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7월 14일, 월드컵 예선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 있었으니, 중미의 작은 나라인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두 나라 간의 월드컵 지역 예선전이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1968년 5월부터 시작된 1970년 월드컵 지역 예선전, 북중미 예선 14조 A지역은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두 나라가 최종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969년 6월7일 엘살바도르 선수단이 묵고 있는 호텔 밖에서는 밤새도록 온두라스 응원단이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깡통을 두드리며 고함을 질러대 엘살바도르 선수들은 잠을 못 자, 다음날 열린 1차전에서 엘살바도르가 그만 1대 0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더욱 커져, 엘살바도르에서 이 경기를 TV로 지켜보던 한 소녀가 충격에 못 이겨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말았는데, 이 소녀의 장례식에 대통령을 비롯해 전각료가 참석하고 대표선수단도 조의를 표했고 이 장면이 TV로 전국에 중계되었습니다.
6월 14일 온두라스 팀이 2차전을 위해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 왔습니다. 경기 전날 밤 온두라스 팀이 묵고 있는 호텔 밖에선 엘살바도르 응원단이 보복이라도 하듯 호텔 창문을 깨고 죽은 쥐를 던지며 난동을 피웠습니다.
역시 한숨도 자지 못한 온두라스 선수들은 엘살바도르에 3대0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경기장에서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관중석에서는 이미 응원단끼리 패싸움이 벌어져, 온두라스 응원단 차 150여 대가 불타고 응원단 2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많은 사람이 다쳤습니다.
같은 시각 온두라스 전역에서도 엘살바도르 인에 대한 폭행이 벌어져 수십명의 엘살바도르 인이 살해되었습니다. 약탈 방화도 일어나 재산 피해만도 2천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6월 23일 극도로 감정이 악화된 두 나라는 국교를 끊었고 6월 27일 중립지역인 멕시코시티에서 두 나라의 최종전이 열렸습니다. 이 날은 관중보다 경찰이 더 많았으며 경기는 난폭했습니다. 결과는 2대 2무승부라서 연장전으로 이어졌는데. 전반 12분 엘살바도르의 로드리게스가 결승골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이 한골이 바로 전쟁의 신호탄이 되고 말았으니, 7월 14일 엘살바도르 비행기가 선전포고와 동시에 온두라스 네 개 도시를 폭격했습니다. 탱크를 앞세운 보병부대는 온두라스 국경을 넘어 25 마일이나 진격했고, 이에 온두라스는 즉각 대응해, 낙하산 부대를 엘살바도르 후방에 투입해 교란작전을 펼쳤습니다.
이 전쟁은 사흘 간이나 계속되다가 미주기구(OAS)와 이웃나라들의 중재로 7월 18일 정전에 들어갔습니다.
피해는 온두라스가 더 커 온두라스는 축구에도 지고 전쟁에도 져 더 큰 상처를 입은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3000명이 죽고 1만2000여 명이 부상했으며 15만명이 집을 잃는 피해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1969년의 월드컵 전쟁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두 나라 국민들의 가슴에 씻기 힘든 상처만을 남긴 채 끝났습니다.
관심이 잇는사람들이 별르 잇는거 같지않은데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