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부는 伽倻가 설치한 倭 통제집단이었다
우리 고대사와 중국 고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倭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그리고 “日本書紀”에 등장하는 임나일본부는 누구에 의해 설치된 것일까. 필자는 임나일본부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세운 것이 아니라 가야(임나)가 倭세력의 통제와 주변국을 견제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은 일제시대 이래 한·일 양국 학계의 최대 쟁점이었다.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이 문제에 관한 한 감정적 판단까지 숨기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주제로 남아 있다. 1972년 재일교포 사학자 이진희(李進熙)씨가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의 결정적 근거로 삼았던 광개토대왕비문이 일본군 참모본부에 의해 조작됐다고 폭로했을 때를 기억해 보라.
당시 국내 언론매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진희씨의 비문조작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를 둘러싼 논쟁과 발표회가 뒤따랐고, 관련 논문과 서적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진희의 조작설 제기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당시 유신에 쏠릴 국민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을 정도였다. 일본군이 비문을 조작했다는 주장은 사람들의 반일감정에 다시 불을 지폈고, 학자들도 대체로 비문조작설에 동조해 파문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그의 주장은 조작설의 당사자인 일본 학계에도 충격을 주었다. 일부 일본 학자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비문조작설을 일본 근대 역사학의 왜곡된 체질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연결지었다. 즉, 일본의 근대 역사학이 군국주의 침략을 뒷받침하는 도구가 된 것 아니냐는 반성이었다. 그러나 대다수 일본 연구자들은 비문조작설을 ‘공중에 지은 누각’으로 평가절하했다. 그들의 논리는 일개 위관급 포병장교에 불과한 사쿠오(酒句景信) 대위는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현장에서 비문을 조작할 만한 지식이 없었으며, 더구나 일본군 참모본부에 의한 조직적인 조작이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임나일본부 문제가 고대 한·일 관계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적 의미도 아울러 지니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점령하는 것은 어찌보면 쉬운 일이다. 군사력만 있으면 일단 점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정복에 대한 피정복민의 동의를 얻거나 피정복민의 저항 의지를 원초적으로 빼앗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정복민의 뇌리를 세뇌시켜 타민족의 정복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이 경우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역사가 이용되는 것이다. 아다시피 이런 전략에 능란한 민족이 일본 민족이었다. 일본은 단지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점령한 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를 자의로 조작해 저항정신을 말살하려 했던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임나일본부가 있었다. 임나일본부란 한마디로 말해 ‘고대 야마토(大和) 조정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것이다. 임나일본부는 일제 강점의 도구로 이용된 셈이다.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견해는 일본 지식인들의 의식 속에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서구열강의 위협을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로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되자 이는 더욱 확대생산됐다. 군국주의자들은 근대화 추진 과정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한국을 침략해 식민지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정한론이었고, 그것의 역사적인 주된 근거가 바로 임나일본부였던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은 그 뒤로 일제의 한반도 강점을 정당화해 주는 역사적 장치로 작용했고, 일제가 패망한 현재까지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 수록되고 있는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은 日帝의 한반도 강점의 무기
일본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집대성한 인물은 스에마츠(末松保和)다. 스에마츠는 1949년 출간한 그의 “임나흥망사”(任那興亡史)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집대성했다. 그 근거와 내용부터 짚어보자.
“일본서기”(日本書紀) ‘신공기’(神功紀) 49년(369)조에 따르면, 신공황후가 황전별(荒田別)·녹아별(鹿我別) 등을 보내 백제 장수들과 함께 신라를 치고, 이어 가야 지역의 7국을 평정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바로 이 구절이 임나일본부설의 주요한 근거자료다. 또한 “일본서기”는 그 이전에도 신공황후가 삼한을 정복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 역시 임나일본부를 실재화하는 구실로 이용되었다. 신공황후 때부터 왜는 한반도 남부 지역인 임나에 일본부를 설치하여 직접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 세력은 백제·신라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562년 고령의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할 때까지 유지되었다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요체다.
스에마츠는 ‘광개토대왕비문’도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았다. 비문의 그 유명한 신묘년(391) 기사를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임나(혹은 가라)·신라 등을 격파하고 신민(臣民)으로 삼았다’고 해석하여, 당시 왜의 한반도 남부 지배를 확인해 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한 것이다. 광개토대왕비문은 당대의 사실을 기록한 1차자료이고, 고구려 입장에서 쓰여진 자료라는 점에서 “일본서기”보다 더 신빙성이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스에마츠는 이밖에도 중국 남조 송·제·양나라의 정사(正史)에 나오는 왜왕의 책봉 기사도 임나일본부의 근거로 들었다. 이들 기록에는 왜왕이 ‘도독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제군사’(都督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諸軍事)라는 관작(官爵)을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데, 송과 양나라에서는 백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한 왜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칭호를 내린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3국인 중국측 사서에도 야마토 조정의 한반도 중남부 지배를 반영하는 기록이 나오고 있으니, 임나일본부설은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밖에 그는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소장된 칠지도(七枝刀)도 왜의 군사적 우세와 한반도 남부 지배를 인정한 백제가 야마토 조정에 바친 것으로 해석하여 임나일본부를 합리화했다.
이에 대한 본격적인 반론은 북한 학계에서 먼저 나왔다. 북한의 사학자 김석형(金錫亨)은 1963년 “력사과학”에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내 분국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해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했고, 이후 이를 보완한 “초기 조일관계사”(1965)를 출간해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내에 존재했다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했다.
여기서 김석형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한반도 관련 사건은 실제 한반도 여러 나라와 야마토 조정 사이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이주민들에 의해 각지에 세워진 이른바 ‘삼한·삼국의 분국(分國)’들과 야마토 조정이 일본열도 안에서 벌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임나일본부도 일본열도 내의 가야계 분국인 임나국에 설치한 것이지, 한반도 남부에 설치된 것이 결코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석형의 이론은 일제의 임나일본부설을 전면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반도 본국과 연계를 가진 분국들이 일본열도를 지배했다는 정반대 논리였다. ‘분국설’로 불리는 그의 주장은 이처럼 일본의 논리를 정반대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으나 그 파격성만큼의 관련 자료에 제시가 불분명해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일축해 버렸다.
임나일본부설에 守勢였던 한국 역사학
남한 학계에서는 김석형의 주장이 나온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렇다할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천관우(千寬宇)가 1977∼1978년 “문학과지성”(28·29·31호)에 기고한 일련의 논문을 통해 임나일본부 논쟁에 불을 지폈다.
그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 관련 사건의 주체는 일본의 주장대로 야마토 조정이 아니라 백제라고 주장했다. 백제 멸망후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들에 의해 “일본서기”가 편찬되면서, 원래 백제가 주체로 되어 있던 기사들이 왜가 주체로 된 기사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임나일본부는 백제가 가야 지역의 통치를 위해 설치한 파견군 사령부와 같은 것으로, 고대 일본은 한반도 남부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남북한의 유력한 학자들이 일본이 주장하던 임나일본부설에 반론을 제기하자 일본 역사학계는 임나일본부설을 보완한 여러 견해들을 제출하였다. 가야 지역에 있던 왜국계 주민의 자치기관이라는 견해, 가야와 왜의 외교교섭을 맡은 기관으로 보는 견해, 왜가 설치한 상업적 목적의 교역기관으로 보는 견해 등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들이다.
어쨌든 이들 견해는 과거같이 2세기라는 장구한 기간 동안 야마토 조정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당초의 주장에 비해 상당히 후퇴한 모습이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문제는 현재까지도 임나일본부설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인식의 기본틀, 즉 ‘고대 일본이 한반도에 군사적으로 진출하여 한반도 남부의 여러 나라에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미쳤다”는 생각 자체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일부 논거들은 무너졌지만 ‘광개토대왕비문’을 비롯한 우리측 기록에도 분명히 등장하는 왜병의 존재는 결국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역에 대해 강력한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형된 임나일본부설도 가야 지역에서 왜의 역할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제 논쟁의 핵심은 임나일본부 자체가 아니라, 고대 일본의 한반도 남부에 대한 지배 혹은 영향력 행사의 확인에 모아졌다. 이 사실만 훼손되지 않는다면, 임나일본부가 통치기관이었든 아니든, 더 나아가 실제 존재했든 안했든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이에 대한 우리 학계의 주된 견해는 임나일본부설 자체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광개토대왕비문에 등장하는 신묘년, 즉 4세기 후반에 일본열도에는 그러한 대규모 정복전쟁을 수행할 만한 정치세력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임나일본부설을 허구라고 주장하는 주요한 근거였다. 과연 임나일본부설은 일제가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일본서기”에서는 ‘임나’를 ‘미마나’로 읽는데 좁은 의미로는 김해, 넓은 의미로는 가야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서기”에서는 임나가 김해의 금관국을 가리키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넓은 의미로 가야 지역의 나라들을 총칭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많지는 않지만 임나의 용례는 우리측 기록에도 나타난다. “삼국사기”와 ‘광개토대왕비문’, ‘진경대사탑비문’(眞鏡大師塔碑文·923) 등에서 3회나 나온다. 예컨대 “삼국사기” 열전 강수전에는 신라 문무왕 때 활동한 유명한 문장가 강수가 본래 임나가량(任那加良) 출신이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우리 고대사와 중국 고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倭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그리고 “日本書紀”에 등장하는 임나일본부는 누구에 의해 설치된 것일까. 필자는 임나일본부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세운 것이 아니라 가야(임나)가 倭세력의 통제와 주변국을 견제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은 일제시대 이래 한·일 양국 학계의 최대 쟁점이었다.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이 문제에 관한 한 감정적 판단까지 숨기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주제로 남아 있다. 1972년 재일교포 사학자 이진희(李進熙)씨가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의 결정적 근거로 삼았던 광개토대왕비문이 일본군 참모본부에 의해 조작됐다고 폭로했을 때를 기억해 보라.
당시 국내 언론매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진희씨의 비문조작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를 둘러싼 논쟁과 발표회가 뒤따랐고, 관련 논문과 서적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진희의 조작설 제기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당시 유신에 쏠릴 국민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을 정도였다. 일본군이 비문을 조작했다는 주장은 사람들의 반일감정에 다시 불을 지폈고, 학자들도 대체로 비문조작설에 동조해 파문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그의 주장은 조작설의 당사자인 일본 학계에도 충격을 주었다. 일부 일본 학자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비문조작설을 일본 근대 역사학의 왜곡된 체질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연결지었다. 즉, 일본의 근대 역사학이 군국주의 침략을 뒷받침하는 도구가 된 것 아니냐는 반성이었다. 그러나 대다수 일본 연구자들은 비문조작설을 ‘공중에 지은 누각’으로 평가절하했다. 그들의 논리는 일개 위관급 포병장교에 불과한 사쿠오(酒句景信) 대위는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현장에서 비문을 조작할 만한 지식이 없었으며, 더구나 일본군 참모본부에 의한 조직적인 조작이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임나일본부 문제가 고대 한·일 관계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적 의미도 아울러 지니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점령하는 것은 어찌보면 쉬운 일이다. 군사력만 있으면 일단 점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정복에 대한 피정복민의 동의를 얻거나 피정복민의 저항 의지를 원초적으로 빼앗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정복민의 뇌리를 세뇌시켜 타민족의 정복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이 경우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역사가 이용되는 것이다. 아다시피 이런 전략에 능란한 민족이 일본 민족이었다. 일본은 단지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점령한 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를 자의로 조작해 저항정신을 말살하려 했던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임나일본부가 있었다. 임나일본부란 한마디로 말해 ‘고대 야마토(大和) 조정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것이다. 임나일본부는 일제 강점의 도구로 이용된 셈이다.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견해는 일본 지식인들의 의식 속에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서구열강의 위협을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로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되자 이는 더욱 확대생산됐다. 군국주의자들은 근대화 추진 과정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한국을 침략해 식민지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정한론이었고, 그것의 역사적인 주된 근거가 바로 임나일본부였던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은 그 뒤로 일제의 한반도 강점을 정당화해 주는 역사적 장치로 작용했고, 일제가 패망한 현재까지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 수록되고 있는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은 日帝의 한반도 강점의 무기
일본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집대성한 인물은 스에마츠(末松保和)다. 스에마츠는 1949년 출간한 그의 “임나흥망사”(任那興亡史)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집대성했다. 그 근거와 내용부터 짚어보자.
“일본서기”(日本書紀) ‘신공기’(神功紀) 49년(369)조에 따르면, 신공황후가 황전별(荒田別)·녹아별(鹿我別) 등을 보내 백제 장수들과 함께 신라를 치고, 이어 가야 지역의 7국을 평정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바로 이 구절이 임나일본부설의 주요한 근거자료다. 또한 “일본서기”는 그 이전에도 신공황후가 삼한을 정복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 역시 임나일본부를 실재화하는 구실로 이용되었다. 신공황후 때부터 왜는 한반도 남부 지역인 임나에 일본부를 설치하여 직접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 세력은 백제·신라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562년 고령의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할 때까지 유지되었다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요체다.
스에마츠는 ‘광개토대왕비문’도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았다. 비문의 그 유명한 신묘년(391) 기사를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임나(혹은 가라)·신라 등을 격파하고 신민(臣民)으로 삼았다’고 해석하여, 당시 왜의 한반도 남부 지배를 확인해 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한 것이다. 광개토대왕비문은 당대의 사실을 기록한 1차자료이고, 고구려 입장에서 쓰여진 자료라는 점에서 “일본서기”보다 더 신빙성이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스에마츠는 이밖에도 중국 남조 송·제·양나라의 정사(正史)에 나오는 왜왕의 책봉 기사도 임나일본부의 근거로 들었다. 이들 기록에는 왜왕이 ‘도독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제군사’(都督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諸軍事)라는 관작(官爵)을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데, 송과 양나라에서는 백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한 왜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칭호를 내린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3국인 중국측 사서에도 야마토 조정의 한반도 중남부 지배를 반영하는 기록이 나오고 있으니, 임나일본부설은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밖에 그는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소장된 칠지도(七枝刀)도 왜의 군사적 우세와 한반도 남부 지배를 인정한 백제가 야마토 조정에 바친 것으로 해석하여 임나일본부를 합리화했다.
이에 대한 본격적인 반론은 북한 학계에서 먼저 나왔다. 북한의 사학자 김석형(金錫亨)은 1963년 “력사과학”에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내 분국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해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했고, 이후 이를 보완한 “초기 조일관계사”(1965)를 출간해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내에 존재했다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했다.
여기서 김석형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한반도 관련 사건은 실제 한반도 여러 나라와 야마토 조정 사이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이주민들에 의해 각지에 세워진 이른바 ‘삼한·삼국의 분국(分國)’들과 야마토 조정이 일본열도 안에서 벌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임나일본부도 일본열도 내의 가야계 분국인 임나국에 설치한 것이지, 한반도 남부에 설치된 것이 결코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석형의 이론은 일제의 임나일본부설을 전면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반도 본국과 연계를 가진 분국들이 일본열도를 지배했다는 정반대 논리였다. ‘분국설’로 불리는 그의 주장은 이처럼 일본의 논리를 정반대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으나 그 파격성만큼의 관련 자료에 제시가 불분명해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일축해 버렸다.
임나일본부설에 守勢였던 한국 역사학
남한 학계에서는 김석형의 주장이 나온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렇다할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천관우(千寬宇)가 1977∼1978년 “문학과지성”(28·29·31호)에 기고한 일련의 논문을 통해 임나일본부 논쟁에 불을 지폈다.
그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 관련 사건의 주체는 일본의 주장대로 야마토 조정이 아니라 백제라고 주장했다. 백제 멸망후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들에 의해 “일본서기”가 편찬되면서, 원래 백제가 주체로 되어 있던 기사들이 왜가 주체로 된 기사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임나일본부는 백제가 가야 지역의 통치를 위해 설치한 파견군 사령부와 같은 것으로, 고대 일본은 한반도 남부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남북한의 유력한 학자들이 일본이 주장하던 임나일본부설에 반론을 제기하자 일본 역사학계는 임나일본부설을 보완한 여러 견해들을 제출하였다. 가야 지역에 있던 왜국계 주민의 자치기관이라는 견해, 가야와 왜의 외교교섭을 맡은 기관으로 보는 견해, 왜가 설치한 상업적 목적의 교역기관으로 보는 견해 등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들이다.
어쨌든 이들 견해는 과거같이 2세기라는 장구한 기간 동안 야마토 조정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당초의 주장에 비해 상당히 후퇴한 모습이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문제는 현재까지도 임나일본부설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인식의 기본틀, 즉 ‘고대 일본이 한반도에 군사적으로 진출하여 한반도 남부의 여러 나라에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미쳤다”는 생각 자체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일부 논거들은 무너졌지만 ‘광개토대왕비문’을 비롯한 우리측 기록에도 분명히 등장하는 왜병의 존재는 결국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역에 대해 강력한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형된 임나일본부설도 가야 지역에서 왜의 역할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제 논쟁의 핵심은 임나일본부 자체가 아니라, 고대 일본의 한반도 남부에 대한 지배 혹은 영향력 행사의 확인에 모아졌다. 이 사실만 훼손되지 않는다면, 임나일본부가 통치기관이었든 아니든, 더 나아가 실제 존재했든 안했든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이에 대한 우리 학계의 주된 견해는 임나일본부설 자체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광개토대왕비문에 등장하는 신묘년, 즉 4세기 후반에 일본열도에는 그러한 대규모 정복전쟁을 수행할 만한 정치세력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임나일본부설을 허구라고 주장하는 주요한 근거였다. 과연 임나일본부설은 일제가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일본서기”에서는 ‘임나’를 ‘미마나’로 읽는데 좁은 의미로는 김해, 넓은 의미로는 가야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서기”에서는 임나가 김해의 금관국을 가리키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넓은 의미로 가야 지역의 나라들을 총칭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많지는 않지만 임나의 용례는 우리측 기록에도 나타난다. “삼국사기”와 ‘광개토대왕비문’, ‘진경대사탑비문’(眞鏡大師塔碑文·923) 등에서 3회나 나온다. 예컨대 “삼국사기” 열전 강수전에는 신라 문무왕 때 활동한 유명한 문장가 강수가 본래 임나가량(任那加良) 출신이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쉼터에 새로운 글 쓰기는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소중한 기록 중에 꼭 다른 분들에게도 읽었으면 하는 좋은 글들은 「추천하기」를 눌러주세요.
일부 글들은 악성광고나 의미없는 스팸들일 수 있습니다. 읽는 분들에게 피해가 되거나 삭제를 희망하는 글에는 신고를 클릭해주세요. 로봇을 통하여 정기적으로 확인 및 정리를 합니다.

개괄하는 연습두 해보시우...ㅎㅎ