내가 접수 못할것들을 적어 보겠습니다.
1. 힘들든 않힘들던, 아르바이트를 몇시간 했든, 집에 들어오면, 집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자라.
2. 아침만 일어나면, 첫마디가, 왜 그렇게 게을러 아직도 자? 이말이 였습니다. 사실 5시간 밖에 않잤는데두요.
남자는 잠이 많으면 않돼, 부지런해야 살아나간다. 그래서 나는 잠을 자는것도 눈치 보여서 , 항상 밖에서 일하고
시간 나면 공부만 했습니다.
3. 내가 여직껏 벌어 논 학비를 빠른 시일내에 벌어서 나한테 돌려달라 .. 부모한테 효도해라.
나는 대학교 3학년이라 공부가 아주 바빳습니다. 뉴질랜드에서 기초를 잘 닦아나서 본과 공부는 나한테는 아주
쉬웠습니다. 난 학교를 저레 다니지 않고, 한주일에 100시간 씩 일해서 모든 학비 생활비에 엄마한테 소비돈을 줬습니다.
기초가 좋은 나라서,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학과는 다 넘고 대학 B 의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 회계과)
다른건 많은데 상세하게 적지 않겠습니다. 한마디로 엄마는 나를 강자로 키우기 위해서 압력을 많이 줬고
칭찬을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않좋은 면만 말하고, 지지를 않해줬습니다, 남자는 코피 터지면 씃고 일어나라..
음..... 우리 친엄마 맞나?? 의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런 마음을 감추느라 얼마 마음이 아팟겠습니까.
여자친구가 중국에서 와서 같이 한집에서 살게 되였습니다.
나는 더 열심히 일했고, 여자친구는 대학을 다녔습니다. 처음 우리집에 들어온 여친은 잘해보겠다고, 우리 엄마한테
선물도 사주고, 저녁이면 마사지도 해주고, 우리둘은 해물을 사다가 엄마한테 접대 했습니다.
엄마는 다 드시고 나서, 맛이 없다고 하더군요.
일 나가신 엄마는 집에 들어오면, 밥가마에 밥이 없거나 채가 없으면, 미친년이 밥도 않해놓니 하면서 하면서
밥가마를 메친적도 아주 많습니다. 밥을 먹을때는 항상 내밥만 퍼다 주면서 많이 먹어 합니다, 여자친구는 우리집에서
많은 시다림과, 고통을 받으면서 나를 사랑해서 꾹참고 있었습니다. 저녁에 논물을 쓰다가도 문소리만 들리면
이불쏙으로 들어갑니다 무서워서, 우리 엄마는 아무때나 노크도 없이 우리 방에 들어오거든요.
내가 나중에 너무 한심한 이들을 많이 하시니까, 엄마 왜 여자친구 한테 그럽니까 하구 엿줘봣는데 . 대답은.
내 가를 떠보려구 그런다 . 너를 진짜 사랑하는지, 시어머니 이렇게 해도 나를 잘해주는지.. 갈가야지 여자란건 하면서.
그리구 난 왠지 모르겠다, 한족이 대서 그런지 난 무조건 밉다. 조선족 여자면 얼마 좋겠니,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따라 다니고, 조선말도 통하고. 니 헤여지면 내 뽀우마 차 사줄께. ㅡ.ㅡ;
그후로는 나는 한심해서 얘기도 않했고 그냥 머라고 하든 참았습니다. . 저녁에 영화 보러 나가도 , 저녁 아주 늦게
가망가망 나가고, 어딜 머 먹으러 나가도 가망가망 문을 살짝 닫구 나가서 먹습니다. 그러면 전화 와서
어디야? 네, 영화관임다 하면, ... 미친것들이 ㅈ ㅣ 랄하네,>ㅉㅉㅉ 합니다. 사실이 질투입니다.
나도 알구요, 여자친구 한테 아들을 뺴앗긴 느낌이겠죠. 우리는 이렇게 같이 살면서 연애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어느날 여자친구가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무릅꿇고, 어머니 제발 아들과 나를 이집에서 나가게 해주십시오 .
제발 빕니다. 우리 나가서 꼭 잘 살겠습니다. 실망 않시키고 잘살겠습니다 , 꼭 어머니한테 자주오고 잘 모시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한집에서는 더이상 살지 못하겠습니다, 아니면 헤여질꺼 같습니다만 난 정말 아들을 사랑합니다...
엄마는: 미친년이 ㅈ랄하구 있네 하든게, 한족말루, 꿘~ ,, 내아들이랑 결혼할려 생각두 말구, 당장 꺼져라 하면서
생쑈를 하구 있네 하든게 , 듣기 싫다 했습니다. 난 듣다가 말두 않나가서 나왔습니다 둘이 알아서 해라고
엄마는 이길 힘이 없고, 마누라는 불쌍하기만 했을 뿐이 였습니다.
그러다가 나 결심하고, 내가 터져버렸습니다. 엄마랑 크게 한번 싸우고, 나 짐 몽땅 가지고 여자친구 데리고 나왔습니다.
엄마는 니 나가서 어떻게 잘사는가 보자, 하든게 2008년에 한말입니다. 내가 꼭 후회 한다면서 하더군요....
그후부터는 엄마랑 같이 않살다 보니까, 자주 방문을 갔읍니다. 나는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견지해왔고
끝내 2012년 1월 12일에 지금 마누라랑 결혼을 했습니다. 2008년에는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든 엄마가 아들이 커서
이젠 집도 자기 돈으로 사고, 결혼도 자기돈으로 하고, 모든걸 척척 잘해나가니까, 인정을 하고 아무리 한족이라고해도
나라면, 무조건 지지하고 따라다니는 나의 마누라를 정식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사실 2011년부터 정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은 마누라가 애기 낳고, 엄마는 더 더욱 인정을 하고 애기를 고와합니다. 늙어가시는 엄마를 볼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만, 아들로서 해줄수 있는것이란 현재로서 같이 있을수가 없으니, 돈하고, 관심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이사를 나와서도 전화나 대화가 힘들게 진행될까봐, 볼펜을 들어서 10 분 거리에서 살지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지금은 축복을 하면서 내가 사논 집에서 우리 엄마가 살고 있습니다..
여직껏 아버지 말을 않한것 같은데, 아버지가 사고로 재작년에 돌아가셨고, 아빠 엄마는 내가 6살때 이혼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새엄마를 찾아서 살았구요.
내가 엄마랑 2008년에 싸웠든 내용들을 믿에다가 적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서운하다고 생각할꺼 같아서 상세하게
해석을 하려고, 쉼터 맘들이 서운하지 말라고 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싸가지 없이 부모한테 대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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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24)
비공개
네 시2중 2001년도 졸업이 맞습니다.
영어반은 아니구요, 일어반이였습니다.
고중다닐떄 워낙 조용했는데 인상이 있다니 영광스럽습니다.
혹시 같은 학년이니 서로 알수도 있겠슴다.
영어반은 아니구요, 일어반이였습니다.
고중다닐떄 워낙 조용했는데 인상이 있다니 영광스럽습니다.
혹시 같은 학년이니 서로 알수도 있겠슴다.
일어반인데 영어권 류학가서 공부도 잘 하셧군요
정말 탄복함다
저는 10년 넘어 영어 배웟다는게 어디가서 영어배웟다는
소리 못할정도로 싹 까먹엇슴당..휴~
옛날에 영어권 류학 가고 싶엇는데
어찌다보니 일본에 정착하게 되엇네요..ㅎㅎ
글고 울시집에도 삼촌댁이랑 사촌들 각시랑
한족 며느리 몇명 잇슴당. 나름 다 잘 살고, 화목함당
그래도 울 도련님만은 조선족 새기 찾앗음
하는 이 형수님 욕심임다ㅋㅋ
어쩐지 한족이라고 처음에 무작정 내미신
님 어머님 마음 알것도 같슴다
지금은 님 어머님 며느리 인정도 해주고 손녀 이뻐도 해주시고,
일도 잘 풀리고 모든게 넘 이상적이네요
정말 탄복함다
저는 10년 넘어 영어 배웟다는게 어디가서 영어배웟다는
소리 못할정도로 싹 까먹엇슴당..휴~
옛날에 영어권 류학 가고 싶엇는데
어찌다보니 일본에 정착하게 되엇네요..ㅎㅎ
글고 울시집에도 삼촌댁이랑 사촌들 각시랑
한족 며느리 몇명 잇슴당. 나름 다 잘 살고, 화목함당
그래도 울 도련님만은 조선족 새기 찾앗음
하는 이 형수님 욕심임다ㅋㅋ
어쩐지 한족이라고 처음에 무작정 내미신
님 어머님 마음 알것도 같슴다
지금은 님 어머님 며느리 인정도 해주고 손녀 이뻐도 해주시고,
일도 잘 풀리고 모든게 넘 이상적이네요
ㅋㅋㅋㅋ 일어반 다녀 가지고
뉴질랜드 금방 갔을떄는 2주동안 멍청이처럼 밖에만 내다보고 했습니다.
2주가 지나니까, 영어가 귀에 읶더군요. 지금은 머, 조선말 정도 로 영어를 합니다만,
일본어를 아직도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조선족들은 다 그렇잖습니까. ㅋㅋ 소캐바지하구 사실 연길에 있을떄는 놀지도 않았습니다.
근데 대도시에 자란 애들한테서 배울꼐 많습데다. 처음으로 북경친구를 만났고, 하루도 빠짐없이
4년반을 같이 보낸 북경한족 형이 있었는데, 너무 좋은 분이 였고 날 보살펴주고.
나도 죽어도 한족하고는 결혼이 않된다고 생각하고 대남자주의를 견지하면서 살아온 사람인데
외국와서 5년만에 다 바뀌게 되였습니다. ㅋㅋ
뉴질랜드 금방 갔을떄는 2주동안 멍청이처럼 밖에만 내다보고 했습니다.
2주가 지나니까, 영어가 귀에 읶더군요. 지금은 머, 조선말 정도 로 영어를 합니다만,
일본어를 아직도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조선족들은 다 그렇잖습니까. ㅋㅋ 소캐바지하구 사실 연길에 있을떄는 놀지도 않았습니다.
근데 대도시에 자란 애들한테서 배울꼐 많습데다. 처음으로 북경친구를 만났고, 하루도 빠짐없이
4년반을 같이 보낸 북경한족 형이 있었는데, 너무 좋은 분이 였고 날 보살펴주고.
나도 죽어도 한족하고는 결혼이 않된다고 생각하고 대남자주의를 견지하면서 살아온 사람인데
외국와서 5년만에 다 바뀌게 되였습니다. ㅋㅋ
저 아래 어느분의 발언에 너무 개의치마세요.
아래글에서 어머님이 심하셨다구는 생각조차도 못햇음다.
어머님은 강한 여자라는거는 충분히 글에서 느끼게 되였을뿐임니다.
어머님 시대 외국에 돈벌이 나가신 어머님들이 얼마나 많심니까.
강하게 참아오다가 아들이 옆에 오게 되니 하루 세끼, 입는 옷 등등 다 챙겨주고 싶을검다.
여자들이 힘들게 자식 키우신 분인수록 특히 아들에 대해 집착이 심하신건 저 주위에 몇몇 봐와서 이상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됨니다.
어머님도 아들의 성장시기에 함께 못한것에 대해 가슴 아프구 지금은 옆에 두고 매일 보고 싶은정도로 집착할수도 있구요.
그러니 어머님 눈엔 님의 모습이 아직도 당시 돈벌러 외국 떠날때 어린 모습일수도 있음검다 ㅎㅎ
(울 시엄니가 손주 한돌반 될때 손주 보면서 울 신랑 이름을 부릅데다, 저두 모르게 ㅎㅎ
어릴때 사진보면 똑 같다면서 자기 아들이 더 이뻣다구 하잼까 ㅋㅋ 내 눈엔 내 아들이 더 이쁘더구먼 ㅎㅎ)
거기에 조선족들은 타민족과의 결혼에 대해 편견이 심하잼까.특히는 한족ㅎㅎ
저두 한족과 결혼했는데 주위에 조선족분들한테 왜 하필이면 한족이야? 언젠가 후회한다둥 ㅎㅎ 비난 많이 받았음다.
다행이도 저는 부모 형제들은 아무말없이 받아주고 아껴주어서 같이 15년이란 시간도 보내왔음다.
그래서인데 어머님한테 아들이 인젠 어른이 됐다는걸 잠시간 상처가 될수 있어도 가르켜드려야한다고 생각됨다.
그것이 저아래에서 오해를 일으키겨 했던 행동이 였다고 생각되구요.
한동안 어머님한테 상처가 될수 있지만 님하고 안해분이 이쁘게 잘 살면 어머님도 흐뭇해 할검다.
자식이 행복하게 보내는게 세상 모든 부모의 희망이잼까.
또한가지라면 저도 한 일년 애를 시집에 부탁한적 있음다, 말로는 돈번다구 어쩌구 했지만 사실은 저의 일 욕심때문임다 ㅎㅎ
그러니 어른들이 돈 벌러 자식 떼놓고 가는거에 대해서
자식을 위해서 라고 하지만 사실 자신의 욕심때문에 그럴때가 많다고 생각됨니다.
자식한테 부모가 필요한건 돈 보다 어린시절엔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주는것,
자식이 어른이 된다음엔 멀리멀리 보내주는것이 부모의 책임이라고 느껴지는 요즘임다.
인젠 어디 가든지 아들애를 데리구 다닐검다, 때가 되면 멀리머리 보낼려구요. 그래서 전번에 호주유학에대해서 물어본검다 ㅎㅎ
멜버른님, 그리구 어머님도 안해분도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됨니다.
아래글에서 어머님이 심하셨다구는 생각조차도 못햇음다.
어머님은 강한 여자라는거는 충분히 글에서 느끼게 되였을뿐임니다.
어머님 시대 외국에 돈벌이 나가신 어머님들이 얼마나 많심니까.
강하게 참아오다가 아들이 옆에 오게 되니 하루 세끼, 입는 옷 등등 다 챙겨주고 싶을검다.
여자들이 힘들게 자식 키우신 분인수록 특히 아들에 대해 집착이 심하신건 저 주위에 몇몇 봐와서 이상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됨니다.
어머님도 아들의 성장시기에 함께 못한것에 대해 가슴 아프구 지금은 옆에 두고 매일 보고 싶은정도로 집착할수도 있구요.
그러니 어머님 눈엔 님의 모습이 아직도 당시 돈벌러 외국 떠날때 어린 모습일수도 있음검다 ㅎㅎ
(울 시엄니가 손주 한돌반 될때 손주 보면서 울 신랑 이름을 부릅데다, 저두 모르게 ㅎㅎ
어릴때 사진보면 똑 같다면서 자기 아들이 더 이뻣다구 하잼까 ㅋㅋ 내 눈엔 내 아들이 더 이쁘더구먼 ㅎㅎ)
거기에 조선족들은 타민족과의 결혼에 대해 편견이 심하잼까.특히는 한족ㅎㅎ
저두 한족과 결혼했는데 주위에 조선족분들한테 왜 하필이면 한족이야? 언젠가 후회한다둥 ㅎㅎ 비난 많이 받았음다.
다행이도 저는 부모 형제들은 아무말없이 받아주고 아껴주어서 같이 15년이란 시간도 보내왔음다.
그래서인데 어머님한테 아들이 인젠 어른이 됐다는걸 잠시간 상처가 될수 있어도 가르켜드려야한다고 생각됨다.
그것이 저아래에서 오해를 일으키겨 했던 행동이 였다고 생각되구요.
한동안 어머님한테 상처가 될수 있지만 님하고 안해분이 이쁘게 잘 살면 어머님도 흐뭇해 할검다.
자식이 행복하게 보내는게 세상 모든 부모의 희망이잼까.
또한가지라면 저도 한 일년 애를 시집에 부탁한적 있음다, 말로는 돈번다구 어쩌구 했지만 사실은 저의 일 욕심때문임다 ㅎㅎ
그러니 어른들이 돈 벌러 자식 떼놓고 가는거에 대해서
자식을 위해서 라고 하지만 사실 자신의 욕심때문에 그럴때가 많다고 생각됨니다.
자식한테 부모가 필요한건 돈 보다 어린시절엔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주는것,
자식이 어른이 된다음엔 멀리멀리 보내주는것이 부모의 책임이라고 느껴지는 요즘임다.
인젠 어디 가든지 아들애를 데리구 다닐검다, 때가 되면 멀리머리 보낼려구요. 그래서 전번에 호주유학에대해서 물어본검다 ㅎㅎ
멜버른님, 그리구 어머님도 안해분도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됨니다.
님도 한족과 결혼하셧습니까? 나는 전혀 조선족을 만날수가 없었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는 거의
조선족이 없다고 봅니다, 다 불법으로 오신 아저씨들이나 아줌마 들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애들은 마음에 않들고
지금 이쪽으로 유학오는 젊은이들이 있는거 같습니다.
자식은 조건만 되면 꼭 부모랑 같이 크는것이 좋습니다. 아무리 돈을 위해도 어디서 살든 자기 애기 18살될떄까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같이 있어주고 애들 키워가는게 부모가 응당해야할 일인거 같습니다. 살다보면 돈보다
더 중요한게 가족이라는걸 느낄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떄가면, 이미 시간은 지나갔고, 애들의 동년은 혼자서
부모없이 보내왔고, 애들과는 추억은 , 힘들게 벌어왔든 돈으로 메꿉니다. 그것이 애들이 건강하게 잘크면모를까
싸가지 되거나, 사회불량뱅이가 되는애들도 있고, 인생 헛사는애들도 있는가면 판단력이 없어서 나중에 커서도
아무케나 막살고 사람질 못하거나 홀로로 사는애들이 많습니다. 마음구석이나 어디가 정상이 않될수있는 기회가
높으니까요 정상적인애들보다요.
저는 가족에 대한 많은 책들과, 호주 양아빠, 장인어른 한테서 많은 것을 배워서, 많은 습성과 인생관을
바꾸게 되였습니다. 나도 예전에는 아주 대남자주의 였고 여자들의 힘든걸 이해 못할떄가 많았습니다.
눈으로 많이 보고, 듣고, 선배나 호주 외국인 삼촌가정에서 많이 지내면서 많은걸 느꼈고 행복을 만들어가는
비결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자동적으로 참을성도 많아지고 침착해집데다..
조선족이 없다고 봅니다, 다 불법으로 오신 아저씨들이나 아줌마 들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애들은 마음에 않들고
지금 이쪽으로 유학오는 젊은이들이 있는거 같습니다.
자식은 조건만 되면 꼭 부모랑 같이 크는것이 좋습니다. 아무리 돈을 위해도 어디서 살든 자기 애기 18살될떄까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같이 있어주고 애들 키워가는게 부모가 응당해야할 일인거 같습니다. 살다보면 돈보다
더 중요한게 가족이라는걸 느낄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떄가면, 이미 시간은 지나갔고, 애들의 동년은 혼자서
부모없이 보내왔고, 애들과는 추억은 , 힘들게 벌어왔든 돈으로 메꿉니다. 그것이 애들이 건강하게 잘크면모를까
싸가지 되거나, 사회불량뱅이가 되는애들도 있고, 인생 헛사는애들도 있는가면 판단력이 없어서 나중에 커서도
아무케나 막살고 사람질 못하거나 홀로로 사는애들이 많습니다. 마음구석이나 어디가 정상이 않될수있는 기회가
높으니까요 정상적인애들보다요.
저는 가족에 대한 많은 책들과, 호주 양아빠, 장인어른 한테서 많은 것을 배워서, 많은 습성과 인생관을
바꾸게 되였습니다. 나도 예전에는 아주 대남자주의 였고 여자들의 힘든걸 이해 못할떄가 많았습니다.
눈으로 많이 보고, 듣고, 선배나 호주 외국인 삼촌가정에서 많이 지내면서 많은걸 느꼈고 행복을 만들어가는
비결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자동적으로 참을성도 많아지고 침착해집데다..
이렇게 긴 답플은 처음 써보는것 같슴다 ㅎㅎ
장하심다. 저걸 쓰씨느라 머리 많이 아프셨겠습니다.
나는 워낙 표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서요. 괞찮습니다만.
감사합니다. ^^
나는 워낙 표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서요. 괞찮습니다만.
감사합니다. ^^
남자답습니다.
부모사랑도 없이 올바른 길은 갔다는 점과 어머니 안해사이에서 멋지게 행동했다는 점입니다.
부모 반대한다구 다짜고짜로 갈라지는 사람보다는 많이 성숙됐다는거 아니겠습니까?
부모사랑도 없이 올바른 길은 갔다는 점과 어머니 안해사이에서 멋지게 행동했다는 점입니다.
부모 반대한다구 다짜고짜로 갈라지는 사람보다는 많이 성숙됐다는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됐구요.
마누라가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달림을 당하고 욕을 먹으면서 얼굴에 철판깔고 거지처럼 빌면서
비락질을 해서 얻은 사랑입니다. 6년이랑 장기가의 노력과 지지로 끝내 인정을 받았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빨래하고 집청소하고, 서투르지만 밥을 짓어서 3끼는 못하고, 2끼라도 해서 나를 대접하는 모습.
공주처럼 자라고, 부모가 둘다 법관인 가정에서 이쁘게 자란 대도시 여자애가 내같은 소도시 농촌애를
위해서 무릅도 꿇고 눈물은 말할것두 없이 많이 흘리고 끝내 결혼했습니다.
뭐가 무슨일이 생기든 항상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마누라한테 너무나 고맙습니다.
마누라가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달림을 당하고 욕을 먹으면서 얼굴에 철판깔고 거지처럼 빌면서
비락질을 해서 얻은 사랑입니다. 6년이랑 장기가의 노력과 지지로 끝내 인정을 받았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빨래하고 집청소하고, 서투르지만 밥을 짓어서 3끼는 못하고, 2끼라도 해서 나를 대접하는 모습.
공주처럼 자라고, 부모가 둘다 법관인 가정에서 이쁘게 자란 대도시 여자애가 내같은 소도시 농촌애를
위해서 무릅도 꿇고 눈물은 말할것두 없이 많이 흘리고 끝내 결혼했습니다.
뭐가 무슨일이 생기든 항상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마누라한테 너무나 고맙습니다.
아버님과 닮을가봐 엄하게 요구하셧고
님과 떨어져사는동안 허송세월을 하지않으시고 분투하셔서
님 생활비 쭉 대주시고 끝내는 유학자금까지 마련하셧잖아요
아이가 하루하루 커갈때 옆에서 지켜보지못하고 혼자서 외국땅에서
고생하면서 보낸 세월 지옥이엿을겁니다
멀리 아들이 있어서 생활비를 보내서 키워야한다는 무거운 짐을 혼자서
지고 사신 어머님 성격도 거칠어졋을거구요
자기가 낳은 아이 나몰라라하면서 이혼하고 외국 나가면 생활비도 안대는 엄마들두 있더군요
님이 아이 아빠가 되엿으니 하루라도 안보면 아이가 보구싶은 심정 알거라 생각합니다만
그동안 피눈물 흘리며 살아온 세월 끝에 겨우 함께 있게된 아들,그 아들이 좋아한다는 여자는 같은 민족이 아니니 견디기 힘들엇을겁니다
결혼해서 실패를 하신 어머님이기에 사랑 그거 별거 아니라는걸 깊게 느끼고 있엇구요
어떻게 해든 둘사이를 갈라놓으려구 여친한테 심하게 햇을겁니다
사실 외국 나와 살다보면 국내에 있을때보다 한족이 더 싫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나와있는 한족들 돈밖에 모르고 치사한 사람들이 많게 느껴지고든요
더구나 어머니시대분들은 타민족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더구나 여자는 나이들면 허무감이 늘어가는 법입니다
평생을 멀 위해 살앗는지 좋은세월은 다 가고 아이가 커서 자립을 하게되니
이내몸은 늙어져있구 마음 한구석에 아픔으로 담으면서 마음으로
키워온 아들 인젠 다 커버려서 남이된것같은 느낌도 있을거구요
지금도 님은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님 자신을 위하여 지난 어두운 성장과정은 잊어버리기 바랍니다
마음속으로 어머님을 받아들이고 님을 곁에 두고 키우지 않은 어머님을
진심으로 용서하는 날 그날은 님이 어두운 기억속에서 해탈되는 날일거라 믿습니다
님의 아이는 앞으로 어떤 곤난이 있더라도 곁에서 하루하루 성장을 지켜보면서
키워가길 바랄게요 아이한테 님과같은 마음에 상처를 절때 주지 않을거라 믿겟어요
님과 떨어져사는동안 허송세월을 하지않으시고 분투하셔서
님 생활비 쭉 대주시고 끝내는 유학자금까지 마련하셧잖아요
아이가 하루하루 커갈때 옆에서 지켜보지못하고 혼자서 외국땅에서
고생하면서 보낸 세월 지옥이엿을겁니다
멀리 아들이 있어서 생활비를 보내서 키워야한다는 무거운 짐을 혼자서
지고 사신 어머님 성격도 거칠어졋을거구요
자기가 낳은 아이 나몰라라하면서 이혼하고 외국 나가면 생활비도 안대는 엄마들두 있더군요
님이 아이 아빠가 되엿으니 하루라도 안보면 아이가 보구싶은 심정 알거라 생각합니다만
그동안 피눈물 흘리며 살아온 세월 끝에 겨우 함께 있게된 아들,그 아들이 좋아한다는 여자는 같은 민족이 아니니 견디기 힘들엇을겁니다
결혼해서 실패를 하신 어머님이기에 사랑 그거 별거 아니라는걸 깊게 느끼고 있엇구요
어떻게 해든 둘사이를 갈라놓으려구 여친한테 심하게 햇을겁니다
사실 외국 나와 살다보면 국내에 있을때보다 한족이 더 싫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나와있는 한족들 돈밖에 모르고 치사한 사람들이 많게 느껴지고든요
더구나 어머니시대분들은 타민족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더구나 여자는 나이들면 허무감이 늘어가는 법입니다
평생을 멀 위해 살앗는지 좋은세월은 다 가고 아이가 커서 자립을 하게되니
이내몸은 늙어져있구 마음 한구석에 아픔으로 담으면서 마음으로
키워온 아들 인젠 다 커버려서 남이된것같은 느낌도 있을거구요
지금도 님은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님 자신을 위하여 지난 어두운 성장과정은 잊어버리기 바랍니다
마음속으로 어머님을 받아들이고 님을 곁에 두고 키우지 않은 어머님을
진심으로 용서하는 날 그날은 님이 어두운 기억속에서 해탈되는 날일거라 믿습니다
님의 아이는 앞으로 어떤 곤난이 있더라도 곁에서 하루하루 성장을 지켜보면서
키워가길 바랄게요 아이한테 님과같은 마음에 상처를 절때 주지 않을거라 믿겟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님의 한구절 한구절이 내가 인정하고 알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님글을 읽어 보고, 우리 엄머니가 이글을 올리지 않았나 의심이 갈 정도로, 마음을 파악하네요.
어머니랑 둬번 나중에 둘이서 술 마시고 얘기했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항상 사랑이 그거 별거 아니라고 합니다
나보고 세상에는 사랑이 없다고 하더군요. 사랑의 전제의 조건이 돈이라고 하시면서, 자기는 사랑 않믿는대요.
그래서 나는 엄마보고 나는 사랑을 믿고 그걸 바탕으로 힘내서 사는데, 지지해주세요 햇습니다.
술이 조금 들어간 엄마는: 세상에 사랑이 없다, 존재 않하다 하면서, 사람은 환경이 변함에 따라 변한다면서
정은 키울수 있지만, 사랑은 존재않해, 사랑은 유통기한이 있다네요.
나는 암튼 그런 비관적인 말은 결혼하려고 하는 아들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삽시다
인생에는 돈 뺴고도 의미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라고 하니까, 자기는 그럴 여유를 가질 시간이 없었다네요.
원래 완벽적인 인간이여서, 머나다 눈에 거슬리고, 머 보면 뭐가 마음에 안들어서 잔소리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네 하고 가만이 있어씁니다.
내 아이는 내가 무슨 곤난이 있어도 꼭 옆에서 키울겁니다. 아이를 위해서 더 열심히 이할것이며 옆에서 잘 키우고
내가 권투 배우는 원인도 가족을 보호하려고 좋은 신체와 기술을 배워서 , 더 건강한 몸으로 든든한 아빠가 되려구
배우고 있습니다 . 지금 쉼터를 하면서 글을 쓰는 순간도 나는 자고 있는 내딸을 보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딸은 매 3시간에 일어나서 모유 먹어야기에, 마누라는 지금 자고 있습니다. 한시간후에 꺠워서 모유 먹이고
등 두두려 주고,3시간자고 , 알람으로 꺠나서 또 모유 먹입니다. 아무리 졸려도 딸애를 보면 졸립짇 않고
기쁘기만합니다. 쉼터 맘들도 애기 키우느라 고생많이 하시겠는데, 모두들 화이팅 하세요.
나는 애기 저녁이면 애기 보면서, 쉼터도 하고, 한쪽으로 삼국연이를 보면서 많은 전술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ㅋㅋ
님글을 읽어 보고, 우리 엄머니가 이글을 올리지 않았나 의심이 갈 정도로, 마음을 파악하네요.
어머니랑 둬번 나중에 둘이서 술 마시고 얘기했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항상 사랑이 그거 별거 아니라고 합니다
나보고 세상에는 사랑이 없다고 하더군요. 사랑의 전제의 조건이 돈이라고 하시면서, 자기는 사랑 않믿는대요.
그래서 나는 엄마보고 나는 사랑을 믿고 그걸 바탕으로 힘내서 사는데, 지지해주세요 햇습니다.
술이 조금 들어간 엄마는: 세상에 사랑이 없다, 존재 않하다 하면서, 사람은 환경이 변함에 따라 변한다면서
정은 키울수 있지만, 사랑은 존재않해, 사랑은 유통기한이 있다네요.
나는 암튼 그런 비관적인 말은 결혼하려고 하는 아들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삽시다
인생에는 돈 뺴고도 의미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라고 하니까, 자기는 그럴 여유를 가질 시간이 없었다네요.
원래 완벽적인 인간이여서, 머나다 눈에 거슬리고, 머 보면 뭐가 마음에 안들어서 잔소리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네 하고 가만이 있어씁니다.
내 아이는 내가 무슨 곤난이 있어도 꼭 옆에서 키울겁니다. 아이를 위해서 더 열심히 이할것이며 옆에서 잘 키우고
내가 권투 배우는 원인도 가족을 보호하려고 좋은 신체와 기술을 배워서 , 더 건강한 몸으로 든든한 아빠가 되려구
배우고 있습니다 . 지금 쉼터를 하면서 글을 쓰는 순간도 나는 자고 있는 내딸을 보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딸은 매 3시간에 일어나서 모유 먹어야기에, 마누라는 지금 자고 있습니다. 한시간후에 꺠워서 모유 먹이고
등 두두려 주고,3시간자고 , 알람으로 꺠나서 또 모유 먹입니다. 아무리 졸려도 딸애를 보면 졸립짇 않고
기쁘기만합니다. 쉼터 맘들도 애기 키우느라 고생많이 하시겠는데, 모두들 화이팅 하세요.
나는 애기 저녁이면 애기 보면서, 쉼터도 하고, 한쪽으로 삼국연이를 보면서 많은 전술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ㅋㅋ
어머님의 사랑도 과도하긴하지만 그분만의 방식이였겠고...
무엇보담도 안해분 너무 참한 분이시군요.
우리집부모님도 제가 일본에 유학올때 일본사람하고는 절대 결혼 용서못한다고
침을 놓으시드라구요. 결국 여기서 정말로 일본사람이랑 사귀게 되었는데
저보구 당장 학교 그만두고 돌아오라합데다. 그때 학비랑 대주셨는데...
학비도 안대줄거라면서. 울엄마가 울면서 그렇게 슬퍼하십데다.
뭐 이건 과거이고 엄마때문만이 아니라 그 일본사람이랑 헤어지게 되었고
지금은 조선족남자하고 결혼을 했는데 엄마가 우울증 걸리기직전이였었는데
제 결혼을 계기로 완쾌되시고 지금 너무 행복해하세요...맨날 내말 들었길래 너두 행복한거야...
이램당. 우리 부모님 세대분들은 100에 99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거 같슴다.
그래도 그런 부모님을 현명하게 설득시키고 어머님도 챙기고 마누라도 챙기신건 너무 축하할만한 일인거 같습니다.
어머님도 안해분이 미워서가 아니라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뿐이였으니 이제 안해분 참하신걸 인정하신거 같은데
너무 다행입니다. 님이 앞으로 어머님께 효도해드려야하는일은 돈을 자주 드리는 일도 아니고 선물 자주 사드리는 일도
아니고 그 안해분이랑 너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의 행복을 질투할 어머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공주님도 태어났으라니 요 모순은 공주님이 잘 해결해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들은 손자 손녀엔 약하시거등요. ㅋㅋ 자주 만나뵙게 하고 우리말로 대화랑 하게 해주면 아마도 과거따윈 삼천리
밖으로 멀리멀리 날아갈꺼래요...나중에 공주님 사진도 한번 보여주세요.이렇듯 사랑받고 자란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을 해봤슴당. ㅎㅎ 꼭 넘 밝고 이쁠거 같네요. 행복하시길 바래요. 글을 읽으면서 살짝 눈물날거같은거 겨우 참았슴당. ㅎㅎ
무엇보담도 안해분 너무 참한 분이시군요.
우리집부모님도 제가 일본에 유학올때 일본사람하고는 절대 결혼 용서못한다고
침을 놓으시드라구요. 결국 여기서 정말로 일본사람이랑 사귀게 되었는데
저보구 당장 학교 그만두고 돌아오라합데다. 그때 학비랑 대주셨는데...
학비도 안대줄거라면서. 울엄마가 울면서 그렇게 슬퍼하십데다.
뭐 이건 과거이고 엄마때문만이 아니라 그 일본사람이랑 헤어지게 되었고
지금은 조선족남자하고 결혼을 했는데 엄마가 우울증 걸리기직전이였었는데
제 결혼을 계기로 완쾌되시고 지금 너무 행복해하세요...맨날 내말 들었길래 너두 행복한거야...
이램당. 우리 부모님 세대분들은 100에 99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거 같슴다.
그래도 그런 부모님을 현명하게 설득시키고 어머님도 챙기고 마누라도 챙기신건 너무 축하할만한 일인거 같습니다.
어머님도 안해분이 미워서가 아니라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뿐이였으니 이제 안해분 참하신걸 인정하신거 같은데
너무 다행입니다. 님이 앞으로 어머님께 효도해드려야하는일은 돈을 자주 드리는 일도 아니고 선물 자주 사드리는 일도
아니고 그 안해분이랑 너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의 행복을 질투할 어머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공주님도 태어났으라니 요 모순은 공주님이 잘 해결해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들은 손자 손녀엔 약하시거등요. ㅋㅋ 자주 만나뵙게 하고 우리말로 대화랑 하게 해주면 아마도 과거따윈 삼천리
밖으로 멀리멀리 날아갈꺼래요...나중에 공주님 사진도 한번 보여주세요.이렇듯 사랑받고 자란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을 해봤슴당. ㅎㅎ 꼭 넘 밝고 이쁠거 같네요. 행복하시길 바래요. 글을 읽으면서 살짝 눈물날거같은거 겨우 참았슴당. ㅎㅎ
스마일 엄마님 ..
조선족 부모님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것 같습니다. 타민족을 접수 못하구 자기 민족만 인정하는 태도말입니다.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언년부터 알았고, 난 내가 한 결정은 부모라고 해도 고칠수 없습니다. 내 인생이니까 내가지키고 보호하는
거니까요. 부모님들의 반대는 이해가 가는데, 내가 어른이 됐다는걸 증명하고 독립하면 선택과 인생관을 인정해주는거 같았습니다.
2011년부터 엄마는 며느리의 끈질긴 노력을 보고 탄복 해서 인정을 했고, 2012년 1월에 결혼하게됏습니다.
어릴때부터 엄마랑 같이 않살았는데, 지금은 내가 같은 한집에는 못살아도, 효도할 방법을 많이 찾았습니다. 그게 바로 많은
교류를 하면서 엄마가 원하는걸 알아낸것입니다. . 그건 여기에 않 적겟습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
조선족 부모님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것 같습니다. 타민족을 접수 못하구 자기 민족만 인정하는 태도말입니다.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언년부터 알았고, 난 내가 한 결정은 부모라고 해도 고칠수 없습니다. 내 인생이니까 내가지키고 보호하는
거니까요. 부모님들의 반대는 이해가 가는데, 내가 어른이 됐다는걸 증명하고 독립하면 선택과 인생관을 인정해주는거 같았습니다.
2011년부터 엄마는 며느리의 끈질긴 노력을 보고 탄복 해서 인정을 했고, 2012년 1월에 결혼하게됏습니다.
어릴때부터 엄마랑 같이 않살았는데, 지금은 내가 같은 한집에는 못살아도, 효도할 방법을 많이 찾았습니다. 그게 바로 많은
교류를 하면서 엄마가 원하는걸 알아낸것입니다. . 그건 여기에 않 적겟습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
현명한 남편 아들에 한표 추천 하고 갑니다.
어머니의 무리한 관섭을 사사건건 들어주는 것이
아들의 효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정한 선에서 어머니를 거절하면 어머니눈 단지 섭섭해 할 뿐이지만
어머니 비위를 다 맞추면 부부사이 싸움으로 되여 버리고 아들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속상할겁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사랑은 피줄인건 만큼 서로 포옹하고 금방 용서되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 버릴수 잇는 사이지만
부부사이 고부사이는 언제까지 남과 남 입니다.
변할수 잇는 사랑이고 맺힌 응어리는 시간이 지나도 잊을수 없는 상처로 남습니다.
어머니의 무리한 관섭을 사사건건 들어주는 것이
아들의 효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정한 선에서 어머니를 거절하면 어머니눈 단지 섭섭해 할 뿐이지만
어머니 비위를 다 맞추면 부부사이 싸움으로 되여 버리고 아들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속상할겁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사랑은 피줄인건 만큼 서로 포옹하고 금방 용서되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 버릴수 잇는 사이지만
부부사이 고부사이는 언제까지 남과 남 입니다.
변할수 잇는 사랑이고 맺힌 응어리는 시간이 지나도 잊을수 없는 상처로 남습니다.
딱, 저의 생각과 같은 얘기를 하셧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사랑은 피줄인것 만큼, 아무리 큰일이 벌어져도, 한시간만 지나면 서로 포옹하고 회복되더군요.
언제 싸웠나, 기억두 않합니다, 없었던 일로 되더군요, 우리집사람들은 다 삐형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마누라는 남이기떄문에, 한번 싸우거나 서로 않맞는 의견이나 싸우게 되면 다시 좋은 상태로
회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과 남이기 때문이고, 피줄이 아닌이상 이해하기란 여간 쉽지 않습니다, 특히
타민족은 더 하구요.
이럴떄는 아들이 중간에서 현명하게 천평의 역할을 해야지, 어느 한쪽에 기뚤리면 다른 한쪽이 힘들어 지는거죠.
천평의 역할이란, 양쪽이 원하는걸 파악학, 양쪽이 원하는걸 다 만족시켜주면, 해결됩데다..
어머니와 아들의 사랑은 피줄인것 만큼, 아무리 큰일이 벌어져도, 한시간만 지나면 서로 포옹하고 회복되더군요.
언제 싸웠나, 기억두 않합니다, 없었던 일로 되더군요, 우리집사람들은 다 삐형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마누라는 남이기떄문에, 한번 싸우거나 서로 않맞는 의견이나 싸우게 되면 다시 좋은 상태로
회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과 남이기 때문이고, 피줄이 아닌이상 이해하기란 여간 쉽지 않습니다, 특히
타민족은 더 하구요.
이럴떄는 아들이 중간에서 현명하게 천평의 역할을 해야지, 어느 한쪽에 기뚤리면 다른 한쪽이 힘들어 지는거죠.
천평의 역할이란, 양쪽이 원하는걸 파악학, 양쪽이 원하는걸 다 만족시켜주면, 해결됩데다..
올만에 쉼터가 뜨근뜨근하네요 ,,
님이 남긴글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듭니다 ,,,
우리 민족이 후대들에게 남긴 많은 상처가 ,,,여러가지로 많은 영향이 됫네요
한국바람이 불어서 부부는 거이다 남이나 다름없이 살고 돈이 좋아서 이나라로 저나라로 떠돌다가
자식은 늙으신 부모님에게 맏겨둔채로 애들 맘속은 다 엉어리가 잡혀가고 ,,
님과 같은 케이스 너무 많죠 우리 민족이 ,,,참 안타깝습니다 ...
제가 류학쪽일을 하다보니 ,,,알지만 ,,90년대 우리 민족 애들이 부모님이 량쪽 다 계시는 애들이 거이 없습니다
다 이혼해서 애만 연변에 엄마는 대부분 한국에 아버지는 모른다 거나
새엄마랑 산다는 애가 거의 90프로 입니다 .
돈이 머길래 ....애들 맘은 상처 덩어리로 ,,,휴 그중에서도 님은 아주 훌륭합니다
나두 아들 가진 엄마로 맘이 짠해납니다 ,,,그리고 시짜 붙은 시엄니가 될 준비를 할거 생각하니 ..막막합니다ㅋㅋ
머 나는 아들 두구 일하러 간다거나 그런일은 없겟지만 ,,,
아직 아들이 9개월여서 ㅋㅋ
저는 엄마 맘 좀더 이해해줫으면 싶네요 ...배아파 낳아서
애지중지 키워서 ,,,외국가서 일하면서 얼마나 님이 그리웟을까요 ...
우리 엄마 세대들은 문화대 혁명이라는 배경으로
공부를 못한 억울한 세대라서 그렇습니다 ..좀더 배웟더라면 ,,,아주 훌륭한 사업가들이 많이 나왓을건데 싶네요
여자들이 강하죠 ㅎㅎ
그리고 님이 현명한 남편이라고 인정합니다 ...사진보니 이쁜 안해와 엄마와 애기와 다 같이 잘 사세요 ,,,
행복하세요
님이 남긴글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듭니다 ,,,
우리 민족이 후대들에게 남긴 많은 상처가 ,,,여러가지로 많은 영향이 됫네요
한국바람이 불어서 부부는 거이다 남이나 다름없이 살고 돈이 좋아서 이나라로 저나라로 떠돌다가
자식은 늙으신 부모님에게 맏겨둔채로 애들 맘속은 다 엉어리가 잡혀가고 ,,
님과 같은 케이스 너무 많죠 우리 민족이 ,,,참 안타깝습니다 ...
제가 류학쪽일을 하다보니 ,,,알지만 ,,90년대 우리 민족 애들이 부모님이 량쪽 다 계시는 애들이 거이 없습니다
다 이혼해서 애만 연변에 엄마는 대부분 한국에 아버지는 모른다 거나
새엄마랑 산다는 애가 거의 90프로 입니다 .
돈이 머길래 ....애들 맘은 상처 덩어리로 ,,,휴 그중에서도 님은 아주 훌륭합니다
나두 아들 가진 엄마로 맘이 짠해납니다 ,,,그리고 시짜 붙은 시엄니가 될 준비를 할거 생각하니 ..막막합니다ㅋㅋ
머 나는 아들 두구 일하러 간다거나 그런일은 없겟지만 ,,,
아직 아들이 9개월여서 ㅋㅋ
저는 엄마 맘 좀더 이해해줫으면 싶네요 ...배아파 낳아서
애지중지 키워서 ,,,외국가서 일하면서 얼마나 님이 그리웟을까요 ...
우리 엄마 세대들은 문화대 혁명이라는 배경으로
공부를 못한 억울한 세대라서 그렇습니다 ..좀더 배웟더라면 ,,,아주 훌륭한 사업가들이 많이 나왓을건데 싶네요
여자들이 강하죠 ㅎㅎ
그리고 님이 현명한 남편이라고 인정합니다 ...사진보니 이쁜 안해와 엄마와 애기와 다 같이 잘 사세요 ,,,
행복하세요
예술맘님: 유학센터에서 일하시다 보니, 현실의 우리 민족을 표현했네요. 사실 내 제일 아끼는 연길에서온
호주 동생은, 태여나서부터 엄마를 여직껏 한번도 못봤습니다. 엄마는 미국에 있고 매주마다 통화를 합니다.
영주권신청을 신청한 동생한테 나중에 엄마를 호주에 모셔서 남은 인생은 같이 살아라고 했습니다.
내가 외국에 있는 동안, 외국사람들의 문화를 접촉하면서 이사람들은 정말 편하게 살고 행복하게 웃고 아무런
걱정이 없이 산다는점을 보고 인식했습니다. 이들 매개인은 아주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정이 있고 그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정성을 다했습니다. 저녁이면 끝나자마자 집부터 달려가서 애들하고 놀고, 웃고 떠들고
배워주고, 하면서 일 뺴고는 , 가정시간을 애들하고 보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식이 원하는걸 알고, 존중해주고, 목표를 정해주고, 좋은 길을 걸도록 교육시키고 공부시켯습니다
자식이 전부인거 같았고, 자식한테 전부의 시간을 보내지만, 나이가 들면 독립정신을 키워주고 자기 시간을 존중
해주고, 프라이버시를 아주 중히 여겨주고 애들을 존중해주면서 키웁데다.
조선족들은 이런 면이 있는것 같습니다.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부모를 위해서 살고, 자식은 물론, 형제를 위해서 살고, 심지어 고모, 이모, 삼촌, 을 챙겨주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그게 아마 조선족들의 문화 인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돈에 더 심하게
집착하는것 같고, 자식하고 같이 않살드라도, 돈을 벌어서, 부모를 모시고, 자식은 돈만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아픈 형제들이 있으면, 형제들을 챙겨주는것 같습니다. 즉 자기의 행복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해복을 위하는
헌신적인 정신이 너무 강한것 같습니다. 결과는 자기의 인생은 지나가고 남은건 아픈 몸과 나쁜 추억인것 같습니다.
난 이면을 언녕부터 봐 왓고, 절때 적으로 반대입니다.. 아래에서도 말하다 싶이,
새가정을 만들었으면, 모든 정력은 새 가족에 몰부어야 합니다. 새가정은 마누라를 포함해서, 자식들입니다.
자식으 농사를 짓듯이, 많은 정성과 애정이 가야되고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정력과 자금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마누라의 건강과 정서파동을 조정해주고 더 많은 시간을 가정에 퍼부어야 , 건강하고 행복하고 성공한 가정을 이루죠
저걸 할수없으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하고,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합니다.
이상 저의 간단한 소견이 였습니다.
예술맘님, 메리크리스마스, 앤, 해피뉴열~
호주 동생은, 태여나서부터 엄마를 여직껏 한번도 못봤습니다. 엄마는 미국에 있고 매주마다 통화를 합니다.
영주권신청을 신청한 동생한테 나중에 엄마를 호주에 모셔서 남은 인생은 같이 살아라고 했습니다.
내가 외국에 있는 동안, 외국사람들의 문화를 접촉하면서 이사람들은 정말 편하게 살고 행복하게 웃고 아무런
걱정이 없이 산다는점을 보고 인식했습니다. 이들 매개인은 아주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정이 있고 그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정성을 다했습니다. 저녁이면 끝나자마자 집부터 달려가서 애들하고 놀고, 웃고 떠들고
배워주고, 하면서 일 뺴고는 , 가정시간을 애들하고 보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식이 원하는걸 알고, 존중해주고, 목표를 정해주고, 좋은 길을 걸도록 교육시키고 공부시켯습니다
자식이 전부인거 같았고, 자식한테 전부의 시간을 보내지만, 나이가 들면 독립정신을 키워주고 자기 시간을 존중
해주고, 프라이버시를 아주 중히 여겨주고 애들을 존중해주면서 키웁데다.
조선족들은 이런 면이 있는것 같습니다.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부모를 위해서 살고, 자식은 물론, 형제를 위해서 살고, 심지어 고모, 이모, 삼촌, 을 챙겨주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그게 아마 조선족들의 문화 인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돈에 더 심하게
집착하는것 같고, 자식하고 같이 않살드라도, 돈을 벌어서, 부모를 모시고, 자식은 돈만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아픈 형제들이 있으면, 형제들을 챙겨주는것 같습니다. 즉 자기의 행복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해복을 위하는
헌신적인 정신이 너무 강한것 같습니다. 결과는 자기의 인생은 지나가고 남은건 아픈 몸과 나쁜 추억인것 같습니다.
난 이면을 언녕부터 봐 왓고, 절때 적으로 반대입니다.. 아래에서도 말하다 싶이,
새가정을 만들었으면, 모든 정력은 새 가족에 몰부어야 합니다. 새가정은 마누라를 포함해서, 자식들입니다.
자식으 농사를 짓듯이, 많은 정성과 애정이 가야되고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정력과 자금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마누라의 건강과 정서파동을 조정해주고 더 많은 시간을 가정에 퍼부어야 , 건강하고 행복하고 성공한 가정을 이루죠
저걸 할수없으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하고,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합니다.
이상 저의 간단한 소견이 였습니다.
예술맘님, 메리크리스마스, 앤, 해피뉴열~
아들 가진 엄마로서 많은것을 생각합니다..지금 대학 다니는 아들있는 부모입니다..
요즘은 국내에서 집도 차도 유학까지 보내려면 허리가 휩니다..님은 행운아 입니다.어릴적 부모사랑은 없어지만
강한 어머니 있어서 그 많큼의 사랑과 행복이 있는거 아닌가요.며느리도 참 좋은 며느리인것 같습니다.요즘은 국내에 한족여자애들이 그렇게 하고 사는 애들이 보기 드뭄니다.자식은 언젠가 내 몸에서 떠난 다고 생각해요 배아파서 낳아지만 언젠가 홀로
날것이면 자기 자신의 길을 가야 하니간요..우리 선조들은 옛날부터 그 사고방식을 가진것이 아니고 내 자식은 장가가도 내 품안에
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요즘은 시대가 좀 바뀌고 서양식을 많이 접하니 저도 아직까지 아들 걱정 많이 합니다,
님의 글에 항상 눈요기 하는 일입니다.항상 행복한 모습보기 좋습니다.
요즘은 국내에서 집도 차도 유학까지 보내려면 허리가 휩니다..님은 행운아 입니다.어릴적 부모사랑은 없어지만
강한 어머니 있어서 그 많큼의 사랑과 행복이 있는거 아닌가요.며느리도 참 좋은 며느리인것 같습니다.요즘은 국내에 한족여자애들이 그렇게 하고 사는 애들이 보기 드뭄니다.자식은 언젠가 내 몸에서 떠난 다고 생각해요 배아파서 낳아지만 언젠가 홀로
날것이면 자기 자신의 길을 가야 하니간요..우리 선조들은 옛날부터 그 사고방식을 가진것이 아니고 내 자식은 장가가도 내 품안에
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요즘은 시대가 좀 바뀌고 서양식을 많이 접하니 저도 아직까지 아들 걱정 많이 합니다,
님의 글에 항상 눈요기 하는 일입니다.항상 행복한 모습보기 좋습니다.
보석반지님은 우리 어머님 보다 대략 7살 정도 젊으시겠네요.
저도 이젠 딸이 있어서 부모님들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우리 조선족들은 예전부터 특히 여성들이, 욕심이 아주 많고 총명하며, 부지런하기에 이름있습니다.
중국 못사는나라에서 태여나서, 자식한테 집사주고, 차사주고, 유학보내려고 님 말대로, 허리 휘면서 돈을
벌어서 자식한테 보내는데, 솔찍이 연변에서 진심으로 외국에 있느 부모님을 생각하는 애들이 몇이 있습니까?
대부분이 한국에 나가서 노가다를 띠고,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연변에 애들은 , 맥주 마시고
노래방가고, 맥주 병사리로, 머리통이나 까부시면서, 부모님 돈으로 그 작은 연길에서 자가용 몰고 다니려고합니다.
돈은 물쓰듯이 쓰고, 우리 부모는 외국에 있다면서 우쭐렁 거리고, 또 맥주병 딸라 나가는것이 걔네들의 대부분
인생입니다. .
하지만 부모님들은 허리 휘면서 애 크면 외국보내겠다고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보내서 외국보내려고합니다,
외국에 가면 다 성공하나요?
행복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 진것이고, 지나친 노력으로 인해서 성과의 맛을 보면, 행운이 됩니다.
그건, 외국이든 중국이든, 사람이 살수 있는곳이며 누구나 다 성공할수 있고 행운아로 될수 있습니다.
그럼 그 옳바른길을 누가 선택해줘야겠습니까? 어랜애들은 대뇌가 성숙않됐고 경험이 없어서
많은 유혹에 흔들립니다. 자식은 언젠가는 부모를 떠나서 날게끔 지지해주시면 되는것 같습니다.
쓰다 보니, 말이 너무 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이젠 딸이 있어서 부모님들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우리 조선족들은 예전부터 특히 여성들이, 욕심이 아주 많고 총명하며, 부지런하기에 이름있습니다.
중국 못사는나라에서 태여나서, 자식한테 집사주고, 차사주고, 유학보내려고 님 말대로, 허리 휘면서 돈을
벌어서 자식한테 보내는데, 솔찍이 연변에서 진심으로 외국에 있느 부모님을 생각하는 애들이 몇이 있습니까?
대부분이 한국에 나가서 노가다를 띠고,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연변에 애들은 , 맥주 마시고
노래방가고, 맥주 병사리로, 머리통이나 까부시면서, 부모님 돈으로 그 작은 연길에서 자가용 몰고 다니려고합니다.
돈은 물쓰듯이 쓰고, 우리 부모는 외국에 있다면서 우쭐렁 거리고, 또 맥주병 딸라 나가는것이 걔네들의 대부분
인생입니다. .
하지만 부모님들은 허리 휘면서 애 크면 외국보내겠다고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보내서 외국보내려고합니다,
외국에 가면 다 성공하나요?
행복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 진것이고, 지나친 노력으로 인해서 성과의 맛을 보면, 행운이 됩니다.
그건, 외국이든 중국이든, 사람이 살수 있는곳이며 누구나 다 성공할수 있고 행운아로 될수 있습니다.
그럼 그 옳바른길을 누가 선택해줘야겠습니까? 어랜애들은 대뇌가 성숙않됐고 경험이 없어서
많은 유혹에 흔들립니다. 자식은 언젠가는 부모를 떠나서 날게끔 지지해주시면 되는것 같습니다.
쓰다 보니, 말이 너무 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제가 우리 남편한테 한 말이 있슴다.
넌 부모님곁에서 20년 살았다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갈길 두배 40년이상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나한테 잘해줘..ㅎㅎㅎ
그냥 우스개소리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떳떳하게 혼인을 맺고 결실을 맺은거 아주 잘한거라고 생각함다.
님이 행복하니 부모님한테 정답을 준것이 아님까?
넌 부모님곁에서 20년 살았다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갈길 두배 40년이상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나한테 잘해줘..ㅎㅎㅎ
그냥 우스개소리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떳떳하게 혼인을 맺고 결실을 맺은거 아주 잘한거라고 생각함다.
님이 행복하니 부모님한테 정답을 준것이 아님까?
네. 부모한테 주는 정답은 바로 행복을 보여주는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웃으면서 사는걸 보여주는것이 바로 효도의 정답입니다.
그기에 방문과, 소비돈도 자주 가져다 져주면 더 좋구요.
내가 들은 경험과 봤을떄, 조선족 남자들이 어릴떄 대남자 주의라고 해도, 나이 들면 40대 넘으면
마누라 말을 아주 잘듣습니다. 마누라를 무서워해요, 신체가 예전같지 않고 따라가지 않으니까, 마누라의 중요성을
더 깊이 꺠닳는것같습니다 저 나이에 들어선 분들을 보면요.
길걸을떄 늘 관찰하게 되는데요, 보통 길을 건늘떄, 할아버지들이 할머니 손을 잡고 건너갑니다. 할머니들한테
의지를 아주 많이 합니다. 나이는 많이 드셨는데 하는 행동을 보면, 할머니의 아들인것 같은 느낌이 많이듭니다.ㅋ
조선족 남자들은 그냥 술만 조금 적게 마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따뜻한 마음과 인정은 그어느민족도 비할수가없습니다.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웃으면서 사는걸 보여주는것이 바로 효도의 정답입니다.
그기에 방문과, 소비돈도 자주 가져다 져주면 더 좋구요.
내가 들은 경험과 봤을떄, 조선족 남자들이 어릴떄 대남자 주의라고 해도, 나이 들면 40대 넘으면
마누라 말을 아주 잘듣습니다. 마누라를 무서워해요, 신체가 예전같지 않고 따라가지 않으니까, 마누라의 중요성을
더 깊이 꺠닳는것같습니다 저 나이에 들어선 분들을 보면요.
길걸을떄 늘 관찰하게 되는데요, 보통 길을 건늘떄, 할아버지들이 할머니 손을 잡고 건너갑니다. 할머니들한테
의지를 아주 많이 합니다. 나이는 많이 드셨는데 하는 행동을 보면, 할머니의 아들인것 같은 느낌이 많이듭니다.ㅋ
조선족 남자들은 그냥 술만 조금 적게 마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따뜻한 마음과 인정은 그어느민족도 비할수가없습니다.
멜버른님의 팬입니다.
ㅎㅎㅎ
지금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고.
인터넷에 사진 올리거나,개인정보 올리는걸 정지하고
그냥 쭉 행복하게 사십시오.
ㅎㅎㅎ
유니맘님도 쉼터에서 알게 된 분인뎅
다들 사이좋게 지냅시다...
ㅎㅎㅎ
지금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고.
인터넷에 사진 올리거나,개인정보 올리는걸 정지하고
그냥 쭉 행복하게 사십시오.
ㅎㅎㅎ
유니맘님도 쉼터에서 알게 된 분인뎅
다들 사이좋게 지냅시다...
누나님 아도바이스 감사합니다.
인터넷에 개인정보를 많이 올린것같은데 나중에 누군가 저기 정보로 나를 해치려거나, 나의 약점을 쉽게 찾을수가
있죠. 저는 인터넷에서는 만날수 없기에 솔찍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원래부터 중국말에, 집에 나쁜일은 밖에서 얘기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마음은 아주 복잡하고
호랑이 가죽은 그려도 뼈는 못그리고, 사람의 얼굴과 면목은 알아도 마음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개인 정보를 올리면 꼭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것을 알면서 올렸습니다만, 정말 감사합니다 알려줘서요.
그냥 님의 말대로 쭉 행복하게 살구요, ㅋㅋㅋ 다른 사람 일에 삐치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시간되면 필요한 정보들 많이 올려보겠습니다. 혹시 많은 분들한테 도움이 될까해서요.
저는 불교를 좀 믿어서, 좋은일을하고 베풀면, 나한테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는걸 굳이 믿는 사람입니다.
다시는 쉼터에서 남의 의견을 평가 않하겠습니다.. 사진들을 전부 삭제하겠습니다.
누나님 감사합니다. ^^
인터넷에 개인정보를 많이 올린것같은데 나중에 누군가 저기 정보로 나를 해치려거나, 나의 약점을 쉽게 찾을수가
있죠. 저는 인터넷에서는 만날수 없기에 솔찍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원래부터 중국말에, 집에 나쁜일은 밖에서 얘기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마음은 아주 복잡하고
호랑이 가죽은 그려도 뼈는 못그리고, 사람의 얼굴과 면목은 알아도 마음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개인 정보를 올리면 꼭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것을 알면서 올렸습니다만, 정말 감사합니다 알려줘서요.
그냥 님의 말대로 쭉 행복하게 살구요, ㅋㅋㅋ 다른 사람 일에 삐치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시간되면 필요한 정보들 많이 올려보겠습니다. 혹시 많은 분들한테 도움이 될까해서요.
저는 불교를 좀 믿어서, 좋은일을하고 베풀면, 나한테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는걸 굳이 믿는 사람입니다.
다시는 쉼터에서 남의 의견을 평가 않하겠습니다.. 사진들을 전부 삭제하겠습니다.
누나님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