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김치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잘 익은 김치는 왜 맛도 좋고 신선한 내음이 날까. 오래 묵은 김치는 왜 시큼한 맛이 날까. 막연히 ‘익어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하기엔 더 많은 과학의 비밀이 숨어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소인 세계김치연구소가 김치가 익는 원인인 주요 유산균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발효 정도에 따라 김치의 맛과 향이 변하는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고 11일 밝혔다.
백김치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흔히 김치 맛의 비결은 재료와 손맛이라고 한다. 정확히는 배추ㆍ고추ㆍ마늘ㆍ젓갈 등 김치 원료가 가진 수많은 유기물이 유산균을 통한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대사산물을 만들어 낸다. 바로 이 대사산물이 김치의 맛과 향을 결정한다. 이런 발효에 관여하는 유산균은 다양하기 때문에, 같은 조리법으로 김치를 만들어도 발효가 진행되면서 김치의 맛이 각각 달라진다. 즉, 재료가 같더라도 재료의 구성비와 김치를 담글 때의 기온, 보관 장소ㆍ시간 등에 따라 다른 종류의 발효 과정을 겪는다는 얘기다.
김치의 발효 초기(섭씨 6도씨에서 1~2주)엔 ‘류코노스톡 메센테로이데스’란 유산균이 주류를 이뤄 톡 쏘는 신선한 맛과 향을 만들어 낸다. 연구팀은 지난해 이 유산균이 김치의 신선한 맛과 향을 담당하는 물질인 ‘만니톨’과 ‘아세토인’의 생성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깍두기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김치의 발효가 중ㆍ후기(섭씨 6도씨에서 3~4주)로 넘어가면 김치의 맛과 향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발효가 진행되면서 ‘웨이셀라 코리엔시스( Weissella koreensis )’란 유산균이 등장한다. 이 유산균은 만니톨 생성능력이 약하고, 아세토인을 ‘2,3-부타네디올’로 바꾼다. 이 유산균이 작용하면 김치의 신선한 맛과 향은 줄어들게 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김치의 발효 중ㆍ후기의 주요 유산균인 웨이셀라 코리엔시스가 김치 발효 과정에서 맛을 좌우하는 젖산, 초산과 같은 대사산물을 생성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즉, 웨이셀라 코리엔시스 유산균은 내산성(耐酸性)이 강해 산도가 높아진 발효 중ㆍ후기에 김치의 발효를 주도한다는 기존의 학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유산균의 이름(학명)에 ‘코리엔시스’가 들어간 것은 2002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김치 유산균을 새로 분리해내면서 ‘코리아(한국)’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김치에는 이외에도 수백 종의 유산균이 들어있어, 환경에 따라 다양한 조합을 이루며 맛과 향을 만들어 낸다.
배추롤김치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이번 연구를 주도한 미생물기능성연구단 이세희 박사는 “김치 발효 초기뿐만 아니라 중ㆍ후기까지 관여하는 김치 유산균의 유전자를 분석해 김치 발효대사 경로를 과학적으로 밝힌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식품미생물 분야 유명 국제 학술지인 ‘푸드 마이크로바이올로지’ 최근호(2018년 4월)에 소개됐다.
최준호 기자 joonho @ joongang . co .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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